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묻지 마 살인사건’ 인터넷 예고글 파장
국내 ‘우순경 살인사건’ ‘논현동 방화사건’ 줄줄이 이슈…근본대책 절실
최근 일본에서 일어난 ‘묻지 마 살인사건’의 파장이 우리나라까지 옮겨오면서 국내에서도 ‘묻지 마’ 식 살인 범죄가 다수 발생한 사실이 다시 이슈가 되고 있다. 묻지 마 살인은 아무 이유 없이 행해지는 살인행위를 말하는 데 일반 살인에 비해 범행 피해자와 가해자가 아무런 상관성이 없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또한 사회에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이 불특정 다수에게 그 불만을 표출하는 것으로, 어떤 사회에서 ‘묻지 마 살인’이 많이 일어난 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회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것으로 보여 진다.
이 같은 ‘묻지 마 살인’의 근본적인 원인이 단순한 개인 문제라기보다 치열한 경쟁, 빈부격차, 경쟁에서 낙오된 사람들의 박탈감 등 사회적 배경으로 추측되면서 정책이 완전히 바뀌지 않는 이상 계속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지난 6일 일본 커뮤니티 사이트 '2ch'에 올라온 충격적인 글이 파장의 시초가 되었다. “2월 11일 오후 21시 신주쿠역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질 것이다. 아키하바라 살인사건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다. 꼭 실행할 것이다”
일본 언론들은 이 무시무시한 살인 예고 글을 앞다투어 보도했고 네티즌은 큰 충격과 함께 불안감에 휩싸였다. 또한 범인이 언급한 ‘아키하바라 살인사건’이 다시 수면위로 부상하면서 ‘묻지 마 살인’의 어두운 그림자가 일본 열도를 드리웠다.
아키하바라 살인사건

트럭을 운전하고 있던 용의자는 차에서 내려 다친 보행자에게로 접근하고 있던 행인과 경찰관 14명을 소지하고 있던 등산 나이프로 연달아 찔렀다. 이 사건으로 7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당했다. 사건 당일은 일요일 오후시간 대로, 보행자 천국(차 없는 거리)를 시행하고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다니며 관광 및 쇼핑을 즐기고 있었다.
사건 직후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우왕좌왕하고 부상자들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등 사건 현장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이 사건은 무차별적으로 많은 희생자를 낳게 되어 일본 역대 최악의 참사라고 불려 질 만큼 일본 사회를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다. 현행범으로 체포된 용의자는 가토 도모히로로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였으며 얼마 전까지 생활고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범행을 저지르기 이전 무선인터넷 게시판에 약 1000회 정도 비정규직 관련 글이나 어려움을 토로하는 글을 올렸으며 점차 살인을 예고하는 글로 바뀌면서 2008년 6월 8일 5시 21분에 “아키하바라에서 사람을 죽이겠습니다. 차를 이용하고, 차로 안 되겠으면 나이프를 사용하겠습니다. 모두 안녕히 가세요”라고 예고 글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아키하바라 살인사건에 이어 이번 살인 예고글이 실제 범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 당국 경찰들이 경계태세를 취했으나 다행히도 사건은 단순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무차별 살인 예고글의 용의자는 요코하마시에 사는 중학교 3학년 남학생으로 밝혀졌으며 경찰조사에서 “혼자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어느 정도 소동이 벌어지는지 보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이 학생은 체포 당시 신주쿠발 오사카행 심야 버스 승차권을 소지하고 있었으며 자신이 예고한 무차별 살인 현장에서 소동을 확인한 뒤 버스에 탈 예정이었다고 밝혔다.
한편 사건의 결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우리나라 네티즌들 또한 “대형참사로 이어지지 않아 다행”이라는 의견을 보이며 국내에서 발생했던 ‘묻지 마 살인’에 대해 관심을 돌리고 있다.
최악의 총기사건으로 알려진 ‘우범곤 순경사건’을 시작으로 2008년 일어난 ‘고시원 방화 및 살인사건’과‘동해시청 묻지 마 살인사건’이 국내 ‘묻지 마 살인’ 사건의 대표적인 예다.
우범곤 순경 사건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단독 살인범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우범곤 순경. 그는 조용한 시골마을을 한순간에 쑥대밭으로 만들어 국민들을 경악케 만들었다.
지난 1982년 4월 26일 경남 의령군 궁유면 지서에 근무하던 우범곤 순경이 술에 만취해 예비군 무기고에서 카빈 소총 2정, 실탄 180발, 수류탄 7발을 들고 나와 주민들에게 무차별 난사한 사건이다.
우순경은 우체국에서 일하던 전화교환원부터 살해해 외부와 통신을 두절시킨 뒤 미친듯이 불이 켜진 집을 찾아다니며 총을 쏘고 수류탄을 터뜨렸다.
자정이 지나자 우순경은 총기 난사를 멈추고 평촌리 주민 서인수의 집에 들어가 일가족 5명을 깨운 뒤, 4월 27일 새벽 5시경 수류탄 2발을 터뜨려 자폭했다.
국내 최악의 총기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으로 주민 62명이 사망하는 참혹한 사태가 벌어졌으며 3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찰조사 결과 평소 술버릇이 나빴던 우순경이 내연의 처와 다툰 뒤 흥분상태에서 지역주민들이 자신을 험담한다고 여겨 우발적으로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논현동 고시원방화 및 살인사건
변변한 직업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던 아웃사이더가 자신이 살던 고시원에 불을 내고 사람들을 죽인 혐의로 사형이 선고됐다.
지난 2008년 서울 강남의 한 고시원에서 30대 무직자가 “세상이 날 무시한다”는 이유로 불을 지르고 화재연기를 피해 복도로 뛰어나온 피해자들을 미리 준비하고 있던 칼로 무차별적으로 찔러 6명이 죽고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망자 가운데 5명은 흉기에 찔려 죽었고 한명은 흉기에 찔린 뒤 창문으로 뛰어내리다가 추락사했다. 가해자는 정상진씨로 현장에 나타난 소방관에게 피해자 행세를 하며 고시원을 빠져나왔지만 그의 옷차림과 행동을 수상히 여긴 경찰에 의해 현장에서 체포됐다.
정씨는 “자살하고 싶었으며 흉기는 2005년 서울 동대문시장 등지에서 사서 가지고 있었다”고 밝혔다. 고시원 근처 영동시장에서 그를 지켜본 박모씨는 “정상진은 산만해서 근무 장소를 떠나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게다가 언행이 거칠어서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없었다. 말을 받아주면 앞뒤 맥락 없이 다방면의 이야기를 끝없이 늘어놓아 상대방을 지치게 만드는 스타일” 이라고 정씨에 대해 털어놓았다.
동해시청 묻지 마 살인사건
지난 2008년 7월 동해시청 민원실에 30대 남성이 들어와 아무 이유 없이 여성 공무원 2명을 흉기로 찌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충격적인 ‘묻지 마 살인’을 저지른 최씨는 흉기 2개를 신문지에 숨기고 민원실 데스크 안쪽으로 들어가 이모씨에게 먼저 흉기를 휘둘러 상해를 입힌 후 업무를 보던 남모씨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했다.
데스크 안쪽 부서에서 업무처리를 하던 남씨의 등 뒤로 흉기를 가져가 갑자기 찌른 것으로 확인 됐다. 최씨는 민원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여기 있는 사람이 공무원들이냐”라고 말한 뒤 급작스럽게 범행을 저질렀다.
출동한 경찰에 의해 현장에서 붙잡힌 최씨는 “세상이 살기 싫어 죽였다”고 밝혔으며 숨지게 한 남씨와는 어떠한 관계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경찰에게 “살기 힘들고 살기도 싫었다. 큰 건물이 시청이어서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해 아무나 살해하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또한 최씨는 2006년에도 부산의 한 전자제품 대리점에 아무 이유 없이 불을 지른 혐의가 있어 묻지 마 범죄의 전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묻지 마 살인’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국가나 사회, 가정에 불만을 품고 있고 그런 불만이 분출 되는 순간 그 화풀이를 감당할 ‘불특정 다수’라는 대상이 필요하다. 그 대상은 운 나쁘게 ‘그 시간에 그 장소에 있게 된 사람’이다.
범죄를 통해 자신의 억울함이나 분노를 사회에 표출하는 그 과정에 말이다. 묻지 마 범죄는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고 두렵다. 그렇다면 이러한 우발적 범죄는 왜 일어나는 것일까?
“이유 없이 누군가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슈퍼마켓에서 부엌칼을 구입했다” “피해자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없다. 아무 이유없이 죽이려 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묻지마 범행의 동기는 대개 막연한 증오심과 적개심이다.
특히 범죄를 일으키는 계층이 사회적으로 소외된 실업자나 노숙자, 정신질환자 등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분노 표출 방법은 상식을 뛰어넘는 극단을 달리기도 한다. ‘묻지 마 살인’은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겨나는 범죄의 한 양태라는 분석을 내놓는 전문가도 있다.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고 상대방에 대한 열등감이 깊어지다 보니 세상을 원망하고 이를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폭력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을까?
사회적유대와 정책마련이 근본적 해결책
앞에서도 언급했다 시피 ‘묻지 마 살인’의 가해자들은 대부분 불우한 어린 시절, 단절되거나 고립된 사회생활, 경제적 궁핍, 정신질환이나 범죄 전력, 사회의 무관심이 그들의 이력을 채우고 있다. 그들은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로부터 따뜻한 손길을 받지 못한 이들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신영철 홍보이사는 “평법해 보이는 사람들이 묻지 마 살인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에는 전반적으로 사회 등에 대한 불만을 분출할 마땅한 창구가 없다는 점이 크게 영향을 끼친다. 사회전반적인 변화가 있어야 예방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묻지 마 살인’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소외계층에 대한 정책적 배려와 따뜻한 관심, 제도적 보호 장치와 안전망 확대가 절실하다. 우리 사회가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묻지마 살인’은 땅속에 묻혀 있는 지뢰처럼 언제 터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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