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여정, 김정은의 유일한 혈육…막전막후 영향력 주목

소정현 / 기사승인 : 2015-11-09 14: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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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파워엘리트(2)- 노동당 부부장 ‘김여정’
▲ 사진은 조선중앙TV가 지난 7월 20일 보도한 김여정 부부장의 투표 모습(사진=조선중앙TV 캡쳐). ⓒNewsis
[일요주간=소정현 기자] 북한의 젊은 통치자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金與正, 1987년 9월 26일)은 2010년까지는 공개 석상에 노출되지 않았으나 2011년 1월 14일 영국의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턴(Eric Clapton)의 싱가포르 공연장에서 김정철과 함께 공연을 관람하고 자동차에 타는 모습을 KBS가 포착했다.

이어 2011년 12월 28일, 김정일 장례식때 첫 공식 모습이 공개됐다. 친모인 고영희의 장남 김정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나 김여정은 김정은과 함께 조문객들을 맞이했다.

에릭 클랩턴 싱가포르 공연에서 첫 포착

김정일은 생전에 유일한 친여동생인 김여정을 ‘여정 공주’라고 부르면서 매우 아끼고 귀여워했다고 한다.
김정일의 부인은 모두 5명으로 3남 4녀를 둔 것으로 알려진다. 유부녀이며 전 영화배우인 성혜림(1937년생 2002년 사망)과 동거하며 첫째 아들 정남을 얻었고 성혜림과 동거하는 동안 공식적으로 결혼한 김영숙(1947년생)에게서 설송, 춘송 자매를 얻는다. 이후 재일교포 출신이며 만수대예술단 무용배우인 고영희(1953년생 2004년 사망)를 만나 정철, 정은, 여정 3남매를 낳았다.

김정일은 홍일천(1942년생) 사이에서 딸 김혜경을 낳았으며 김옥(1964년생)과는 자녀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여정의 가족 관계를 총괄하면 대략 이렇다. 김혜경(이복 언니), 김설송(이복 언니), 김춘송(이복 언니), 김정남(이복 오빠), 김정은(친오빠), 김정철(친오빠) 등이다.

현재 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자리에 오른 김정은의 친여동생 김여정 외에는 나머지는 모두 권력에서 배제됐다. 특히 배다른 형제들의 운명은 천양지판이다. 맏형 김정남은 버림받아 모스크바에서 숨진 친어머니 성혜림의 딱한 신세처럼 북한에 돌아가지 못하고 해외를 전전긍긍하고 있다.

김일성이 유일하게 인정한 며느리 김영숙이 낳은 배다른 누이인 김설송과 김춘송은 김일성의 총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권 없이 평양 어느 구석에서 숨죽이고 사는 형편이다. 김정은의 친형인 김정철도 이렇다 할 공식 직함이 없이 해외 공연과 관광을 전전하는 한량 생활을 하고 있다.

1987년 만수대예술단 무용배우 고영희 2남1녀 출생
파격행보…김정은 유일한 친혈육 백두혈통 포석구축

‘결혼 임신 출산’ 각종 추측난무…2인자 영향력 반증
2011년 12월 김정일 장례식때 공식석상 모습 공개


김정은 2인자 영향력

북 동향을 주시하는 국내외 기관들은 김 제1위원장의 후계자 시절부터 김여정을 주목해 왔다. 김여정은 김정일과 고영희의 딸로서 위로는 오빠 김정철과 김정은이 있다. 이들 삼남매는 1990년대 후반 함께 스위스에서 유학한 것으로 알려진다.

김여정은 1990년대 후반부터 당시 스위스 베른 칸톤(州) 쾨니츠 게마인데(區) 리베펠트의 키르히 거리에 있는 3층짜리 연립주택에서 김정은과 함께 거주하며 ‘정순’이라는 가명으로 헤스구트 공립학교에 다닌 것으로 전해진다. 평양으로 귀환한 이후에는 외국인 초빙교사로부터 불어와 영어 등 외국어를 배웠다고 한다.

김여정은 2013년 12월 장성택이 처형된 후 권력 공백을 메우며 김정은 정권을 떠받들 기둥으로 주목받고 있다. 장성택이 사라지고 그의 부인인 김경희 당 비서의 입지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기댈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혈육이기 때문이다.

김 제1위원장이 의지할 수 있는 가장 큰 상대는 김여정이다. 김정은 위원장과 배다른 형제인 김정남과 친형 김정철이 해외에 체류하고 있는 것과 달리 김여정은 유일하게 북한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열패밀리다.
이복형인 김정남을 적대시하고 있고 유약하다는 이유로 일찌감치 후계자 구도에서 탈락한 친형 김정철은 권력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 데 비해 김여정이 전면에 등장한 것은 여성이기 때문에 권력에 대한 부담감이 덜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김정은을 ‘1호 동지’, 김여정을 ‘2호 동지’로 부르고 있어 사실상 2인자 이상의 핵심 실세 역할로 분석된다. 김여정은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 2012년 국방위 행사과장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으며 김정은 제1위원장이 참석하는 이른바 ‘1호 행사’ 준비와 진행 전반을 관장해왔다.

올해 28세인 김여정이 첫 공식 일정은 2014년 3월 9일이다. 김여정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집권한 이후 첫 치러진 최고인민회의 제13기 대의원 선거 투표 행사 때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 당 조직지도부의 황병서 부부장 등 김 제1위원장의 최측근과 함께 동행했다.

북한 매체는 이날 처음으로 김여정을 김 제1위원장의 수행자로 호명하면서 ‘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으로 소개했다. 이는 김여정이 김정은 정권 핵심 인사로서 공식 행보를 알리는 신호로 해석된다.

이후 2014년 11월 27일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이전의 책임일꾼이라는 수사법에서 탈피 김여정의 직책을 최초로 소개해 궁금증을 다소 풀었다. 우리나라로 차관급인 노동당 부부장의 직함을 맡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당시 북한 매체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4·26만화영화촬영소 방문 소식을 전하면서 수행단에 포함된 김 제1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을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으로 호명한 것이다.

이에 대북 전문가들은 김여정이 김씨 일가의 우상화와 관련 교육을 담당하는 노동당 선전선동부의 직책을 맡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촬영소 방문에 김기남 당 선전담당 비서와 리재일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등이 수행해 김여정이 선전선동부 소속일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렸다.

선전선동부는 정책 수행 못지않게 중시하는 사회주의국가 특성상 체제의 선전 및 선동을 전담하는 북한의 대표적 실세 부서의 하나다. 김정은이 현지 지도하는 데 기록영화를 만들기 위해 선전선동부 간부급은 반드시 동행한다. 그만큼 현지지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서이다.

3대 세습체제 고수를 위해서는 김정은 우상화와 주민 사상교육 등 선전선동이 막중하다는 인식 아래 노동당 선전선동부가 김정은 체제의 안정을 위해 김여정을 중심으로 재편되어 오빠의 우상화 업무를 직접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김여정의 부친 김정일 역시 김일성종합대학 졸업 후 노동당 조직지도부를 거쳐 선전선동부에서 오랫동안 일해 왔다.

김여정의 직책을 두고 국내에선 여러 추론들이 상당했지만 김여정이 유일한 친혈육이자 최측근 보좌의 실세라는 점에서 노동당에서 중요 직책을 맡으면서 여러 부서에 직간접 개입 관여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여러 복수채널은 2013년부터 2014년 말 사이 김여정이 노동당 서기실장으로 일하는 것으로 파악한바 있다. 대북 소식통은 2014년 3월 30일 김여정이 장성택 숙청 이전인 2013년 상반기쯤부터 최고 지도자와 그 직계가족의 일상생활을 주로 돌보는 노동당 서기실장에 임명돼 활동하고 있다고 전언한바 있다.

김여정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첫 서기실장이었던 김창선 밑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김창선은 김여정에 자리를 내주고 국방위 의례국장만을 맡아 김 제1위원장의 의전을 전담한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 최고의 엘리트 300여 명으로 구성된 당 서기실은 북한의 주요 전략과 북한의 최고 기밀사항인 김정은 위원장의 동선을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서기실은 노동당과 국방위원회, 내각 등 주요 기관에서 올라오는 보고 문건을 김정은 제1위원장에게 전달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기존 김정일을 위한 당 서기실은 당 조직지도부 산하였지만 2013년경 현재 당 서기실은 기존의 당 조직지도부와 국방위원회 산하로 분산된 상황이다. 당 서기실은 주로 김정은의 행사를 담당한 전문부서로 자리 잡고 국방위원회 서기실은 김정은의 국가지도를 담당한 정책전문 부서로 임무가 양분된 것으로 보인다. 장관급에 해당하는 서기실장은 김정일 체제에서는 주로 노동당 제1부부장 직함으로 북한 매체에 소개됐다.
대북 소식통은 노동당 서기실이 국방위원회 서기실 또는 ‘김정은 서기실’로도 불리고 있어 김여정은 노동당 서기실장 겸 국방위 서기실장을 겸한 셈이라고 부연한다.

‘결혼 출산’ 온갖 추측

김여정의 공식 등장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백두혈통’의 직계라는 점에서 3대 세습 체제의 정통성이 부각된다. 이에 김여정은 단순히 공주가 아닌 김정은 체제의 안정을 위한 핵심 실세 역할을 맡을 가능성에 무게가 쏠린다. 김여정은 첫 공직부터가 최고지도자인 오빠의 활동과 생활을 직접 챙기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고모 김경희는 오빠 김정일이 후계자 시절이던 1976년 당 국제부 부부장을 맡았고 1987년부터 당 경공업부장을 맡았지만 공식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김정은 제1위원장의 입장에서는 여동생 김여정을 공식행사에 공식 동반해 김정은 체제의 이른바 ‘백두혈통’을 과시하고 있는 셈이다.

김여정은 김정은 정권의 핵심 인사로 공식 등장한 만큼 향후 빠르게 입지를 넓힐 것으로 전망된다. 김여정은 김정일 정권 당시 고모 김경희가 맡았던 역할 이상이 능히 예측된다. 김경희는 오빠의 권력을 최대한 무기 삼았다. “김경희 동지가 바로 나 김정일이고 그녀가 하는 말은 내가 하는 말과 똑 같다”고 김정일이 말할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이에 김경희 비서의 분노를 사게 한 행동이나 발언을 한 사람들은 종적을 감추었다.

이런 가운데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여동생 김여정의 결혼설을 뒷받침하는 사진이 공개됐다. 북한 노동신문은 2005년 1월 2일 김정은이 동월 1일 평양의 어린이 시설인 육아원과 애육원을 방문한 소식을 전하면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동행한 관련 사진을 게재했는데 김여정이 왼손 넷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북한에서는 1990년대부터 여성들이 결혼할 때 신랑 측으로부터 반지를 예물로 받고 왼손 넷째 손가락인 약지에 결혼반지를 끼는 것이 일반적이다. 김여정 부부장은 2014년 3월 22일 김정은 제1위원장 부부와 모란봉악단 공연을 관람할 당시에는 반지를 끼지 않고 있었다.

28세인 김여정이 결혼했다는 설(說)은 이미 여러 차례 제기됐다. 김여정의 결혼은 보수적이고 유교적 전통을 가진 북한사회 분위기상 결혼을 통해 미혼 여성의 신분으로 활동을 하는데 대한 부담을 떨친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여정의 남편에 대해서는 노동당 39호실 근무설과 호위사령부 소속 호위군관이란 설 등이 무성했다. 김여정은 김일성종합대학 특설반에서 공부했는데, 특설반 동기생과 결혼한 것으로 추정 보도가 나왔다.

2014년 10월 28일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조선족 기업인을 인용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39호실에서 근무하는 남성과 이미 결혼했다고 보도한바 있다. 노동당 ‘39호실’은 김 위원장의 통치자금을 관리하는 조직이지만 그러나 일각에서는 39호실이 최근 폐쇄된 것으로 전해진 만큼 호위사령부 군관과 결혼했다는 설도 제기되고 있다.

또 2005년 1월 2일 한국의 언론 매체는 중국의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김여정이 북한 2인자인 최룡해 당 비서의 차남과 지난해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빨치산으로 활동한 최현의 아들인 최룡해는 슬하에 2남 1녀를 뒀으며, 장남은 30대 후반의 최준, 차남은 30대 초반의 최성으로 알려져 있다. 김여정과 최룡해 차남과의 결혼설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결혼설에 이어 출산설은 어떠할까. 김정은 제1비서의 여동생 김여정이 올 4월 12일 김정은의 평양 순안공항 2청사 건설현장을 수행한 이후 47일 만인 5월 29일 김정은의 종합양묘장 시찰을 수행하면서 공개석상에 다시 모습을 나타나 출산설이 고개를 들었다.

지난 4월 29일 국정원이 “김여정이 임신했으며 5월 중 출산할 가능성이 높다”고 국회에 보고하면서 거의 모든 언론이 이 내용을 기사화 했다. 국정원의 김여정 임신과 출산에 대한 판단이 정확하다면 김여정은 5월 29일 보도 된 공개 활동 때는 이미 해산한 뒤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김여정의 5월 출산설에 대해서는 반론도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통일부는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다’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 또한 지난 5월 29일 노동신문에서 김여정은 꽤 더워보이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원피스와 하이힐을 신고 흙과 잔디로 이뤄진 종합양묘장 곳곳을 다녔는데 5월 중 출산한 산모의 모습이라고 하기엔 어색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또 앞선 두 번의 공개 활동 보도(4월12일, 3월12일) 때의 사진을 보면 김여정이 당시 임신 8, 9개월로 출산이 가까워진 임신부라고 하기에는 몸에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여정은 출산이 아닌 오히려 임신 초기 상태일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김정은과 공동 운명체

김여정은 관성과 타성에 젖어 복지부동하는 간부들을 몰아세우는 작업에 총대를 메며 김정은 3대 세습 체제 수호의 선봉장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조짐이 역력하다.

당 선전선동부의 엄격한 검열과 관리를 받는 북한 매체는 그간 국내외 제반 관련 사안에 대해 긍정적 내용 보도가 주된 관행이었다. 그러나 김여정이 당 선전선동부의 핵심 실세로 부상한 이후 김정은 우상화나 체제의 장점만을 선전하던 행태에서 벗어나 ‘간부들의 무능과 굳어진 사고방식’ ‘주저앉아 우는 소리’ ‘조건타발만 하는 사람’은 “우리 대오에 설자리가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경고하는 등 비판성 뉴스가 이례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한편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친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의 김일성종합대학 동창생 10여명을 지방으로 추방시킨 것으로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평양의 주요 기관들에서 일하고 있는 김여정의 김일성종합대학 동창생들이 김여정과 친분을 자주 언급한 것이 중앙당에 보고되면서 이들이 지방으로 추방됐다. 북한에선 최고 존엄인 지도자의 친동생과 관련해서 절대 침묵해야 하는데 최고지도자 동생의 동창이라는 것으로 덕을 보려고 한 이들을 김정은이 괘씸히 여겨 추방하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승승장구하고 있는 김여정의 미래는 과연 어떠할가? 아마 김정은과 공동운명체일 것이다. 유엔은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을 국제 형사법정에 세우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유엔은 2014년 10월 8일 북한의 反인권적 행위에 대해 김 위원장을 비롯한 관련자를 국제형사재판소(ICC) 등에 회부한다는 내용으로 유럽연합이 작성한 북한 인권결의안 초안을 비공개로 회람했다. 김정은의 국제형사재판소 회부가 포함되더라도 북한은 국제형사재판소 관할국이 아니어서 당사자가 거부하면 강제할 수단이 없지만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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