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주간=신현호 기자] 우수 중소기업의 제품을 육성, 발굴하기 위해 출범한 TV홈쇼핑이 본래 취지와는 달리 중소기업들을 상대로 과다한 수수료 요구와 대기업 중심의 제품 판매 등으로 빈축을 사고 있다. 한 때 국내 굴지의 TV홈쇼핑 5곳에 제품을 납품해 오던 K씨. 그는 A홈쇼핑으로부터 저렴한 수수료를 내는 대신 단독 계약을 하자는 제의를 받고 구두약속을 했다. 이 약속만 믿었던 K씨는 착실히 제품을 준비했으나 계약서를 쓰기 며칠 전 A사는 갑자기 돌변하며 돈을 더 내라며 말을 바꾸었다는 것. <일요주간>은 지난 5월 30일 K씨를 만나 TV홈쇼핑들의 횡포에 대해 취재했다.
K씨가 2003년 TV홈쇼핑에 뛰어들었을 때만 해도 사업이 순탄했다. 직송거래로 인한 물류비 절감이 홈쇼핑 취지와 잘 맞았다. TV홈쇼핑 5군데와 거래하며 35%의 수수료를 부담했고 평균 연매출은 40~50억 정도 됐었다. 잘나가던 사업가였던 K씨는 2006년에 A홈쇼핑으로부터 단독계약 제의를 받았다. A사 측은 31%의 낮은 수수료를 제시하고 일주일에 2~3번 광고를 해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K씨를 유혹했다.
K씨는 이 같은 계약조건을 제의 받고 곰곰이 생각한 끝에 다른 업체들과의 관계를 끊더라도 훨씬 남는 장사라고 판단했다. 게다가 A사 측의 경우에는 홈쇼핑을 통해서 채워야할 목표액도 다른 홈쇼핑에 비해 훨씬 수월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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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계약으로 유혹한 뒤 제품 다 준비하니 딴소리
2006년 10월 K씨는 다소 피해를 감수하면서 다른 홈쇼핑과의 거래를 모두 끊고 A사와 구두계약을 체결했다. A사의 약속만 철떡 같이 믿고 제품을 준비하던 K씨는 방송을 사흘 앞두고 계약을 변경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원래 31% 요구조건에 정액제를 붙여 한 번 방송에 700~800만원을 더 달라는 것이었다.
이 같은 A사의 요구에 대해 K씨는 그렇게 판매하면 역마진이 나는 상황이어서 안 된다고 단호히 거절했다. 그 때 (A사) 담당 팀장이 딱 2번만 그렇게 해주면 원래대로 해주겠다고 제안을 해왔다. K씨는 "납품을 위해 준비한 재고는 쌓여가고 있고 직원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 속에서 A사의 요구를 울며겨자 먹기식으로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고통스러웠던 당시의 심경을 토로했다. 그러나 결국 구두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단독계약서 들이밀며 매출액 3배 요구
방송을 하면 할수록 K씨는 오히려 손해를 더 보게 되었다고 한다. 참다못한 K씨는 A사와 계약을 파기할 생각으로 다른 홈쇼핑과 계약을 어렵게 체결했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A사는 단독계약서를 들이대며 계약 위반을 했다며 매출액의 3배 (당시 10억 원)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K씨는 구두계약만 했던 상태였고 A사는 단독계약서를 가지고 있어 법적으로 불리했다. 더구나 K씨는 아직 못 받은 돈을 떼일까 봐 A사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A사가 사장 친구라며 C씨를 데려왔다. C씨를 밀어주면 ‘정액제를 없애주겠다','수수료도 돌려주겠다’는 말로 다시 K씨를 꼬드겼다. C씨는 K씨가 판매하던 제품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C씨는 소비자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주장만 내세우다 큰 손해를 보고 손을 뗐다. 그 과정에서 도움을 주던 K씨만 600만원만 고스란히 날렸다.
공정위의 이상한 잣대
K씨는 녹취기록을 가지고 2008년 1월 공정거래위원회 산하 중재위원회에 중재신청을 했다. K씨가 당초 구두계약 이외에 추가로 발생한 피해액이 3억 8000만원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방송을 계속하게 되면 하면 할수록 손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어서 일주일에 2~3차례 방송을 해주겠다는 약속이 지켜졌더라면 6~7억 원의 피해액이 나왔을 법 했다는 게 K씨의 설명이다.
중재위원회는 K씨에게 30%를 양보하라는 제의를 해서 K씨는 수락했지만 A사는 이를 거부하고 5000만 원을 주겠다고 K씨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아무런 산출근거도 없이 5000만 원만 받으라는 것이었다. 이에 K씨는 다시 공정위를 찾아가 신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K씨는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고 했다. 보통 중요한 사건은 (공정위) 본청에서 담당하는 데 여의도로 사건을 보낸 것이었다. 훗날 공정위의 한 직원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로는 공정위의 모 팀장과 A사 법무팀장이 경북대 선후배라는 것이었다.
공정위 신고 철회하자 ‘보복’
얼마 후 A사는??신고를 철회 하면 수수료 6개월을 제해주고 방송 1년을 보장 해주겠다. 잘만하면 2~3년 연장시켜주겠다. 어차피 공정위로 넘어가면 서로 힘들다??고 K씨를 집요하게 회유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A사로부터 받지 못한 돈 때문에 허덕이던 K씨는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하고 다른 상장회사 관계자를 데려가 증인으로 삼고 2억 원을 빌려 2008년 5월 다시 방송을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A사의 보복 행위는 곧바로 시작되었다. K씨 회사의 제품 홈쇼핑 소개는 은 당초 황금 방송 시간대인 저녁 8시 30분~9시 30분시간이 아닌 시청률이 거의 없는 새벽 시간으로 편성되었다. 새벽에 판매되는 물량으로는 매출액을 달성할 수가 없고 간간히 판매되는 제품 몇 개를 멀리 지방까지 배송해주고 나면 물류비가 50%넘게 들어 또 다시 적자가 나는 시스템이었다.
묵묵부답 ‘공정위’ 왜?
2008년 12월 K씨는 공정위를 다시 찾았다. K씨로부터 A사의 불공정거래 행위 혐의를 접수받은 공정위는 A사 조사에 3~4개월 정도 소요된다고 했다. 한 공정위 관계자는 "이 정도의 자료라면 100% 이길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했지만 3개월이 지나고 아무리 기다려도 공정위에 연락이 오지 않았다. 연락은 정작 엉뚱한 곳에서 왔다. 전에 납품하던 다른 쇼핑몰의 MD들로부터 "공정위로부터 전화 연락이 와서 무슨 관계이며 어떤 사람인지 묻더라"라는 전화였다. 비밀보장은 철저히 지켜지지 않았으며 혹 자신들에게 피해갈까 우려한 MD들은 그 후로 K씨 전화를 피했다. 이어 K씨는 “공정위 직원 3명이 나를 사무실에 데려다 놓고 추궁을 한 적이 두 차례 있다"며 "나는 피해자이고 녹취기록을 제공했는데 왜 추궁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요청한 대질심문도 거절당했다”고 덧붙였다.
공정위에 방대한 자료를 전달했고 오랜 기간 조사를 했음에도 심결을 담당하는 9인위원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하다가 1년여의 시간이 지난 끝에 공정위는 구두계약은 협의과정 중에 일어난 일이므로 무혐의 처분을 내리고 A사의 단독 계약은 위법이지만 A사가 잘못을 인정하고 있으므로 경고조치 한다고 처리했다. 이 같은 공정위의 결정에 대해 K씨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이유라도 설명해 달라며 공개질의를 요청했지만 공정위는 침묵으로 일관했다고 K씨는 설명했다. 100% 승리를 장담하던 공정위 관계자는 이미 미국으로 떠난 뒤였다.
법대로 해!
K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A사의 모 회사인 B사를 방문했다. B사에서 무릎 꿇고 5시간을 기다린 끝에 겨우 회장을 만난 K씨가 들은 것은 딱 한마디였다. "법대로 해!"
K씨는 A사를 상대로 서울지방법원에서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공정위가 주장하는 똑같은 논리를 법원에서도 듣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계약서를 작성하기 전까지 제품을 생산하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고 말하는데 다음날 배송을 강조하는 홈쇼핑에서는 일주일치 물량을 확보해 놓기 위해 전수검사까지 하고 나서 계약을 한다. 그런데 하루 전날 그 많은 물량을 어떻게 갑자기 만들어 낼 수 있느냐. 구두계약이 수시로 바뀌고 실제계약으로 이행되지 않는 부분을 꼬집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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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당할까 두려워 ‘쉬쉬’
K씨는 “자신처럼 구두계약상의 말만 믿다가 억울한 피해를 입은 사람이 많지만 보복당할까 두려워 쉬쉬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렇게 부도난 업체가 수두룩하다는 것. 더군다나 K씨는"녹취의 결정적 증거까지 있는 자신도 어려운 상황에서 증거가 없는 다른 피해업체들은 눈뜨고 당할 수밖에 없다"고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K씨는 “대기업이 아무리 중소기업의 피를 빨아먹는다 하더라도 숨 쉴 구멍은 나두어야 한다. 다른 홈쇼핑 MD들 조차 A사의 집요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며 "A사가 다른 홈쇼핑에 비해 영업이익이 10%나 높다는 것은 마진 폭리를 취하기 때문이다”고 A사의 횡포를 꼬집었다.
이 같은 대기업 홈쇼핑업체들의 횡포로부터 중소기업들을 구제하기 위해 중소기업 전용 TV홈쇼핑을 설립한다는 것에 대해 K씨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허가제를 폐지하고 규제를 풀어서 자유롭게 경쟁하도록 해야 이런 피해가 줄어들지 (중소기업 홈쇼핑) 한 개로는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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