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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빈.
선왕인 세종임금의 후궁으로 현덕왕후가 단종을 낳고 바로 죽자 친어미처럼 어린 홍위를 키운 여인이다.
그 여인이 병약한 문종임금 그리고 뒤를 이어 보위에 오를 홍위를 위해서 김종서 대감과 손을 잡고 일을 진행시키고 있었던 터였다.
궁궐에 도착해서 곧바로 혜빈의 처소로 향했다. 혜빈의 처소에 가까이 이르자 김 상궁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대부인 마님, 어서 오십시오.”
“혜빈마마는?”
“대부인 마님, 잘 오셨습니다. 지금 혜빈마마께서 홀로 계시니 바로 드시지요.”
“그래요, 어서 앞장서세요.”
혜빈의 처소에 들어서자 정희와 인수가 기별도 없이 찾아온 사유를 명확하게 알고 있다는 듯이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둘을 맞이했다. 혜빈의 표정을 살피다가 그에 상관하지 않고 인수를 바라보았다.
“며늘아이야, 혜빈마마시다. 정중하게 인사 올리도록 하거라.”
인수의 손에 있는 함을 받아들었다. 순간 혜빈의 시선이 정희의 손으로 향했다.
“할마마마, 소저 인수 인사드리옵니다.”
‘할마마마.’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인수의 모습을 바라보고는 시선을 혜빈에게 주었다. 혜빈의 얼굴위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우리 손자며느리의 인사를 받아 볼까나.”
혜빈의 표정으로 보아 결코 싫지 않은 듯했다. 정희가 인수의 기지에 조용히 찬사를 보내며 자리를 잡았다.
“인수라고 하였느냐?”
“그러하옵니다, 할마마마.”
혜빈이 인수에게 다가가서 손을 잡았다.
“이 할미가 무심하여 혼인식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이제야 보는구나. 이 무심한 할미를 용서해다오.”
“아니옵니다, 할마마마. 궁궐의 안살림과 세자저하를 보위하는 할마마마께서 어찌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실 수 있겠습니까?”
혜빈의 표정으로 보아 상당히 흡족한 모양이었다. 그 순간 손에 들려 있는 함을 혜빈의 앞으로 내어놓았다.
“마마, 저희 며느리가 혼인식 때 마마를 위해서 가져온 조그마한 선물입니다. 진즉에 찾아뵙고 전해드려야 하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오늘 내친 김에 들려 왔습니다. 그러니 며늘아이의 성의를 보아서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할마마마, 너무 부끄럽사옵니다.”
그 시어머니에 그 며느리였다.
“오히려 이 할미가 부끄럽구나.”
말을 마친 혜빈이 천천히 비단 보자기를 끄르고 함을 열었다. 순간 혜빈의 입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입만이 아니라 눈동자도 벌어지고 있었다.
“아니!”
“마마, 너무 부끄럽사옵니다.”
“그것이 무슨 소리요. 내 평생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옥은 처음 보는구료.”
“할마마마, 마음에 드시옵니까?”
“마음에 들다마다. 이 귀한 것을......”
“마마, 너무나 곱사옵니다.”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상궁이 그를 엿보고는 한마디 거들었다. 혜빈의 입이 마치 찢어지는 듯했다.
“너무나 곱네. 너무 고와...... 내 평생 이런 것을 만져볼 줄이야. 참, 지금 무엇 하는 것인가. 어서 며느리와 손자며느리를 위해서 상을 봐와야 할 일이 아닌가!”
혜빈이 너무나 감격해서인지 목소리가 올라가고 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있었다. 상궁이 급히 상을 보기 위해 자리에서 물러나자 정희가 혜빈에게 다가앉았다.
“마마!”
정희의 눈가가 눈물로 글썽이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부인.”
“마마, 마마와 저희가 어떤 사이입니까?”
“그것이 무슨 말씀이신가요. 우리야 당연히 한 가족이지요.”
“그런데, 마마. 지금 저희를 해하려는 못된 무리들이 있습니다.”
“어느 누가 종친을 해하려고 한다는 말입니까!”
“제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마마.”
혜빈이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그리고는 표정을 편안하게 바꾸었다.
“내가 그러지 않아도 이상한 소문을 들었는데 그것이 사실이었던 모양이군요. 내 이것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줄 것입니다!”
“할마마마, 너무 무섭습니다.”
그 말에 혜빈이 다시 인수의 손을 잡았다.
“이제는 조금도 걱정하지 말거라. 이 할미가 그동안 궁궐일로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이제는 어림도 없을 일이야!”
정희가 속으로 가만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운명을 다지다
문종임금의 생명은 생각대로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기간이 짧은 뿐만 아니었고 보위에 있는 동안 내내 병상 신세를 지고 지냈다. 한편 생각하면 문종임금의 경우 너무나 기구한 삶을 보냈다.
희빈 김씨의 일도 불미스럽게 끝을 맺었고 특히 그 후임으로 들어온 순빈 봉씨와는 비극을 뛰어넘어 어처구니없는 일로 마무리되었다.
문종임금이 자신을 찾아주지 않자 임신했다고 거짓말을 하지 않나 날이면 날마다 술을 마시고 하인들을 두들겨 패고 남자 화장실을 훔쳐보는 등 기행을 보이더니 급기야 여자 하인과 동성애를 하고 마침내 발각되어 궁궐에서 쫓겨났으니 실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순빈 봉씨를 이은 현덕왕후가 아들 홍위를 얻고는 바로 사망했으니 그야말로 비극적인 삶이 아니라 할 수 없었다. 그를 바라보는 마음이 너무나 착잡했다.
결국 문종의 생명을 그리도 단축시킨 요인에는 그가 자신과는 연이 없는 임금이라는 어려운 직책을 수행한 데서 비롯되었음은 부인하기 힘든 일이었다.
좀 더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었음에도 자신과는 거리가 먼 임금이라는 직책을 수행하면서 생의 과정은 물론 기간마저 실기했다.
문종임금이 죽자 그의 아들 홍위가 열두 살의 어린 나이에 왕에 등극했다. 열두 살의 어린 왕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주위에 방패막이로서 그를 돌보아줄 어느 누구도 없었다.
바로 붕괴를 의미했다. 누군가가 어린 왕을 제멋대로 가지고 놀 것은 빤한 이치였다.
이미 소헌왕후께서 그리고 세종임금이 걱정하시던 일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이제는 그동안 나름대로 진행했던 일에 대해 수양대군에게 이야기해야 할 시점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저녁이 되어 수양대군이 퇴궐할 무렵 하얀 옷으로 갈아입고 몸단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인수가 시어머니의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한 듯 정희의 치장을 정성스럽게 도와주고 있었다.
“어머님, 이제는 때가 온 것이죠.”
“그래서 오늘 네 시아버지께 말씀드리려 한다.”
말을 하는 정희나 그 말을 듣고 있는 인수나 별개의 개체가 아닌 바로 동일 개체, 한 몸인 듯했다.
며느리 인수의 도움으로 치장을 마친 정희가 몸을 가지런히 하고 시어머니께서 그리고 세종임금께서 묻혀 계신 동쪽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세종임금의 아버지인 태종임금을 생각했다. 태종임금은 태조대왕의 다섯째 아들로서 조선 건국에 혁혁한 공을 세운 자신을 내치고 어린 이복동생을 세자로 봉한 데 대해 인정 할 수 없었다. 그 처사에 강력 반발하며 난을 일으켜 상대를 모두 죽이고 조선을 확고한 반석 위에 세우고자 했다.
그는 자신의 임기 동안 무엇이 조선의 문제인지 잘 알고 있었다. 왕권의 강화였다. 그 일을 위해서 당신의 아내 또 며느리의 처가의 경우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아니 본보기를 삼고자 더 가혹하게 대했는지도 모른다.
태종의 재임 중에 그리고 태종임금이 상왕으로 물러나고도 그 일은 계속 되었고 뒤를 이은 세종임금이 무한한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발판을 확고하게 마련해주었다. 그 토양 위에서 세종임금은 성군으로서 우뚝 설 수 있었다.
그러나 세종임금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서서히 힘의 균형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신하들의 힘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그 힘의 공백이 그를 이은 나약한 문종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게 되고 또 나이 어린 왕이 등극하면서 그 결과는 불을 보듯이 뻔한 지경에 이르렀다.
세종임금의 처사가 명백하게 잘못되었다. 당신도 셋째 아들이면서 왕위에 등극했고 또 시대를 조금만 생각했다면 당연히 자신의 서방님, 수양대군이 왕위에 올라야했다. 그러나 세종임금은 선을 택했다.
외관상의 선이 결과적으로 커다란 악이 된다는 점을 무시했다. 당신이야 성군의 이름만 얻고 세상을 떠나면 그만이지만 남아있는 사람들 그리고 훗날을 살 사람들에게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살아가는 기준이 있고 시대정신이 있음을 무시했다. 정희가 살면서 가장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신은 선의 역할만 하겠다는, 그야말로 안일하게 세상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바로 그런 생각의 본질에 시아버지, 세종임금이 있었다.
한참 생각에 빠져들 즈음에 인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님, 아버님께서 퇴궐하셨습니다.”
자신의 흐트러진 옷매무시를 가지런히 했다. 이어 수양대군의 헛기침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리고 있었다. 방에 들어선 수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미 형인 문종의 장례를 마친지 오랜데다 문종의 경우 자신의 부인이 그리 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희가 하얀 소복을 차려입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으니 그 모습이 정상으로 보일 턱이 없었다.
“부인, 이게 무슨 일이오!”
어정쩡하게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수양에게 자세를 가지런히 하고 큰 절을 하기 시작했다. 수양이 뒤를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급히 정희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부인, 왜 이러시오!”
“주상, 절을 받으시지요.”
“주상!”
수양의 입에서 외마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 하옵니다, 주상 전하.”
수양이 고개를 돌려 주위를 바라보았다. 전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항상 같은 모습 그대로였다. 다시 정희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진지하게 보일 수 없었다. 수양이 순간 문가로 가서 급히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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