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수성아트피아 새해특별기획…

김태훈 / 기사승인 : 2009-01-15 12: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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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OUND & MEDIA ART展
▲ 백남준 <빈센트 반고호> 영상 캡쳐 이미지, 한국에서 처음 공개되는 뮤직박스, 파테오토메틱, 클링저 축음기(위에서 부터)

뮤직박스와 비디오아트의 만남
대구수성아트피아에서는 소리, 선율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뮤직박스(오르골)에서 시작 축음기에서부터 라디오, 그리고 영상매체의 시작인 영사기와 TV 등 이를테면 소리의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행사를 기획했다. 전시기간은 1월16일~3월8일까지 총 280여점이 출품되며 입장료는 성인 5천원, 학생(초중고), 4천원 유치부 3천원, 20인 이상 단체 1천원씩 할인 된다.

현대에 이르러 이러한 기능들은 한층 더 발전해 예술의 장르로까지 발전하고 있는데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그 대표로 꼽을 수 있다. 인류 역사상 근대의 시작은 바로 빛과 소리를 자본화 하는데서 시작됐다. 소리를 저장한다는 것… 그러한 생각은 불과 100년전 까지만 해도 꿈과 같은 일이었다.

현재 우리의 귀로 그 소리를 확인 할 수 있는 그 소리의 근원은 17세기 들어서면서 소리와 관련된 다양한 장치들이 등장하고 나서부터다. 이탈리아의 아타나시스 키르처는 1650년 원통의 표면에 오톨도톨한 돌기를 만든 뒤 태엽을 감아 원통을 돌리면 얇은 금속판이 돌기를 따라 진동하며 음악을 연주하는 장치를 발명했다. 그것이 바로 음악상자(music box)다.

소리는 한번 울리면 그 때,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만 들을 수 있다. 이것이 소리의 시간과 공간의 한계다. 소리로부터 이러한 굴레를 제거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여러 가지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발명들로 이어졌는데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소리의 역사는 바로 기계 및 과학발전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세기가 되면서 인간은 이 한계를 극복하기위해 획기적인 수단을 찾아냈다. 1876년 알렉산드르 벨은 전화기를, 그 이듬해 토마스 에디슨은 축음기를 발명했다. 에디슨이 발명한 소리 녹음의 원리는 구리로 만든 원통에 홈을 판 다음에 주석박(Tin Foil)을 씌워 소리를 녹음과 함께 재생했다.

즉 송화기에 바늘을 달아서 송화기에 전달되는 소리의 떨림을 바늘을 통해 구리원통의 주석박에 홈을 내어 소리를 기록 즉, 녹음하는 방식이다. 이와 같이 녹음된 소리가 재생바늘에 의해 재생되고 송화기 대신 확성기에 의해 소리가 되살아나는 것이다. 이것이 인류 최초의 음향기기인 포노그래프(Phonograph, 에디슨이 이름을 지음) “틴포일”이다.

“소리의 발전과정을 한 자리에…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접하기 힘든 다양한 축음기의 소리를 접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

그러한 꿈을 현실로 이루어 낸 사람이 바로 에디슨이며, 에디슨에 의해 소리를 저장하고 재생시키는 축음기와, 움직이는 영상까지 담아낼 수 있는 영사기 등을 발명하고 만들게 되었다.

이번 전시는 에디슨이 만들어낸 인류 최초의 음향기기라 할 수 있는 ‘틴포일’을 비롯해, 에디슨 영사기 등도 함께 전시가 될 예정이다. 특히 강릉 참소리 축음기 에디슨 박물관 손성목 관장이 지난 한 해 동안 유럽 및 미국 등지의 수집여행을 통해 어렵사리 구입한 100여 점의 새로운 전시품을 대구 전시에 최초로 선보인다.

그 대표적인 전시품이 동전을 넣으면 자동적으로 피아노와 아코디언 북등이 함께 연주되는 <스테포드 피아노 오케스트리언>, <파테 오토메틱 콘서트>, <클링저 축음기> 등은 세계적으로도 쉽게 보기 힘든 축음기일 뿐 아니라 국내에서는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일반인들에게 공개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중에서 클링저 축음기는 1889년 독일의 대표적 축음기 회사인 Klingor 축음기사에서 당시 귀족 및 부유층으로부터 주문 생산 받아 제작하였던 고급축음기로 외형 및 소리의 중후함으로 축음기의 여왕으로 불리기도 한 전시품이다.

이처럼 축음기의 발명 이후 인간에 의해 소리가 소비되고 소통되는 데에 있어서 새로운 역사의 장이 펼쳐지게 되었다. 100여 년 전의 가수가 부르던 아리아를 지금도 생생히 들을 수 있게 되었고, 일부 계층만 향유할 수 있었던 음악들이 대량으로 복제되어 수많은 대중들에게 소비되게 되었다.

이후 영국의 플레밍은 1904년 2극 라디오 정류기, 곧 2극 진공관을 발명하여 교류 전파신호를 직류로 변환 시키는데 성공했으며, 그 영향으로 1920년 미국의 프랭크 콘래도는 진공관을 이용해 전파에 실려 온 소리를 수신하는 장치, 즉 라디오를 만들어 내었다. 같은 해 미국의 웨스팅하우스는 KDKA라는 호출부호로 본격적인 라디오 방송시대를 열게 되었다. 결국 이 때부터는 축음기 없이도 음악을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현대화가 급속히 이루어지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귀로 듣는 것에만 만족하지 못하고 눈으로 직접 보고 듣기를 원하였는데 그렇게 해서 등장하게 된 것이 텔레비전이다. 오늘날 현대 미술가들에 의해 ‘미디어 아트’라고 해서 하나의 독립된 예술장르로 까지 활용하게 이르렀다. ‘미디어 아트’는 일명 ‘매체예술’이라고도 하는데, 현대 커뮤니케이션의 주요 수단인 대중매체를 미술에 도입한 것으로서 책이나 잡지·신문·만화·포스터·음반·사진·영화·라디오·텔레비전·비디오·컴퓨터등 대중에의 파급효과가 큰 의사소통 수단의 형태를 빌려 제작된다.

1920년대부터 전조를 보인 미디어아트는 제1, 2차 세계대전을 통한 대중매체의 기술적 발전과 매스컴 이론의 영향에 따라 1960년대에 대두하였고 19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미디어아트는 영상만을 가지고 작업한 ‘비디오아트(Video Art)’를 빼놓을 수 없는데 1970년대 전반부터 성행한 현대 예술의 한 경향으로, 크게 나누어 테크놀로지(Technology)의 예술적 가능성의 추구에서 생겨난 것과 형식주의적인 예술에 대한 반발에서 생겨난 것이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나 제작자보다도 감상자의 주체를 중시하는 정보의 개념에 기초를 둔 표현을 추구하고 있다. 비디오 아트는 현대예술의 새로운 장르로서 미술관이나 화랑 등에 전시되어 “움직이는 전자회화(電子繪畵)”라는 애칭으로 조용한 붐을 일으키고 있다. 독일의 시사경제지 ‘카피탈’에서 세계 100대 작가 중 5인의 작가로 선정한 한국의 백남준(白南準)을 비롯해 케이드 소니어, 레스 레바인, 비토 아콘시 등이 유명하다.

1963년 3월 부퍼탈의 파르나스 화랑에서 요셉 보이스 공연에 의거한 <음악전-일렉트로닉 TV>라는 타이틀 아래 믹스트미디어의 퍼포먼스가 행해졌다. 바로 한국 출신 작가 백남준의 네 번째 개인전이었다. 그리고 이는 비디오 아트의 시작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비디오 카메라와 VTR을 사용한 것이 아닌, 오히려 ‘TV아트’라고 표현하는 편이 좋을 정도의 지극히 기초적인 작업이었다. 1963년 볼프 포스텔이 행한 텔레비전을 통한 영상 실험을 최초의 시도라 하기도 한다. 이번에 전시되는 영상자료인 빈센트 반 고흐( van gogh)는 백남준이 1992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100여년전 소리의 감동과 더불어 미디어 아트의 선구자이자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인 백남준”의 화려한 영상의 세계로…

1970년대 초반 백남준은 아베 슈야와 공동 개발한 신디사이저로 인해 이미지의 변동에 무한한 가능성을 놓고, 미술사속에서 색체와 다양한 이미지의 실험을 시도했던, 작가들을 연구하면서 피카소의 자유로운 표현, 다빈치의 정확한, 폴록의 격렬함, 제스퍼 존스의 서정적 표현 등을 차용해 TV 스크린을 켄버스로 사용했다. 존 케이지 (A Trbute to John cage, 1973)를 필두로, 아인슈타인, 요셉 보이스, 샤롯 무어멘, 로댕, 저드주드 스타인, 정약용, 이순신, 세종대왕 등….

평소 자기가 좋아하던 존경하는 인물, 스승, 동료를 작품에 자기만의 독특한 시각적 언어로 표현 했다. 이 작품 역시 그 중 하나로 과학 기술이 서구에서 개발 되었지만 사유의 세계는 동양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고 볼 수 있는데, 양 대륙의 조화를 넉넉하게 보조하고 멀티미디어와 영상예술 테크노 아트 천국에서 과학이 어떻게 인간화된 예술에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안을 예시해 주는 작품 중 하나가 반 고흐 작품이다.

여기에 차용되는 반고흐의 자화상은 파리에서 수련하며 청년의 꿈을 품던 시절이라, 눈부시게 아름답게 느껴지면서도 슬퍼 보인다. 세상에 배척에 의해, 고흐의 인생을 점점 마모되어 가고, 비극으로 끝난 그의 삶을 130년 후에 백남준이라는 예술가에 의해, 반 고흐의 배척, 실연, 좌절, 번뇌의 연속이었던, 애처러워 가슴미어 지는 인생이 백남준 정신세계의 표현과 더불어, 재치, 장난스러움, 유희가 배어있다.

예술가로서 너무나 상반된 삶을 살았던 백남준과 반 고흐의 만남을 화려한 캔버스 위에 승화된 빈센트 반 고흐의 고독과 사색 그리고 열정을 느끼게 한다. 끊임없이 예술의 인간화, 기계의 생명화를 부르짖으며, 고독한 비디오 아트의 장르를 개척한 백남준과 대중으로부터 소외 되었던 강열한 예술혼을 힘겨워 했던 반고흐의 삶은, 예술로서 지구인의 보편적 사랑과 정서에서 벗어난 삶을 살다간 두 사람은 서로 소통을 원하고 있는 게 아닌가 여겨진다.

이번 전시는 이와 같은 소리의 발전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고 듣고 체험 할 수 있는 장으로 마련된 행사다. 대전시실인 호반갤러리에서 전문 도슨트의 전시품 설명과 더불어 100년 전의 뮤직박스나 축음기의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시연회가 이루어지며 소전시실인 멀티아트홀은 영상전문관으로 꾸며져 축음기의 시대에서 영상의 시대로 전환되는 과정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전시기획 이미애 팀장은 “최초의 카메라와 영사기에서 현대 문명이 이루어 낸 위대한 발명품인 라디오와 TV의 세계로 이어지게 되는데 전 세계적으로 희귀한 모델인 라디오와 TV를 중심으로 전시품이 구성되어 있다”며 “한국 최초의 TV라 할 수 있는 가정용 금성TV까지 전시되어 4~50대 어른들에게는 아련한 옛 추억을 더듬어 볼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영상관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될 것이라며 100여대의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려한 영상자료는 보는 이로 하여금 미디어아트의 세계로 흠뻑 빠져들게 만든다”고 전시기획의도를 밝혔다.

전시관람 후에는 별도의 부대행사가 마련되어 수성아트피아 소공연장인 무학홀에서 화려한 영상과 어우러진 음악 감상 시간이 마련되어 보다 더 풍성한 볼거리로 본 행사가 진행된다. 문의 ☎053-666-3266
/ 김태훈 기자 kimth020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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