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군, 달리 하실 말씀이 있으시지요.”
“별일은 아니고......”
한편 생각하면 싱거웠다. 별일이 아닌데 수양대군이 그런 경우는 드물었다.
반드시 뭔가 이유가 있다 싶으면 표정을 바꾸고는 했던 일을 훤히 알고 있었다. 순간 그런 서방님을 놀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일어났다.
“별 일 아닌 일을 쇤네에게 들려주시겠습니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치 신하처럼 자세를 바로 하고 입을 열자 수양이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면 그 사연을 한 번 말해 볼까나.”
“그래주시지요.”
수양의 얼굴 전체에 포만감이 가득했다.
“우리 아들 장이 말이요. 이제는 배필을 찾아주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오.”
“아니 되옵니다. 어떻게 낳은 아들인데 벌써 배필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조금 더 저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그런 연후에 혼인시킬 일입니다.”
능청을 떨며 이야기하는 정희의 모습에 수양의 손이 저절로 정희의 볼로 향했다.
“그럴까요. 그러면 우리 장이를 아예 혼인을 올리지 못하게 하고 우리와 함께 살도록 할까요.”
그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가만히 미소를 건네고 있었다.
“부인, 혹시......”
이미 자신의 부인, 정희의 표정으로 보아 뭔가 일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감을 잡은 모양이었다.
“혹시 부인이 진행시키고 있는 일이 있는 거 아니요?”
대답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그래, 부인은 지금 누구를 생각하고 있소?”
“혹시 한확 대감에게 과년한 여식이 있다는 이야기 들어보지 못하셨습니까?”
“한확 대감!”
“그래요, 명나라에 해박한 외교통 말이에요.”
“한확 대감이라......외교통이라......”
수양이 정희의 깊은 뜻을, 수양대군을 위한 방편에서 일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모르는 듯했다. 한편 야속한 측면도 없지 않았으나 결코 그를 내색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대군께서는 한확 대감과 사이가 좋지 않으십니까?”
“그게 무슨 소리요. 그렇게 인품이 훌륭한 양반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다는 말이오.”
답을 하지 않고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는 수양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부인은 지금 한확 대감에게 과년한 여식이 있고 우리 장이와 그 여식과 혼인을 시키자고 하는 말이오?”
“바로 그러하옵니다, 대군.”
한확.
이조판서와 평안도 관찰사를 거치면서 병마절도사까지 겸하고 있는 인물로 누나와 누이동생이 명 왕조의 후궁으로 책봉되어 성조와 선종의 총애를 입고 있는 그야말로 명나라, 국제통
이었다.
그런 연유로 명나라와 관련한 모든 일에는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일이 없고 또한 그의 손이 가야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거기에 더하여 사람의 인품이나 학식, 도량이 넓어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그런 집안에서 우리 장이에게 여식을 준다고 합디까?”
“왜요, 대군. 우리 장이 무엇이 부족하다는 말씀입니까?”
“장이 부족하다는 말이 아니고 명 왕조와 절친한 사람이 그의 여식을 다시 명 왕조와 연계하지 않겠느냐 이 말이오.”
저간의 사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장의 배필을 찾던 중에 친정아버지와 가까운 사이를 유지하고 있는 한확 대감에게 총명하고 과년한 여식이 있어 어머니를 모시고 그 집을 다녀왔고 그 집에서도 장이라면 그만이라 쾌히 승낙했다.
아울러 그 집의 여식, 인수의 됨됨이 특히 얼마 전에 고인이 되신 그녀의 어머니 되는 남양 홍 씨 부인과 그 며느리 조 씨 부인에 대해서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수양대군이 흡족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정희를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이기에 부인이 그 정도요?”
“믿기지 않는가요?”
“믿기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그런 귀한 규수가 있다는 자체가 신기하지 않아요. 집안도 그러려니 말이오.”
그를 말하는 수양대군의 얼굴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한확 대감 그리고 그의 총명한 여식에 대해서 마음이 들뜬 모양이었다. 그런 수양의 얼굴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뭐가 잘못되었소?”
“내친 김에 우리 의숙이의 혼처도 가닥을 잡았으면 해서요.”
“의숙이도? 암, 그리해야지요. 물론 그 부분도 부인이 생각해둔 바가 있겠구요.”
“그 부분은 대군께서 나서 주셔야 할 듯하옵니다.”
“어느 집 자제입니까?”
“정인지 대감댁 자제가 우리 의숙이와 연배라고 하던데요.”
“정인지 대감이라......”
입을 다물고 가만히 수양의 얼굴을 주시했다. 정희의 모습을 바라보며 수양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부인이오, 부인.”
수양이 정희의 제안이 너무나 흡족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정희는 반갑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습니까?”
“대군, 정말 몰라서 그러시나요?”
수양대군이 애처롭게 자신을 바라보는 정희에게 천천히 다가앉았다. 그리고는 우악스럽게 품에 안았다.
“내가 왜 모르겠소......”
수양의 품안에 갇히자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수양이 정희의 마음, 어렵사리 낳은 아들 그리고 딸아이를 이제는 혼인을 시켜 남의 손에 주어야한다는 그 쓰린 마음을 알아챈 듯했다.
자신이야 밖으로 나돌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박 씨 부인도 있고 아들을 혼인시킨다고 해서 남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여자인 정희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부인, 그리도 마음이 상하오?”
“대군, 이것이 어미의 마음인 모양이지요.”
눈물 섞인 정희의 말을 듣자 수양의 마음이 아려오고 있었다. 아울러 그 고통에서 해방시켜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힘주어 정희를 껴안았다.
붕어
아침에 집을 나서는 수양대군의 표정이 어두워보였다. 며칠을 막내아우, 영응대군의 사저인 동별궁에서 기숙하다 옷을 갈아입을 겸해서 잠시 집에 들렀다 막 집을 나서는 길이었다.
“대군, 상왕 전하의 증세가 어떠세요?”
“아무래도 오늘을 넘기시기 힘들어 보이니 부인도 장이 내외와 함께 오도록 하는 것이 좋겠소.”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가는 길에 박 씨 부인도 함께 가도록 하겠어요.”
“그리 해주세요.”
수양대군의 모습이 많이 지쳐보였다. 벌써 여러 날을 자리에 누워계신 상왕의 곁을 지키고 있었으니 잠이나 제대로 잤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 수양의 모습을 안타까이 바라보았고 곁에서 아들 장과 장의 부인인 인수가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둘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수양대군을 배웅하고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당에서 아들 내외를 바라보았다. 가례를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큰일을 겪어야하는 며느리에게 다가섰다. 인수의 얼굴이 담담해보였다.
“가례를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아 큰일을 겪어야겠구나.”
“어머니, 저희보다도 아버님께서 더 안쓰러워 보입니다.”
잔잔한 미소를 머금으며 인수의 손을 잡았다.
“그래, 우리 마음 편히 먹자꾸나. 어차피 치러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도록 하자꾸나.”
“어머니, 그리 하시지요.”
곁에서 아들 장이 거들고 나섰다.
“너희들도 나설 채비를 하도록 하거라.”
막내 시동생인 영응대군의 동별궁을 향하는 마음이 가볍지 않았다. 시어머니 소헌왕후께서는 당신의 말년을 자신의 집에서 함께 하셨었다. 세종임금께서도 당연히 자신의 집에서 말년은 아니더라도 임종을 맞이하셔야 하건만 막내아들인 영응대군을 택하셨다.
모종의 의도가 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울러 세종임금께서 서방님의 향후 행보는 아니더라도 그 행보에 대한 경계의 차원에서 그리 행동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일어났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동별궁에 도착하자 이미 기별을 받은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소헌왕후의 일을 경험했던 터라 모여든 여자들, 자신의 손아래 동서들에게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일러주고 그들이 일을 하는 모양을 보기 위해 곳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마치 바늘 가는 곳에 실 가듯 며느리 인수가 시어머니를 쫒으면서 일일이 일을 챙기고 있었다.
“어머니, 그런데 이상해요.”
“뭐가 말이야!”
워낙에 영특한 아이라 눈치를 주면서 말을 받았다. 그를 감지했는지 인수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전에 소헌왕후께서는 명례궁에서 임종을 맞이했다고 들었는데 상왕께서는 왜 동별궁을 선택하셨어요?”
우려했던 일이 총명한 며느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우리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자. 눈들이 너무 많구나.”
인수가 눈을 반짝였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바를 이미 시어머니께서 여러 가지 각도로 생각을 하고 있음을 감지한 모양이었다.
집안을 돌면서 일에 대해 이거저거 챙기고 있는 중에 한 상궁이 기별을 가지고 왔다. 세종임금께서 당신의 며느리 정희를 찾으신다는 전갈이었다.
순간 두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첫째는 세종임금께서 운명을 달리하실 시간이 다가왔고 다른 하나는 지금 정희 자신이 품었던 모든 일들에 대해 언급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인수를 대동하고 세종임금이 누워계신 곳으로 이동했다. 이상하리만치 담담했다. 마치 세종임금이 자신을 부른 사유를 알고 있고 그에 대해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전하고자하는 다짐이 마음에 자리하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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