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이야기] 보리피리 불며 떠나는 봄나들이, 전북 ‘고창’

이재윤 / 기사승인 : 2018-04-03 17:3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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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재윤 기자)
(사진=이재윤 기자)

[일요주간=이재윤 기자] 남도의 끝자락에서 한껏 물이 오른 봄이 겨울의 흔적을 한 꺼풀씩 벗기며 질긴 생명력을 토해내는 주말, 발길은 전북 고창으로 향하고 있었다. 차창으로 비치는 한낮의 볕에 차 안은 따뜻한 봄의 온기가 가득해지고, 노곤해지는 몸을 곧추 세우며 차창을 내려 시원한 바람에 머릿속을 맑게 털어낸다.


봄나들이를 떠나는 여행자들은 봄날의 화사함에 취해 한껏 들떠 있고, 들녘에 나선 농심은 부지런히 한해 농사를 예비하며 하얀 연기를 들판 가득 피어 올린다.


학원농장 (사진=이재윤 기자)
학원농장 (사진=이재윤 기자)

◆ 보리밭 사잇길로~


고창 IC에서 내려 첫 목적지인 학원농장을 찾았다. 전 국무총리였던 진의종 씨와 부인 이학 여사가 1960년대 초반 고창군의 광활한 미개발 야산 10만여 평을 개간해 조성한 학원농장은 이제 고창 여행의 빼놓을 수 없는 명물이 되었다.


학원농장 입구로 들어서자 10만여 평의 광활한 구릉지대를 뒤덮은, 파릇파릇한 보리싹들에 시야가 맑게 트이는 듯하다. 이제 막 단단한 겨울의 틈을 비집고 나와 더욱 싱싱한 생명력을 뽐내는 보리싹들은 끝없이 이어진 구릉들을 파도처럼 너울거리며 이방인의 발아래 가득 봄을 채운다.


농장 구석구석 길들이 잘 정비되어 있어 차를 이용해 농장 가득 물이 오른 봄의 전령들을 만날 수 있다. 구릉 아래서 불어온 바람이 보리싹들을 쓰다듬듯 훑고 지나가면 넓은 보리밭은 한차례 보리싹들을 쓰다듬듯 훑고 지나가면 넓은 보리밭은 한차례 파도가 지나가듯 일렁이고, 그럴 때마다 봄은 대지 위로 그 기운을 한껏 뿜어낸다.


농장 한쪽에선 주말을 맞아 단체로 나들이를 온 광광객들이 보리밭 주변에 삼삼오오 둘러 앉아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저마다 손에 작은 호미를 들고 쑥이며, 냉이 같은 봄나물을 캐고 있다. 아니 봄을 캐고 있었다. 미처 호미를 준비해오지 못한 이는 단단한 나뭇가지를 꺾어 봄을 캐고 있었는데, 시원한 보리물결을 뒤로 하고 앉은 모습들이 봄의 화사함과 더불어 그 멋과 낭만을 느끼게 했다.


학원농장은 1990년대 후반부터 사진작가들의 작품 소재로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2000년대 들어서는 관광객들이 폭발적으로 늘게 되었다. (사진=이재윤 기자
학원농장은 1990년대 후반부터 사진작가들의 작품 소재로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2000년대 들어서는 관광객들이 폭발적으로 늘게 되었다. (사진=이재윤 기자)

학원농장은 봄이면 청보리의 생명력으로, 가을이면 메밀꽃의 성숙함으로 환상적인 풍광을 연출한다. 학원농장이 관광농장으로 인가를 받고 정식으로 운영을 시작한 1994년 이전에도 보리는 많이 재배했지만, 그때는 관광용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고 단순한 식량작물에 불과했었다. 그러다 1990년대 후반부터 사진작가들의 작품 소재로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2000년대 들어서는 관광객들이 폭발적으로 늘게 되었다.


지난 2004년 봄, 처음으로 개최한 청보리축제에 20만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다녀가며 고창을 알리는 대표적인 축제로 자리매김한 청보리축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이제는 사시사철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가 되고 있다.


그리고 질 좋은 누리 농산물을 값싸게 믿고 구입할 수 있는 실속과 더불어 보리피리 불기, 보리밟기, 봄나물 캐기 등 추억은 덤으로 챙길 수 있다.


선운사 (사진=이재윤 기자)
선운사 (사진=이재윤 기자)

◆ 선운사, 구름(雲)에 머물러 선정(禪)을 이루다


도솔산 북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선운사는 김제의 금산사와 함께 전라북도 2대 본사로, 오랜 역사와 빼어난 자연경관, 소중한 불교문화재들을 지니고 있어, 연중 참배객들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선운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백제 위덕왕 24년(577년)에 고승 검단 선사가 창건했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이곳은 신라와 세력다툼이 치열했던 백제의 영토였기 때문에 진흥왕이 사찰을 창건했을 가능성은 희박해, 검단 선사의 창건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선운사는 평지에 세워진 사찰로 절 입구 주차장에 차를 두고 절까지 가는 길이 아름답다. 넓게 닦여진 흙길을 타박타박 걸으며 길가로 높이 늘어선 가로수들과 도솔산 높은 계곡에서 발원한 맑은 개울은 이른 봄 산사의 맑은 기운을 그대로 담고 있어 더욱 투명해 보인다.


그렇게 10분 정도 맑은 개울물을 따라 올라 가면 단아한 기품을 뽐내는 선운사가 나타난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자란 나무들 너머로 산자락에 자리 잡은 선운사 경내로 들어서면 사찰 뒤로 하늘을 이고 선 도솔산이 마치 선운사를 품에 안은 듯 떡하니 굽어보고 섰다.


선운사 경내 (사진=이재윤 기자)
선운사 경내 (사진=이재윤 기자)

선운사에는 대웅전(보물 제290호), 금동보살좌상(보물 제279호), 도솔암 내원궁의 지장보살좌상(보물 제280호), 참당암 대웅전(보물 제803호) 등의 귀중한 문화재들과 동운암, 석상암, 참당암, 도솔암 등의 부속 암자들이 남아 있는데, 사찰이 가장 번성할 때는 암자 89개, 당우 189채, 수행처 24개소에 승려 3천여 명이 수행하던 대찰이었다고 한다.


선운사 경내를 둘러보다 보면 단박에 눈길을 잡아끄는 것이 있는데, 바로 대웅전 뒤편 산자락에 무리지어 군락을 이룬 동백나무 숲이다. 무려 17,000여㎡에 이르는 선운사 동백숲은 수령이 약 500년이나 된 천연기념물 184호로 선운사의 색다른 볼거리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붉고 탐스러운 동백꽃으로 산자락을 점점이 불들이며 선운사를 찾는 이들에게 그 선연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사진=이재윤 기자)
(사진=이재윤 기자)

그리고 동백꽃과 함께 선운사는 찾는 이들의 눈길을 끄는 꽃이 있으니, 바로 상사화다. 석산 또는 꽃무릇이라 불리기도 하는 수선화과의 꽃으로 그 붉기가 결코 동백꽃에 뒤지지 않는다. 상사화는 8~9월 사이 선운사 일대와 마애불이 있는 도솔암까지 3km에 이르는 골짜기를 가득 채우며 장관을 이룬다.


이 상사화에는 애절한 사연이 전해져 온다. 한 여인이 선운사에 불공을 드리러 왔다가 한 스님에게 연정을 느껴 상사병에 걸리게 되고, 그렇게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고 말았는데, 그 여인이 상사화로 피어났다는 전설이다.


고창읍성 (사진=이재윤 기자)
고창읍성 (사진=이재윤 기자)

◆ 아낙네의 손으로 쌓은 성, 고창읍성


고창읍성은 조선 단종 원년(1453년)에 왜침을 막기 위해 축성한 자연석 성곽이다. 일명 모양성이라고도 하는데, 나주진관의 입암산성과 함께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였다고 한다. 동, 서, 북문과 3개소의 옹성, 그리고 6개의 치성을 비롯해 성밖의 해자 등 전략적 요충시설이 두루 갖춰져 있다.


그리고 성내에는 동헌, 객사 등 22동의 관아 건물들이 있었으나 화재로 소진되고 성곽과 공북루만 남아있던 것을 1976년부터 옛 모습대로 복원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부분의 조선시대 읍성들은 평야지대에 양면을 돌로 쌓아 만들고 성문 위에는 누각을 지어 적을 감시하고 전투를 지휘했다. 그리고 성내에서는 관민이 함께 생활했는데, 고창읍성만은 나지막한 야산을 이용해 바깥쪽만 성을 쌓는 내탁법 축성기법을 사용했고, 성문 앞에는 옹성을 쌓아 적으로부터 성문을 보호할 수 있도록 축성했다.


또한, 성내에는 관아만 만들고 주민들은 성 밖에서 생활하다가 유사시에 성안으로 들어와서 함께 싸우며 살 수 있도록 4개의 우물과 2개의 연못을 만들어 놓았다. 성벽에는 축성에 참여했던 고을 이름과 축성연대가 새겨져 있어 계유년(1453년)에 전라 좌, 우도민들이 모두 참여해 축성했음을 알 수 있다.


고창읍성의 전래놀이 ‘답성’ (사진=이재윤 기자)
고창읍성의 전래놀이 ‘답성’ (사진=이재윤 기자)

아울러 조선 말기 대원군이 펼친 쇄국정책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척화비가 있는데, 비문은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는 것은 곧 화친을 하자는 것이요, 화친을 하자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임을 온 백성에게 경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창읍성에는 대대로 전해져 오는 전래놀이가 하나 있다. 답성(성 밟기)놀이가 그것이다. 성을 밟으면 병이 없이 오래 살고 저승길엔 극락문에 당도한다는 전설 때문에 매년 답성놀이 행사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읍성 내 안내 표지판에는 ‘한 바퀴 돌면 다리 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 돌면 극락승천한다’는 글이 적혀 있는데, 중요한 것은 성을 돌 때는 반드시 손바닥만 한 돌을 머리에 이고 돌아야 하고, 성 입구에 다시 그 돌을 쌓아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창읍성은 아낙네들의 힘만으로 축조되었다는 전설이 있는데, 그래서 답성놀이도 부녀자들만의 전유 민속놀이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고창고인돌박물관 (사진=이재윤 기자)
고창고인돌박물관 (사진=이재윤 기자)

◆ 그 외 볼거리①, 고창고인돌박물관


고창고인돌박물관은 국내 유일의 고인돌 박물관이다. 세계문화유산 유적지가 있는 전북 고창군 고창읍 도산리 5만7,988㎡ 부지에 183억원의 예산으로 연면적 3,953㎡ 규모이 지상 3층 건물로 지어졌다.


전시관 내부는 1층 기획전시실과 3D 입체영상실, 2층 선사시대인들의 생활상 및 유물, 고인돌의 역사, 청동기 시대 장묘문화 전시실 등을 갖추고 있다.


또 화순, 강화고인돌과 세계문화유산 및 세계 각국의 고인돌과 지석문화 등을 소개하는 상설전시실, 3층에 옥상정원과 선사시대 방식의 불 피우기, 암각화 그려보기, 고인돌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시설들이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이밖에 청동기 시대의 마을을 재현한 선사마을과 고인돌 끌기 등을 체험하는 체험마당, 묘제 양식의 변천사를 이해할 수 있는 전시마당으로 구성된 야외전시장은 가족 단위 관람객들에게 체험학습장으로 인기가 높다.


판소리박물관 (사진=이재윤 기자)
판소리박물관 (사진=이재윤 기자)

◆ 그 외 볼거리②, 판소리박물관


판소리를 중흥시킨 신재효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98년 개관하였다. 대지 6,816㎡, 건물 1,178㎡의 2층 규모로 신재효의 유품과 고창 지역의 명창, 판소리 자료 등 총 1,000점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실은 소리마당과 아니리마당 등 5개 공간으로 구성된다. 이 중 소리마당에는 판소리의 기원과 판소리 시연 모형, 판소리 계보 등이 전시되어 있고, 아니리마당은 고창군 소개와 신재효, 진채선, 김소희 등 이 지역 출신 명창들을 소개하고 있다. 가사집과 국악 관련 음반, 서적 등 희귀한 전시물도 많다.


발림마당에서는 북과 북채로 영상에 맞춰 직접 소리를 흉내 낼 수 있으며, 혼마당에서는 소리를 주제로 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박물과 2층에는 진환의 서양화와 김옥균의 친필, 김정희의 간찰 등 80여 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터는 신재효 고택이 있던 자리로, 현재 고창 신재효 고택 사랑채는 박물관 오른쪽으로 옮겨져 있다. 체험방에서는 ‘춘향가’와 ‘수궁가’, ‘적벽가’ 등 각종 판소리를 들으면서 북 치는 방법을 익힐 수 있으며, 미술관에서는 청자, 백자 등 고미술품과 서예작품 7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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