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음모 혐의' 이석기 부메랑, 누구를 덮칠까?

김진영 / 기사승인 : 2013-09-03 12:59:44
  • -
  • +
  • 인쇄
녹취록 공개, 지하혁명조직 RO 실체 의혹
▲ @Newsis
[일요주간=김진영 기자] 한여름 땡볕에도 굴하지 않고 맹렬히 타올랐던 촛불이 돌연 태풍을 맞았다.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에 대한 진실규명과 국정원 개혁을 위해 몸부림쳤던 촛불이 ‘빨간색’으로 점철되며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것이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내란음모 및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촛불을 끄는 태풍의 ‘눈’이 됐다. 궁지에 몰린 국정원의 ‘신의 한수’인가, 아니면 진보당이 주장하는 데로 ‘공안탄압’인가. 여야 간 첨예한 대립이 이어졌던 정치판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전시엔 총을 준비하고 건물을 폭파하라

국가정보원과 수원지방검찰청(최태원 부장검사)은 지난 28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해 내란음모혐의 및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를 적용, 이석기 의원실 등 10여곳을 압수수색했다.

국정원이 핵심 증거로 내놓은 녹취록은 RO(Revolutionary Organization, 혁명조직) 산악회에서 주최한 토론회와 강연 내용 등이다. 국정원은 RO를 경기동부연합 내 지하 종북조직으로 규정하고 있다.

녹취록의 핵심 내용은 크게 전시에 통신을 파괴하고 총기를 준비해야 한다는 등 한반도에 전쟁이 닥쳤을 때 실질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고 있다.

녹취록에 따르면 이 의원은 모두발언에서 “전쟁을 준비하자. 정치·군사적 준비를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물질·기술적 준비 체계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 물질·기술적 준비란 뭐냐. 그건 나중에 동료들과 토론에서 한번 고민해보라”고 언급했다. 이 의원과 같은 혐의를 받고 있는 이상호 수원진보연대 고문은 “지금은 인터넷에서 무기를 만드는 것들에 대한 기초는 나와있다”며 “전시상황이라든지 중요한 시기에는 우리가 통신과 철도와 가스, 유류 같은 것을 차단시켜야 되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을 연상케 하는 표현들도 적잖이 눈에 뛴다. 우리 국민을 ‘조선민족’이라고 표현하고 남한을 ‘남녘’으로, 미국을 ‘미 제국주의, 미국놈’이라고 비하하는가 하면 북한이 자주 사용하는 ‘자주’와 ‘주체’라는 단어들도 빈번히 사용됐다.

통진당, 유신시대 회귀 ‘공안탄압’이자 ‘날조’

그간 잊고 살았지만 대한민국이 아직도 휴전중인 나라였음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더욱이 젊은 층에는 생소한 단어인 ‘반공’, ‘종북’, ‘공산당’ 등이 새삼 두렵게 느껴지는 사건이기도 했다. 이 같은 낯선 두려움을 앞세운 일명 ‘이석기 사태’를 두고 정치적인 공세 역시 날로 심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통합진보당은 혐의 전체가 날조된 것이라며 전면 부정하고 나섰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을 덮기 위한 공안탄압이자 진보정당 해체를 도모해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조처라며 강력히 비난했다.

28일 이정희 대표는 “부정선거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초유의 위기에 내몰린 청와대와 해체직전의 국가정보원이 유신시대에 써먹던 용공조작극을 다시 21세기에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국정원 범죄행각에 대한 진실이 드러나고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지라는 촛불 저항이 거세지자 촛불시위를 잠재우기 위한 공안탄압”이라면서 “정당해산을 들먹이면서 진보세력을 말살시키려고 했던 집권세력의 정권유지전략이 본격 가동되기 시작했다”고 비난했다.

압수수색 첫 날이던 28일 돌연 연락이 두절되며 도피설까지 돌았던 이석기 의원은 다음날인 29일 국회에 모습을 드러내곤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혐의에 대해 “상상력에서 나온 소설”이라며 허무맹랑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30일 긴급기자회견에서도 강연내용에 대해 “그 취지가 한반도가 그 전과 달리 한반도 긴장이 격화돼 있다. 그렇기에 새로운 평화체제에 대한 주동적인 행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말을 한 것이다”고 해명했다.

1일에는 “왜곡이란게, 허구에 가깝게, 거의 거짓말에 가깝게 날조됐다고 보기 때문에 녹취록의 실체성에 대해 부정하는 바”라고 언급하며 “사법절차가 진행되면 진실을 증명하고자 당당히 임하겠다. 결코 피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또 “전쟁이 벌어진다면 민족의 공멸 전에 하루라도 빨리 평화실현하자는 것. 이 말이 어느 한 편에 서서 전쟁을 함께 치르겠다는 의미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궁지에 몰린 국정원, 회심의 ‘한방’

선거개입 의혹으로 개혁 압박을 받으며 존폐위기마저 거론되던 국정원이 돌연 내란음모 카드를 들고 나온 데 대해 여러 추측과 해석도 난무하고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철저히 검증된 증거에 의한 ‘신빙성 있는’ 혐의인지, 혹은 위기에 몰리자 반드시 그들이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를 직접 보여주고자 한 ‘신의 한수’인지 촛불을 든 민심 역시 흔들리고 있다. 실제 지난 31일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개혁 촉구 국민결의대회’ 참가자는 주최측 추산으로 5000여명에 불과해 이석기 의원 사건이 불거지기 전인 16일 2만여 명과 비교해 크게 줄었다.

압수수색 시점과 관련해 국정원 측은 수년간의 내사 끝에 결정적인 증거가 포착됐음을 근거로 대선개입 의혹의 물타기가 아니냐는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RO 당원 고액 매입설이나 통신보안법 위반 등에도 합법적인 절차에 의한 내사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돼 정치소설 전문 황천우 작가는 “국가적 내란음모 혐의나 간첩 사건 등은 법 위의 상위개념이다. 국가의 명운이 달려있고 정체성이 달린 일인데 도청이니 감청이니 하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국정원과 검찰은 이 의원 등에 대한 내란음모죄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데 총력을 다 할 방침이다. 녹취록 등 밝혀진 증거로 미뤄봤을 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적용될 가능성이 크지만 내란음모죄까지는 어렵다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내란음모죄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국토를 참절(국토 일부를 점령해 불법적 권력을 행사하는 것)하고 국헌(국가의 근간이 되는 규범)을 문란할 목적으로 국가를 무너뜨리는 폭동에 이를 정도의 모의에 가담했다는 정황이 포착되어야한다.

이 의원의 자택 신발장에서 발견된 현금 1억4,000만원(러시아 돈 1만루블, 미국 621달러 등)의 출처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정원은 북한에서 조달한 자금일 가능성을 지우지 않고 있지만 이 의원 측은 부동한 임차보증금이라고 밝힌 상태다.

하지만 통진당과 이 의원의 주장처럼 공개된 녹취록이 편집·왜곡·날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녹취록은 녹음파일이나 동영상 등 원본을 토대로 작성된 것이니만큼 원본이 확보되어야지만 이 의원 등의 발언에 대한 진위여부가 보다 명확해질 것으로 보인다.

시사평론가 이동형 작가는 “국정원이 들고 나온 증거는 녹취록 밖에 없는데 이것만 가지고서는 내란음모혐의 적용이 어려울 수 있다”면서 “진위여부를 떠나 이번 내란음모혐의의 파장은 10월 재보선이나 내년 6월 지방선거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만큼 조속하고 명확하게 밝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여야 한목소리로 “수사 철저히”, 동상이몽

새누리당은 이석기 의원에 대한 법원의 체포요구동의서에 조속한 처리를 주문하며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황우여 대표는 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헌정사상 처음으로 의원의 국가 전복 시도라는 혐의를 받으며 수사를 하는 만큼 신속한 처리가 필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민주당에 대한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다. 심재철 최고위원은 “민주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야권연대를 통해 친북세력의 국회 진입을 도운 원죄가 있다”며 “야당은 체포동의안 표결 등에 분명한 입장을 보이고, 여당도 행여 역풍이 있을까 걱정해서 정치가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는 말로 우물쭈물해서도 안 된다. 단호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 이동형 작가는 “새누리당이 야권연대 책임을 운운한 것은 이번 정국에서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을 뿐 아니라 민주당까지도 종북세력의 프레임 안에 두려는 의도가 엿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국정원 개혁이 잠식당하지는 않을지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국정원 개혁을 위해 통진당과 함께 촛불을 들어 올렸던 민주당은 행여 불똥이 튀진 않을지 노심초사하며 선긋기에 돌입했다. 김한길 대표는 장외투쟁 한 달 째인 31일 ‘제5차 국민결의대회’에서 “종북세력의 어처구니없는 계획이 사실이라면 용납할 수 없다”며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사건으로 국정원의 선거개입이 가려질 가능성이 큰 점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정세균 상임대표는 “국기문란, 공안통치 세력과 싸워 이길수 있는 것은 민주당 뿐”이라며 “사안의 본질을 흐리고 국민의 눈을 가리고 민주세력의 힘을 빼기 위한 저들의 저항과 반격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철수 무소속 의원도 1일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해 “여권 일부에서 이석기 의원 문제를 민주당으로 연결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듯하다”며 “저는 여야 정파를 떠나, 진보당 사태를 민주당과 연결시키려는 어떤 정치적 음모나 논리적 비약에도 반대한다”고 비난했다.

한편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본질이 흐려질 수 있으며 이는 국가의 정체성을 흔들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황천우 작가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립해야만 통일도 논의할 수 있는 것 아니겠냐”면서 “사태가 장기화 국면으로 흐르지 않도록 반드시 여야가 한목소리로 조속히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시민과 공감하는 언론 일요주간에 제보하시면 뉴스가 됩니다'

▷ [전화] 02–862-1888

▷ [메일] ilyoweekly@daum.net

[저작권자ⓒ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오늘의 이슈

댓글 0

댓글쓰기
  • 이 름
  • 비밀번호

- 띄어 쓰기를 포함하여 250자 이내로 써주세요.
-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비방/허위/명예훼손/도배 등의 댓글은 표시가 제한됩니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