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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살 듯하옵니다. 그런데......”
살아나던 근빈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런데라니?”
“어마마마, 일부에서 작은어머니의 처벌도 불가피하다고 이야기하는 모양이에요.”
“그것이 무슨 말인가!”
정희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작은 어머니께서 어마마마께 상세하게 말씀 드려보세요.”
“자세하지는 않으나 궁녀들이 대신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은 모양인데 저와 관련한 이야기가 나왔었다고 해요.”
“어느 방자한 것이 그런 이야기를!”
정희가 어지간한 일로는 노기를 드러내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 부분은 해도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근빈이 누구인가. 정희가 자신의 남편 세조를 위해 친히 골라 뽑은 여인이 아닌가. 아울러 지금의 자리를 이루는데 있어서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적지 않은 공헌을 한 여인이 아니던가.
“어마마마, 궁녀들 입에 나돌 정도면 일이 쉽지는 않을 듯하옵니다. 어마마마께서 나서주셔야 할 듯하옵니다.”
“근빈, 최근에 친정 식구들 만난 적이 있으신가?”
근빈에게 책잡힐 일이 있는지 먼저 확인해보아야 했다. 만에 하나 자신이 모르는 경우가 있다면 일을 추진함에 있어 낭패를 당할 수 있었다. 정희의 질문에 근빈이 가벼이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마마, 아버님과 오라버니께서 서방님께서 보위에 오르신 이후 저를 자식, 동생은커녕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저를 돌 보듯이 했고요. 그러니 저로서는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었지요.”
근빈의 얼굴을 바라보고 가만히 생각에 몰두했다. 그리고는 김 상궁을 불러 은밀하게 지시를 내렸다.
“김 상궁은 지금 곧 좌승지 한명회 대감을 불러오도록 하게.”
정희의 명을 받은 김 상궁이 밖으로 나가고 오래 지나지 않아 한명회 대감이 들어왔다.
근빈을 바라보는 한명회의 표정이 야릇했다.
“좌승지 대감, 지금 전하께서 어디에 계십니까?”
“전하께서는 지금 옥에 계시옵니다.”
“옥이라니요?”
“전하께서 어떻게 해서든 형조참판을 살려보려고, 그를 회유하러 술과 음식을 가지고 옥으로 가셨습니다.”
“전하께서, 몸소 말이요?”
“그러하옵니다, 마마.”
“그러면 박팽년 대감은 무사할 것이라 이 말이지요?”
한명회의 얼굴이 곤혹스럽게 변해갔다.
“전하께서 그리도 공을 들이고 있건만 형조참판이 워낙 대쪽이라 일이 잘 안 풀리는 모양입니다만......”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그 대쪽 같은 사람이 자신만 혼자 살아남는 일을 견뎌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더 강성으로 대처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전하를 나리라고 부르고 있고 또 전하께서 내리는 음식을 일절 마다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 연유로 죽음을 받아들이겠다 이런 각오인 모양입니다.”
“허 허, 그것 참.”
실로 난감한 문제였다. 박팽년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아비 박중림이 서방님이 보위에 앉자 건강을 구실로 형조판서의 직을 내놓고 낙향할 정도로 세조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 박팽년이 세조의 회유에 넘어올 경우는 없어보였다.
“좌승지 대감, 그러면 변에 관련된 사람들은 어떻게 처리한다고 하십니까?”
한명회가 근빈을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저......”
근빈이 한명회의 태도로 보아 이어서 무슨 말이 이어질지 예측 되는 지 얼굴색이 사색으로 변해갔다.
“대감!”
“말씀 올리겠습니다.”
일순간 방안에 고요함이 흘렀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국문이 끝나는 대로 당사자는 물론 친자들의 경우 모조리 교형에 처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그들과 관련 있는 사람들의 경우 어떤 식으로든 처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정희의 입에서 본능적으로 흘러나왔다. 뒤를 이어 인수가 따라했다. 근빈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사리지고 있었다. 정희가 한명회 대감을 바라보면서 지그시 어금니를 깨물었다.
“좌승지 대감.”
“예, 중전 마마.”
“오늘 저녁 전하를 이리 모셔주세요.”
한명회가 정희의 얼굴을 빤히 주시했다.
“그러지 않아도 전하께서 이리로 오실 것 같습니다만.”
서방님의 심기가 상당히 불편하다는 사실을 달리 표현하고 있었다. 언제고 심기가 불편하면 술을 한잔 걸치고 정희를 찾았던 터였다.
“그래요, 내가 이따가 전하와 담판을 짓도록 할 테니 모두 물러가 주세요. 그리고 좌승지 대감께서는 다른 대감들에게 다른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 주세요.”
먼저 한명회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를 이어 방을 나서는 근빈의 얼굴에 생기가 보이고 있었다. 그런 근빈과 며느리 인수에게 미소를 보냈다.
모두가 자리를 물리고 나자 김 상궁에게 간단한 음식과 술을 준비시키고 거울을 바라보며 정성들여 몸을 치장하기 시작했다. 40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모습이 언뜻 언뜻 비치는 듯했다. 그러나 아직도 마음은 한창 시절이었다. 그 생각을 하면서 거울을 향해 미소를 던졌다.
서방님 세조의 경우는 생각 할수록 묘한 사람이었다. 등을 떠밀어 어린 궁녀들과 합방을 유도하고는 했지만 항상 그는 멀리했다. 그저 정희 자신과 근빈을 오가는 일이 전부였다.
물론 간혹 술을 마시는 과정에서 궁녀들과 함께하는 일은 있었으나 여자와 잠자리에 들고자 할 경우에는 반드시 자신이나 근빈을 찾았다. 특히 심기가 불편해서 술을 마시는 경우에는 반드시 정희를 찾았다.
치장을 마치고 기다리기를 잠시 서방님이 오고 있다는 기별이 전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김 상궁에게 준비토록 한 음식과 술을 들여오도록 하고 문 앞으로 가서 부복했다. 영문을 모르는 김 상궁과 최 상궁의 시선이 민망해서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중전마마, 상감마마께서 이곳에 도달하고 계십니다. 맞으실 준비를 하셔야지요.”
“되었으니 자네들도 물러가 있게.”
상궁들이 물러나자 바로 내전의 문이 열렸다. 방으로 들어선 세조의 눈에 다소곳하게 머리를 숙이고 부복하고 있는 정희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 모습에 세조의 술이 깨는 모양이었다. 급히 자세를 낮추고 정희의 소매를 잡았다.
“부인, 왜 이러시오!”
“전하, 오늘은 제가 전하께 절을 올려야할 듯합니다.”
“절을요!”
“그래요, 절 말이에요.”
세조가 정희의 얼굴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부인, 내게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요?”
“그렇습니다. 그러니 절을 받으십시오.”
“그렇다면 그래봅시다.”
짤막하게 이야기를 마친 세조가 자리에 덜퍼덕 주저앉자 아주 조심스럽게 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윽한 시선으로 정희가 절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세조가 절이 채 끝마치지 못한 시점에서 정희를 일으켜 세워 음식이 놓인 상 앞으로 다가갔다.
“부인, 부인이 곧 나인 것을 무슨 부탁을 하신다 하는지요.”
“너무나 황공하옵니다, 전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에서 그리 답을 했다.
“부인, 낯간지럽소. 우리 그냥 술이나 한잔 합시다.”
술병을 들어 세조의 잔을 채웠다. 세조가 급히 잔을 비우고는 아직도 정희의 손에 들려있는 술병을 빼앗다시피 해서 잔을 채워 정희에게 건넸다. 잔을 받아 상위에 올려놓고 젓가락을 들어 세조의 안주를 챙겼다.
“부인도 한잔 들고 그 잔을 내게 주시오. 그러면 내가 안주를 받아먹을 것이요.”
잔을 들어 마시는 시늉을 하고는 세조의 입에 안주를 넣어주었다. 안주를 받아먹은 세조의 시선이 정희의 온몸을 훑기 시작했다.
“너무 짓궂으십니다.”
“아니오, 부인. 부인을 바라보면 이제는 완전히 성숙한 여인의 모습이 연상된다는 말이오. 너무 보기 좋소. 그건 그렇고, 부탁이라니요.”
“전하, 근빈 문제 때문입니다. 근빈의 아버지와 오라비가 이번 변에 관련되었다고 저도 어찌될까보아 사색이 되어있기에 그 문제를 부탁해보고자 이럽니다.”
세조가 정희의 앞에 놓인 잔을 들어 단번에 비워냈다. 급히 안주를 챙겨 세조에게 건네자 가벼이 손사래를 쳤다.
“내가 그러지 않아도 그 문제로 이리 고민하고 있소. 근빈의 오라비인 박팽년과 지금까지 함께하다 오는 길이요.”
다시 안주를 세조의 입 가까이 가져갔다.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았다.
“근빈을 떠나서 박팽년은 살리고 싶은데......이 사람이 도대체 말을 들어 먹지를 않아요. 오로지 그 놈의 절개를 지킨다고 저러고 있으니......”
“전하, 그러면 어찌 되는가요?”
“전혀 가망이 없어요, 가망이. 그리고 박팽년이 조만간에 죽을 것 같아. 그 모진 고문 속에서도 그 놈의 절개를 강조하다보니 더 많은 고문이 가해지고.......옥에서 죽을 것 같아요. 차라리 그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지만......”
세조가 마신 술의 양이 만만치 않은 듯했다. 스스로 병을 들어 자신의 잔을 채우려는 행위를 제지하고 정희가 공손하게 술을 따랐다.
“전하, 저들이 무엇 때문에 역적질을 모의했습니까?”
화두를 잠시 바꾸어야할 듯했다.
“뭐긴 뭡니까! 다 자기들 실속 챙기고자 한 짓이지요. 내가 왕의 힘을 강화시키니까 자신들의 힘이 약해지고 그러니까 자신들이 다루기 녹녹한 상왕을 복위시켜서 다시 조정을 저들의 손아귀에 움켜잡자 이 말 아니오. 그러니 역적질이지요.”
한편 생각하면 상왕 복위를 구실로 내걸고 자신들이 권력을 장악하고자 한 명백한 계유정난의 한 행태였다.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가볍게 치를 떨었다.
만약에 그들의 역적질이 성공했다면 자신의 서방님은 물론이고 아들, 손자까지 제거될 판이었다.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었다. 가만히 ‘나무관세음보살’을 읊조렸다.
“근빈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세요. 설령 내가 내치더라도 부인이 허락하지 않을 거 아니오.”
“당연하옵니다, 전하.”
세조의 몸이 정희에게 기울었다. 묘하게도 가슴이 뭉클거리는 기분이 일어났다.
“전하, 내일 저녁은 반드시 근빈과 함께 해주세요.”
세조가 얼굴을 정희의 가슴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부인의 명이라면 당연히 그리 해야지요.”
가슴에 서방님의 강한 입김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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