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서쪽 바다 괴잠수함 출몰..."게릴라 침투 아닌 전면전 양상"

이 영 작가 / 기사승인 : 2015-12-31 14:5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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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독점연재 - 장편소설 ‘김정은 통일전쟁’ (9)


제1공정단


8월 18일 05시 도쿄 신주쿠 이치카야 방위성
통합막료감부합동참모본부는 상황실의 전화기는 응급실 환자처럼 비명을 질러댔다.
당직 상황실장 해군대령 사토오는 급히 받아 적은 현지 피해 상황보고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상황실 상황판 정리를 하던 육군중령 구보다는 미쳐 상황판에 도식을 다하지 못하고 메모 일지를 계속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치토세 공항과 하코다테 항만 파괴, 세이칸 터널 폭파, 쓰가루 해협 기뢰부설 봉쇄 홋카이도 북부지역사령부 지휘통신소 폭파, 제1전차단 전차파괴, 홋카이도 서쪽 바다에서 괴잠수함 추격 작전 등 이러한 상황은 게릴라 침투가 아니라 전면전의 양상이었다.

통합막료장합참의장 코사카 제독은 현 사태를 전쟁으로 규정하고 모든 공격지점에서 즉각 대응 발포 격퇴할 것을 명령하면서 방위 위기 대처반을 소집했다.

통합 막료감부는 현 시각 05시부로 비상체재에 돌입하는 작전명령을 하달하면서 미 5공군과 긴급협조 하에 조기경보기 AWACS와 첩보정찰기 E-8C의 추가 정찰 비행임무를 요청했다. 고오베 출신인 통합막료장은 방위대 출신으로 해상막료감해군총장을 마치고 통합막료장이 된 지장이었다.

코사카 제독은 평소 메이지 유신의 핵 ‘사카모토 료마’의 쇄신 정신을 높이 사며 항상 지방대를 방문할 때마다 개혁과 변화를 강조했었다.

현장 지도를 통해 자위대 정신을 예전 대일본 제국군대 선배들의 정신을 계승하여 보다 강하고 자기 책임을 다하는 신세대 군 정신을 강조하는 전형적인 무사의 기질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도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사태에 흔들렸다.

8월 18일 새벽 05시 홋카이도 삿포로
수천 년 평화롭게 아침을 맞이하던 이 도시는 아침이 채 오기도 전에 폭음과 함께 불기둥이 하늘로 솟고 대공 기관포 소리가 새벽 공기를 가르며 퍼져나갔다.
치토세 공항과 북부방면통감부북부군단사령부 건물이 보이는 야트막한 야산 아래는 이미 피해를 입은 채 사방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자동소총과 로켓발사관으로 무장한 게릴라들은 유도탄 부대의 레이더와 통신 장비를 파괴한 후 도주했다.
게릴라들은 조별로 차량을 탈취하여 탑승한 후 인질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삿포로 시내 중심부인 텔레비전 방송탑 앞으로 집결했다.

일부 조는 방향참고점인 JR 타워로 이동하여 집결한 후 타워에 시한폭탄을 장치했다. 짧게 두 번씩 3회에 걸쳐 부는 호각 소리에 얼룩무늬 위장 복장에 자루식 배낭을 둘러 멘 특공대원들이 조별로 질서 정연하게 빠져나와 퇴각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앞서 탈취한 차량, 소형버스 3대에 인질을 태우고 12번 도로를 따라 후라노 방향으로 달렸다.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시민들이 어정쩡한 모습으로 폭음 소리가 났던 방향을 쳐다보면서 실제 상황인지 훈련 상황인지 혼란스러워 했다.
새벽 이른 시간에 올린 비상벨과 안내 방송에 따라 지하 대연회장으로 대피한 이소나는 상황을 파악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호텔 직원에게 물어도 직원들조차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멀리서 간간이 들려오는 폭음 소리와 총소리로 미루어 북한의 도발이 진행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이토록 빨리 그것도 일본의 본토가 아니라 북쪽 끝 홋카이도로 도발을 감행해 올 것이란 예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소나는 바닥에 깔린 담요에 앉아 머리채를 감싸고 스마트 폰을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스마트 폰의 신호는 잡히지 않았다.
문득 어제 저녁 조 박사와의 마지막 통화가 생각났다.
‘리영호와 오극렬이 일본을 노릴 수도 있다.’는 조 박사 경고에 그녀는 가당찮다며 오히려 조 박사를 면박 주던 행위가 창피하게 느껴져 왔다.
소나의 예측은 빗나갔다. 그녀는 머리를 무릎 사이에 파묻고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오극렬이 아무리 과거부터 일본을 손바닥처럼 읽고 있어도 일본을 상대로 전면전을 벌일 배짱은 없을 거야. 이건 분명 궁지에 몰린 북한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일본의 한 쪽을 찔러 본거야. 왜 그랬을까? 한국이 아닌 왜 일본을 선택했을까?>

소나의 궁금증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만 갔다.

대한민국 서울 종로구 세종로 1번지
북한 무장게릴라들이 일본을 침공했다는 뉴스에 한국은 충격에 빠졌다. 국민들의 동요를 최소화하기 위해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었다.
청와대 무궁화벙커에서는 긴급안전보장회의가 진행 중이었다. 국지전이 발생한 일본보다 수도 서울에서의 동요가 더욱 심각한 수준이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북한인민군이 쳐내려오는 것처럼 서울을 빠져나가려는 차들로 고속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고, 대형마트와 재래시장, 동네 슈퍼마켓 등으로 시민들이 몰려들며 생필품 사재기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었다.

언론은 금방이라도 제2의 6·25 전쟁이 터질 듯이 펌푸 질을 해댔다. 국무위원들의 갈등이 각 분야에서 서로 부딪쳤다.
“대통령님께 계엄을 건의 드립시다.”
“일본이 한 방 맞은 걸 왜 갑자기 우리가 계엄이요. 아직도 군사독재요? 거 너무 공안통치 분위기로 몰지 말아요.”
“여봐요, 지금 우리 환경을 봐요. 치안이 흔들리고 국민은 동요하고 불안하잖아요.”
“자자 언성들 낮추시고 침착하게 대응 전략을 세웁시다.”
장문호 국가위기관리실장이 장관들을 다독였다.
국무총리가 조 박사를 불렀다.
“조 박사?”
“예.”

“내 단도직입으로 하나만 묻겠습니다. 일본의 국지전이 한반도의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까?”
“송구합니다만, 예측을 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습니다.”
“그 얘기는 북한이 휴전선으로 제2의 도발을 감행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까?”
그때 주한 미 대사의 예방 접견을 마친 대통령이 들어섰다. 장문호 수석이 간략히 현 상황을 보고 드렸다.
“흠, 제2의 6·25 전쟁 가능성이 예측되는 군요.”

대통령은 고민스러웠다.
“국방장관?”
“전쟁이 발발하면 휴전선 상 어디로 적 주력이 올 것으로 판단합니까?”
“예, 각하. 아무래도 문산을 점령하면서 자유로와 1번 국도를 따라 서울로 진입 시 한 시간이면 입성할 것 같습니다.”
그때 국무총리의 언성이 갑자기 높아졌다.
“아이 참. 이봐요 국방장관, 같은 말이라도 그렇게 하시면 안 되죠. 아니 문산 파주 일대는 작전하는 국군부대가 없습니까? 어떻게 한 시간 만에 서울로 밀고 들어옵니까?”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싸늘해졌다. 대통령의 고심은 점점 더 깊어만 같다.
“만약 휴전선 일대가 아니라면 어디가 취약한 곳입니까?”
“예, 각하. 아무래도 서해 백령도 지역이 위험합니다.”

국방장관의 표정도 어두웠다.
대통령은 미 정부로부터 한미안보동맹 이행에 대해 강력한 압력을 받고 있었다.
“국방장관께서는 데프콘 발령을 심도 있게 검토한 후 조치하세요.”
“홍보 수석은 대국민담화를 준비해 주시고요.”
대통령은 단호한 표정으로 명령을 내렸다. 국민적 동요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조기수 박사는 주머니 속 스마트 폰을 만지작거리며 포화 속에서 공포에 빠져 있을 소나를 떠올렸다. 그녀를 도울 수 없다는 사실이 그를 슬프게 만들었다.

8월 18일 낮 12시 도쿄 후추시
일본 항공총대공군사령부 요코다 공군기지. 미 5공군 사령부는 일본 자위대 공군사령부와 함께 위치하고 있었다.
일본 자위대 제374 공수항공단사령부의 C-130 헤라클레스수송기는 독수리처럼 뭉툭한 앞머리를 곧추세우고 활주로로 미끄러지듯 접어들었다.
일본 자위대 최강 정예부대인 제1공정단은 홋카이도 무장 침공 세력인 북한 특공대를 토벌하기 위해 1진을 수송기에 태워 출발시키고 있었다. 짙은 녹색 수송기 4개의 프로펠러가 굉음을 내며 천지를 뒤흔들었다. 3년 전 방위대를 졸업한 야마다 중위는 가장 힘들고 험악한 제1 공정단에서 조장 임무를 수행 중이다.

유사시 게릴라 소탕과 대 테러 진압훈련, 공중침투, 해상침투 등 각종 특수훈련을 계절마다 하고 있는 최강부대원으로서 자긍심이 어느 동기생보다도 대단했다. 낙하산 휘장을 왼쪽 가슴에 달고 턱 끈이 단단히 고정된 방탄 헬멧을 쓴 야마다 중위의 모습이 비장하게 보였다.
그는 흔들리는 수송기 좌석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하듯 마음을 진정시켰다.

<만개한 벚꽃이 눈송이처럼 바람에 날리던 4월 초 고향 쿄토 카모가와 강물은 굽이굽이 아래로 흐르고 약혼녀 히토미의 검은 눈동자 속으로 나의 사랑하는 마음도 흐르던 그날.>

그는 약혼식 광경을 떠올렸다.

<히토미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수줍게 웃는 모습이 눈 앞에 잡힐 듯이 다가왔다. 강이 내려다보이는 테라스 레스토랑, 다리 위를 분주히 오고 가는 젊은 여인들 히토미의 얼굴이 머릿속에 어른거리네.>

거대한 수송기는 터질 것 같은 굉음을 내며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자동차 속도보다 더 빠르다 싶을 정도로 속도를 느끼자 갑자기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오르듯 머리가 어찔했다.
앞쪽에 마주앉아 있는 전우들의 표정은 차라리 어둡다고 할 정도로 긴장되어 보였다. 평소 강하 훈련을 위해 낙하산을 메고 비행기에 오를 때와는 다르게 표정들이 굳어 있었다.
야마다 중위는 조그만 원형 창을 통해 창밖을 내다보았다.
다음에 이륙하기 위한 비행기들이 꼬리를 물고 활주로 위를 움직이는 모습이 사태의 중대함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륙한 군 수송기는 여객기와 달리 4개의 엔진을 풀가동하여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소리가 마치 드럼통에 누워서 자갈밭을 구르는 것처럼 시끄러웠다.
한 자위대원은 옆구리에 결속한 총을 집어넣은 총낭이 불편한지 손으로 옆으로 밀었다 당겼다 해 보기도 했고, 눈을 감고 기도하듯 조용히 앉아 묵상을 하는 자위대원도 있었다.
공정단 대원들은 대부분이 부사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름대로 군 생활과 전문특기인 폭파, 화기, 의무, 통신 등의 교육을 수료하고 수년 간 실전과 같은 훈련을 한 베테랑들이었다.

장교 역시 임관 후 보병 소대장을 마친 장교 중에서 자원을 받거나 선발하여 별도의 유격전 교육을 6개월간 강습 후 실무 부대에 배치시켰다.
어느 새 수송기는 한 시간을 날아 태평양 상공 바다 위를 날고 있었다. 곧 삿포로 강하 지점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이 비행기에 탑승한 50여 명의 공정단 대원들의 결의에 찬 눈빛이 번뜩였다.
야마다 중위는 다시 눈을 감았다.

<히토미 2주 후면 돌아올 것이니까. 너무 염려마! 건강 잘 챙기구. 이번 작전 다녀와서 우리 약혼 여행 가자. 안녕.>

자신이 남긴 음성 메시지가 마음에 걸렸다.
히토미는 도쿄 시내 자위대 중앙병원 응급조치 간호장교로서 역시 매일매일 바쁜 생활의 연속이었다.

<야마다, 우리 결혼하면 아기 낳는 거보다 예쁜 강아지 키우자. 한 마리는 외로우니까 두 마리를 함께 키우자. 호호호.>

히토미의 상큼한 웃음소리가 자꾸 귓전을 맴돌았다.
야마다 중위는 감성적으로 빠져드는 감정의 흐름을 되돌리기 위해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방탄 헬멧을 다시 단단히 고정시켰다.
오른쪽 손바닥으로 헬멧 윗부분을 탁탁 두드리고, 나약한 자신의 생각을 떨쳐 버리려는 듯 양손으로 얼굴을 비벼도 보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공격팀원들에게 양손을 들어 보이면서 턱 끈 조임을 재확인시키고, 예비 낙하산의 고리 연결도 확인하고, 주 낙하산의 앞 연결부인 클립 부분의 결속 여부 그리고 총낭 무릎에 달린 배낭 등을 차례로 손으로 짚으면서 확인시켰다.

수송기는 우측 방향으로 크게 틀더니 한참을 바다 위를 날아가 다시 좌측으로 틀어 육지로 접어들었다.
홋카이도 산악 지역에서 활동하는 북한 특공대의 기습을 우회하기 위한 전술 회피 기동이다.
삿포로 시내가 멀리 보이고 이어서 낮은 구릉지대가 넓게 퍼져 있는 지역을 지나 작은 능선들이 시작되는 곳으로 들어섰다.
치토세 공항과 치토세 고사포 부대가 보이자 작전 지역이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었다.
수송기는 히다카산맥을 따라 계곡을 오르내리며 기동했다.
대원들은 꿈틀거리듯 비행하는 수송기 멀미를 참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강력한 쓰나미가 덮친 듯 치토세 공항은 북한 게릴라에 의해 폭파된 후 처참한 몰골이었고, 수송기의 이착륙을 위해 공병 자위대가 투입되어 응급 복구 중이었다.

주요 산 정상의 주변에 게릴라들이 매복 작전을 실시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어 작전 지역의 투입은 공중낙하로 결정되었다.
홋카이도에는 여러 개 공항이 있었지만 게릴라들의 공격으로 대형 수송기가 내릴 수 있는 곳은 현재로선 아무 곳도 없었다.
야마다 중위가 탑승한 수송기는 동북 방향 다이세쓰산 국립공원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구름에 중간 중간 가려져 있는 정상이 멀리 보였다.
헤라클레스 수송기는 강하 지역을 2번 선회하면서 정확한 위치를 잡기 위해 아래 지역에서 피어오르는 붉은 연막탄 신호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었다.

수송기의 거대한 날개가 수평으로 곧장 직진하자 기내 붉은등이 ‘부북’ 소리를 내면서 깜빡이기 시작했다. 야마다 중위가 맨 앞에 벌떡 일어섰다. 아랫다리에 힘이 빠지는 듯한 아리한 맥 빠짐이 정강이를 타고 올랐다.
그는 양팔을 벌린 후 크게 손뼉을 두 번 치면서 소리쳤다.
“전체 일어섯.”
그리고는 양팔로 머리, 어깨, 가슴을 치면서 외쳤다.
“장비 검사.”

황제의 근위병처럼 무장한 자위대 공정단요원 제1진 전원이 일어섰다. 공정단 대원들은 헬멧을 고정시키고 옆구리 총낭 연결고리를 확인 후 서로 낙하산 줄의 연결을 점검해주었다. 야마다는 다시 한 번 손뼉을 치고는 오른손 검지를 꺾어 보이며 소리쳤다.
“고리 걸엇!”
대원들이 낙하산 고리를 길게 늘어진 쇠줄에 걸고 흔들었다.

방풍 안경을 쓴 야마다 중위가 열린 문 사이로 몸을 내밀고 아래를 훑어보았다. 널 푸른 채소밭이 끝없이 펼쳐진 평원과 구릉지가 보이고 그 가운데에서 붉은 연막탄이 용트림하며 올라왔다.
젖혀진 문에서 불어 들어오는 세찬 바람이 비행기 실내를 휩싸고 돌았다.
녹색등이 번쩍거리자 야마다 중위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조원들을 바라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새카만 눈동자들이 팀장눈동자로 화살처럼 꽂혔다. 그의 몸은 스프링처럼 튀면서 수송기 밖으로 튕겨져 나가면서 외쳤다.

<히토미, 사랑해!>

야마다의 몸은 금세 지상으로 쭈-욱 떨어지며 빠져 나갔다. 그 뒤를 이어 대원들은 우루루 달려가는 버펄로 소떼처럼 몰려 나갔다. 푸르른 하늘에 까만 점들이 점점이 떨어져 나오면서 두 줄로 두둥실 떠다니며 내려왔다. 또 다른 수송기가 공중을 선회하더니 똑같이 까만 점들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넓고 넓은 푸른 산 여기저기에서 툭툭 땅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고 부대 단위별 집결 신호에 따라 공정대원들은 배낭을 둘러메고 총낭에서 89접철식 자동소총을 잽싸게 꺼내 들어 실탄을 장전했다. 야마다 중위는 기관단총을 가슴에 휴대하고는 거치적거리는 대검을 허리춤 뒤쪽으로 돌렸다. 그는 자신의 대원들을 확인하며 집결시켰다.
저 멀리 다이세쓰산 정상은 구름에 쌓여 있고, 검게 보이는 산들이 올망졸망하게 서있었다. 서늘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바람에 쓸려간 공정대원은 삼나무 숲속에서 소란스럽게 구조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오쿠라호텔에서 마련해 준 주먹밥과 된장국으로 점심을 먹은 이소나는 기자 신분증과 카메라를 챙겨 호텔을 나섰다.
긴급 차량과 군용 차량 외에는 통행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걸어서 시내로 이동했다. 아직도 삿포로 시내의 주요 건물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도로 곳곳에 임시로 마련된 검문소에선 자위대 군인들이 검문검색에 열을 올렸다.
소나도 검문소를 통과하는 내내 신분증을 수차례 보여주기 일쑤였다.
때로는 그녀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눈치를 살피는 경우도 있었다. 도시는 도로망과 통신망, 전기 등의 기반시설이 파괴되어 도시기능을 일부 상실했다. 사람들은 생필품 가게 앞에서 물과 식료품을 구하느라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그녀는 삿포로역 앞에 도착하자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게릴라의 폭탄 공격으로 JR타워 건물의 절반이 무너졌으며 삿포로 역의 청사도 곳곳이 총탄 자욱이 보였다.
게릴라의 국지적 공격이 이 정도의 파괴력을 가지는데 만약 폭격이라도 당했다면, 엄청난 인명 피해와 경제적 손실을 입을 것이라 생각하니 숨이 막히는 듯했다. 아직도 소방대원들과 자위대 군인들은 폭파된건물 잔해 더미에서 생존자를 찾기 위한 구조 작업을 펼치고 있었다.

소나는 카메라를 꺼내어 사진을 찍으며 폐허로 다가갈수록 전쟁의 상처는 더욱 거세게 그녀의 마음에 박혔다.
자위대 군인이 그녀를 저지했다. 더 이상의 접근은 위험하다며 뒤로 물러나라고 했다. 그녀는 대꾸 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그 자리에서 한참 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사진과 TV 프로그램으로만 경험했던 전쟁이 이젠 그녀의 눈앞에서 벌어진다는 생각에 오금이 저려오고 공포가 밀려들며 심한 한기와 구토 증세를 느끼게 했다. 자위대 군인은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녀를 부축해 안전한 지대로 피하는 것을 도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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