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천우의 역사소설 - 女帝 정희왕후⑨

황천우 작가 / 기사승인 : 2013-07-10 16:3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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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순간에는 여자가 움직여야한다. 그러나 그 위기의 순간이 지나면 본분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자신의 아내 정희의 어머니 봉양에 대해서는 이미 수양뿐만이 아니고 아버지인 세종임금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임종도 자신의 며느리 곁에서 하셨다. 수양의 가슴이 아려왔다. 정희의 가슴으로 서방님의 애절함이 전해졌다. 그를 감지했는지 수양이 얼굴을 들어 천장으로 시선을 보냈다.

“불쌍한 어머니......”

수양의 소매를 만지작거렸다.

“대군, 제가 어머니 묘소를 찾아 영혼을 달래드리고 와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어머니는 물론 제 마음도 편해질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순간적으로 소헌왕후에게서 답을 찾아야하겠다는 생각이 일어났다. 시어머니를 찾아뵈면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낼 것이고 자신의 병, 아니 근심이 사라질 듯했다.

수양에게 더 이상의 이야기가 필요 없었다. 여인네가 제사를 지내지 못하는 법도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정희를 으스러지게 껴안은 수양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서 정희가 이야기한 바를 지시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정희는 하얀 옷으로 차려입고 아들 장과 함께 수양대군의 배웅을 받으며 길 떠날 차비를 하고 있었다. 수양대군이 자신의 부인만 달랑 보내기는 그랬던 모양이었다. 물론 정희의 행차에 대해서 시비가 일어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비록 정희를 끔찍이도 아끼시는 아버지 세종임금이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아들 장을 동반하도록 했다. 아들 장이 곁에 있어주면 정희가 그곳에 간다한들 어느 누구도 시비를 걸지 못하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수양이 길을 떠나보내며 자신이 함께 가지 못함을 아쉬워했고 아들 장에게 그리고 정희를 보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한 치의 오차 없이 보필하라는 추상같은 명령을 내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자 정희는 순간적으로 왕의 위엄을 느낀 모양이었다. 흡족한 모습으로 그런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고는 순임의 보필을 받아 가마에 올랐다.

가마의 차양을 치우고 수양대군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손을 흔들고 있는 수양대군의 모습이 급하게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행렬의 지휘를 맡은 청지기 임운이 서둘렀다. 당일로 소헌 왕후께서 묻혀 계신 헌릉을 다녀오자면 서둘러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리도 급히 앞으로 나서고 있었고 그에 수양대군의 모습이 멀어졌다.

헌릉을 가자면 남대문으로 빠져나가 삼전도 나루터로 가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야했다. 그리로 방향을 잡고 진행되던 행렬이 어느 순간 멈추어 섰다. 잠시 후 순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부인 마님, 도원군 마님께서 교자에서 내리셨습니다.”

가만히 창틈을 통해서 밖을 바라보았다. 창 틈 사이로 저만치에 숭례문(남대문)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기를 잠시 후 아들 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소자 어머니 곁에서 걸어가겠습니다.”

교자에 타고 길을 가던 아들 장이 교자에서 내려 어머니 곁에서 걸어가기 위해 행렬이 일시 멈추었다. 순임이 얼른 가마의 차양을 치켜 올렸다. 순간 가마 옆에 늠름하게 서있는 장의 모습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 모습을 바라보자 수양대군이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착각에 빠져 들었다. 제 아버지를 그대로 빼어 닮은, 마치 서방님의 어린 시절을 보는 듯했다. 그래서 수양대군이 아들 장을 대동하라고 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일어났다.

“힘들지 않겠니?”

장이 팔을 들어 알통을 보이는 시늉을 했다.

“사나이 대장부가 힘든 일이 뭐가 있겠어요!”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었다. 당당하게 서 있는 장의 모습위로 유약한 왕세자의 모습이 겹쳐 그려졌다.

‘그래, 바로 이런 기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왕이 되어야 나라가 바로 서지.’

아들 장의 늠름한 모습을 바라보자 벌써 몸이 나아가는 듯했고 그를 즐기기라도 하듯 차양을 치우고 장의 곁에서 길을 가기 시작했다.

해가 중천에 위치할 무렵 헌릉이 있는 대모산에 도착했다. 근처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는 내쳐 능으로 향했다. 시조부인 태종임금님과 원경왕후를 모시고 있는 헌릉의 위용이 한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돌리자 한쪽에 조그마하게 가묘를 쓴 봉분이 시야에 들어왔다. 시조부모를 제치고 곧바로 시어머니께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그에 대한 준비 역시 해왔던 터라 먼저 시조부모의 묘에 제상을 차렸다. 장으로 하여금 예를 올리도록 하고 그 옆에 좌정했다.

묘의 주인이신 태종임금님과 원경왕후를 생각했다. 두 분에 대해서 시어머니인 소헌왕후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아울러 원경왕후의 전례를 반드시 모범으로 삼을 것을 강조한 바 있었다.

소헌왕후로부터 전해들은 원경왕후의 일은 마치 한 여인이 아닌 사나이 대장부의 활약상을 보는 듯했다. 태종임금의 주도로 왕자의 난이 발생하자 위기 때마다 원경왕후가 기지를 발휘했고 그 난을 성공으로 이끄는데 있어 커다란 공을 세웠다고 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거사가 일어나기 10여일 전에 왕자들이 지니고 있는 군사를 해체하고 영중의 무기를 모두 불 태울 때 손수 무기를 숨겨두었으며 또한 그 무기를 거사 당일 자신의 남편인 태종임금의 수하들에게 직접 나누어주고 거사를 독려했고, 그에 성공했다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원경왕후의 경우 말년이 좋지 않았다. 난이 성공하고 왕비에 오르자 그를 빌미로 자신의 지분을 찾고자 했고 그 과정에 자신의 형제들이 참여하면서 태종임금의 진노를 사게 되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고 했다.

원경왕후의 말년을 비참하게 만드신 시할아버지, 태종임금을 그려보았다. 들은 바에 의하면 자신의 서방님, 수양대군과 흡사하다고 했다. 순간 그 부분에서 생각이 정지되었다.

태종임금께서 후임 왕으로 세종임금을 세우셨다. 그러면 세종임금께서는 과연 누구를 후임 왕으로 세워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태종임금의 경우 너무나 강했다. 반면에 세종임금의 경우는 유했다. 그렇다면 세종임금의 뒤를 이어야할 사람은...... 생각이 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태종임금의 묘를 바라보며 지금의 조선을 생각해보았다. 태조대왕께서 조선을 창건하신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아울러 아직 조선이라는 나라가 완성되기에는 빠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다음에 조선의 임금은.

점괘를 그리고 현실을 헤아려보기 시작했다. 찬찬히 생각을 가다듬어 보니 점괘에 의지할 필요도 없었다. 다음의 임금, 조선을 확고한 기반위에 세울 수 있는 사람은 유약한 왕세자가 아니라 바로 서방님 수양대군이었다.

태종임금과 원경왕후를 생각하기를 잠시 모든 제례를 마치자 아들 장이 다가왔다.

“어머니, 자리를 옮기시지요.”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을 찾은 목적을 위해 천천히 발걸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묘로 설치한 소헌왕후의 봉분 앞에 도착하자 저절로 다리가 꺾였다. 순간 아들 장이 그리고 순임이 곁으로 다가와 부축했다. 잠시 둘에 의탁하다가는 이내 그들을 물리쳤다. 그리고는 자세를 바로하고 무덤 가까이로 다가섰다.

아들 장이 제를 올리기 시작했고 그 곁에서 자신을 끔찍이도 아껴주던 시어머니의 봉분, 시어머니와 대화를 시작했다.

시어머니, 한없이 인자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지만 얼굴 한편에 쓸쓸한 느낌을 주었던 한 여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한순간 시어머니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위기의 순간에는 여자가 움직여야한다. 그러나 그 위기의 순간이 지나면 본분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고개가 절로 돌려졌다. 바로 원경왕후의 묘가 시야에 들어왔다.

‘아, 바로 이것이었구나. 시어머니께서 태종임금님과 원경왕후에게서 배우라고 나를 이리로
부르셨구나.’

정희 자신에게 길을 알려주고 또 그 후의 일에 대한 교훈을 주기 위해 그리로 향하도록 했다는 생각이었다. 시어머니께서 자신과 원경왕후를 연결지어주고 또 그에 교훈을 주고 있었다.

가만히 시할머니 원경왕후, 시어머니 소헌왕후 그리고 자신을 연결 지어 보았다. 세 명의 여인이 다른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순간 시어머니께 제를 올리고 있는 아들 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설계

정희는 밝은 모습으로 일상으로 돌아갔다. 시어머니와 시할머니 원경왕후를 만나고는 서방님 수양대군이 임금이 되어야하고 또 자신이 서방님을 왕으로 만들어야함은 일종의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그 부분을 각인시켜 주기 위해 시어머니께서 자신을 부르셨다. 그 일의 당위성 그리고 일을 이루는 데에 있어서 자신의 역할, 그 후의 일처리에 관한 게시를 주시고자 함이었다.

또한 두 분 왕후께서 조선의 지난날을 교훈으로 들어 그리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이야기해주셨다. 태조대왕의 다섯째 아들이었던 태종임금의 등극 과정 그리고 시아버지 세종께서 임금이 되는 과정을 가만히 관찰해 볼 때 수양의 왕위 등극도 정해진 운명이라고 말이다.

이제는 그를 위해 차분히 계획을 세워야했다. 또한 자신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모르도록 조심스럽게 일을 진행시켜야 했다. 그런 차원에서 가만히 왕족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세종임금의 형제분들을 살펴보았다.

태종임금의 장자인 양녕대군을 떠올렸다. 딱히 종실의 가장 어른이라는 생각에서라기보다도 수양대군을 극진히 생각한다는 면에서 그 분이 떠올랐다.

단순히 백부와 조카라는 차원을 넘어서 사나이 대 사나이로서 서로 배짱이 맞는 분이었다. 특히 수양대군을 가리켜 당신의 아버지인 태종임금을 가장 닮은 조카라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고는 했었다.

일찌감치 왕세자로 책봉이 되었으나 워낙에 호탕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의 대군께서는 아버지인 태종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임금이라는 극히 제한적인 자리로는 그의 성격을 감당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왕위를 자신의 동생인 충녕대군, 세종에게 넘겨주고 자신의 세계를 추구하고 계셨다.

현 왕인 세종임금도 어쩌지 못하는 그 분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미 그 분의 경우는 왕이란 자리를 뛰어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그 분이라면 조선의 운명을 위한 일의 수순을 알 것만 같았다. 가만히 미소를 머금고 호탕한 얼굴을 그려보았다.

다음은 효령대군을 떠올렸다.
그 분의 경우 자주 뵙지 못했다. 일찌감치 자신의 처지를 인지하고 궁과는 담을 쌓고 지내신 분이었다. 형인 양녕대군이 폐위되자 자신이 세자 자리를 넘겨받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세자 자리가 자신이 아닌 동생에게 넘어가자 그에 불자의 길을 선택하셨다.

자신의 형인 양녕대군의 성격과는 반대의 성격을 소유하고 있는 분이었다. 예의와 법도를 중시 여기는 사람으로서 불자가 되어 오로지 불교에 심취해서 산사를 찾아다니며 불교 복원에 정성을 쏟고 있었던 관계로 그분의 모습을 뵙기가 쉽지 않았다.

사실 조선왕조는 유교를 숭상하는 국가로 불교를 법으로 금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종임금의 형제간의 우애로 효령대군의 일련의 이단 행위는 불문에 부쳐지고 있었다.

다음으로 떠오른 사람은 시동생 안평대군이었다.
안평대군의 경우 한편으로 보면 수양대군과 비슷한 듯했으나 관심분야가 많이 달랐다. 정치 쪽보다는 서와 예술 쪽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가끔 서방님과 충돌을 일으키고는 했다. 그 생각에 이르자 가벼이 고개를 저었다.

그동안 자신이 보아온 수양대군과 가까운, 더불어 세종임금과 가까운 왕족들을 살펴보고는 다시 눈길을 돌려 보았다. 그것은 내부의 문제였다. 일이 성사된다고 한다면 내부의 문제는 승인, 추인의 문제였다.

왕족들의 면면을 점검하던 중에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과연 커다란 일을 성사시키고자 한다면, 그것도 당장에 문제가 아니고 몇 년 후가 될지 모르는 일을 이루고자 한다면 그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겠는가 하는 문제였다.

수양대군에게 직접 힘을 실어줄 사람들이 필요했다. 바로 곁에서 유사시에 수양대군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데에 결론이 이르렀다. 그러나 많은 사람의 경우는 곤란했다. 사람이 많은 경우 그만큼 탄로 날 소지가 많다는 생각이었다.

남이 알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일을 진행시켜야 하는 마당에 숫자가 많은 경우는 그다지 득이 될 수 없었다. 소수의 유능한 인재의 포섭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결론은 돈이었다. 인재를 가동할 수 있는 돈이 문제였다. 물론 일이 성사되고 그 과정에 합당한 자리를 쥐어주어도 될 일이었다. 그러나 그 일은 차후의 문제였다. 먼저 유능한 인재를 끌어들일 유인책이 필요한데 바로 돈이었다.

돈 문제에 봉착하자 아버지가 떠올랐다. 또 전 왕조인 고려시대부터 이 나라의 명운과 함께했던 유서 깊은 가문, 파평 윤 씨 가문을 생각했다. 아버지의 도움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는 고개를 저었다.

정희의 경우 여하한 일이 있어도 친정을 끌어들이지 않으리라 작정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러나 한편 그것이 운명이라면 어찌 할 것인가. 당연히 함께 길을 같이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닌가.

그 문제로 머리를 앓고 있을 즈음에 갑자기 원경왕후의 일이 떠올랐다. 태종께서 왜 그리도 잔인할 정도로 왕비의 친정에 대해 일처리를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 부분을 찬찬히 검토해보기 시작했다.

원경왕후께서 태종임금의 왕위 등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데 그 이후에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당신의 일에 대한 확고한 지분을 요구하고 나섰다. 바로 자신의 친정 가문과 관련해서였다.

그를 감지한 태종임금이 원경왕후의 친정 세력의 힘이 강화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여러 후궁을 들이기로 작정하셨다. 그러자 원경왕후께서 투기를 하기 시작했고 그를 빌미로 결국 원경왕후의 형제들을 몰살시켰다.

또한 태종임금은 엄연히 세종임금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소헌왕후의 아버지를 역모로 몰아 죽음을 내리셨다. 내면적인 사유는 왕비의 친정이 정권 핵심부에 들어오는 일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이야기로 당신의 부인에게 받은 경험을 자신의 자식에게 그대로 적용시켰다.

그 부분을 유의하면, 오로지 수양대군에 초점을 맞추어 일을 진행하면 아무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을 터였다. 그런 차원에서 일을 진행한다고 하면 친정에 아무런 해가 가지 않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어머니가 보고 싶어졌다. 친정을 향해서 길을 나섰다. 같은 한양 땅에 살면서도 그저 얼굴 보면 헤어지기 바빴던 자신을 생각하며 쓴 웃음을 흘렸다. 그러다가 아들 장을 생각했다.

어머니께서 그리도 보고 싶어 하는 장을 데리고 함께 갈까하는 생각이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순임에게 장을 데려오라고 해서 함께 길을 나섰다.

친정으로 들어선 정희의 얼굴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표정이 반가워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마치 그곳에 온 정확한, 불손한 사유를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러다가 손자 장의 얼굴을 보고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어이구, 우리 늠름한 장이를 보았나. 할머니는 자나 깨나 장이 생각인데 우리 장이는 할머니가 싫은 모양이지.”

장이를 껴안으면서 정희의 무심함을 탓하고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자주 어머니를 뵈어야겠어요.”
“일 없네. 나는 장이만 보면 그만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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