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지평…430명의 벅찬 울림” 박행주 ‘전교생 모둠북연주’

박행주 국제전통예술교류협회 회장 / 기사승인 : 2021-12-22 12: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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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행주 국제전통예술교류협회 회장

● 신임 교장선생님! ‘풍물부에 각별한 관심’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에 대한 가치를 인정해주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큰 힘이 된다. 특히 그 지원자가 다양한 기회나 물적, 경제적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직장 내에서의 상사라면 더 큰 힘을 얻게 된다. 그런 경우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 되고 새로운 도전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풍물단을 가르치면서 해외공연을 계속 준비하고 있었고 2학기에 교장선생님이 새로 부임하셨다. 부임한 다음 날 아침, 필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풍물부를 가르치고 있는데 교장선생님이 연습하는 체육관에 오시더니 한참을 보고 계셨다.


그날 이후로도 교장선생님은 거의 매일 아침마다 풍물단이 연습하는 모습을 참관하셨다. 열심히 연습에 참여하면서 흥겹게 풍물을 배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지 교장선생님은 무보수로 지도하는 필자를 자주 격려해 주셨다.


몇 달이 지나고 새 학년을 맞이하기 전 어느 날 교장선생님이 필자를 교장실로 불렀다. 우리의 전통음악을 학생들이 흥겹게 배우는 것이 너무 보기 좋은데 학생 중에 일부에만 해당하는 풍물단만이 아니라 전교생이 배울 수 있는 방법을 같이 고민해보자는 것이었다. 

 

▲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모둠북공연을 하고 있는 풍물단(상모를 돌리면서 모둠북을 치고 다양한 개인기를 보여주면서 지역사회에서는 꽤 인지도가 있었다.)


● 전교생에게 ‘국악을 전수하다’
대화 중에 필자는 다음 해부터 전체 학년의 학생들이 일주일에 한 시간씩 ‘모둠북’을 배우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19학급 전체가 한 학급씩 번갈아 가며 한 시간씩 배우면 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교장선생님도 흔쾌히 승낙하셨고 적지 않은 예산을 편성해서 빈 교실 하나에 방음시설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담임교사가 아닌 교과전담교사를 하고 있던 필자가 그 수업을 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전교생을 대상으로 국악교육을 실시하려 했던 이유는 그동안 풍물부만을 지도하면서 느꼈던 나름의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풍물단은 매일 아침 연습과 방학 중 캠프 등을 통해 실력을 향상시켜왔고 그러면서 전국대회 6회, 서울시대회 4회, 그리고 매년 해외공연 등의 성과를 이루어 왔다.


하지만 풍물단은 전교생 430명 중에 30~35명 정도의 학생만 참가했다. 학년 초에는 더 많은 학생이 참여하곤 하지만 아침에 친구들보다 더 일찍 일어나 연습에 참여하지 못하면 연습 활동을 지속할 수 없었기 때문에 도중에 그만두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풍물부는 전체 학생 중에 차지하는 비율로 따지자면 10%에도 못 미치는 숫자였다. 그래서 90% 이상의 학생들은 필자가 실제로 국악과 관련된 직접적인 활동을 지도할 수가 없었다. 풍물놀이 지도를 통해 국악기를 익히면서 청소년들이 얻게 되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결과들을 느껴왔던 필자는 이를 좀 더 확대하고 싶었다. 그래서 전교생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어떤 것이 있을지에 대해 문뜩문뜩 생각을 해오곤 했다.


어떤 학교는 전교생이 단소나 소금을 불거나 ‘저‧중‧고’학년을 구분해서 소고춤, 장구, 사물놀이 등을 가르치는 학교들도 있었다. 하지만 단소나 소금처럼 입으로 부는 악기는 소리가 잘 나지 않기 때문에 저학년이 힘들어하고 타악기를 배우기 위해서는 방음시설이나 독립적인 공간이 필요해서 또한 쉽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교실 하나를 방음시설을 해주신다는 교장선생님의 제안으로 선뜻 필자가 해보겠노라고 수락했던 것이다. 필자가 아침에 풍물부를 지도하고 나서 정규수업시간에 하루에 4시간 정도씩 모둠북을 가르친다는 것이 무척 부담되긴 했다. 하지만 국악교육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교장선생님이 계실 때 할 수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시도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 담임선생님과 함께 열심히 모둠북을 배우고 있는 학생들(학생들은 모둠북을 열심히 배워 나갔다. 어떤 반은 담임선생님도 학급 학생들과 함께 흥겹게 배우기도 했다.)


● 전교생이 모둠북을 익히다.
전교생 모둠북 수업을 준비하고 있던 차에 지자체에서 예산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서 큰 기대 없이 지원서를 냈다. 얼마 후에 필자는 지자체를 방문해 많은 심사위원 앞에서 풍물놀이가 학생들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관해 제안설명을 하면서 예산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심사위원들은 처음 접하는 ‘전교생 모둠북연주’에 대해 낯설어하면서도 흥미롭다는 듯이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소수의 심사위원은 필자가 제안하는 것처럼 실제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했다. 마침 그런 질문에 대비해서 모둠북이나 난타가 인성함양과 폭력성 저하에 효과적이었던 실제 사례들을 몇 가지 소개했다.


마침 당시의 풍물단은 지자체에서 하는 많은 공연 활동에 참여했고 그 작품이 ‘모둠북’이었다. 그런 공연형태가 사물놀이에 비교해 많지는 않았는데 상모를 돌리면서 모둠북을 치고 다양한 개인기를 보여주면서 지역사회에서는 꽤 인지도가 있었다. 심사위원들도 그런 공연을 수차례 관람했던 분들도 몇 명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내심 그런 풍물단의 역할이 어느 정도 심사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기대했다.


다행스럽게도 심사에 통과해서 2천만 원의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필자는 애초에 교과전담교사로 음악수업을 해야 했던 것이라 원래대로 음악수업을 하기로 하고 지원금의 일부로 강사를 채용했다. 낡은 악기도 새롭게 구입하고 연주에 필요한 소품도 넉넉히 사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강사와 협의해서 학년별로 수준에 맞는 장단을 정하고 계속 수업상황을 점검했다. 풍물을 전공으로 하는 강사도 여러 학교에서 가르쳐 보았지만 그렇게 전교생이 모둠북을 익히는 것에 대해서 매우 특별하고 의미 있는 활동이라며 좋아했다.


학생들은 모둠북을 열심히 배워 나갔다. 어떤 반은 담임선생님도 학급 학생들과 함께 흥겹게 배우기도 했다. ‘타악’이 주는 흥겨움을 전교생 모두가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게 된 것이다. 전교생 모둠북 익히기가 학교 특색사업이 되면서 교내의 여러 선생님들도 모둠북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런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교사 모둠북반을 만들어 필자가 모둠북을 직접 지도했다.


▲ 장단에 맞춰 열심히 연주를 하고 있는 학생들(학부모와 내빈들을 환호와 박수를 보냈고 학생들도 그렇게 큰 규모의 공연에 자신이 함께 연주할 수 있어서 무척 고무된 느낌이었다.)


● 독도의 날 ‘특별공연 기획’
모든 학급은 주 1회씩 총 20회를 배울 수 있었다. 배우기만 하고 말면 아쉬움이 있기 때문에 전체 학생이 모여서 공연을 하는 상황을 연출했다. 그렇게 하기가 가장 좋은 시기가 가을 대운동회였다. 어떤 의미로 북을 치는 것이 좋을지 의논한 끝에 며칠 뒤에 있는 ‘독도의 날’과 관련한 행사로 추진하기로 했다. 독도의 날을 기념으로 하여 독도를 꼭 지켜나가자는 기원을 북소리에 담아 독도에까지 들리게 해보자는 취지였다.


학생들에게는 태극마크가 들어간 두건을 주문 제작해서 배부했다. 독도의 날을 맞이하여 북의 울림을 독도에까지 전하자는 취지에 관해서도 설명을 했고 학생들은 처음 해보는 특별한 공연에 대해 기대에 차 있었다.


10월 말에 개최하는 가을 대운동회에서 전체 학생이 동시에 모둠북을 치는 계획은 누가 보더라도 규모 있고 멋지게 보였지만 이에 따른 준비는 만만치 않았다. 전교생이 430명이었고 학교에 있는 북은 50대 정도여서 380대의 북이 필요했다.


결국, 필자의 인맥을 최대한 이용해서 풍물놀이를 지도하는 선후배의 학교는 물론, 소개받은 여러 학교로부터 3일 동안 모둠북을 대여하기로 했다. 운동회 2일 전에 여러 학교에서 악기를 가져와야 해서 몇 대의 트럭을 보냈다.


그렇게 빌려온 악기들은 체육관 안쪽에다가 학교별로 악기를 쌓아두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전교생이 모여서 총연습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경험이 없었던 필자는 430명이 동시에 박자에 맞춰 연주한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시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430명의 연주자가 시차가 발생하지 않도록 누군가가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해야 했다. 그런 지휘자의 역할을 하기 위해 필자가 대고를 직접 치면서 장단을 맞춰주기로 했다. 필자가 마이크를 연결해서 ‘대고’를 치며 연주를 이끌었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필자와의 호흡을 맞추지 못하는 때도 있었지만 한두 번 연습했더니 다행히 장단의 속도를 맞출 수 있었다.


다음날 가을 대운동회를 하기 전에 개막공연으로 모둠북 연주가 있었다. 전교생 중 대부분은 누군가의 앞에서 이렇다 할 연주를 한 경험이 없었다. 그런데 관객인 내빈과 학부모들 앞에서 악기를 쳤던 학생들은 연주자이면서 주인공이 되었다.

● 합심일체! 그 날의 ‘벅찬 울림’
필자는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감동받은 상황이 떠오르곤 한다. 현대에 와서는 거의 모든 공연이 마이크와 앰프, 스피커 등의 기기를 이용하게 된다. 작은 소리도 볼륨만 올리면 얼마든지 크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날 공연은 신호의 의미로 낸 필자의 대고 소리 이외에는 이러한 기기도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필자의 북소리와 함께 연주했던 전교생의 모둠북 소리가 동시에 울렸고 그 울림은 필자의 귀가 아니라 몸에서 느껴질 정도로 웅장했다.


‘이런 것이 전율이구나’라는 느낌이 들게 할 만큼 그 울림은 온몸으로 느낄 정도였다. 다행히 연주는 도중에 멈추거나 흐트러지지 않고 끝까지 연주되었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풍물단의 농악으로 마무리했다.
학부모와 내빈들을 환호와 박수를 보냈고 학생들도 그렇게 큰 규모의 공연에 자신이 함께 연주할 수 있어서 무척 고무된 느낌이었다. 430명의 어린이들이 호흡을 맞춰 같은 장단을 치며 이루어낸 너무도 멋진 공연이라는 평을 받았다.

 

▲ 언론에 보도된 당시 모둠북 공연 모습(언론에서도 취재해서 뉴스 영상으로까지 보도가 되었다. 그동안 노력해 왔던 학생들에게도 멋진 성과에 따른 결과물이 되리라 판단했다.) 연합뉴스 TV캡쳐


● 언론 보도! 거듭된 ‘극적 반전’
언론에서도 취재해서 뉴스 영상으로까지 보도가 되었다. 그동안 노력해 왔던 학생들에게도 멋진 성과에 따른 결과물이 되리라 판단했다. 하지만 필자의 예측은 빗나갔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인터넷 포털매체에 전혀 예상치 못한 댓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독도야 사랑해’라는 애드벌룬을 띄우고 좀 더 장식하기 위해 만국기도 달았었다. 그런데 언론 보도 사진에 만국기 중 일본기가 작게 걸린 것을 발견했던 누군가는 ‘독도 사랑한다면서 일장기는 왜 안 떼고 행사하나?’라고 댓글을 달았다.


그뿐만 아니라 ‘저거 연습시켜서 공연하겠다고 초딩애들 너무도 혹사했겠네’, ‘1인당 한 개씩 모둠북 강매하느라 학부모들 부담 크고 화도 났겠네’, ‘어린 학생들 동원해서 굳이 저렇게 보여주기식 공연해야 하나?’ 그 이상의 욕설에 가까운 악성 댓글들도 올라왔다.


그런 글을 보게 된 필자는 너무도 낙담했다. 오랫동안 너무도 즐겁게 모둠북을 배워왔던 아이들이 처음 해보는 대규모 공연에 참여하게 되어서 너무도 즐거워했는데 어른들의 무분별하고 무차별적인 댓글로 상처를 받을 것 같아 매우 화가 나기도 했다. 380대에 해당하는 북도 주변 학교에서 힘들게 빌려왔던 거였는데 강매를 했다니..


그런데 또 한 번 반전이 일어났다. 그 댓글을 본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대대적인 반격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는 너무 즐겁게 모둠북을 배웠고 공연을 하게 되어서 기뻤는데 어른들은 왜 이상한 말로 우릴 힘 빠지게 하나요?’, ‘북은 우리가 산 게 아니라 선생님들이 주변 학교에서 힘들게 빌려왔던 건데 무슨 이상한 말을 하나요?’, ‘아무것도 모르는 어른들이 너무도 좋았던 우리 공연에 왜 험담을 하나요?’ 등등이었다.


학부모님들도 지원사격을 하면서 어린이들이 상처받으니 무분별한 댓글을 부디 지워달라고 호소를 했다. 그 후 악성 댓글을 달고 자기 글을 다시 보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 글을 지우지 않았지만 많은 댓글은 삭제되어 갔다.


지도교사 한 명이 오해를 풀기 위해 해명하는 것보다 훨씬 더 호소력 있는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그런 악성 댓글에 대한 문제를 해결했던 것이다. 모둠북을 통해 학생들의 ‘창의력’, ‘인성함양’ 등의 효과와 함께 멋진 결속력을 보여주게 되어 필자는 그때의 일을 기억하면 흐뭇해지곤 한다.


교장선생님의 적극적인 후원과 지자체의 지원, 그리고 열심히 참여한 학생들 덕분에 ‘전교생 모둠북연주’라는 특별한 행사를 잘 마무리했고 필자의 국악교육인생에 빼놓을 수 없는 멋진 추억의 한 장을 남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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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행주 국제전통예술교류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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