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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늘아이야, 종친 부인들에게 전해드리라고 한 물건은 전해드렸느냐?”
“어머님, 어머님께서 드리는 편이 좋을 듯해서 아직 드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내가 못 오면 어쩌려고...... 어서 가지고 오너라.”
정희와 인수를 바라보는 모든 시선들이 호기심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잠시 후 인수의 손에 조그마한 보따리가 들려왔고 그 보따리를 정희 앞에 내려놓았다. 여인들의 시선이 보따리로 쏠렸다. 그들의 시선을 모른 체하고 보따리를 풀자 진주알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번에 수양대군께서 명나라를 가셨다가 명나라 왕실에 있는 사돈에게 선물로 받은 것이니 기념으로 하나씩 나누어 갖도록 하지요.”
정희가 나누어 주는 진주를 받는 여인들의 입이 그야말로 함지박처럼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패물 제공의 원인인 며느리 인수를 바라보며 찬사와 함께 부러움을 표시했다. 그들의 감사의 말에 겸양을 보이던 인수가 입을 열었다.
“어머니, 그런데 종친 어른들께 가보시지 않아도 되나요?”
“지금 너무나 진지하게 말씀들을 나누고 계셔서 내처 이리로 온 것이야.”
자연스럽게 ‘진지하게’에 힘을 주어 대답했다. 그러자 안평대군의 안사람인 정씨 부인이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형님, 무슨 말씀들 하고 계세요?”
“별 것은 아닙니다. 조정에서 몇몇 대신들이 황표정사니 해서 어린 임금을 농락하고 있고 또 종친을 너무 무시하는 부분에 대해 분개하시고 있습니다.”
정씨 부인에게서 가느다란 한숨이 흘러나왔다. 여인들의 원망 가득한 시선이 정씨 부인을 향하고 있었다. 마치 그런 원수 같은 사람하고 무엇이 좋아서 같이 살고 있느냐는 투였다.
“그런데 부인, 우리 집에 있던 무수라는 하녀는 잘 있는가요?”
인수가 내친 무수를 정씨 부인이 거두어들였던 터였다. 그 말에 정씨 부인이 생기를 찾는 듯 시선을 인수에게 주었다.
“아주 잘하고 있습니다. 보기 애처로울 정도지요.”
그런 아이에게 당한 인수를 빗대기라도 하듯 의기양양했다. 바로 정희의 의도였다. 자신으로서는 고마울 수밖에 없는 정씨 부인의 기를 살려놓고 다시 화두를 바꾸어나갔다.
결전
저녁 늦은 시간에 중문에 서서 대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단의 남자들이 대문을 통해서 신속하게 후원의 정자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동안 서방님, 수양대군과 함께 해 온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행동을 같이 할 사람들이었다.
이미 서방님으로부터 그날 모임을 전해 들었던 터라 낮 동안에 모든 준비를 갖추어 놓고 있었고 그예 중문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대문을 주시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청지기 임운이 대문을 걸어 잠그는 모습을 바라보고는 내당으로 이동했다. 며느리 인수가 따라붙었다.
“어떻게 되고 있지?”
“어머님, 잠시 후 무수가 이리 오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 이제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일이야! 암, 그렇고말고. 이제는 빨리 마무리를 지어야 할 일이지!”
“어머님!”
인수의 목소리가 심하게 갈려있었다.
“네가 너무 고생이 많았구나.”
인수의 손을 잡았다. 손에서 뜨거운 기운이 감지되었다. 그 뜨거운 느낌이 곧바로 정희의 눈가로 옮겨지고 있었고 그 상태에서 침묵의 시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잠시 후 그 침묵을 깨고 인기척이 들려왔다.
“마님, 대군마님께서 찾아계시옵니다.”
그 소리에 인수가 시어머니의 손에 잡혀있는 자신의 손을 빼고는 급히 문을 열었다. 순임이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그 둘을 주시하고 있었다.
“나를 말이더냐?”
“그러하옵니다.”
남자들이 모인 곳에, 그것도 집안사람들이 아닌 외간 남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자신을 부른다는 소리가 이상했다.
“무슨 연유로 나를 부른다는 말이냐?”
“자세한 연유는 알 수 없으나 후원에 모인 분들이 대부인 마님께 인사를 드려야한다고 대군마님께 청을 넣은 모양입니다.”
“인사를 드린다고!”
얼떨결에 답을 하고는 인수를 바라보았다.
“어머님, 오히려 일이 더 잘되었네요. 이곳은 저에게 맡기시고 어머님께서 그리로 가서 계시는 편이 좋을 듯하옵니다.”
그리 말을 하는 인수를 바라보던 정희가 가벼이 미소를 보내고는 방을 나섰다. 순임을 앞세워 후원에 들어서자 사내들의 어지러운 목소리가 저녁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먼발치에서 그들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상석에 자신의 서방님을 가운데에 두고 권람과 한명회가 좌우에 앉아있었다. 그리고는 그 아래로 한눈에도 힘을 쓸 것 같아 보이는 우람한 장정들이 앉아 있었다.
정자 위 전경을 확인하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정자에 가까이 다가가자 한명회의 시선이 반짝였다. 한명회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정희를 향해 소리쳤다.
“대군마님, 대부인 마님께서 등청하시었습니다.”
좌중이 등청이라는 소리에 잠시 놀라는 듯이 한명회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한명회의 시선이 향하는 곳, 정희에게 집중했다. 남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자신에게 쏟아지자 괜스레 가슴이 설렜다.
혼인식을 치르던 날이 생각났다. 자신의 남편의 존재를 믿고서 전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서 당당하게 대했던 일 말이다. 지금 자신의 남편이 상석에 있고 그 주변의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차분하게 그들에게 향했다.
“어, 부인 오셨소! 어서 이리 올라오시오.”
수양이 조금도 머뭇거림이 없이 정희를 정자위로 권했다. 그 부분까지는 선뜻 내키지 않아 정자 아래서 잔잔한 얼굴로 그들을 주시했다.
“대부인, 마님. 어서 오르시지요.”
점잖은 권람의 입에서 약간은 익살스런 표정으로 말이 이어졌다.
“그리하십시오, 대부인 마님”
좌석에 앉아 있던 모든 장정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희에게 정자위로 오를 것을 권유하자 도리가 없다는 듯이 정자에 올라섰다.
“부인,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부인에게 인사를 드린다고 하니 한잔씩들 쭉 돌리도록 하세요.”
한잔씩 돌리라는 소리에 사내들의 손사래가 일시에 일어났다.
“그래서는 아니 되옵니다. 저희들이 인사를 드리고자 모셨건만......”
덩치가 산만한 홍윤성이 그 덩치만큼이나 우렁찬 목소리로 겸양의 뜻을 내비쳤다. 그 소리에 정희가 뒤따라 온 순임의 보조를 받으며 장정들에게 손수 술을 따르자 한결같이 겸연쩍어 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술을 받기 시작했다.
“소인, 안경손입니다.”
그가 내민 잔에 찬찬히 술을 따랐다.
“소인, 홍순로입니다.”
“소인, 양정입니다.”
“소인, 유수라고 하옵니다.”
묘한 일이었다. 술을 따른다는 부담에서 오는 어색함이 아니라 왠지 모를 뿌듯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들의 면면을 바라보자 야릇한 기분, 일에 대한 확신이 들고 있었다.
술을 모두 따르고 나서 수양대군에게 걸음을 옮기자 급히 옆에 앉아 있던 권람이 자리를 비워주고 물러섰다.
“부인, 여기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자세히 살펴두어야 할 일이오. 이들이 나의 수족과 진배없으니 곧 나를 대하듯이 하시란 말이오.”
미소를 머금고 좌중을 훑어보았다.
“어느 분의 말씀이라고 거역하겠습니까!”
정희의 대답에 수양대군이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그래요, 우리 모두 힘을 합쳐서 이 사직을 바로 세웁시다.”
시선을 한명회에게 주었다. 지금 수양대군이 이야기한 부분에 대해서 보충설명을 해달라는 듯한 투였다. 그를 간파한 한명회가 머뭇거렸다.
“제가 알기로는 지금 저들의 동태가 심상치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그런 경우라면 이쪽에서 먼저 움직여야하지 않을까요?”
수양의 시선이 아니 모두의 시선이 정희의 입으로 집중되었다.
“저들의 동태라니요!”
바로 답을 하지 않고 좌중을 훑어보았다. 모두의 얼굴에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저들이 지금 안평대군의 집에 불이 나게 드나들면서 조만간에 뭔가 일을 획책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보고!”
보고라는 소리에 모두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희가 수양에게 바짝 다가앉아 귀엣말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수양의 입에서 끄응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모두의 시선이 수양에게 향하는 그 순간 아들 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버님, 소자 장이옵니다.”
“어인 일이냐.”
“아내가 어머니께 전할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며느리가!”
수양에게 눈치를 주었다. 수양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좌우에 있던 한명회와 권람에게 같이 동행할 것을 주문했다. 그러자 단하에 있던 홍윤성이 같이 따라나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곳에 남아서 술을 마시고 있도록 하세요.”
일행이 내당에 도착하자 인수가 안평대군 집의 여종으로 바뀐 무수와 함께 맞이했다.
“저 아이는.....며느리가 반 죽여서 내쳤다는 그 아이 아닌가?”
“그러하옵니다, 아버님. 제 몸종으로 있던 무수라는 아이옵니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저 아이가, 그리고 다른 곳으로 내친 아이가 갑자기 이곳에는 어인 일로 나섰다는 말이냐?”
정희가 좌중을 둘러보고 대신 말을 받았다. 간단하게 저간의 경위, 일부러 안평대군의 집에 세작으로 들여보낸 간략한 경위를 설명했다. 모두의 시선이 정희와 인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수양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듣고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 시어머니에 그 며느리로군!”
수양의 너털웃음과는 달리 다른 사람들은 경악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는 연신 혀를 내둘러댔다.
“그래, 무슨 일인지 고해 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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