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력가,PD, 성접대 회유.협박 거절하면 연기자 생활 치명적"

신민희 / 기사승인 : 2010-05-03 17:5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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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 '女연예인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 발표

조사대상 여성연기자 45.3% 술시중 요구, 60.2% 성접대 제의받아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심각 “직접적 성관계 요구받은 경험도 있어”


“다이어트, 성형수술 권유받은 경험 각각 72.3%, 58.7%”
“성접대 거절 후 캐스팅 등 불이익 여성 연기자 48.4%”


“연예매니지먼트진흥법 등 법제마련, 관계자 협의체 구성, 여성연예인의 자구노력 등 다양한 접근 필요”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현병철, 이하 인권위)은 지난 4월 27일 '여성연예인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인권위는 2009년 여성연기자 J씨의 자살을 계기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일어나기 쉬운 연예계 구조와 왜곡된 성인식 문제가 드러남에 따라, 구체적인 실태파악과 개선방안 마련을 위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의뢰해 '여성 연예인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이번 보고서는 여성연예인의 인권상황 실태 전반에 관해 진행된 국내 최초의 포괄적 여성연예인 인권 실태 조사 보고서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책임연구원 이수연)은 지난해 9월~12월 기간 중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조 소속 여성 연기자 111명과 수도권 소재 6개 대학 방송연예관련학과 재학생, 연기학원 수강생으로 구성된 연기자 지망생 약 240명 등 총 35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심층면접 조사에는 매니저 등 연예산업 관계자 11명을 포함해 총 27명에 대한 인터뷰를 실시했다.


인권위는 이번 설문조사 과정에서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음을 토로했다. "심층면접조사는 대면적 상황에서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중요한데, 사생활이 노출되기 쉬운 직업적 특성상 문제가 있더라도 침묵하고 혼자 감당하는 것이 현실인 상황에서 사례수를 충분히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모집단인 연기자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가 불확실하고, △대중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공인’으로서 연예인이라는 대상자의 직업적 특성과 △여성연예인에 대한 인권침해라는 조사 내용의 민감성으로 인해 체계적인 표집이 어려웠고 결국 조사 대상자의 상당한 용기와 자발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따라서 조사결과를 여성연예인 전체로 일반화하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는 게 인권위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이번 조사는 여성연예인 차별이 발생하는 구조를 살필 수 있는 그룹을 선정해 당사자의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측면의 실태를 파악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게 중론이다.

여성연기자 인권침해 실태



실태조사 결과, 조사 대상 중 △연기자의 45.3%는 술시중을 들라는 요구를 받은 경험이 있었고, △연기자의 60.2%는 방송 관계자나 사회 유력 인사에 대한 성 접대 제의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조사대상 연기자의 상당수가 △듣기 불편한 성적 농담(64.5%), △몸이나 외모에 대한 평가(67.3%), △몸의 특정 부위를 쳐다보는 행위(58.3%) 등 언어적·시각적 성희롱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아울러 성추행, 직접적 성관계 요구 및 성폭행 피해 경험도 확인되었는데 조사대상 연기자 중 31.5%는 신체의 일부(가슴, 엉덩이, 다리 등)를 만지는 행위 등의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조사대상 연기자 가운데 △직접적으로 성관계를 요구받거나(21.5%), △성폭행·강간 등 명백한 법적 처벌 행위가 되는 범죄로부터의 피해를 받은 경험(6.5%)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기자 지망생의 경우 연기자만큼은 아니지만 성희롱, 성접대 제의, 술시중 요구 등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로부터 안전하지 않았다는 게 인권위의 설명이다.

“스폰서 관계 제의 사례 다수”

설문조사 결과 여성연기자의 55%가 유력 인사와의 만남 주선을 제의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심층 면접에서도 스폰서 관계를 매개하는 만남은 연예계 주변에서 매우 일상적이고 빈번한 것으로 평가됐다.
인권위는 "극단적 사례로는 재정상황이 부실한 기획사가 여성 연예인을 매개로 스폰서의 지원을 받아 회사를 운영하는 경우였는데, 이 때 해당 여성연예인은 기획사와 자신의 성공을 담보로 스폰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밝혔다.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 침해 심각

조사 결과, 다이어트와 성형수술 등 외모관리에 대한 요구를 받은 경험은 모두 높게 나타났는데, 특히 이미 데뷔한 연기자들보다는 지망생들에게 그 피해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기획사와의 불공정 거래에 대한 경험을 묻는 설문에 응답자들은 △모든 활동에 대한 일방적 승인과 지시, △일거수일투족 감시·통제 등 과도한 사생활 침해△홍보 활동 및 행사 무상 출연 강요, △사전 동의 없는 일방적 계약 양도 등의 경험이 많다고 답했다. 또한, 감금에 준하는 인식 구속과 같은 극단적 피해 사례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 △성접대 제의를 받은 경험이 있는 연기자 48.4%가 이를 거부한 후 캐스팅이나 광고출연 등 연예활동에서 불이익을 경험했다고 응답했으며, △연기자 58.3%는 술시중과 성상납을 거부하면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처럼 여성연기자의 경우 노동(연예활동)권 확보를 위해 성적 또는 신체의 자기결정권을 포기해야 하는 구조적 상황 속에 놓여있어 그 문제의 양상이 더욱 심각하다고 인권위는 밝혔다.
조사 결과, 연기자의 64.4%는 △인터넷 등을 통한 악성 댓글, △개인정보 및 나쁜 소문 유포,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욕설, △스토킹 등의 피해 경험이 하나 이상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女연기자 인권침해 원인 및 제언

인권위는 "앞서 확인된 다양한 여성연기자 인권침해 실태의 근본적 원인으로는 가부장적 성문화와 연예인 수급구조의 불균형이 지적되고 있으나 이와 같은 문화적·산업적 요인이 기획사, 매니지먼트사, 제작사, 언론과 대중에 의해 확대·심화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연예계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지나치게 많은 구조다. 2005년 현재 연극영화과 등 관련학과 255개에 재학생 수는 3만332명이며 220개에서 230개로 추정되는 연기학원을 통해 1년에 수도권 지역에서만 4만8000여명의 연예인 지망생이 배출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설문에 응답한 연기자 89.2%(지망생은 87.3%)가 공식적 오디션보다 비공식적 미팅이 캐스팅에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한국연예제작자협회(2006년 가입기준 309개)와 한국매니지먼트협회(2009년 가입기준 89개)에 등록되어 있는 회사 외에 많은 영세 군소 기획사가 대략의 숫자조차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난립, 명멸하고 있다고 인권위는 설명했다.


"대형 기획사의 문제가 주로 불공정 계약의 문제로 집중된다면 군소기획사는 더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만 이에 소속되어 있는 연예인들의 인권은 더욱 보호받기 힘들다." 이와 관련, 인권위는 미국의 사례를 들며, "에이전트법을 제정해 사업자의 자격이나 자금조건을 정하고, 연예인과의 계약 체결 시 노동위원회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하는 등 연예산업 전반에 견제와 균형의 원칙을 반영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밝히며, "연예인 스스로 노조를 설립해 권리 보장에 적극 나서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우리나라도 관련 법 제정 등을 통해 연예매니지먼트 사업자의 자격을 엄격히 정하는 한편, 연예인과 연예산업을 지원·육성하는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공개 오디션 문화 정착, 방송사· 제작자 협회· 매니지먼트협회· 에이전시 협회· 연예인노조 등이 관계자 협의체 구성 등을 통해 자정 노력을 벌이는 것도 문제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며 "가칭 연예인협회 등을 설립해 상담 창구 운영이나 멘토시스템 도입, 인권교육 등 연예인의 자구 노력도 중요하다. 또한 대중과 언론도 팬문화나 보도문화의 문제점을 자각하고 자성노력을 벌여야 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인권위는 “이번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토론회 자리가 여성연예인 인권실태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다각적인 개선방안을 찾는 출발점이다”며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인권위는 여성연예인 인권개선을 위한 실효성 있는 대안을 찾고 공론화하는 노력을 계속해나갈 것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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