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비정상이 정상인 시대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26-03-06 13:3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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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요즘 여의도 방향을 보면 온전한 헌정 체제에선 일어날 수 없는 이상한 게 많아서인지 '정상이 무엇이고 어떤 경우인가'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든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때 그 사람이 이상하다고 판단한다. 지금은 내가 당연하게 믿어온 보편적 생각과 행동도 환경과 경우에 따라선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시대로, 지나친 일방성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법사위원장의 방망이 하나로 교과서에서 배웠던 3심 제도가 4심제로 둔갑했다. 초라해진 건 무기력한 야당뿐만 아니라 내가 사는 대한민국이 한없이 왜소하게 느껴졌다. 국가 대들보가 뿌리째 흔들리는 상황을 두고 보며 나는, 민주당의 사법 개혁의 일체를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국가가 주는 돈과 권력을 휘두르며 법과 상식보다 자기 욕망을 앞세우는 여의도 셈법에서 힘없는 국민이 입는 혼란과 피해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심 가득한 여당의 밀어붙이기식 '사법 3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중 일부 법안에는 '부당한 목적'이나 '의도적'으로 법을 왜곡한 판ㆍ검사를 처벌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법관의 의도를 개인적으로 판단하기가 어렵다. 설사 의도적이나 부당한 목적으로 왜곡했다는 공격을 받더라도 판ㆍ검사가 사실이 아니라는 증명을 하기는 더 어렵다. 특히 정치적 사안이 걸린 것은 판단의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죄의 유무와 단죄가 모호함에는 어떤 기준이 필요한 것인가? 고전에서 그 기준을 찾고자 이 책 저 책을 뒤져 보다 문득 성경 중 재판관의 스토리를 역은 책이 생각나 꺼내 펼쳤다.

성경에 나오는 '엘로힘'은 하나님을 가르치는 단어이지만 동시에 재판관을 가르치기도 한다. 엘로힘이라는 단어가 하나님과 재판관을 모두 가리키는 것으로 쓰이는 것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재판은 원래 하나님께 속하는 일이지만 인간인 재판관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재판한다고 보았다.

"재판관을 하나님의 권위를 위임받은 자라 엘로힘이라는 호칭이 사용되었다. 따라서 인간인 재판관은 자신이 절대적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그 직책을 수행해야 하며, 불의한 재판관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시편 82편)이다. 재판은 이처럼 신성하고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나는, 종교의 관점의 재판관을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나친 일방성에 동의할 수 없는 세상을 말하고자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진리ㆍ정의ㆍ양심 같은 것들이 상대주의적 판단에만 치우쳐 재판의 본질을 놓칠까 염려스러워 글을 쓴다. 그 본질의 결과는 권력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 깨진 국가와 국민 삶의 혼란이라는 추상적 개념과 미래에 대한 예측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지나친 결정은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미치는 해악과 손실이 사회 전반에 은연중에 나타난다.

종교의 관점을 떠나 현대 국가의 법관은 국가로부터 재판의 일을 위임받은 자로서 사회 공동체의 양심을 대표하는 자이다. 설사 법관이 인간적인 면에서나 그가 행한 재판에 흠결이 있더라도 권위를 인정하여 그 판단은 일단 존중하고, 재판의 잘못은 3심 제도를 통해 바로잡고 최종심 판단에는 승복함으로써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현대 문명 사회 사법제도의 본뜻이다. 현재로서는 이보다 더 나은 제도는 없다. 이를 흔들려는 시도는 어느 것이나 잘못이다.

법관이 법정에서 입는 법복은 재판의 성격과 재판관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이때 법관은 자연인 개인으로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법질서를 대표하여 재판하는 것이다. 법관이 입은 법복은 재판관의 신상이나 취향 등 개인적 요소를 가린 재판의 공적 성격을 명백히 밝히기 위한 장치이다. 또한, 재판관에게 설사 흠결이 있더라도 법복으로 가려주어 흠이 없는 존재로 간주해 주자는 사회적 약속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재판이나 법관에 대하여 과도하게 불신을 드러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사건 담당 법관이 누구인가를 알아보고, 그 사람의 성향ㆍ출신지를 따져 재판 결과를 예단하고, 판결이 나오면 불합리한 근거들을 들어 평가한다. 심지어 그러한 일을 정치권이 주도하기도 한다. 자신들의 이해에 조준해 재판과 법관을 유도ㆍ조정하기 위한 방책으로 보인다. 문명사회에서 참으로 걱정스럽고 잘못된 일이다.

여당 대표는 노골적으로 자신에 입맛에 맞지 않는 재판관 탄핵을 입에 달고 있다. 이러한 사태에 이른 것에는 사법이 갖는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된 것도 적지 않다. 법원이나 법관에게 책임이 없는지 생각해 볼 필요도 있지만, 사회가, 정치가 과도하게 분화ㆍ대립 된 결과가 검찰 법원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탓이다. 이런 때일수록 검찰과 법관은 흔들리지 않고 제 갈 길을 가야 한다. 그 길은 법관이 혼자 보고 혼자 느끼는 주관적 양심의 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고 함께 느끼는 객관적 양심이어야 한다.

헌법은 법관에게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할 것을 요구하며 법관 개개인에게 헌법의 지위를 부여했다. 이 경우 양심은 바로 개인의 소신이 아니라 공동선을 추구하는 사회 공동체의 객관적ㆍ이성적 합의를 의미한다. 법관이 따라야 할 '양심'을 뜻하는 'conscience'라는 말이' 함께'라는 뜻의 'con'과 '본다.' '지식'이라는 뜻의 scientia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임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예컨대 진보 성향이나 보수 성향이냐에 따라 재판 결과가 달라진다면 재판 결과에 대한 사회적 불신은 커져 사회는 불안정해질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하여 법관 개개인은 내가 진정으로 주관적 감정을 배제하고 사회 공동체를 대표하는 위치에서 재판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죄의 유무에 담당 법관보다 사건 내용을 잘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내 입맛에 따라, 정치적 유불리에 재판관을 과도하게 비판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마땅히 삼가해야 한다.

사법제도의 변경은 국민의 삶과 바로 직결되어 있다. 사실상 4심제가 된 상황에 국민은 소송 지옥에 빠질 수 있다. 법 왜곡이라는 모호함 때문에 판ㆍ검사가 정치권에 눈치를 보게 된다면 그 피해 또한 국민의 몫이다.

사항이 이러할 진데도 불구하고 저잣거리에는 이분적 사항을 두고 지지하는 진보 언론과 유튜버, 이를 비난하는 보수 언론과 유튜버들의 목소리가 맞서고 있다. 어떤 게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참으로 요지경 세상이다.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ch258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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