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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을 하지 않고 마다하는 준의 잔에 술을 채우고는 병을 준에게 넘기고 잔을 들었다. 직접 자신의 잔을 채우라는 의미였다. 준이 세조의 얼굴 그리고 곤혹감에 가득 차 있는 임영대군의 얼굴을 바라보며 정희의 잔에 술을 채웠다.
“자, 이 잔은 준이를 위로 하는 잔이니 같이 드시지요.”
뭔가 이야기를 하려던 세조가 멈칫하고는 잔을 들었고 모두가 함께 잔을 비웠다.
“부인, 우리 준이를 위한다니 도대체 무슨 말이요? 속 시원히 이야기 좀 해주구료. 아니면 준이가 이야기해주던가.”
“우리 준이가 너무 잘 생겨서 곤혹스러운 일을 당한 모양이에요.”
말을 마친 정희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해갔다. 세조가 그 모습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준아, 전하께 아니 네 백부께 그 서찰을 보여 드려라.”
준이 마지못해하면서 서찰을 세조에게 건넸다. 임영대군이 씁쓰름한 표정을 지으며 세조를 바라보았다. 서찰을 바라보던 세조의 얼굴이 그야말로 볼만했다. 얼굴 곳곳에 힘줄이 돋아나며 파랗게 변해갔다.
“전하, 이 아이가 지금 우리가 아끼는 준이를 통해서 복수하고자 하는 모양인데요. 이를 어찌 처리 하시렵니까!”
“내, 이 년을! 일전에도 이런 일이 있어 그냥 조용히 넘어갔는데!”
“전하,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말씀입니까!”
준이 급히 부복했다.
“상감마마, 송구하옵니다. 소자가 불충하여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났습니다. 소자를 벌하여주시옵소서!”
“아니다. 너무 인정을 두었던 나의 불찰이니라. 아니, 부인이 자주 궁궐을 비우니 이런 일이 생겨나는 게지요! 어찌되었든 아우와 조카는 조금도 걱정하지 말도록 하라!”
정희가 다른 사람들이 모르게 가벼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결탁
“중전마마, 수빈마마께서 상당군 부인과 함께 드시었습니다.”
불경을 읽고 있는 중에 최 상궁이 수빈, 인수가 한명회의 부인과 함께 왔음을 전했다.
문이 열리며 수빈이 민씨 부인과 함께 들어섰다.
“어마마마, 소녀 인수옵니다.”
“마마, 그동안 별고 없으셨는지요.”
인사를 건네는 둘의 얼굴이 편치 않아 보였다. 그 둘의 얼굴을 바라보는 정희가 그들이 방문한 사유를 알고 있다는 듯이 차분했다.
“수빈, 어서오시게. 그렇지 않아도 내 많이 적적했다네. 그리고 부인께서도 별고 없으시지요?”
인수가 그리 말하는 정희를 이상한 듯이 바라보았다.
“왜,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느냐?”
“그런 것이 아니옵고......오늘은 마마께 긴히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만......”
“상의는 천천히 하고 최 상궁은 우리 수빈과 상당군 부인을 위해서 음식을 내오도록 하시게.”
시어머니께서 자신이 상당군 부인과 함께 들어온 사유를 충분히 짐작하고 있을 터인데 자꾸 이야기를 돌려가고 있었다.
“마마, 무슨 책을 그리 열심히 읽고 계시옵니까?”
인수가 정희의 마음을 간파했고 아울러 정희에게 맞대응을 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민 씨 부인의 얼굴이 곤혹스럽게 변해갔다. 그를 모른 체하고 인수가 시선을 책으로 주었다.
‘석보상절’(釋譜詳節)이라고 쓰인 책 표지가 시선에 들어왔다.
“요즈음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서 지내고 있네.”
“저도 요즘 부처님 공덕을 기리는 책들에 빠져서 지내고 있지요.”
“암, 그리 해야지. 그런데 내 경우는 한문을 몰라 그저 훈민정음으로 쓰인 책만을 보자니 조금 답답하구나.”
“마마, 민망스럽습니다.”
“민망스러울 일이 무어 있겠느냐. 배우지 못한 내가 한스럽지.”
민씨 부인이 두 여인의 선문답에 애간장이 타는지 가벼이 한숨을 내쉬었다. 정희가 그 순간을 포착했다. 잠시 인수를 바라보고는 시선을 민씨 부인에게 주었다.
“우리가 부인을 모셔놓고 너무 우리 이야기만 한 게 아닌지 모르겠네.”
“아닙니다, 중전마마.”
“어마마마, 그렇지 않아도 상당군 대감 때문에 이리 찾아뵈었습니다.”
“상당군 대감이 왜?”
민씨 부인이 고개를 돌렸다.
“부인, 한번 말씀해 보세요.”
인수가 모든 일을 꿰뚫고 있다는 듯이 미소를 머금고 민씨 부인을 종용했다.
“마마, 말씀드리기 민망해서......”
말을 마치고는 인수를 바라보았다. 마치 인수에게 대신 이야기해달라는 투였다.
“어마마마, 지금 상당군 대감께서 곤혹스런 입장에 처한 모양이에요.”
“곤혹스런 입장이라니?”
“함길도에서 일어난 난에 상당군 대감께서 연루되어 있다는 말이 있어서 지금 상당군 대감께서 고령군 신숙주 대감과 함께 투옥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이시애가 일으킨 난 때문에 상당군 대감과 고령군 대감께서 말이냐?”
“그러하옵니다.”
“이번 난에 연루되어 있다면 바로 대역죄로 처벌 받을 터인데......”
민씨 부인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해갔다.
“마마, 그런 것이 아니옵고......”
“그런 것이 아니라면 한번 자초지종을 말씀해보시지요.”
“함길도에서 난을 일으킨 사람들이 신숙주 대감과 상당군 대감이 저희들과 한통속이라고 소문을 놓은 모양입니다만.”
정희가 이상하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함길도라고 하면 저 북쪽 변방 끝에 있는 지역인데 그 사람들이 상당군 대감과 신숙주 대감을 거론할 정도라면 뭔가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인수가 시침을 떼고 시어머니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했다.
“어허, 진짜 큰 일 이로군요, 대역 죄인으로 몰리면 상당군 대감은 물론이고 멸문지화를 면하기 힘들 터인데.”
“어마마마, 당연히 그리 될 일입니다. 그러니 큰일이지요.”
“그러게 말이다.”
“어마마마, 그러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어허, 큰일이로고......”
“마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민씨 부인이 차마 견뎌내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며 앞으로 무너져 내렸다.
“어마마마, 마마께서 한번 나서 주셔야할 듯 하옵니다만.”
“대역죄라고 한다면 내가 아니라 너희 시아버지께서도 어쩔 도리가 없으니 문제 아니냐. 이 나라를 부인하고 전복하려는 세력들에게는 조금도 사정을 둘 수 없는 것이 현실의 법이란다.”
“어마마마!”
인수 역시 민씨 부인처럼 앞으로 무너져 내렸다.
“상당군 대감께서 어느 정도로 휘젓고 다니시기에 그 변방인 함길도에서도 이름이 거론된다는 말인가!”
“마마, 이 년이 부덕한 소치이옵니다!”
“아니지요, 사람 수더분하기로 그만한 사부인께서 그리 하실 일이 없지요.”
“마마, 이 년을 어여삐 봐주시어......소인이 앞으로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정희가 인수를 바라보았다.
“욕심이 지나치면 반드시 변고가 발생하는 법입니다. 그리 아시고 사부인께서는 이만 돌아가 계십시오.”
“그렇게 하시지요, 상당군 부인. 아무러면 죄가 없는 분을 역적으로 몰고 갈 수 있겠어요.”
민씨 부인이 야속하게 생각하리만치 인수가 나서고 있었다.
“마마, 그러하시면 소인은 마마만 믿고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이번 일은 우리 며느리를 시켜서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일의 경우는 며느리 인수를 통해서 처리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쳤다. 그 소리를 되새기던 민씨 부인이 간절한 눈빛으로 인수를 바라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교롭게 상당군 부인이 물러서자마자 최 상궁이 다과상을 가지고 들어왔다.
“어머님, 상당군 대감의 일은 어찌됩니까?”
“어찌되긴 뭐 어찌된다고. 너무 설치지 말라는 이야기 아니겠니?”
그 말에 인수가 만면에 웃음을 머금었다.
“그리하면......”
“조만간에 풀려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어머님, 상당군의 힘이 너무 막중해지니까 아버님께서 자중하라고......”
“바로 그것이란다. 절대 권력은 반드시 곪아서 썩게 되어있거든. 그러니 너희 아버님께서 신숙주 대감과 상당군 대감에게 정신 차리라고 투옥을 시킨 게지. 그러니 조만간에 풀려날 것이야. 그건 그렇고 긴히 상의할 이야기는 무엇이냐?”
인수가 김 상궁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보고는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다.
“자산군도 이제는 혼처를 정해야할 듯해서.......”
그 말에 정희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 이 무심한 할머니 좀 보게. 그 귀한 손자의 혼기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마마, 미리 알리지 않은 저의 불찰이옵니다.”
“아니다, 할머니가 되어가지고 그것도 신경 쓰지 않은 나의 불찰이지. 그것은 그렇고 어디 마땅한 혼처라도 생각해 놓은 바가 있느냐?”
“겸사겸사해서 상당군 부인과 함께 들어왔습니다만......”
말을 채 끝맺지 못한 인수를 의아하다는 듯이 빤히 주시했다.
“그러면 지금 상당군의 여식을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냐?”
인수가 대답 대신 물끄러미 정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겹사돈 관계가 되는데.”
“마마!”
“특별한 이유라도 있느냐?”
“바로 상당군 때문이옵니다.”
“상당군 때문이라.”
가만히 상당군을 되뇌면서 잠시 생각에 잠겨들었다.
“자산군을 생각하면 어떻게 해서든 상당군과 관계를 맺어야할 듯해서요.”
“너희 시아버지께서 용인해주실까, 지금 가뜩이나 상당군이 거들먹거리는 모습에 언짢아하시는데.”
“그래서 어머님께 부탁드리는 것이옵니다.”
“그래, 후일을 도모한다면 그 집과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
“어머님, 부탁드려요.”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인수를 바라보았다.
“어미가 어련히 생각 많이 했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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