"쫓는 자 쫓기는 자, 삶과 죽음이 한 공간에서 엉키며 생사의 게임 진행"

이 영 작가 / 기사승인 : 2016-01-27 17:5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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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독점연재 - 장편소설 ‘김정은 통일전쟁’ (14)
본지 독점연재 - 장편소설 ‘김정은 통일전쟁’ (14)

미국 워싱턴 DC 국방성 펜타곤

국가안보전략회의에서는 조기에 전쟁을 종결하기 위해서 북한을 전술핵으로 공격하는 방안을 옵션으로 채택하려고 심각히 분석 중이었다. 하지만 핵사용 후 북한의 보복 핵공격으로 발생되는 후유증이 훨씬 심각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었다.
핵탄두를 탑재한 미사일로 서울과 도쿄를 공격할 시 한 시간 내, 두 도시는 각각 수백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핵으로 공격을 당한 북한이 최후 수단으로 생화학전을 전개한다면, 이는 인류의 재앙으로까지 번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골치 아픈 골리앗이 되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지도부는 흔들렸다.

포로

홋카이도 후라노 자위대 훈련장은 전차 기동로가 거미줄처럼 퍼져 있고 포탄 자욱은 벌집처럼 숭숭 뚫려 있었다.
해발 1,000m 고지에 초원처럼 펼쳐진 완만한 경사지에는 현지 제2보병사단의 장갑차 수십 대가 사방으로 늘어서 작전을 진행하고 있었다.
하늘을 당장이라도 두 쪽 낼 듯 달려드는 거대한 헬리콥터 시누크 47은 일렬로 줄을 맞추어 산기슭으로 내려앉았다. 제1공정단 대원들이 게릴라 도주로를 차단하며 포위섬멸작전을 위해 산악지역으로 투입되고 있었다. 대형 헬리콥터는 입을 쩍 벌리어 개미새끼 같은 병력을 토해 냈다.

헬기 강습 대원들은 두 줄로 빠르게 산등성 쪽으로 달라붙었다.
먼산 쪽에서 바람에 밀려오듯 들려오는 총소리는 대원들의 눈빛을 매섭게 만들었다.
서산의 해는 긴 꼬랑지를 산등성으로 늘어뜨리며 붉게 하늘을 물들였다. 홋카이도는 8월 여름 날씨임에도 시원했다. 해가 떨어진 높은 산맥 고지 군에서는 밤이 깊어갈수록 한기를 느껴 추웠다.
야마다 중위는 3시간을 산으로 오른 뒤에야 야간 매복 작전진지를 편성했다. 초승달이 희뿌연 산안개 속에서 달아나듯 구름 속으로 숨바꼭질했다. 그는 접근하기 좋은 능선의 낮은 쪽으로 대원들을 2명씩 조를 만들어 소로 길을 따라 배치했다.
여름밤일지라도 말없이 꼼짝하지 않고 밤을 새우는 것은 고도의 인내와 끈기가 필요한 수도승 같은 일이었다.
밤은 점점 깊어갔다. 풀벌레 소리만이 유일한 소리이자 벗이었다.
그는 지루하다고 느껴질 때마다 무선 신호기를 눌러 대원들의 근무상태를 확인했다. 처음 두어 시간은 긴장감이 감돌지만 그 다음 두어 시간은 게릴라보다 무서운 졸음과 싸워야 하고, 그 다음은 눈앞으로 떠오르는 사람들의 얼굴을 지우면서 고독과 싸워야 하는 긴 밤의 끝이 분명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야마다는 3년 전 졸업파티에서 히토미와 춤을 추던 모습이 느린 동작으로 떠올랐다. 까무잡잡한 작은 키 둥그스름한 귀여운 얼굴, 생글거리는 미소가 그의 눈앞에서 자꾸 어른거렸다.

야마다 중위는 양손으로 두 눈을 비비며 고개를 흔들었다. 새벽 04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오지 않을 것 같은 이 밤이 마지막일지 모른다고 생각한 모든 대원들은 햇살이 동쪽하늘에서부터 빗살처럼 퍼지며 나무사이로 산란할 때 모두는 삶에 대한 경건함과 밤새 무사함에 감사 기도를 드린다.
[삶은 위대하고 삶은 진지하고 그리고 삶은 쓰러지지 않고 버티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생존하라.]

야마다 중위는 전국시대 사무라이 시인 기요마사 글을 인용하여 교육시간 때마다 대원들에게 강조했다. 지나간 밤은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아침 7시에 각자의 매복 호에서 휴대용 비상식량으로 간단히 아침을 때우곤 4시간 정도 교대로 오전 휴식을 취했다.
오후 1시부터는 산 정상 쪽으로 이동하여 산 아래로 되짚으며 수색 정찰이 실시됐다. 긴 쇠꼬챙이를 이용하여 의심나는 땅 속을 찔러가면서 땅 속 비트에 숨어 있을 게릴라를 찾는 작전은 숲속에서 바늘을 찾는 심정으로 세밀하게 진행되었다.

쫓는 자 쫓기는 자, 삶과 죽음이 한 공간에서 엉키며 생사의 게임이 진행되었다. 야마다의 머릿속은 항상 복잡했다. 하루, 이틀, 사흘 작전은 주식 시장의 작전보다 더 쥐도 새도 모르게 진행되었지만, 게릴라들은 사람 냄새를 귀신보다 정확히 맡고는 유령처럼 내달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8월 26일 교양일지 태양 맑음 바람 조금 강함
히다카산맥의 이시카야고원 산속, 나는 은거지에서 동떨어진 곳으로 이동하여 지령수신 라디오를 꺼내 들고는 안테나선을 수평으로 묶은 뒤 지령수신대기를 했다.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능선, 오늘도 자유조선 꽃다발 위에, 아~ 그 이름도 빛나는 김일성 장군~ 쏘가리 323호, 쏘가리 323호. 여기는 용궁 쏘가리 323호에게 보낸다.>

나를 호출하는 소리는 낮 12시에 시작된다. 정찰총국 중앙본부에서 보내는 명령문을 숫자로 받아 적고, 그것을 풀어 조장에게 보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난 자다가도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들으면 머리끝이 버쩍 서면서 잠이 확 깨곤 한다.
손에 비지땀이 흐른다. 수령님은 우리 공화국의 신이기 때문에 이름 석 자를 그냥 부를 수가 없었다. 어제 받은 지령을 받고, 나는 흥분되었다.
말로만 듣던 미제 원쑤 도깨비들과 싸울 기회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미국의 낙하산부대를 습격하여 철천지 원쑤들의 머리통을 제거하라는 지령문이 하달되었다. 난 무섭기도 했지만 그래도 뿔이 달려 있을 것 같은 미제 놈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줄 생각을 하니 기분이 묘해졌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만세!

108특공대 3지-2타-3조 저격수 하사 신차력
삿포로시 동쪽 끝 넓은 벌판으로 야전종합병원이 들어섰다. 자위대 중앙병원 직할 제1야전병원이었다. 환자들은 피자 배달되듯이 헬리콥터로 수시로 실려 들어왔다. 도쿄 자위대 중앙병원에서 파견 나온 응급처치 반. 히토미 중위의 하얀 유니폼은 검붉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좀 더 가까이에서라도 야마다 중위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히토미는 야전병원 지원 근무를 신청했던 것이다.

하루 종일 응급 환자를 처리하는 병원은 처참했다. 장갑차가 뒤집어지고, 헬기가 떨어지고, 총기 오발사고로 옆 동료가 맞아죽고 하는 불상사가 끊임없이 이어지며 환자를 발생시켰다. 야전병원의 한쪽 끝으로는 삼중 철조망이 이중으로 둘러쳐진 별도의 텐트가 눈에 띄었다.

24시간 무장 병력들이 주위를 지켰다. 어느 날인가 자그마한 체구의 권총을 찬 사내는 입구에서 신분증으로 출입증을 교환하여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야전병원 침대에 팔과 다리가 붕대로 묶여있는 검은 얼굴의 사내가 보였다. 언뜻 보기에도 자위대원이 아닌 북한 특공대게릴라로 보였다. 찢어진 눈매 갈라진 입술 온몸을 붕대로 감아놓다시피 한 그의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상대를 녹여버릴 듯 이글거리는 눈빛이 뿜어져 나왔다.

호시노 소령은 실내 금연 지역에서 담배에 불을 붙여 그의 입가에 물렸다. 사내는 순간 담배를 뱉어냈다.
“간나새끼, 어디서 개수작이야 집어치라우.”
검은 사내는 발악을 하듯 거칠게 대응했다. 파편을 맞고 포로가 된 이 사내는 며칠 전에도 자살소동을 벌였던 인물이어서 호시노 소령은 경계심을 거두지 않았다. 사내의 기록일지에는 후라노 제1구역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사내는 우리 안에 갇힌 굶주린 늑대처럼 앙칼지게 반응하며 악을 쓰다가는 힘이 빠졌는지 조용해졌다. 고통스럽게 밀려오는 신음 소리가 간간히 사내의 입속에서 튀어나왔다.
“어이, 이봐요. 당신과 나는 아무런 감정이 없이 만났어. 어차피 당신과 나는 각자의 역할이 있지. 당신은 부여받은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해야 하고 나는 나대로 당신에 관한 것을 알아야 하고 말이지.”

호시노 소령은 낮은 톤으로 조용히 사내에게 호소하듯 말했다.
멀뚱히 듣고 있던 사내는 눈이 동그래지며 의아스레 물었다.
“동무, 조선말을 어디서 배웠는가?”
“나도 당신과 같은 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소.”
“째포구만.”
재일동포라는 북한식 표현이 사내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교포는 아니고, 어찌하다 보니 일본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소.”

호시노 소령의 숨김없는 진솔한 대답에 사내의 적개심이 누그러졌다.
그는 빙그레 웃으며 사내의 눈과 마주쳤다. 사내의 눈동자가 녹아내리듯 그의 가슴으로 스몄다.
“군관동무는 어찌해서리. 여기서 군관이 되었음매?”
사내는 오히려 궁금한 듯 질문을 했다.
그는 정보본부조사관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별이 가득히 찍힌 담배를 사내에게 권했다. 사내는 냉수부터 한 잔 달라고 부탁하고서는 물려준 담배를 깊숙이 빨아댔다.
“군관 동무, 나는 이미 죽은 몸입니다. 내가 여기 살아있다는 자체가 반동분자란 말이지. 그러면 북에 있는 우리 식구들은 다 죽는다 말입니다.”

사내의 하소연에 그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고개를 끄덕여주는 정도가 전부였다. 사내는 흐느끼는 감정을 조절한 후 말을 이어갔다.
“혁명가는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하고, 우리는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된단 말이지요. 제발 부탁입니다, 군관 동무. 죽여 주시라요.”
그와 사내의 대화는 사방이 어둠 속에 빠지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끝났다. 그는 임시로 마련한 사무실로 돌아와 신문결과를 작성했다.

“계급 상사, 이름 임호철, 소속 북조선 정찰총국 제108특공대 2지역대 1타격대 1조, 직책 부조장, 침투목표 7기계화사령부 지휘시설 폭파.”

그는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2천 년대를 살아가는 문명인으로서 아직도 100년 전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임 상사가 처량해보였다.
입만 열면 김일성 수령, 항일무장투쟁 계승이라 말끝마다 덧붙이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는 임 상사를 회유하며 작전 정황을 파악했다. 그 결과 홋카이도를 침공한 북한의 제108특공대 본부는 히다카 산맥을 따라 여러 개의 갱도로 굴설 되어 있었고, 홋카이도에 총 5개 지역대별로 무장공격을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에게 김일성과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은 일본인들이 신처럼 숭배하는 천황 이상의 존재였다. 호시노 소령은 김일성은 살아서도 신이었고, 죽어서도 신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가 야전병원 포로수용 텐트를 나왔을 때는 하늘에서는 무수한 별빛이 쏟아져 내렸다. 이미 수만 년 아니 수십만 년 전 수명을 다하고 죽은 별들이 토해낸 그 빛이 지금 우리의 눈으로 살아 들어오고 있었다. 마치 죽은 김일성의 이름이 지금도 그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 움직이듯이. 며칠 후 사고가 발생했다는 보고에 호시노 소령은 다시 포로수용 텐트를 찾았다. 매복조 크레모아에 걸려 하반신이 만신창이가 되어 포로가 되었던 임호철 상사는 결국 수술용 칼로 자신의 동맥을 끊어 자결했다. 북한에 살아남아 있는 가족의 미래를 걱정하던 그가 선택한 길이다.

영현실에는 사살된 게릴라들이 줄지어 누워 있었다. 검은 비닐보자기를 걷어내자 주검은 해부 실험이 끝난 누더기 시신처럼 비참했다.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심지어는 목이 날아간 주검도 있었다.
얼룩무늬 군복에 짙푸른 운동화 그리고 한결같이 양말은 신지 않고 있었다. 어떤 주검은 수류탄으로 자폭을 해서인지 상반신이 아예 다 날아가 버렸다. 검시관들은 시신의 옷을 다 벗겼다. 검푸른 총알 자욱이 문신처럼 보였다.

화학제독부대에서 나온 팀은 시신에 방사능 오염과 기타 생물학 관련 증거 채취를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호시노 소령은 시신을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이 주검들이 주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생존일까 아니면 누구를 위한 거룩한 죽음일까? 어느 광신적 종교집단 같은 행위는 100년 뒤에 어떤 평가를 받을까? 그는 심적으로 괴로웠다. 한 민족으로 태어나 운명적 선택으로 자유와 번영 속에 살아가는 자신과 그리고 이렇게 처참하게 죽어야 하는 이들과 비교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갑자기 죽은 김일성이 원망스러웠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삿포로의 밤이 왠지 슬프게 다가섰다.
모든 불빛들이 눈물을 흘리듯이 바람에 일렁거렸다.
불규칙한 기관총 소리가 묵직한 포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멀리서 들려 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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