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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형 조건녀가 급증하고 있다. 당연히 장기화된 경기불황 때문이다. 하지만 조건의 강도는 더욱 세지고 남자를 만나기는 예전과 같지 않다. 여전히 채팅방에는 하룻밤을 원하는 남성들이 많지만 공급(조건녀) 과잉이 상대적인 ‘수요(남성) 부족’ 현상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조건녀들의 삶은 더욱 고달파졌다. 그동안에는 주로 경찰에 체포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성매매 남성들로부터 돈도 못 받고 폭행만 당할 수 있다는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면 최근엔 여기에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가중되고 있는 것. PC방에 들어갈 돈이 없어 PC방 비용을 내주는 대가로 화장실에서 ‘간이 성매매’를 했다는 기막힌 이야기도 들린다. 경기 불황이 그려내고 있는 조건녀들의 새로운 풍속도를 취재했다.
동갑내기 희진 양과 미진 양은 조건녀 생활을 한 지 이미 6개월째다. 둘은 가정에 대한 불만을 갖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의기투합해 집을 뛰쳐나왔다고 한다. 물론 처음엔 그 해방감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러나 그 환호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곧 춥고 배고픈 생활이 닥쳐왔기 때문이다.
가출 계획은 나름대로 주도면밀했다. 아르바이트 자리도 사전에 물색해뒀고 ‘가출 경험이 있는 친구’의 배려로 잠을 잘 곳도 제공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신들을 재워 주던 친구 역시 두 달도 안돼 방세가 밀렸고 결국 방을 빼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들에게는 아르바이트 자리가 있었지만 ‘꼴사나운 어른들’ 때문에 그나마 얼마 못 가 그만두고 말았다. 하지만 그 순간 이들은 자신들이 가야할 길을 정했다고 볼 수도 있다. 바로 조건녀 생활.
한 번에 최고 2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니 두 명이서 하루에 40만 원까지 벌 수 있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주말은 쉰다’는 근사한 계획까지 세우고 한 달에 20일만 일해서 800만 원을 벌자고 다짐했다. 이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큰 금액이다. 그것도 하루에 딱 한 명만 상대하면 된다고 하지 않는가. 이들로선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순진한 생각이었다. 세상은 이들의 ‘계산’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공치는 날도 많았고 20만 원으로 기대했던 화대가 어떨 때는 3000원이 되기도 했다. 그나마 번 돈은 밥과 유흥비로 써버려 저축은 거의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하루에 한 번’의 목표를 채우기가 힘들었다. 채팅방에 들어가면 남자들이 ‘득실득실’했지만 막상 흥정에 들어가면 고압적인 자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꼭 너희들이 아니라도 조건녀들은 엄청 널려있다’는 투였다. 때로는 일주일 내내 채팅방을 들락거려 겨우 한 명을 만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조건녀 생활을 그만둘 수 없었다.
이들은 “솔직히 지금 우리가 이거 아니면 먹고 살 방법이 없다. 굶어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잘만 하면 괜찮은 남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은 있다. 아는 또래 중에는 전국에 남자들을 깔아놓고 ‘일주’하는 애도 봤다”며 여전히 미련을 거두지 않았다.
조건만남이 성행하던 초기만 됐어도 그녀들의 주가는 아마 상종가를 쳤을 것이다. 당시엔 ‘조건녀 때문에 미아리, 텍사스 영업이 안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시들해지고 ‘정리’돼가는 분위기다. 초기엔 조건만남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만남을 갖는 남자들도 적지 않았지만 이제는 만남 자체보다는 만남의 ‘질’을 더 따지고 있다. 어차피 돈을 쓸 거면 더 예쁘고 섹시한 여자를 만나고 싶다는 것이 남자들의 욕심.
결국 조건녀는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지만 실제 성사되는 조건만남은 일부 조건녀들에게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조건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일단 채팅창을 열어놓고 약간만 야한 내용이나 조건만남을 연상시키는 제목을 달아놓으면 순식간에 남자들이 몰려든다. 수백 개의 쪽지가 한꺼번에 날아와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하지만 실제 흥정에 들어가 사진을 보여주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미모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공할 확률이 낮아졌다는 이야기다. 또 선심을 쓰는 남자들도 과거보다 줄었다. 딱히 돈에 얽매이지 않고 밥이나 술을 사주거나 택시비를 더 주는 남성들도 여전히 적지 않지만 처음 약속한 대로 돈을 주지 않고 깎는 남성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상황이 예전하고는 많이 달라진 것이다.”
남성들 역시 조건만남을 대하는 태도가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예전엔 미아리나 청량리 등에서 술취한 김에 들어가 몇 만 원 쥐어주고 정신없이 나오는 모습이 그리 낯설지 않았지만 이제는 옛날 이야기가 돼버렸다. 요즘 남성들은 마치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듯 꼼꼼하게 비교하고 선택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조건만남을 자주 해보았다는 한 직장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사진을 받아보고 결정한다. 또 사진속의 모습이 ‘화장빨’인지 ‘포토샵빨’인지도 살펴본다. 그래야만 ‘후회없는 선택’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채팅방에서는 매우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조건만남을 원하는 여자들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정말 돈을 써도 아깝지 않을 정도의 여성들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찌질한 가출 청소년’들이나 도망치고 싶을 정도의 외모를 가진 여성을 만나면 최악이다.”
그의 말처럼 조건만남의 열풍이 한바탕 불고난 이후 남성들은 상당히 까다로워졌다. 따질 건 따지는 ‘깐깐한 소비자’가 됐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성향을 보이게 된 데에는 인터넷 유흥사이트의 활발한 정보 교환도 큰 역할을 했다. 심지어 게시판에서는 해당 여성들의 아이디까지 공개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만큼 실망스런 조건만남에 ‘당해본’ 남성들이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한 물을 흐리는 각종 ‘삐끼녀’들에 대한 얘기도 올라온다. 이 같은 각종 경험들이 공유되면서 남성들은 조건녀에 대해 철저한 검증을 하고 있다.
결국 조건녀들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초기에 남성들의 혼을 쏙 빼놓던 미모의 여성들이 어느덧 스폰서 생활에 접어들면서 이런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이들은 더 이상 조건녀를 할 필요가 없어져 사실상 ‘일선’을 떠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조건녀의 레벨이 급속도로 다운됐고 ‘그저 그런’ 외모이거나 아니면 남성들에게 호감을 주기 어려운 여성들이 주로 남았다고 한다. 새로운 공급이 계속 있어 왔다고는 하지만 누구나 오케이할 수 있는 조건녀는 그만큼 희소해졌다는 얘기다.
그런 데다 최근 불황의 여파로 유흥가에서 밀려난 여성들이 몰려들고 있으니 당연히 조건녀 개개인들은 ‘만남’의 기회가 그만큼 적어졌다.
한마디로 공급은 급증했지만 ‘에이스급’은 오히려 더 줄어 에이스에 대한 수요는 그만큼 커졌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조건만남에 대해선 아직도 많은 남성들이 불법적인 성매매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거나 ‘괜찮겠지’하는 생각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이에는 수많은 색티즌들을 경찰이 모두 단속할 수 없다는 생각도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일회적인 단속보다는 만남의 창구가 되고 있는 채팅사이트에 대한 제도적인 규제와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서준/헤이맨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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