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천우 역사장편소설 女帝 정희왕후 (30)

황천우 작가 / 기사승인 : 2013-12-03 11: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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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수인 현덕왕후가 꿈에 나타나서는 우리 아들 장이를 죽이는 꿈이지 무엇입니까!”
[일요주간=황천우 작가] 이별

봄이 저만치 물러가고 있었다. 정원에 있는 식물들이 한껏 초록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서서히 여름이 다가오자 한낮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너무나 무료하고 쓸쓸하다는 생각이 찾아 들어왔다. 그러다가 문득 그 정원을 거닐었을 시어머니를 생각했다.

그분에 비하면 정희 자신은 사치였다. 애지중지 자신을 아끼는 서방님이 있고 또 자신을 하늘 같이 떠받드는 며느리 인수가 지척에 있으니 말이다. 생각이 문득 거기까지 이르자 김 상궁에게 며느리 인수를 불러오라 시켰다. 고부간에 한낮의 무료함을 해소해보고자 함이었다.

연일 조정에서 중신들이 상왕복위 사건의 책임을 물어 상왕도 처벌해야 한다는 문제로 시끄러웠다. 어린 상왕이 무엇을 그리했을까마는 대신들의 경우에서 바라보면 그 사건의 핵심에 상왕이 자리하고 있었다.

상왕이 궁궐과 가까이 존재함으로써 그 사건이 일어났고 그런 차원에서 상왕을 궁궐 밖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 한양을 벗어난 곳으로 보내자는 주장이었다.

정희가 상왕복위 사건을 가만히 되짚어 보았다. 물론 서방님의 설명도 있었지만 너무나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그 사건이 성공했을 경우 상왕에게 돌아가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었다.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어차피 임금의 자리에서 벗어나 있으나 임금의 자리에서 몇몇 대신들에게 놀아나는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일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

죽은 자들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상왕이란 존재는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상왕이 상왕복위 사건의 가장 큰 희생자가 될 수 있었다.

“할마마마!”

문득 고개를 돌리자 손자 정의 손을 잡고 있는, 배가 부른 인수의 모습이 시선에 들어왔다.

“우리 정이 왔구나. 날씨가 너무 좋아서 할머니가 정이와 함께 산책 좀 하려고 하는데 우리 정이는 어떤가.”

말을 그리해놓고 손자 정을 안으면서 며느리 인수의 배를 바라보았다. 산만큼 부풀어 오른 배의 상태로 보아 힘든 산책은 어림도 없어보였다. 인수가 그를 감지 한 모양이었다.

“어마마마, 날씨가 너무 화창해요. 천천히 산책하면 좋을 듯해요.”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있는 며느리를 바라보며 가만히 웃었다.

“가마를 대령하라고 할까?”

그 말에 인수가 기겁하듯 한걸음 물러섰다.

“마마, 아니 되옵니다.”
“그 몸으로 산책이 가능 하겠느냐? 정과 함께 숲속으로 들어가 볼까 하는데 말이야.”
“궁궐의 숲은 어디고 다 갈 수 있지요.”
“그래? 그러면 우리 천천히 움직여보게나. 그리고 김 상궁!”
“예, 중전마마.”
“간단히 음식 준비해서 따르게.”

김 상궁이 정희의 명을 받고 뒤로 물러날 즈음 최 상궁이 급히 그리로 다가오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온 최 상궁이 김 상궁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최 상궁, 중전 마마께 이를 말씀이 있으면 어서 이르시게.”

차림들로 보아 그들이 왜 그 시간에 그곳에 있는지 아는 모양이었다. 최 상궁이 정희와 인수의 얼굴을 한 번 더 바라보고는 힘들게 입을 열었다.

“중전마마, 지금 의덕왕대비께서 마마를 뵙고자 이리로 오시고 계시옵니다.”
“의덕왕대비가!”

올 것이 다가오고 있었다. 상왕을 내치자는 신하들의 주장은 어느 정도 묵살해버릴 수 있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종친의 가장 어른이신 양녕 백부까지 합세했다고 했다. 그런 경우라면 심도 있게 생각해볼 일이었다.

며느리 인수가 불안한 표정으로 정희를 바라보았다. 정희의 굳어진 표정으로 보아 모처럼의 외출이 망가지고 있었다. 그를 감지했는지 최 상궁은 최 상궁대로 김 상궁은 김 상궁대로 표정이 곤혹스럽게 변해갔다.

“정아, 이 할머니는 잠시 후에 따라갈 테니 어머니와 함께 먼저 가거라. 그리고 어미야, 진짜 괜찮겠니?”

언제 얼굴이 굳었었냐는 듯이 얼굴을 평안히 바꾸고 인수를 바라보았다.

“어마마마, 저는 괜찮습니다만......”
“그러면 김 상궁은 내가 이야기한대로 조처를 취하게. 최 상궁은 대비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인수가 정의 손을 잡고 고개를 돌렸다.

“할머니, 빨리 오셔야 돼요.”

그 손자에게 미소를 보내고는 최상궁과 함께 내전으로 걸음을 옮겼다. 송현수 대감의 부인을 생각했다. 마치 지금의 현실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걱정을 하고 혼인이 있기 전에 자신의 집안을 살려달라고 했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작금의 형세는 시작에 불과했다. 혹여나 그녀의 말대로 송 대감 문중이 형체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으리란 생각이 일어났다.

잠시 치를 떨었다. 그동안에도 너무나 희생이 많았다. 왜 그런 지경에 이르렀을까하는 아련한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단추가 잘못 꿰어져있었다는 데에 문제의 본질이 있었다.

세종 임금께서 너무나 안일하게 생각하셨다. 당신은 선한 역할만 하고 가셨다. 충분히 앞날을 예견하시고도 짐을 당신의 아들인 세조에게 떠넘기셨다.

“중전마마, 의덕왕대비께서 납시었습니다.”

문을 들어서는 의덕왕대비의 아직도 만개하지 않은 꽃 같은 얼굴에 근심이 가득 배어있었다.

“숙모님!”

정희의 존재를 확인한 의덕왕대비가 그대로 방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급히 최 상궁이 다가서서 의덕왕대비를 일으켜 세웠다. 정희가 물끄러미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비, 좌정하시지요.”

힘들게 자리를 잡고 있는 의덕왕대비의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어 화장을 어지러이 지우고 있었다.

“숙모님, 너무나 무서워요.”

가만히 다가가서는 의덕왕대비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의덕왕대비가 정희의 가슴으로 무너져 내렸고 그 가슴이 흐느낌의 소리로 요동치고 있었다.

“많이 힘들 것입니다. 대비.”

품안에 안긴 대비의 어깨를 가벼이 만져주자 흐느낌이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다. 잠시 후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얼굴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숙모님, 어떻게 해야 하나요?”

대비의 화장이 지워진 맨 얼굴이 더욱 보드랍게 보였다.
“대비, 조정 대신들의 권고를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이외의 대답인지 대비의 얼굴이 한쪽으로 갸우뚱 거렸다. 마치 자신이 절대 듣지 않기를 바랐던 말이 흘러 나왔다는 반응이었다.

“대비, 멀리 바라보세요.”
“멀리라고 하시면요.”
“대비, 주상이나 저나 상왕께서 권력과는 담쌓고 지내고자 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정 대신들의 뜻을 따르시라는 이야기입니다.”
“하오면.”
“상왕께서 궁궐 내에 계시면서 자꾸 옛 신하들의 감정을 자극하여 또 이전과 같은 변란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하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서 그들의 시선에서 멀어지라는 말씀이신지요.”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상왕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지요. 그러나 상왕이 궁궐 내에 존재함으로 인해서 자꾸만 일을 도모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나지요. 그런 일이 자꾸 발생되다보면 일의 종말이 어찌 되어가겠습니까?”

그 말에 이르자 대비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숙모님 말씀에 따르면 달리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군요.”
“대비, 우리 현명하게 바라봅시다. 상왕을 바라보는 여러 신하들이 그들의 생각을 바꿀 때까지 서로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이로울 듯합니다.”
“그러면 숙모님, 저도 상왕과 함께 가도록 해주세요.”

‘상왕과 함께라.’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린 상왕 부부의 간절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아련한 마음이 일어났다.

“숙모님, 상왕과 헤어져서는 하루도 살 수 없어요.”
“그러시면 아니 됩니다. 지금 대신들이 상왕복위 사건의 핵심으로 상왕을 지목하고 있는 의미를 모르겠습니까?”

바로 죄인, 그것도 중죄인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대비가 다시 움찔거렸다.

“대비, 잠시 떨어져서 살 생각하세요. 그편이 지금은 힘들겠으나 훗날을 위해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숙모님, 그러면 우리 상왕을 후에 다시 뵈올 수 있는지요?”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었다. 현재 상태에서 그대로 유지된다면 가능한 일이나 또 다른 무리가 변을 도모하고 만에 하나 그 변이 성공한다고 하면 정희 자신의 주위의 목숨이 달려있는 문제였다.

“당연히 그리 돼야지요. 그럼요, 그렇고말고요.”

그리 말을 하는 정희의 목구멍이 아니 가슴이 메어왔다. 다시 한 번 현실의 비극을 초래한 세종임금에 대한 원망이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원한

잠결에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꿈이려니 했다. 그런데 옆에서 누군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뜨고 시선을 돌리자 소리를 지른 사람이 서방님이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급히 몸을 일으켰다.

“전하, 왜 그래요!”

아무런 대답이 없자 자리에서 일어나 초롱불을 켜고 급히 세조에게 다가갔다. 앞으로 숙인 얼굴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전하!”

눈을 뜬 세조가 고개를 들어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손으로 세조의 몸을 어루만지자 얼굴뿐만 아니라 등이며 목덜미까지 땀으로 흥건했다.

“전하, 무슨 몹쓸 꿈을 꾸셨기에......”

그제야 세조가 정신이 들어왔는지 찬찬히 정희의 얼굴을 확인하고 가느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희가 급히 머리맡에 놓여있는 물을 따라 세조에게 권했다. 물을 벌컥벌컥 들이 마신 세조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전하!”

세조의 눈동자에 서서히 초점이 잡혀가고 있었다.

“참 그거 고약한 꿈이네......”
“무슨 꿈을 꾸셨는데요?”
“형수인 현덕왕후가 꿈에 나타나서는 우리 아들 장이를 죽이는 꿈이지 무엇입니까!”
“나무아미타불!”

정희의 입에서 본능적으로 튀어나왔다.

“자신의 아들 노산군을 영월 땅으로 유배 보낸 일에 대해 앙갚음하려는 모양 같은데 이것 참 환장하겠구려. 그리고 이번뿐만이 아니라오. 몇 번이나 같은 꿈을 꾸고 있어요.”
“전하께서 너무 마음을 쓰시니까 그런 꿈이 꾸어지는 것 아니겠어요?”

세조의 한숨소리가 방안을 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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