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천우 역사장편소설 女帝 정희왕후 (24)

황천우 작가 / 기사승인 : 2013-10-10 01:5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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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란 그러게 되어 질 수 없으니 안타깝구나. 네 아버지께서 아무러면 당신의 동생을 죽이고 싶겠니. 그러나 일이란 형평성이 있어야지.”
장으로부터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수양대군과 대신들이 세운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좌의정 김종서 대감 집을 방문해서 일처리를 마친 수양대군이 궁궐에서 왕의 명령으로 영의정 황보인을 비롯한 대신들을 궁으로 불러들여 한명회가 작성한 생살부에 따라 처리하고 있다고 했다.

거기까지 소식을 전해 듣고 며느리와 함께 뒤뜰로 향했다. 아담하게 만들어 놓은 불상 앞에 서서 예불을 올리기 시작했다.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한 일이란 확실하게 매듭을 짓지 않으면 반드시 역공을 맞게 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정희가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가만히 살해되는 사람들의 면면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김종서 대감’

수양대군과 수하들이 가장 먼저 지목할 정도로 중요한 인물로 가장 중요한 병권을 쥐고 있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반대파의 중심에 위치한 그만 제거하고 나머지 경우는 제거하지 않아도 스스로 붕괴될 정도로 핵심 인물이었다.

그런 연유로 정희가 서방님, 수양대군에게 김종서 대감의 경우는 직접 처리할 것을 요구했었다.

태종임금께서 일처리를 그리 하셨다. 건국할 당시에도 고려의 마지막 충신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처리하셨고 왕자의 난이 일어났을 때 상대방의 수장이었던 정도전 대감도 역시 태종임금께서 처리하셨다.

상대방의 수장을 자신이 처리함으로서 자신의 의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신임을 동시에 받아들인다는 기본적인 상식에 입각한 처사였다.

비록 문신 출신이지만 용맹성을 겸비한 김종서는 함길도 관찰사로서 6진을 개척하여 조선 영토를 두만강까지 확장시킨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에게 선왕인 문종 임금이 자신의 어린 아들 단종을 보필하도록 한 일은 당연한 처사였다.

신하의 입장에서,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사람으로서 왕을 보필하기 위한 그의 움직임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수양대군, 다른 왕실 종친들에게 견제세력으로 등장했다. 그 김종서 대감이 서방님에 의해서 제거되었다고 했다.

한편 생각하면 너무나 아까운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제거대상 제 일호가 되었지만 그런 사람이 수양대군의 편에 서 있다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김종서 대감과 그리 가까이 지내지는 않았지만 그의 처자식들을 생각하면서 ‘나무관세음보살’을 읊조렸다.

영의정 황보인, 병조판서 조극관, 이조판서 민신......
한 사람 한 사람 생각하면서 연신 나무관세음보살을 읊조렸고 곁에서 며느리가 정희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다.

한순간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장이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그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장의 모습을 바라보자 마치 수양대군이 돌아온 듯했다. 급히 장의 손을 잡고 며느리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네 아버지께서는?”

일보다는 서방님의 안위가 우선이었다. 아니, 서방님이 건재하다면 일의 성공을 의미했다.

“어머니, 일이 거의 마무리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어머니께 걱정하지 마시라고 전하라하셔서 내처 달려온 길이에요.”

나이 어린 아들이 대견했다. 그 손을 잡고 며느리, 인수의 손을 함께 잡았다.

“그러면 어느 정도까지 일이 진행되었느냐?”
“제거 대상은 모두 제거한 모양이에요. 그리고 모든 대신들을 근정전 앞에 불러서 일에 대한 자초지종을 설명하시는 장면을 보고 왔어요.”
“나무관세음보살”

몸에 힘이 빠지면서 저절로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제는 한 가지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어린 임금에게 사건의 본질에 대한 설명을 곁들이면 될 터였다. 그러던 순간 갑자기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네 숙부님, 안평대군은 어찌되었냐!”

아들 장의 얼굴이 곤혹스럽게 변해갔다.

“어머니, 지금 군사들이 안평 숙부님을 자택에 연금하고 있어요.”
“자택이라고?”
“예, 어머니.”

안평대군이 안타까웠다.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물론 육진 개척을 위해서 김종서와 함께 참여한 적이 있지만 김종서 등의 대신들과 손을 잡는 일이 아니었다.

“어머님, 안평 숙부님은 어떻게 되시는가요?”

근심으로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인수가 입을 열었다. 대답 대신 다시 나무관세음보살을 읊조렸다.

“그러면 안평 숙부님도요!”

장의 얼굴도 근심으로 들어차기 시작했다. 정희가 장과 며느리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는 가만히 천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동서 정씨 부인의 얼굴이 그려지고 있었다.

“참으로 안타깝구나. 저들의 수괴로 지목된 이상 벗어나기 힘들 것이야.”
“어머니, 안평 숙부님은 살려줄 수 있지 않아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일이란 그러게 되어 질 수 없으니 안타깝구나. 네 아버지께서 아무러면 당신의 동생을 죽이고 싶겠니. 그러나 일이란 형평성이 있어야지.”
“어머니, 형평성이라고 하셨나요?”
“네 숙부께서 상대방의 주동자로 낙인찍혀 있는 마당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제거했는데 단지 동생이라는 사유만으로 제거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어떠하겠니. 일에 대한 정당성이 흐려지고 말지.”

장과 인수의 얼굴이 곤혹스럽게 변해갔다.

“네 아버지께서 사람 몇몇을 제거하려고 일을 벌이신 것이 아니란다. 무너져가는 이 사직을 바로 세우기 위한 차원에서 일을 일으키셨는데 사사로운 인연으로 일을 그르친다면 일을 시작하지 않으니 못하지!”
“그런데 왜 자택에 연금시켜놓고 있어요?”
“너희 아버지께서 배려를 하시는 모양이구나. 당신의 동생으로서 왕족의 예우를 해주려는 모양이야.”

말은 가벼이 하지만 마음은 그야말로 천근만근이었다.
“어머님, 숙모님은요?”

인수가 안평대군의 부인, 정씨 부인을 이야기했다. 무수의 지난 행적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정희가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네 숙모야 어차피 안평대군과 남과 다름없는걸.”

교란

“어머님, 작은 어머니께서 드셨습니다.”

며느리 인수의 목소리였다. 작은 어머니라. 하기야 시아버지의 작은 부인이니 그리 이야기해도 무방할 터였다. 일전에 혜빈에게 할머니라고 불렀던 것처럼 박 씨 부인에게 그리 불러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어서 안으로 모시도록 해라.”

정난이 마무리를 치닫고 있었다. 아울러 정난을 일으킨 표면적인 사유를 차근히 진행해가고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김 상궁으로부터 집현전을 중심으로 수양대군이 정난을 일으킨 본질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는 전갈이 전해졌다.

어떻게 해서든 말이 많은 그들의 입을 막아야했다. 확고하게 자리를 잡지 않은 마당에 궁궐에서 힘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던 그들이 주동이 되어 정난을 비판하고 나온다면 난감한 상황에 처해질 수도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집현전의 학자들 중에 영향력이 강하고 또 으뜸으로 치고 있는 사람이 박 씨 부인의 오라비인 박팽년이었다. 그녀를 통해서 박팽년을 접촉하고 그리고 성삼문, 하위지, 이개 등 집현전의 주요 인사들의 마음을 돌려야할 일이었다.

“마님, 찾아계시옵니까.”

인수와 박 씨 부인이 자리를 잡았다.

“내가 부인하고 긴히 할 이야기가 있어서 이리 급하게 만나자고 했습니다.”
“소인에게요?”
“그렇고말고요.”

옆에 앉아서 시어머니와 박 씨 부인의 하는 양을 바라보던 인수가 생긋이 웃었다.

“어머님, 그런데 어머님은 참으로 대단하세요.”

“뜬금없이 무슨 이야기냐?”
“저의 경우는 제 서방님이 다른 여자를 찾으면 견뎌내지 못할 듯 하온데 어머님께서는......”

순간 박 씨 부인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를 눈치 챈 정희가 며느리 인수에게 무슨 말을 그리하느냐는 듯이 바라보았다. 말을 꺼낸 인수도 아차한 모양으로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이 어미가 네 작은 어머니가 오죽 마음에 들었으면 내가 서둘러서 모셨겠니. 아니 그렇소, 부인.”
박 씨 부인이 차마 그 말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너의 작은 어머니께서는 의술에 상당한 식견까지 가지고 있어서 여러모로 우리에게 도움이 되고 있지 않니.”
“그래요, 어머님. 그러지 않아도 작은 어머니의 도움을 너무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대부인, 마님. 너무 무안하옵니다.”

정희와 인수의 선문답에 어쩔 줄 몰라 하던 박 씨 부인이 기어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사실이 그런 것을 어쩌라고......”

정희가 그리 말을 하다가는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 듯 생각한 모양이었다. 순간적으로 시선을 인수에게 주었다.

“며느리는 모처럼 자리를 함께하는 작은 어머니를 위해서 차와 음식을 내오는 것이 어떻겠니.”
“이미 무수에게 준비하라 일러두었습니다.”

며느리 인수에게는 말이 필요치 않았다. 항상 일을 하면 바로 다음 수순까지 함께 일처리를 하고는 했다. 그를 입증하기라도 하듯 바로 무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수가 문을 열어 상을 받아들고 자리를 잡았다. 상을 가운데에 두고 세 명의 여인이 둘러앉았다. 인수가 급히 차를 따르기 시작했다.

“부인, 아이들은 잘 커가고 있지요?”
“아이들이 제 아버지를 닮아서.”

박 씨 부인이 이야기하다가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정희의 얼굴을 주시했다. 제 아버지, 바로 정희의 서방님 수양대군이었으니 말을 해놓고 그 말을 제대로 했는지 의심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부인, 왜 말을 끝맺지 못하오.”

정희가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는 잔잔하게 말을 꺼냈다.

“......”
“우리 장이가 특히 덕원이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한 번 데리고 함께 오세요.”
“그리하겠습니다, 대부인 마님.”
“어머님, 그런데 작은 어머님은 왜 자꾸 어머님께 대부인 마님, 대부인 마님 그러세요. 그리고 어머님께서도 계속 부인, 부인하고 그러시는데 소녀가 듣기에는 경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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