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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어미가 참으로 못할 일을 하는구나.”
“어머님,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저는 전적으로 어머님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고 저희 친정에서도 그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고개를 돌렸다. 며느리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순간적인 생각이 머리를 감쌌기 때문이었다.
“어머님, 받으세요.”
대답 대신 장롱으로 향해서 장롱 아래에 있는 함을 꺼내왔다. 그리고는 인수가 그런 모양으로 방바닥에 내려놓고는 함의 뚜껑을 열었다. 인수가 가지고 온 보석과 비슷한 물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수가 역시 감탄의 시선으로 시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머님......”
“그래, 이제 이 물건들을 긴요하게 쓸 때가 왔구나.”
“네, 어머님.”
인수가 가지고 온 보석과 자신이 꺼낸 보석을 합쳐 미리 준비해 둔 여러 개의 보자기에 나누어 싸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가장 커다란 보자기 뭉치를 들었다. 인수가 그를 받아들었다.
“같이 길을 나서자꾸나. 그러지 않아도 그 일 때문에 너를 불렀고.”
“어머님, 한명회 대감 댁이지요.”
더 이상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미소로서 답할 뿐이었다. 이미 자신의 생각을 며느리가 모두 꿰고 있으니 말이다.
수더분하게 차려입은 두 여인이 청지기 임운을 앞세웠다. 저녁 길이고 또한 손에 보석을 지니고 있었던 터라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날이 어둑해질 무렵이 되어 한명회의 집에 도착했다. 대문 앞에 선 정희가 문을 두드렸다.
“딱, 딱 딱 딱.”
대문 안에서 조용한 움직임이 감지되었고 이내 대문이 열리면서 한명회의 부인인 민씨 부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점심나절에 순임을 통해서 기별을 넣었던 터였다. 바로 민씨 부인에 의해 외진 별채로 안내되었다.
“대부인 마님께서 고생이 많으세요.”
“고생은요, 저야 그렇다고 해도 부인께서 고생이 많으시지요.”
인수의 손에 들려 있는 보따리를 곧바로 민씨 부인에게 전했다.
“대부인 마님, 무엇인지요?”
“한번 펼쳐보시지요.”
민씨 부인이 차분하게 보따리를 풀르고는 가벼운 신음을 토해냈다.
“하면......”
“한명회 대감님을 통해서 수하들을 단속하라고 가져왔습니다. 수양대군께서 명나라에 가 있는 동안 혹여나 수하 사람들이 동요할까봐 준비해왔으니 요긴하게 써달라는 이야기이지요.”
“저희가 움직여야하는데......”
민씨 부인이 민망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지요. 이 모든 일이 수양대군을 정점으로 해서 움직이고 있으니 아무런 심려 마시고 받아주세요.”
머뭇거리는 민씨 부인에게 보따리를 밀자 마지못하겠다는 듯이 보자기에 손을 뻗었다.
“대부인 마님, 그러면 대부인 마님의 뜻에 따라 요긴하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부인, 그 물건은 한쪽으로 치우시고 이 댁의 여식을 한번 볼 수 있겠습니까!”
민 씨 부인이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순간 인수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대감 댁에 총명한 여식이 있다는 이야기를 저희 어머님께서 전해 들으셨지요. 그래서 겸사겸사 오셨고요.”
순간 민씨 부인의 눈동자가 벌어졌다.
“대부인 마님, 너무 황망하옵니다.”
“부인, 먼저 보따리를 넣어 두시지요.”
보따리를 싸고 있는 민씨 부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당황스러워 그런다기보다도 정희의 일에 대한 집착력에 한편 두려움을 느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신의 서방님과 살아도 함께 살고 죽어도 함께 죽겠다는 의지, 또 그를 이루는 과정에서 한명회의 가족도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정희의 굳은 마음을 읽은 모양이었다.
보따리를 싸서 손에 들고는 민씨 부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신의 여식을 불러오겠다며 방을 나서는 민씨 부인의 얼굴이 굳게 경직되어있었다.
“어머님,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민씨 부인이 멀리 갔을 시점에 인수가 말문을 열었다.
“일도 일이지만 이 집안과는 뭔가 연이 맺어질 듯한 느낌이야. 아니 느낌을 떠나서 반드시 함께해야 할 사람이지. 그런 경우라면 일처리를 확실하게 해야 하지 않겠니?”
인수가 조용히 정희의 얼굴을 주시했다.
“일이란 일시적으로 끝을 맺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야. 오랜 기간을 계산해서 일처리를 해야지. 그런 의미에서 한명회 대감의 경우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대해야 할 듯해.”
정희의 말을 새기는 인수의 얼굴 위로 비장감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귀향
수양대군이 명나라에서 돌아왔다. 우려했던 일은 발생하지 않았고, 전혀 일에 대한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두고 기우라고 했다. 상대를 정확하게 꿰뚫어보지 못한 데서 비롯된 지나친 걱정에 지나지 않았다.
수양대군이 명나라를 간 사이 며느리 인수와 함께 주변의 정황을 분석해보았다. 왕실의 종친인 안평대군을 앞세운 김종서, 황보인 등을 살펴보았다. 안평대군과 그들은 대등한 관계에 있었다. 그렇다면 결과는 빤했다.
둘 사이에 뛰어넘을 수 없는 신분이 굳게 가로막혀 있는 그들의 목적은 현 상태를 유지하면서 서로를 견제해서 저들의 사소한 이익을 챙기는 그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었다.
수양대군은 정희의 말대로 명을 다녀오면서 두 마리의 토끼, 거기에 더하여 한 마리의 토끼를 더 추가했다. 저들에게 수양대군에 대한 경계를 풀 수 있도록 했고 명나라에서 수양의 존재를 인정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또한 수양대군의 오른 팔의 위치에 오르게 되는 신숙주를 얻었다.
수양대군이 돌아오자 명례궁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정희가 수양대군이 고명 사은사로서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 한 점을 들어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그 부분에 대해 어느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었다.
그 어려운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온 일을 자축하는 모임에 대해 경계의 눈초리를 보낼 수는 있지만 드러내놓고 거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모임에 남자들만 초대하지 않았다. 여인들까지 부부동반으로 해서 초대를 했고 여인들은 주로 며느리 인수가 대접하도록 했다.
먼저 양녕 백부를 포함한 종친들을 초대했다. 그동안 대신들의 눈치로 인해 심사들이 편치 않았던 터라 거의 모든 종친이 참석했다. 한참 분위기가 고조될 무렵 백부, 양녕대군께서 목소리를 높였다.
“수양아!”
“예, 백부님.”
양녕 백부의 성정으로 보아 다음 순서는 훤했다. 작심하고 뭔가를 이야기 할 것이라 감지되었다. 그 순간 정희의 시선이, 자리에 있던 모든 종친들의 시선이 양녕 백부에게 집중되었다.
“계속 이대로 두고 볼 것인가!”
수양대군 역시 이미 백부께서 말씀하신 그 의도를 알고 있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조선 왕조를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이 말이네!”
양녕 백부와 멀지 않은 곳에 앉아있는 안평대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치 벌레 씹은 듯이 표정이 편치 않아보였다.
“아니, 형님. 오늘같이 경사스런 날에 무슨 말씀을 하시려 합니까!”
자신의 형님의 성정을 잘 알고 있는 효령 중부께서도 역시 다음 순서는 훤히 알고 있다는 듯이 혀를 찼다.
“아니야, 우리 종친들이 모이기 쉽지 않은데 오늘 모인 김에 아예 탁방을 내고 가자고. 그래, 이 조선이 어떻게 해서 이루어 진 나라인데 제 놈들 마음대로 농단하도록 내버려두자는 말인가!”
양녕 백부, 조선에서 그를 건드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세종임금도 그와 관련한 일이라면 아예 건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타박하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줄 정도였다. 그런 그의 이야기를 누가 제지할 수 있겠는가.
효령대군도 막상 양녕대군의 말을 말리기는 했지만 심기가 그리 편치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요, 형님 말씀이 일리 있어요. 이 사람들 너무 심해요. 우리 종친들이 뭔가를 하려 하면 사사건건 시비나 걸고 말입니다.”
효령 중부께서 하시는 말씀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일찌감치 궁궐을 떠나 불자로서 활동하고 있는 효령 중부의 일을 대신들이 사사건건 물고 늘어졌으니 그 심정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알 듯했다.
“중부님, 그거야 태조대왕께서 건국이념으로 정해놓은 거 아니에요.”
찌그러져 가던 안평대군이 기회를 만났다 싶었는지 그에 한마디 하고 나섰다.
“안평은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는 겐가! 요즘 간신배들하고 어울리다 보니 종친도 다 잊어버렸는가! 그리고 이 조선이 건국하면서 왕도 정치를 표방한 사실은 모른다는 말인가! 그러면 세종임금은 그것을 몰라서 효령 아우의 일을 모른 체하고 넘어갔다는 말인가! 요즘 바짝 간신배들과 어울려 지내더니 뭐가 옳고 그른지 판단도 하지 못 하는 겐가 뭔가!”
양녕 백부의 얼굴에서 노기가 드러나고 있었다.
“그래, 수양아! 계속 이런 상황이 되도록 가만히 있을 텐가! 이 조선의 건국 정신을 좀 먹고 있는데도 그냥 모른 척하고 넘어갈 것인가 말이다!”
“형님, 형님이 나서야지요!”
아우인 임영대군이 한 마디 거들었다. 수양이 아무 답을 하지 않고 잔을 들어 조심스럽게 술을 들이켰다.
“저 못된 간신들의 행동을 제지할 수 있는 사람은 조카밖에 없을 듯하이. 그러니 조카가 나서서 일처리를 했으면 좋겠네.”
효령 중부께서 이만 이 선에서 그 대화는 종결시키자는 투로 정리를 시도했다.
“그렇게 해서 될 일이 아니네. 아예 탁방을 내자니까 그러네. 우리가 언제 또 이렇게 모일 기회가 있나! 설령 우리가 모인다고 해도 저 놈들의 이상한 눈초리를 살펴야하고 말이야!”
“백부님, 그렇다고 신하된 도리로서 임금께서 저리 하시는데 저로서도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수양! 지금 자네가 누군가. 임금께서 올바른 정사를 펼 수 있도록 선왕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람이 아닌가!”
수양이 동생, 금성대군을 바라보았다.
“금성 아우는 어떻게 생각하시나?”
“형님, 백부님 말씀대로 당연히 그리하셔야지요.”
“형님, 그리 하시지요!”
임영대군이 힘주어 동의를 표했다.
“죽일 놈들 같으니. 내가 제 놈들 좋게 하려고 왕위까지 포기한 줄 아나! 태종 대왕께서 이 모습을 보시면 지하에서 통곡을 하실 일이네, 통곡을.”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부 대신들의 전횡에 대해서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한편 그들과 함께하고 있는 안평대군으로서도 더 이상 일언반구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자 정희가 이제는 자리를 떠야할 시점이라 판단했다.
양녕 백부와 효령 중부 그리고 모두를 향해 물러나겠다고 인사하고 급히 여인들이 있는 별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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