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천우 역사장편소설 女帝 정희왕후 (31)

황천우 작가 / 기사승인 : 2013-12-10 11: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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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못해요. 더 이상 죽일 수 없어요. 그렇게 죽이고 싶거든 제 놈들이 죽일 것이지.”
[일요주간=황천우 작가] “아마도 그런가 보오.”

말은 간단히 했지만 그리 편해 보이지 않았다.

“마음 편안히 하시고 조금 더 누워계시지요.”

마음이 다소 안정되는지 세조가 찬찬히 자리에 누워 눈을 감자 초롱불을 끄고 눈을 감았다.

“마마, 김 상궁입니다. 기침하셨습니까!”

막 잠에 빠져 들려고 하는 순간 김 상궁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덜컥하는 두려움이 찾아들었다.

“무슨 일인가!”
“마마, 세자저하께서...... 세자저하께서......”
“세자가 어떻게 되었다는 말인가!”
세조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고성을 터트렸다.
“세자저하께서 갑자기 신열을 일으키시며 정신을 놓으셨다고 합니다.”
“뭐라고!”

세조와 정희가 동시에 반응하면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상태를 상대의 얼굴에서 그대로 읽을 수 있었다. 전광석화보다 더 빠르게 움직였다. 의관을 정제하고 말 겨를이 없었다. 되는 대로 주어 입고는 바로 문을 박차고 나섰다.

“어서 동궁전으로 가도록 하라!”

신발을 제대로 신었는지 또 머리는 제대로 치장했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건강하던 세자가 이 무슨 변고란 말인가......”

누구에게 답하라고 한 말이 아니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그럴 수는 없었다. 거기에 더하여 세조가 불길한 꿈까지 꾸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동궁전에 도착하자 벌써 내의원들이 세자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고 그 옆에 며느리 인수가 눈물을 흘리며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어마마마!”
“그래,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둘째 아들 혈(자산군)을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몸도 제대로 풀지 못한 인수의 얼굴이 그야말로 처량해 보이기 이를 데 없었다.

“어제 침소에 들기 전까지도 너무나 생기가 넘쳐있었는데 갑자기......”
“내의원은 어서 고해 보거라!”

세조가 내의원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전하, 좀 더 진찰을 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냐, 냉큼 알아내지 못하겠느냐!”

세조의 고성에 내의원들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그들의 얼굴 마냥 아들 장의 얼굴도 핏기가 없었다.

세조와 정희가 장의 얼굴에 손을 대보았다. 핏기만 없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느껴져야 할 온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아들 장의 얼굴마냥 세조의 얼굴, 정희의 얼굴도 변해갔다. 아니 세조의 얼굴에서는 강렬한 핏기가 달구어지기 시작했다. 굵은 힘줄이 얼굴 곳곳에서 용트림을 치고 있었고 금방이라도 폭발 할 듯했다. 세자의 얼굴을 바라보던 세조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내 이 찢어 죽일 년을!”

세조의 목소리가 오싹할 정도로 날카로웠다. 그 한마디를 내뱉고는 빠르게 몸을 일으켜서 밖으로 나갔다. 인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번개처럼 밖으로 나가는 시아버지 세조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마마마, 아바마마께서......”
“나무관세음 보살!”

가느다랗게 한숨을 내쉬고 며느리에게 방금 전의 일을 설명해주자 인수 역시 경악스럽다는 표정으로 정희의 얼굴을 주시했다.

도저히 납득되지 않았다. 세조가 생각하고 있는 원인 외에는 그리 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병이라면 징후가 있고 그 절차가 있을 터였다. 그러나 모든 절차를 생략하고 바로 그 지경에 이르렀으니 달리 생각할 도리가 없었다. 정희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문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김 상궁은 어서 예불 준비를 하라 이르게!”

부처님께 의지할 일이었다. 그를 위해 문을 나서자 최 상궁이 급하게 다가왔다.

“마마!”
“무슨 일이요, 최 상궁!”
“상감마마께서......”
“전하께서?”
“예, 마마. 지금 상감마마께서 현덕왕후의 묘를 파헤치고 현덕왕후의 시신을.....”

최 상궁이 그 뒤의 이야기는 차마 말을 할 수 없는지 그저 사색이 되어 떨기만 하고 있었다.

‘나무관세음보살’

근정전을 바라보았다. 지금 서방님은 세자가 갑작스레 쓰러진 일이 바로 현덕왕후의 살을 맞았고, 회생할 가망이 없다는 판단을 내린 모양이라 생각했다.

희생의 축

어렵사리 낳은 아들 장을 잃은 슬픔은 말로 형언하기 힘들 정도였다. 죽은 아들 장이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남편이 요절하고만 상황을 바라보는, 아들만큼 사랑하는 며느리 인수의 심정을 들여다보는 그 마음 역시 편치 않았다.

그 며느리에게 몹쓸 일을 해야 했다. 세자인 장이 죽은 관계로 인수나 손자들이 모두 궁에서 나가 사가에서 지내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정희가 세조에게 간곡하게 부탁했다. 며느리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손자 월산군은 궁에서 직접 키우겠다고 말이다. 세조가 처음에는 궁궐의 법도를 들어 난색을 표했다. 그러자 의경세자의 출생을 예로 들었다.

아들 장의 경우는 시어머니 소헌왕후의 배려로 궁궐에서 출산했었다. 그도 궁궐의 법도가 아니었다. 결국 세조가 정희의 의사에 따르기로 했다.

인수의 큰 아들, 자신의 큰 손자 정을 궁에서 키우기로 작정한 일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사랑하는 며느리 인수에게 아들을 빼앗음이 아니고 아들을 빌미로 궁궐에 자주 출입하라는 의도에서였다.

“어미야!”
“네, 어마마마!”
“마음 굳게 먹도록 하거라!”
“마마, 이 죄인을 용서하십시오!”

어린 아들 월산군은 정희의 손을 잡고, 갓 태어난 혈(자산군)은 인수의 품에 안겨 있었다.

“죄인은 바로 나와 너희 시아버지인 것을, 나무관세음보살.”
“마마!”

기어코 인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영문을 모르는 월산군이 눈동자를 굴리며 제 어머니를 주시했다.

“월산군은 내가 궁궐에서 키우려고 하는데 어미의 생각은 어떠냐.”
“어마마마의 깊은 뜻을 충분히 헤아리고 있습니다, 마마.”

인수가 힘들게 말을 마치고는 정희에게 상반신을 기울였다.

“지금 당장은 힘이 들더라도 조금만 참도록 하거라. 언제고 다시 돌아올 일이야, 암 그렇고말고.”

자신의 몸으로 기운 인수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고 있었다. 그리고는 인수의 품에 있는 젖먹이 혈을 안아들었다.

“우리 혈이 어머니를 잘 보살펴드리도록 하게나.”

아들의 장례를 치르고 나자 상황이 급변하고 있었다. 마치 세자의 죽음이 기폭제가 된 듯 했다. 일단의 무리들이 마치 그것 보아란 듯이 준동하고 있었다. 장의 죽음이 수양대군의 옳지 못한 행동에 대해 하늘이 심판한 것으로 생각하고 그에 자신들이 수양대군을 심판하겠다고 일을 도모했다.

금성대군이 그 일에 앞장서고 있었다. 결국 서방님을 몰아내고 상왕을 복위시키려고 도모하던 금성대군이 하인들의 밀고로 실패하고 다시금 조정이 시끄러워졌다. 금성대군의 처리문제가 아니었다. 그 근본을 잘라내야 한다는, 금성대군의 뒤에 있는 상왕을 처리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대신들뿐만 아니라 종친들도 노산군을 처리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나서고 있었다. 차마 어린 조카만은 그리 되서는 아니 될 일이었다. 며칠을 그 문제로 골머리를 않던 서방님이 술에 잔뜩 취해 정희를 찾았다.
방으로 들어서는 서방님의 손을 잡고 자리에 앉혔다.

“부인, 술을 주시오, 술을......”

측은한 시선으로 서방님을 주시했다. 큰 아들 장을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또 어린 조카를 죽이라는 대신들 그리고 종친들의 주장에 견디기 힘들어 대취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김 상궁에게 술상을 들여오라 하고는 서방님 곁에 앉았다. 순간 세조가 정희의 가슴으로 무너져 내렸다.

“이 놈들이 또 내손에 피를 묻히라고 하는군요. 이 나쁜 놈들이.”
“고정하십시오, 전하!”
“부인, 어떻게 고정이 됩니까! 친 혈육을 포함해서 그리도 많은 사람을 죽였건만 또 어린 조카를 죽여야 한다는 말입니까!”
“나무관세음보살”
“나는 못해요. 더 이상 죽일 수 없어요. 그렇게 죽이고 싶거든 제 놈들이 죽일 것이지.”

순간 세종임금의 품안에 있던 어린 홍위가 떠올랐다.

“업보입니다, 업보.”

업보라는 말에 수양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희를 주시했다.

“업보라니요!”
“처음부터 단추가 심하게 잘못 꿰어져 있었어요.”
“그것이 무슨 말이오?”
“애초에 전하께서 보위에 올랐어야 했습니다. 그런 것이 세종임금님의 지나친 독단으로 일을 그르치게 되었고요.”
“아버지의 독단이라.”
“그렇지요, 바로 아바마마의 독단의 결과가 바로 아바마마에게 돌아가는 거지요.”
“아바마마에게 돌아간다니요?”
“지금까지의 일을 차근히 새겨보세요.”

수양이 눈을 껌뻑였다. 그 순간 김 상궁이 술상을 들고 들어왔다.

자세를 바로 하고 병을 들어 서방님의 잔에 술을 채웠다. 그러자 서방님이 정희가 그런 것처럼 병을 들어 정희 앞에 놓인 잔에 술을 채웠다.

“내가 오늘 부인에게 제대로 교육 좀 받아봅시다.”

잔을 든 서방님이 잔 들 것을 종용했다. 잠시 주저하다 잔을 들자 서방님이 자신의 잔을 부딪쳤다.

“이제는 마침표를 찍을 시간입니다.”
“마침표라 하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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