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천우 역사장편소설 女帝 정희왕후 (28)

황천우 작가 / 기사승인 : 2013-11-12 10:4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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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빈은 누구 사람이오? 바로 전하의 안사람이 아니던가요?”
[일요주간=황천우 작가] “혹시 우리 아들 황(해양대군)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오?”

정희가 정답을 맞추었다는 듯이 웃어넘겼다. 잠시 생각에 골몰하던 수양대군도 멋쩍은 듯이 마주 웃었다.

황의 경우 아직은 너무 어렸으니 약간은 심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차피 한명회 대감과는 함께 가야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때문이었다.

먼저 양녕 백부를 찾아가 일에 대한 전말을 이야기하고 쾌히 승낙을 받아 저녁 무렵에 한명회 대감댁으로 향했다. 그 행차에 둘째 아들 황을 동반했다.

이미 기별을 넣었던 터라 한명회 대감도 일찍 퇴궐해서 부인 민씨와 함께 정희와 황을 맞이했다.

“황아, 매우 중요한 분들이시니 절을 올리도록 하거라.”

방에 들어서서 자리를 잡기도 전에 아들에게 주문했다. 황이 정희의 주문에 따라 큰절로 예의를 올리자 한명회와 부인 민씨가 급히 만류하고 나섰다.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아닙니다, 대감.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으시지요.”

한명회를 바라보면서 잔잔하게 미소를 보냈다. 정희의 미소를 바라보자 민씨 부인이 사건의 전말을 알겠다는 듯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미 민씨 부인에게는 수양대군이 고명 사은사로 명나라에 가 있을 때 며느리 인수와 함께 방문해서 정희 자신의 의도를 흘린 적이 있었다.

두 여인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던 한명회도 그 뜻을 어렵지 않게 이해하겠다는 듯이 황의 인사에 답했다.

“대감께서도 저의 아들 황에게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영상 부인, 무슨 말씀을......오히려 저희들이......”

한명회의 얼굴로 미소가 번져가고 있었다.

“황도 한 대감님께 각별히 신경을 쓰도록 하고, 그리고 부인. 이 아이를 잠시 맡겨둘 만한 곳이 없는지요.”

민씨 부인이 급히 일어나서 황을 대동하고 문을 열어 집사를 불러 안내를 지시하고는 자리를 잡았다. 내심 민씨 부인이 그 일을 직접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한명회 대감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터였다. 그렇다고 그러한 사실을 직접 밝히지는 못할 일이었다. 그냥 셋이서 대화를 이끌어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얼굴을 편안히 했다.

정희가 어린 임금과 왕비와 만나 나누었던 이야기를 먼저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듣는 한명회의 태도가 사뭇 진지했다. 이미 그러한 일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자신도 그예 고민을 하고 있다는 투였다.

“그런데요, 대감. 차마 제 입으로 그리하시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습디다. 너무 속이 보인다 싶을 정도로 아니다 싶었지요.”
“하오면 소인이 그 짐을 떠맡아 달라 이 말씀 아니십니까!”

답을 하지 않고 가만히 한명회 그리고 민씨 부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민씨 부인의 얼굴이 곤혹스럽다는 듯이 변해갔다.

“하기야 영상부인께서 그리하실 수 없는 노릇이지요. 중이 제 머리 깍지 못한다고 당사자가 그리하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말고요.”
“그러면 대감께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습니까?”

답답한지 민씨 부인이 말문을 열었다.

“이미 결론은 정해져 있는 일이요. 단지 모양새 있게 방법을 모색해서 그리 몰고 가자는 이야기지요.”
“결론이라 하시면?”

두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가만히 둘의 대화를 바라보았다. 한명회가 자신의 집사람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얼굴을 한쪽으로 돌렸다가는 다시 자세를 바로 했다.

“주상 전하와 왕비께서 공개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셨다면 일은 이미 성사 된 거나 진배없다 이 말이오. 단지 모양새 있게 왕위를 이어받아야 명분이 선다는 이야기지요. 그런 연유로 대부인께서 말씀을 건네셨고 말입니다.”
“대감 말씀이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 가지 제안을, 제안이라기보다는 부탁에 가까운데, 드리고 싶군요.”
“말씀하시지요, 대부인.”
“저와 수양 대군은 명분, 상당군 대감과 여러 대감들은 실리를 선택하도록 함이 어떠하겠습니까?”
“명분과 실리요?”

민 씨 부인의 답이었다. 한명회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그 답을 알았다는 듯이 정희에게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결국 한명회 등이 채택한 방식은 수양대군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외부의 요인으로 어린 임금 스스로가 물러나는 방식을 취했다.

금성대군 등 왕족들과 일부 대신들을 유배 보내자 위협을 느낀 어린 임금과 왕비는 스스로 상왕으로 물러나 수강궁으로 향했다.

왕비로서의 하루가 너무 고단했다. 근정전 뜰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하고 하루 종일 내전에서 축하객들을 맞이하고, 또 저녁에는 연회에 참석하고......몸이 완전히 파김치가 되서야 며느리 인수를 대동하고 내전으로 들었다. 인수와 잠시 한담을 나누며 쉬고 있는 중에 김 상궁이 전갈을 가지고 왔다.

“중전 마마, 상감마마께서 이리 오고 계시다는 전갈입니다.”
“전하께서?”

서방님, 세조는 지금 술독에 빠져있을 터였다. 의리를 중시여기는 성격으로 자신을 도와 오늘을 있게 한 사람들과 밤을 새워 술을 마실 작정을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서방님이 무슨 일로 내전을 든다는 말인가. 자신의 나이 벌써 40을 바라보고 있는데.
정희의 표정과는 달리 인수의 얼굴은 미소로 가득했다.

“왜 갑자기 이곳에 오신다는 말인가?”
“어머님, 아니 어마마마. 아버님께서, 아니지 아바마마께서 오늘 감회가 별다르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며느리 인수가 호칭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며늘 아이야, 그런 것이지.”
“부인!”

인수가 대답 대신 미소를 보내는 순간 서방님이 문밖에서 큰소리로 부르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듣자 기겁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 가까이 다가섰다. 바로 문이 열리고 술에 취한 서방님이 얼굴이 불콰해가지고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혼자만이 아니었다. 한명회, 권람, 신숙주, 홍윤성 등 낯이 익은 한 떼의 무리들이 함께 있었다. 서방님이 일행들에게 모두 문밖에서 대기하라 하고는 성큼 성큼 방으로 들어왔다.

“전하, 어인 일이십니까!”
“아바마마, 감축드리옵니다.”

정희를 바라보던 시선이 인수에게 향했고 인수가 공손히 시아버지께 고개를 숙였다.

“며느리도 함께 있었어요, 그래. 일단 부인, 먼저 자리에 앉아요.”

의당 서방님이 먼저 자리에 앉아야할 일이었다. 그런데 자신에게 한사코 먼저 자리에 앉을 것을 주문하고 있었다. 인수를 바라보았다. 인수도 그 의도를 모르겠다는 듯이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부인, 빨리 앉으라니까요.”

세조의 손이 정희의 어깨를 잡았다. 마치 강제로 앉힐 태세였다. 도리가 없다고 판단한 정희가 엉거주춤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 순간 서방님이 앞으로 쓰러지는가 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몸을 앞으로 기울인 서방님이 그대로 큰 절을 올리고 있었다. 급하게 몸을 움직여 세조의 소매를 잡았다.

“전하, 왜 이러십니까!”
“아니오, 부인. 내가 부인에게 절을 하려고 일부러 들렀소. 그동안 너무 고생 했소. 그렇지, 우리 며느리도
고생 많이 했지.”
“아바마마!”

자세를 일으킨 세조가 며느리 인수의 손을 잡았다.

“우리 며느리도 너무 많은 고생을 했어.”

서방님의 하는 양을 바라보았다. 마냥 술이 취한 것만은 아닌 듯했다. 진정으로 자신의 지난날에 대한 공과를 그리고 내조를 인정하고 있는 듯했다.

갑자기 눈에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 눈으로 인수의 손을 잡고 자신을 바라보는 제왕, 서방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치 첫날밤에 자신들의 방을 훔쳐보았듯 문틈으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 찾아들고 있었다.

근빈을 살려라

궁궐안이 저자거리마냥 어수선했다. 며칠 동안 피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사정전에는 연일 국문으로 살이 타는 냄새며 비명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었다.

단종이 상왕으로 물러나자 성삼문, 박팽년 등 집현전 학자들을 중심으로 세조를 제거하고 상왕을 임금으로 복위시키기 위한 사건이 포착되어 그예 일대 회오리가 일고 있었다.

김 상궁과 나이 어린 최 상궁을 통해서 시시각각 사건의 전모가 전해지고 있었다. 그들을 통해서 전달되는 일의 규모가 의외로 크게 번져나갔다.

단순히 집현전 학자 몇몇이 아니었다. 그들과 관련한 모든 사람들이 줄줄이 연루되어 그 규모가 대단하게 불어나고 있었다.

밤이 이슥한 시간에 세자 빈 인수와 근빈 박 씨가 찾아왔다. 정희가 궁에 들어올 때 박 씨 부인도 함께 데리고 들어왔다. 아울러 자신이 왕비에 오르자 박 씨 부인도 빈으로 책봉했다.

지난 정난 시 보여준 그녀의 행동에 따른 당연한 보상이었다. 다가서는 근빈의 표정이 말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사색이 되어있었다.

“근빈, 무슨 걱정 있어요? 안색이 말이 아니에요.”

근빈이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울먹거리고 있었다.

“어마마마, 작은 어머니께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변 때문에 이리도 마음고생을 하시는 모양입니다.”
“이번 변 때문이라니!”
“이번 변에 작은 어머니의 아버님이신 박중림 대감과 오라버니인 박팽년 대감이 깊숙이 연루되어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정희의 냉담한 말투에 근빈이나 인수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근빈, 그 문제로 그리 심려를 한다는 말이에요?”
“네, 마마. 아니, 형님.”

근빈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하자 정희가 가느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근빈은 누구 사람이오? 바로 전하의 안사람이 아니던가요?”
“그러하옵니다.”
“그래서 나의 요구에 순순히 응해주었고.”
“형님 말씀이 옳습니다.”

근빈의 목소리가 생기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변과 무슨 연고가 있다고 그리 걱정 하시는가!”

목소리뿐만이 아니라 얼굴에도 생기가 찾아들고 있었다.

“며늘 아이야, 네 생각은 어떠냐?”
“어마마마 말씀이 백번 지당하옵니다. 여필종부라고 여자란 시집을 가면 오로지 지아비를 섬겨야하는 법이고 또한 친정아버지와 오라버니가 변에 연루가 되었다고 해서 그 누이를 처벌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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