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자살 급증, ‘가정교육·공교육’ 갈등요소 완충장치 동력상실"

이영숙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13-10-10 10:3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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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미래의 동력 ‘청소년 자살’ 10대의 경우 '사망원인 70%'가 자살 충격적 보고
거시분석 인생경험이 부족하고 생각의 폭이 한정

@Newsis
[일요주간=이영숙 칼럼니스트] ● 동물은 자살하지 않는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많이 있지만 그중 가장 비교되는 것은 동물은 자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물들은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사육되거나 자연 속에서 스스로 먹이를 찾아다니며 살고 있지만 불만스럽다고 절대 자살하지 않는다.

소가 아무리 힘들게 일을 해도, 강아지가 학대를 받거나 버려져 유기견이 되어도 자살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사람과 특별히 다른 특징의 부분이다. 이러한 이유를 미국의 하버드대학 긍정학교수 탈벤-샤하르가 쓴 해피어(HAPPIER)라는 책에서 살펴볼 수 있다.

탈벤-샤하르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감정, 생각, 행동을 숙고하는 능력과, 자신의 의식과 경험을 인식하는 능력이 있다.”라고 했다. 또한 “사람은 감정의 원인을 생각한다.”고 했다. 이것이 동물과 사람이 다른 이유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동물은 사고력과 이성(理性)이없기때문에 미래를 설계하고 그것을 위하여 그 어떤 것을 하려고도 하지 않고 오늘을 사는 것 자체에 만족하는 반면, 사람은 미래를 위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위하여 노력하고 결과에 대하여 집착한다.

또한 그 원인에 대해서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만족하지 못하거나 괴로워한다. 이처럼 동물들이 가지고 있지 않는 사고력과 이성(理性)을 겸비한 사람은 그로 인해 행복해지기도 하지만, 지나친 생각과 잃어버린 이성으로 인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불상사를 범하기도 한다.

자살률 1위 ‘한국의 청소년들’

OECD국가 중 자살률1위가 불명예스럽게도 우리나라라고 한다. 특히 10대의 경우에 사망원인의 70%가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보고가 있다. 이것의 원인은 청소년은 인생의 경험이 부족하고 생각의 폭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청소년기는 왕성한 호르몬의 영향으로 신체 변화와 신체적 발달은 우수한 반면, 충동조절 기능인 뇌의 전두엽 발달은 미숙하여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을 할 때가 많다고 한다.

따라서 부모님이나, 선생님 등 웃어른들에게 엄한 꾸중을 듣거나, 친구와 심하게 다투거나, 성적비관, 따돌림으로 인한 고독감, 가정불화, 취업문제 등, 주변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일상들이 원만하지 않을 때, 상대적 박탈감 등으로 인한 우울감과 과도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여 자살을 선택하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주역이 되고 국가를 책임져야 될 어린새싹들이 잘 자라지 못하고 결실을 얻기 전에 연기처럼 무의미하게 사라지고 있는 것은 개인적인 것은 물론 국가적으로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며 커다란 손실이다. 무엇이 우리의 청소년들을 블랙홀에 빠뜨렸을까?

그것은 일부 가정에서의 무관심과 잘못된 교육, 그리고 학교에서 일부 교사의 무관심과 방치, 유행처럼 번지는 학교폭력과 사회병리현상의 원인이리라.

악마와 괴물 ‘성적 지상주의’

작금의 현실은 맞벌이 부부가 하나의 문화로 정착되면서 육아문제가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그래서 한 아이의 정서와 정상적 행동발달은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따라서 집을 지을 때 기초공사가 튼튼해야만 안전하게 집을 짓듯이 어린 시절의 정서적 교육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그렇지만 맞벌이 문화는 아이들의 기초교육에 적극참여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사랑스런 어머니의 돌봄을 떠나 태어 난지 3개월 만에 어린이집에 위탁되는 아기도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아기들이 어린이집에서 자라고, 학교에 가면서부터는 오후에 학원을 전전하며 나 홀로 인생살이를 배우게 된다.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마음껏 뛰어놀아야 할 시기에 이 조직, 저 조직 속에 던져져 하기 싫은 공부를 해야 하고, 하기 싫은 악기를 다루어야 하고, 부모님이 계획한 프로그램대로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자아를 찾지 못하고 거친 광야에 홀로 있는것 같은 외로움에 단련되고 있다.

이러한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부모들의 일부는, 미안함과 죄스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아이들에게 물질로서 관심과 사랑을 대신하려 한다.

또한 “말 잘 안 듣는 아이에게 말 잘 들으면 장난감 사줄게” 라든가, 학교 다니는 아이의 일부 학부모는 “이번에 시험 잘 보면 메이커 옷 사줄게, 스마트폰 사줄게, 컴퓨터 바꿔줄게, 용돈 올려 줄게”라는 등, 물질로서 대가를 지불하려한다. 이러한 교육방법은 올바르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말을 잘 듣고 공부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로서 대가를 해주는 것은 정말로 바람직한 교육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부모의 지극한 관심과 사랑이 담긴 올바른 가정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란 것이 원인이 되어, 일부 청소년의 사고 (思考)는 어느덧 “물질이 최고가 되고, 성적이 제일” 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만다.

이러한 생각들이 잘못된 것이라 여기지 못하고 있는 요즘 일부 청소년들은 “물질만능과 성적지상주의”라는 잘못된 문화를 쫓고 있다. 또한 그 문화의 범주에 자신이 속하지 못했 다고 생각했을 때 스스로 왕따가 되고, 소심해 지면서 우울한 터널을 만들어 스스로 블랙홀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또한 오로지 입시위주의 학교교육은 성적순으로 학생을 대하는 교사들을 조장하고, 왕따를 당하거나, 학교폭력을 당해도 일부교사들의 무관심과 배려하는마음의상실은 결국청소년들 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를 부여하고 있다. 그 것이 얼마나 제자들에게 악영향이 되고 있는지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수년전 필자의 아파트 앞 동에 살던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이 자신이 살던 아파트 10층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이 학생 부모의 직업은 교사였다. 그런데 왜 이 학생이 자살을 선택했을까? 그 원인은 부모의 끈임 없는 성적향상 요구가 원인이었다고 한다.

자녀의 자살은 자녀의 몫만 아니었다. 그 가정은 아이의 죽음에 대해 서로에게 책임을 묻는 다툼을 하다가 결국 그 부부는 헤어지고 살고 있던 아파트를 떠나는것을보았다. 비록 이웃의 일이었지만 마음이 괴로웠고 아직도 필자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불행한 사례다.

그런데 아직도 이러한 불행을 자초하는 사례가 사라지지 않고 더욱 늘어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상당히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최근 법률신문에 보도된 사법연수생의 배우자 자살의 원인은 배우자의 불륜사건에 의한 것이었지만 그 저변에는 성적지상주의가 양산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지적을 하고 싶다.

예전의 사법연수원에서는 법조 윤리과목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고 다른 강의와 달리 모든 연수원생들을 대강당에 모아 놓고 사법연수원장이 직접 강의할 정도로 비중 있게 다루었다고 한다. 또한 반드시 윤리과목을 이수하여야만 연수원 수료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갈수록 합격자 수가 크게 늘어나고 사법연수원이 치열한 경쟁의 장으로 바뀌면서 성적지상주의가 만연하게 되자, 윤리교육의 비중이나 강도가 줄어들게 되었다고 한다. 배우자를 자살로 몰아 부친 사법연수생은 오로지 실력만이 제일이고 윤리는 내다버렸기에 이렇게 불행한 사태를 만들어버린 것이리라.

이러한 사태는 앞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이 물질만능과 성적지상주의에 빠져들어 몰가치한 일에 서슴없이 행동하지 않을까 염려되는 부분이다. 실력은 있으나 좋은 인성과 올바른 가치관이 실종된 것을 빨리 회복하여야 하는 시급한 문제에 대두된 것이다.

이렇게 청소년의 잘못된 생각과 자살원인을 어른들이 만들어 주고 있다. 마치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뒤르겡이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다”라고 주장한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부모의 무관심과 아예 방치된 아이, 오로지 성적 향상만을 강요당하는 아이의 과도한 스트레스 또한 소리 없이 자녀를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물질만능주의와 상대적 박탈감

수년전 필자는 조손가정을 후원한 적이 있었다. 필자는 물질적 지원이 중요하다고 여겼지만 사춘기에 당면한 소녀가 무리 없이 잘 성장하기를 바라여 가끔씩 대화도 나누었다. 그 소녀는 가장 힘든 때가 부모님 다 계신 친구 집에 놀러갔을 때 행복해 보이는 친구가 질투 나서 화가 날 때라고 하였다.

심지어 자신의 집에는 컴퓨터가 없는데 친구는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죽이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고 한다. 필자는 너무 놀라서 그 소녀에게 “물질을 소유하는 것은 필요에 따라 중요하기도 하지만 사람이 다칠 정도로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라는 설명을 해 주었다.

누군가 관심을 가지고 잘 되기를 격려해주고, 지금 현재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불만하지 말고,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할머니가 계시고, 동생이 옆에 있고, 지역사회에서 관심을 가지고 후원하고 있다는 것도 감사하게 여기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다행히 그 소녀는 사춘기를 무사히 잘 넘겼고 성실하게 잘 자랐다. 지금은 연락이 끊겼지만 아마도 30대의 성숙한 여인이 되었을 것이다.

행복은 자살을 소멸시킨다.

청소년의 자살원인과 사례를 다각도로 알아보았다. 필자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다양하고 잘못된욕구로 만연된 사회에서 개인에게 가장중요한것은 세 살 버릇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개인의 올바른 인성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뿌리가 온전한 나무는 강한태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올바른 인성은 아무리 힘든 일이 닥쳐와도 잘 견딜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따라서 어린이를 위탁받은 가정이나 보육시설에서는 낮에 부모와 떨어져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측은지심과 진정한 휴머니즘을 발휘하여 아이들에게 부모의 관심과 사랑에 버금가는 교육서비스를 제공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이러한 서비스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시행되도록 국가나 지자체에서는 어린이를 사랑하고, 어린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지속적인 지도와 감독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바이다.

또한 청소년들에게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는 일도 급선무라 생각한다. 자살률은 1위인데 비해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전 세계 꼴찌라는 영예롭지 못한 소식이다. 이는 개개인이 행복을 느끼는 지수가 적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청소년의 자살원인을 찾아 대안을 마련하고, 예방을 한다고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각 지자체별로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정작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행복한가를 연구하지는 않는 것 같다. 누구나 행복을 느낀다면 자살을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사회에서 자살을 척결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개개인 모두가 행복을 느껴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최근 아파트 어린이 놀이터에 어린이들이 없다고 한다. 아마도 각자 스마트폰으로 게임하거나 혼자 놀기에 잘 적응되어서 혼자 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입시 위주의 교육풍토는 과열경쟁체제로 탈바꿈하면서 우리의 청소년들은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학부모나 교사도 이러한 부분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크게 느끼면서도 사회적 흐름이니까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한다는 분위기란다.

교육부는 이러한 문제점을 고려하여 입시 위주의 공교육 제도를 전인교육이 이루어 질수 있도록 대대적으로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부하기싫은학생에게 굳이 공부만 강요하지 말고 각 개인의 특성에 맞는 교육제도를 고안하여 맞춤형 교육제도를 시급히 마련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학생들이 학교가 즐거운 곳이 되는 문화로 정착시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또한 가정에서나 지자체에서는 스마트폰으로 혼자 놀고 있는 아이들을 불러 모아 손에서 잠시라도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우리의 전통놀이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고, 건전하고 화합하는 놀이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청소년들이 사회에 참여하고 연대하는 사회성을 바르게 지도하여야 하는 일이 당면과제라 여겨진다. 이렇게 우리 모두는 서로서로에게 모든 관심을 가져야 하고 배려해야 한다.

오스트리아정신의학자이며, 개인심리학을 수립한 알프레트 아들러(Alfred Adler)는 “인간의 정신은 유전적 요소가 아닌 사회적 영향으로 형성되고”, 또한 “공동체 적응은 인간이 습득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심리적 기능”이라고 하였으며 공동체 적응을 습득하지 못한 이들을 “사회의 적”으로 지목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들러가 사회적 요인과 가족적 요인이 개인의 성격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는 것은, 한 개인의 올바른 인격형성을 위하여 가족이나 사회의 관심이 그 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서로 서로가 매우 중요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하고 서로서로 때때로 관심을 가지고 교육적으로 자극하고, 채찍하여야 한다. 한 개인의 올바른 성장은 개인의 영달이기도 하겠지만 국가의 이익과 커다란 영광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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