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씨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집.학교.가게 주변만 오갔으며 골목길로만 숨어 다녔다. 시내를 고 3시절 딱 2번 가봤다.”
“딸 앞에서 무릎 꿇고 빌었던 신씨, 아동성폭력범죄 공소시효 15년이 지났다는 사실 뒤늦게 알고 태도 돌변” vs “최씨가 성추행을 당했다는 거짓말로 돈 뜯어내기 위해 허위진술 강요”
[일요주간=이광명 기자] 30대의 최나래(가명)씨. 그녀는 5세부터 초등학교 4학년때까지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평소 최씨를 예뻐하던 이웃주민 심복태(가명)씨. 최씨는 혼자 가슴앓이를 하며 이 사실을 20여 년 동안 숨긴 채 지냈다.
그 기억을 떨치지 못해 우울증과 폭식증에 시달렸고, 잦은 성폭력의 결과 생식기 변형으로 인한 다뇨증이라는 병까지 얻었다. 결국 견디다 못해 2006년 부모에게 사실을 털어 놓았고 최씨의 아버지는 곧장 심씨를 찾아가 딸에게 사죄할 것을 요구했다. 처음에는 반성의 기미를 보이던 심씨였지만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사실을 알자 태도가 돌변했다는 게 최씨의 주장이다.
이러는 사이 양쪽 간에 갈등이 증폭됐고, 급기야 딸을 팔아 돈을 뜯어내려고 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최씨는 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야만 했다. <일요주간>은 지난 5일 최씨를 직접 만나 성폭력을 당한 경위와 그 이후의 생활에 대해 2시간여에 걸쳐 들어봤다.

최씨의 부모는 자신의 딸을 예뻐하는 심씨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최씨는 그 때를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가 생긴 악몽의 시간이었다고 기억했다. 최씨는 심씨에 대해 ‘기름때가 묻은 검은 손가락’의 아저씨로 기억한다. 심씨는 항상 손가락에 시커먼 오일이 묻어 있었고, 그 손가락으로 최씨를 괴롭혔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씨네 화장실은 심씨 방 바로 옆에 있어 화장실을 갔다 오는 길에도 심씨를 자주 마주쳤다.
심씨는 최씨를 보면 놀아준다며 그의 방으로 자주 데려가곤 했다. 최씨가 따라가기 싫다고 거부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의 부모는 심씨가 딸을 예뻐해서 그러는 애정표현 정도로 생각하고 삼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최씨는 그 당시의 상황이 또렷하게 기억난다고 했다. “방으로 데려가면 TV를 켜고, 이불 속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곤 기름 묻은 손으로 나를 만졌다. 아프다고 해도 꽉 붙잡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심지어 내 여동생과 같은 나이의 그의 딸은 세발 자전거를 타고 내 주위를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최씨는 “달아나고 싶어 오줌이 마렵다고 하면 바로 옆에 있는 화장실을 두고 부엌으로 데리고 가 (심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소변을 누게 했다. 그리곤 다시 방으로 데려가 그 짓을 일삼았다”고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이런 식의 성추행이 최씨가 심씨의 옆집에서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간 11세까지 상습적으로 행해졌다는 것이 최씨의 주장이다.
최씨가 처음 이사를 했을 당시 들었던 생각은 ‘다행이다’였다고 한다. 그러나 벗어났다는 안도감은 잠시뿐, 최씨는 심씨로부터 당한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더욱 폐쇄적으로 변해갔다고. “김씨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절대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집, 학교, 가게 주변만 오갔으며 골목길로만 숨어 다녔다. 심지어 시내를 고3시절 딱 2번 가봤다”고 최씨는 회상했다.
성격은 점점 난폭하게 변했으며 특히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 자신이 당한 일이 단순히 ‘나쁜 일’이 아닌 ‘성폭력’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극도의 불안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약간의 피만 봐도 책상과 의자를 모두 집어 던지는 등의 발작을 일으키고, 정신이상자처럼 소리를 지르며 스스로 자신을 때렸다”며 “누가 시키는 것 같아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고, 쓰레기들을 모아 놓는 강박증에 시달렸다”고 털어놨다.
그 외에도 공책을 펼쳐 각 면마다 침을 뱉고 덮기를 수차례 반복했고, 피가 나고 구멍이 생길 정도로 머리카락을 한 올씩 뽑아냈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학업은 아예 신경도 쓸 수 없었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공부를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최씨는 학창시절 동안 학교에서 도시락을 먹지 못했다고 한다. 밥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나고 더럽다는 생각이 들어서라고 했다. 심지어 선생님이 먹으라고 권유한 도시락마저 먹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집에 돌아오면 심한 폭식증이 찾아왔다. 부모님이 해놓은 밥이 모자라 스스로 더 만들어 먹고, 그도 부족해 나가서 더 많은 음식들을 사다 먹었다고 했다. 저녁 시간 때만 냉면 그릇으로 밥 2공기를 먹고, 라면 1개, 큰 빵 1개, 피자 1판을 연달아 먹어도 최씨는 늘 배고픔을 느꼈다고 한다. 먹을 때만큼은 그 일이 떠오르지 않아서라고 했다.
은둔형 외톨이 전락
누구도 최씨를 정상인으로 보지 않았다. 최씨의 부모조차도 태교를 잘못한 탓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더구나 최씨는 소변을 참지 못해 아무데서나 싸고 말았다고 했다. 유치원 때부터 사회생활을 할 때도 갑자기 오줌이 흘러나와 옷을 버리기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부모님은 그런 최씨를 위해 잠자리 바로 옆에 오광을 놔주었지만 소용이 없어 잘 때는 아예 비닐을 깔아 주었다고 했다. 아침에는 어김없이 오줌이 바닥에 흥건했다.
최씨는 “나는 건강한줄 알았고, 다른 사람들도 다 나와 같은데 내가 화장실에 빨리 가지 않아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해 나를 탓했다. 병이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최씨는 ‘배뇨근의 불수의적수축과 방광유순도 감소 및 배뇨근괄약근부조화(협조장애)를 보이는 신경인성방광증’인 것으로 진단됐다.
최씨는 자신을 ‘은둔형 외톨이’라고 표현한다. “깜깜한 곳에 웅크리고 앉아 매일 세상을 비관했다. 매일같이 울었다. 난 혼자였다. 죽어버려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혼자 죽기는 너무 억울했다”며 “91년도에 일어났던 김부남 사건 재연 장면을 몇 번이고 보며, 나를 망친 심씨를 죽이고 나도 법의 심판을 받을까라는 생각까지 했다”고 격한 감정을 쏟아냈다.
하루도 심씨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 날이 없었다고 한다. 결국 20세가 되던 해 최씨는 심씨로부터 더 멀어지기 위해 무작정 집을 나갔다. 고시원을 전전하며 어렵게 생계를 꾸려갔다. 그러면서도 버는 돈은 대부분 먹는 것에 지출했다. 소변문제 때문에 30분 간격으로 화장실을 오가는 최씨를 곱게 볼 리 없는 회사는 1개월 만에 해고시키기 일쑤였다고 한다. 어떤 때는 길거리에서 노숙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최씨는 “24시간 운영하는 해장국집 앞의 파라솔에서 뜬 눈으로 밤을 새고 아침이 되면 터미널에 가 눈을 붙였다. 부모님이 보고 싶었지만 (심씨를) 마주칠까 무서워 연락할 수 없었다”고 심씨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했다. 그 후 잦은 폭식으로 건강이 악화되자 최씨는 양친에게 연락을 했고, 오랜만에 만난 부모에게 사실을 고백하려고 했으나 차마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 “부모님이 몇 년 사이 많이 늙어 보였다.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최씨는 양친과 다시 만난 이후 모두 잊고 살아가자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 후 화장실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회사를 만나 2년 6개월간 다녔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이 두려웠고, 최씨에게 잘해주는 사람은 오히려 불편했다. 회식자리도 모두 피했고, 특히나 남자들이 말을 걸면 너무 싫었다고 했다. 매일 떠오르는 악몽 같은 기억은 최씨를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성폭행 고백
그러던 2006년, 최씨의 어머니에게 과거 내가 당한 일에 대해 말을 했다. 어머니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는지 심하게 우셨다고 털어놨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최씨의 부모들은 혹여 딸에게 흉만 될까 두려워 병만 고쳐지면 조용히 묻어두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신고만하면 심씨가 경찰에 붙잡혀가 그간의 죄 값을 치르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최씨는 아무런 보복조치를 하지 않는 양친에게 분노를 폭발하기 시작했다. 병원에도 가지 않고, 그런 일을 당하고도 복수조차 할 수 없는 자신은 역시나 운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 최씨를 지켜보기 힘들었던 최씨의 양친은 자백을 받아내고, 사죄를 시키기 위해 심씨를 한적하고 외진 곳에 위치한 식당으로 불러냈다.
최씨는 “그곳에 따라 갔지만 들어갈 수 없었다. 그놈 얼굴을 보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동생의 설득으로 따라 들어갔지만 쳐다보진 못했다”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최씨의 부친은 심씨에게 과거 최씨에게 저지른 죄를 자백하고 빌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자 심씨는 “친해지고 싶어서 그랬다며 몇 년은 아니고 몇 번 그랬을 뿐”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를 듣고 있던 최씨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심씨의 얼굴을 쳐다 봤다고 했다. 그녀는 “얼굴이 너무 추했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역겨웠다”며 “그냥 하는 말이고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고 심씨에 대한 증오심을 드러냈다.
비록 모든 응어리가 풀리지는 않았지만 그 후 최씨는 병원도 다니고 차츰 호전되는 기미가 보이는 듯했다고 가족들은 말한다. 하지만 이도 잠시, 심씨의 태도는 돌변했다고 한다.
최씨 측은 아동성폭력범죄의 경우 공소시효가 15년인데, 이미 지났다는 것을 알게 된 심씨가 태도를 바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처음에 오히려 심씨가 최씨의 부친에게 찾아와 “1억을 줄 테니 용서해 달라”며 빌었다고 했다.
그런데 최씨의 부모들이 딸을 팔아 돈을 뜯어내려 고 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동네에 돌면서 최씨의 부친은 전에 없던 ‘신경성 당뇨’란 병을 얻었고, 모친은 ‘심장병’에 걸렸으며, 최씨의 동생들조차 ‘화병’으로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최씨의 아버지는 심씨를 ‘명예훼손죄’로 경찰에 고소했으며, 국회 및 법무처에 ‘아동 성폭력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소급 폐지에 관한 진정서’를 보낸 상태다.
최씨의 병은 다시 악화됐고, 억울한 마음을 호소하는 과정에서 괴성을 지르는 등의 비이성적인 행동을 보였다고 한다. 최씨는 “차라리 세상에 (성폭행 사실을) 밝히고 나니 마음이 후련하다”며 “그렇지만 자신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가족들과 자신의 망가진 인생이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심씨가 꼭 죄 값을 치러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죄를 빌고, 헛소문을 퍼트린 것도 다시 바른대로 돌려놔야 한다”고 덧붙였다.
마음의 병만 깊어져
최씨에게도 어릴 적 꿈이 있었다고 한다. “공부는 못했어도 스무 살 때 예술 전문학교를 다녀서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었다. 지금은 이해가 안 되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TV에라도 나오면 그 인간(심씨)이 찾아와 나를 위협할 것 같았다. 무서운 마음에 꿈을 접었다.”
최씨는 “어머니의 말로는 다섯 살 이전에는 재롱도 잘 피우고 밝은 성격이었다고 했다. 어린시절 씻기려고 보면 성기가 빨갛게 부어있어 분을 자주 발라 주었고 가만히 누워 아래쪽을 만지는 일이 잦아 혼을 내기도 했다는데 그 때부터 급격히 조용하고 말이 없는 아이가 된 것 같다”고 털어놨다.
최씨는 자신과 같은 사람이 더 이상 생기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그녀는 “혼자 서 있는 아이를 보면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더라도 무조건 부모님이 어디 계신지 물어보고 데려다 준다”며 “나 같은 일을 당할까봐 불안하고 걱정되기 때문이다. 나는 겪어봤기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의 마음을 안다. 지금은 힘들지만 (나의 현재 상태를) 많이 추스르고 나면 ‘아동 상담과 관련된 사회복지 분야’의 공부를 하고 싶다”고 털어놨다.
끝으로 최씨는 “이런 일을 당한 사람들이 있다면 꼭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성폭행 사실을) 털어놨으면 좋겠다”며 “항상 말을 하려고 ‘엄마, 나 할 말이 있는데’라고 말을 꺼냈다가도 하지 못해 26년을 혼자 앓는 사이 마음의 병만 더 깊어졌다. 왜 일찍 말을 하지 못했는지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한편, 심씨 측의 주장은 사뭇 다르다. 심씨 측은 “(최씨의 부모가) 딸이 성추행을 당했다는 거짓말로 돈을 뜯어내기 위해 허위진술을 강요했다”고 반박했다. 심씨 측은 전혀 그런 사실이 없으며 자백을 했던 이유는 단지 “협박이 무서워서”였다고 주장했다.
특히 최씨의 양친이 성추행 사실을 알게 됐다고 주장하는 날 이후로도 최씨 부모와 어울려 호프집과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며 즐겼다고 말했다. 잦은 가택침입으로 경찰에 신고를 하기도 했으며 5억을 주겠다는 각서를 쓰라는 협박을 받아왔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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