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강점기 박해에 맞선 목회자 故 차형준 목사의 독립운동 비사

김지민 기자 / 기사승인 : 2018-03-22 15:3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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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1 - 차병원 창업자 차경섭씨 아버지 차형준 목사의 독립운동 발자취

[일요주간 김지민 기자]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민족의 단결과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제정된 ‘3.1절(삼일절)’. 삼일절은 일제 강점기에 있던 우리 선조들이 일본에 맞서 스스로 독립을 쟁취했음을 대내외에 천명한 날을 기념하고자 재정됐다. <일요주간>과 공익단체법인 사)안중근의사교육문화재단 김수남 사무총장은 이 같은 삼일절 정신을 되새기고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숨은 발자취를 취재해 연속기획으로 연재할 계획이다. <편집자 주>


故차형준 목사
故차형준 목사

그 첫 번째 대상은 차병원의 창업자 故 차경섭씨의 아버지로 잘 알려진 故 차형준 목사다. 1879년 평북 용천 출생인 차형준 목사는 기독교계의 독립운동을 이끈 인물로 알려져 있다.


흔히 일본의 강점기 당시 목회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안위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일본 정책에 순응해 친일행위 및 우상숭배 행위를 한 것처럼 알려져 있다. 그러나 차 목사는 이와는 정반대 되는 길을 걸어온 대표적인 인물이다.


신민회, 송죽 결사대, 한영서원의 학생비밀결사 등 기독교인 중심의 독립운동 또한 이를 증명해준다. 차 목사의 측근 지인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목회자라는 착시효과를 이용해 이남, 이북은 물론 중국 등을 넘나들며 독립운동가들을 도왔다.


독립운동가하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김구, 김좌진, 안중근 등을 비롯해 권병덕, 나운규, 문창학, 안승우, 안종운, 오영선, 이한응, 이태준, 최수봉 등을 포함해 254명에 달한다. 그러나 이들 외에도 수많은 무명의 독립운동가들이 음지에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해 왔다.


이들 중에는 차 목사의 6촌 형으로 장로교인인 차학연씨를 빼놓을 수 없다. 1900년대 초창기 장로교는 목회자 양성에 주력했다. 1907년 설립된 한국장로교회의 치리기관(장로교에서 교인으로서 교리에 불복하거나 불법한 자에 대해 당회에서 증거를 수합.심사해 책벌하는 일을 함) ‘독로회’ 창립 당시 장로교회의 교세는 선교사 32명, 한국인 목사 7명, 세례교인 1만 7890명 등이었다.


장로교회는 총회를 조직하여 해외 선교를 나가고, 의료선교와 학교교육에서도 큰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체와 정신의 건강이 민족 발전의 기틀이자 즉 미래라는 생각에서다.


앞서 1885년 서울에는 고종의 윤허로 광혜원이 설립됐는데, 이는 후에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으로 발전했고, 장로교회는 이 밖에 평양에 기홀병원, 전주에 예수병원, 대구·부산·여수에 나병원, 세브란스의 결핵병원 등을 설립했다. 또 교육사업으로는 경신학교(儆新學校)·정신학교(貞信學校)·숭실학교(崇實學校)와 평양신학교를 설립하여 민족교육에도 힘썼다.


현재 평양신학교는 1940년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하던 시절 다시 설립된 학교로 친일행위에 가담한 세력들이라 알려져 있지만, 이전의 평양신학교는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라는 이름으로 ‘체계적인 한국인 목회자 양성’이라는 목적 하에 1901년 5월 15일 평양에 설립된 학교다.


그러나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평양신학교)는 일본의 신사참배 가결 강행에 반대하며 1938년 9월 20일 예정돼 있던 개강을 무기한 연기하며 사실상 폐교됐다. 이후 학교는 1939년 3월 28일자로 제34회 졸업을 인정하는 증서를 우편으로 배달 후 총 798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평양신학교 4회 졸업생 故차형준 목사

차형준 목사는 이 같은 초창기 평양신학교의 4회 졸업생이다. 차 목사는 평양신학교 입학 전부터 강계(평안북도 북동부에 위치한 군) 지역에서 사경회 교사로 활동하며 자성읍 지역에 개척 전도를 하고 누가복음을 가르치는 등 여러 활동을 펼쳤다.


강계는 익히 북한의 ‘강계정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강계정신이란 북한의 자강도(평안북도의 강계군.자성군.후창군.위원군 등의 지명이름)가 북한이 큰 어려움을 겪던 시절 이를 극복하는데 모범을 보였다고 하여 도청소재지인 강계의 이름을 따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말은 한 때 북한의 경제선동의 대표적 구호로 쓰이기도 했다.


강점기 당시 강계 지역의 3.1운동은 강계읍교회의 종소리를 신호로 시작됐다고 한다. 이 강계읍교회는 차 목사가 평양신학교 입학 전서부터 주로 활동했던 무대다. 3.1운동 당시 강계의 만세시위는 4월 8일에 일어났는데, 계례지병원 지하실에서 찍은 독립선언서 2000부와 함께 강계읍교회 종소리를 시작으로 만세를 불렀다.


이에 일본 당국은 만세운동을 진압하며 무자비한 박해를 가했고, 강계읍교회의 종을 여섯 달 동안 치지 못하게 하는 등 강압에 나섰다. 당시 강계읍교회의 가장 중요인물은 바로 차 목사의 6촌 차학연 장로였으며, 차 목사는 차 장로의 곁에서 묵묵히 활동을 해 나갔다.


활발한 전도 활동을 진행하던 차 목사는 신학교 졸업 후 1913년 목사 안수를 받고 덕흥, 정주, 청정 등 네 교회의 목사로 임명됐다. 이 외 중국에서도 전도목사로 활동하던 그는 평양신학교에서 1917년부터 별신학, 1925년 신학연구 등 좀 더 심층적인 공부를 진행, 1931년 또 한번의 평양신학교 졸업증서를 받았다.


또 이 과정에서도 차 목사는 평북로회(평북노회)의 총대로 총회에 참석하곤 했다. 평북노회는 1907년 평양 장대제교회 예배당에서 조직된 독노회로, 국내와 만주, 중국 산동성 지역 등에 선교사업을 위해 만들어졌다. 차 목사는 7.8.11.15회 등 평양, 서울 등 여러 지역에서 열린 총회에 총대로 참석했다.


그러나 1910년대 일본이 허위 날조한 105인 사건과 3.1운동 등으로 많은 교역자 및 평신도 지도자들이 당국에 체포됐다. 당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양전백(1915년평북노회장, 1916년 조선예수교장로회총회장), 유여태, 김병우, 이승훈, 이명룡 등을 비롯 많은 교인들과 함께 차 목사도 잡혀갔다. 이후 1929년 평북노회에서 용천 남시구역 사면을 하며 풀려났다.


이후 일본은 1940년 국내의 각 교단을 일본의 어용기관으로 활용하며 일본기독교 조선교단으로 조직을 통일하려 했지만 평북노회는 변질하지 않은 채 광복을 맞이했다. 이후 차 목사는 1930년대에도 충남, 철산 등 각지에서 목사 활동을 하다가 1943년 사망했다.


한편 1941년 세브란스의전을 졸업한 차 목사의 3남 차경섭씨는 아버지의 선교정신을 그대로 이어 받는 대신 활발한 의료 활동으로 구원에 나섰다.


차 목사의 아들 차경섭씨는 1960년 중구 초동의 옛 스카라 극장 자리에 차산부인과 의원를 개원했고, 이를 모태로 차광렬씨(차 목사의 손자, 現글로벌차바이오연구소장)는 1984년 강남 역삼동에 강남차병원을 개원했다. 이후 차광렬씨는 ‘승승장구의 신화’ 현재의 차병원그룹을 일궈냈다.


차병원그룹은 이 같은 선교정신을 토대로 독립운동가, 국가유공자 등 국가에 이바지한 분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의료 지원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차병원은 중국 하얼빈에서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여 처단한 구한말의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의 여동생 안성녀씨의 직손들을 대상으로 지난해 수술 등의 의료 행위를 지원한 바 있다. 앞으로도 차병원은 이를 더욱 확대해 나갈 생각이다.


차광렬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반도의 한 민족 탈북민 돕기에도 나섰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탈북민들은 발빠르게 변하는 문화, 다양한 볼거리, 먹거리 등의 우리나라 사회에 대만족하며 잘 적응할 것 같지만, 차씨는 그들이 급작스럽게 변화된 환경에 ‘트라우마’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차씨는 차병원그룹을 통해 탈북민 ‘탈’트라우마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등 탈북민 구제에 나섰다.


또, 차씨는 지난 20년간 동남아 지역의 심장병 어린이 환자를 대상으로 무료 수술을 행하고 있다. 이처럼 차씨는 자신의 할아버지 차형준 목사의 피를 이어받아 우리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다국적으로 지원 정책을 펼치며 이바지하고 있다.


※ 위 글은 강점기 당시 자료 소멸로 인해 세상에 공개되지 못하다가 지난해 미국에서 발견된 자료들을 토대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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