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통일전쟁-2] 적막한 밤 '85청사'에선 무슨 일이?

이정 작가 / 기사승인 : 2015-10-23 16: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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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독점연재 - 장편소설 ‘김정은 통일전쟁’ (2)
85호 청사

[일요주간/연재=이영 작가] 12월의 겨울바람이 빈 나뭇가지를 세차게 흔들어대는 늦은 밤.
기숙사에는 이미 불빛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적막한 숲 속으로 스산한 바람 소리가 스치며 지나갔다. 막 깊은 잠에 들었거나 잠을 청하려던 학생들 중 일부가 기숙사 지도관으로부터 호출을 받아 학생지도실로 모여 들었다.
지도관 옆에는 연갈색 무늬의 정복을 입고 왼쪽 허리에 백두산 권총을 찬 대좌 계급의 사내가 근엄한 자세로 서 있었다.
이십대 초반의 건장한 젊은 청년 학생들은 김정일과 같은 혈액형으로 김정일 유사시를 대비해 특별 관리를 받고 있는 자들이었다. 긴급 수혈을 위한 A형 혈액이 다급했다.
버스 옆면엔 붉은 십자가에 ‘봉화’라는 글씨가 선명히 찍혀 있었다. 그 시각 85호 청사. 국방위원회가 긴급 소집되었다. 김정일의 집무실이 있는 85호 청사는 사각형 모양의 3층 건물로 러시아 대사관 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청사 회의실에는 웃고 있는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의 초상화 아래로 김정은과 김경희를 비롯한 김영춘, 리영호, 오극렬, 김정각 , 우동측, 김영철, 김명국 등 국방위원과 중앙군사위원들이 자리에 앉아 아무런 말없이 초조하게 허공을 쳐다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크 소리가 들리자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아졌다. 김정일 주치의 한지열 박사가 급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장군님께서는 현재 위급한 고비는 넘겨 호흡은 하고 계시나 의식이 없습니다. 아마도 호위군관이 육탄으로 장군님을 감싸고 넘어질 때 머리에 충격을 받아 뇌출혈 증세가 악화된 것 같습니다.”
“장부장께서는 다행이 가벼운 상처만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지열 박사는 모두를 향해 목례한 후 출입문을 향해 걸어갔다.
김경희는 돌아서서 조용히 군부 실세들 앞에 섰다.
“오늘 여기 모여 계신 분들이 합심하여 아직은 살아 계신 우리 장군님을 살려내고 공화국을 지킵시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자 그녀는 바로 말을 이었다.
“오늘 후계자 김정은 대장 동지를 전면에 내세우는 작업을 이 자리에서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북조선 최초의 여군 대장인 그녀의 목소리에는 남자 못지않은 강한 힘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서는 자신이 직접 메모한 조그만 종이를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에게 전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눈을 지그시 깔고 있던 김영춘 차수가 입을 열었다.
“오늘 우리 조선은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평소 김정일 장군님의 통치철학인 선군정치 이념을 토대로 리영호 동지와 김정각 동지를 중심으로 우선 ‘비상체제기구’를 만듭시다.”
“그리고 백두의 혈통 김정은 대장 동지를 전면에 내세워 결사 옹위하지 않으면 미제와 남조선 괴뢰들의 등쌀에 우리 공화국은 지구 상에서 사라질 것이요. 당분간 ‘군부’가 전면에 나서 선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김영철의 눈빛이 번뜩이며 오극렬과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을 번갈아 쳐다 보았다.
김정일이 자신의 후계자 김정은을 위해 공들여 맺어온 혁명 3세대들인 리영호 총참모장, 김정각 총정치국부국장군정치조직, 김영철 정찰총국장은 입을 다문 채 고개만 끄덕였다. 미묘한 웃음기가 ‘리영호’ 입가에 번졌다.
김경희는 묵묵히 앉아있었다.
“아버지 장군님의 선군정치를 이어가려면 군대가 선두에서 똘똘 뭉쳐야지요.”
김정은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물끄러미 김정은을 바라보던 김경희가 조용히 이야기했다.
“당을 장악한 후 당 조직을 기반으로 군을 선도해야지요.”
양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던 총참모장 리영호 차수가 묵직하게 입을 열었다.
“내래, 요 몇 년을 지켜보았지요. 전쟁 중인 나라에서 총대도 한 번 안 매본 중앙당 새파란 애송이들이 설치다보니 미국 놈하고 남조선 괴뢰들 깝죽거리는 거 한 번 정리하지를 못하다 장군님이 이 지경에 이르렀소.”
“다시 우리 군대가 나서지 않으면, 우리 조선은 미국 놈, 일본 놈들의 밥이 될 것이요. 하루 아침에.”
리영호는 요 몇 년 간 당 세력에 밀려 난 군부 입장과 역할을 대변하듯 강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김경희는 총참모장 리영호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지만, 군부가 전면에 나서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건 평소 남편 장성택의 생각과도 일치했다.
상황을 주시하던 오극렬의 눈동자에 빛이 튀었다. 김정일 사람으로 과거 장남 김정남을 지지하며 후원하다가 권력핵심에서 멀어져가던 오극렬의 야망이 다시 꿈틀거렸다.
60년대 구소련 푸룬제 군사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혁명 2세대 대표 오극렬.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회의가 끝나자 오극렬은 조용히 김영철에게 다가갔다.
“영철이 동무, 우리가 지금 이 난국을 극복하는 길은 군부가 나서는 길이야. 마음을 합치자우.”
떨떠름한 표정을 짓던 김영철 대장이 대답을 했다.
“그래야겠지요. 하지만 당에 있는 곁가지들을 잘라내려면 아무래도 우리 같이 시퍼런 칼이 앞장서야 않겠습니까?”
오극렬은 내심 무슨 의미인지 간파했다.
“그래그래, 영철이. 우선 이번에 당으로부터 힘을 뺏어오면 말이지. 나와 저 김영춘 부장은 뒤로 물러설 것이야. 너무 걱정하지마라우.”
오극렬은 떠오르는 실세 김영철을 다독이며 달랬다. 김영철 그도 자신을 키워준 오극렬의 충고를 져버릴 순 없었다. 오극렬은 일단 권력의 축을 당으로부터 군부가 먼저 장악을 하자고 제의했다.
하지만 김영철은 선배들의 용퇴를 내심 기다리는 중이었다.
60년 간 비합법 테러행위를 주도해온 오극렬의 번뜩이는 구상은 위기 때마다 그 기지를 발휘했다.
‘버마 아웅산 테러사건’,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은 권력투쟁 중이던 김정일의 입지 강화를 위해 그가 기획한 조치였다.
70년대 일본인 납치사건도 당시 김정일 능력 과시를 위해 오극렬 휘하의 작전부가 실행했던 사건이었다. 서해 천안함 폭침사건도 김정은 후계자 결정 막바지에 일부 군 내부의 반발로 궁지에 처한 김정일의 고충을 한방에 해결하기 위해 김영철이 저지른 대담한 대남 공세였다. 그로부터 6개월 후 김영철은 인민군 상장중장으로는 유일하게 중앙군사위원으로 수직 신분 상승되었으며 얼마 후 인민군 대장이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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