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천우 역사장편소설 女帝 정희왕후(34)

황천우 작가 / 기사승인 : 2014-01-14 11: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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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부처님께 향하는 불쌍한 중생, 제 서방님의 모든 업보를 저에게 남겨주시고 극락으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일요주간=황천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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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힘을 내세요, 힘을!”

세조가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부인, 너무나 미안하구료, 부인에게 너무나 큰 짐을 떠넘기고 나만 홀로 편하고자 이 자리를 회피하는 듯해요.”
“전하, 그런 나약한 소리 하지 마십시오. 저를 혼자 남겨두고 어디를 가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세조가 힘겹게 손을 뻗으려 하자 그 손을 소중하게 감싸 쥐었다.

“부인, 내 부인에게 한 가지 물어보아도 되겠어요?”
“전하, 한 가지 뿐이겠습니까. 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물어보십시오. 내 뭐든 지 숨김없이 차근차근 이야기하리다.”

정희의 눈에서 서서히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세조가 입을 닫았다.

“전하, 내 모두 이야기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묻고 싶은 일이 있으면 모두 물어보세요.”
“아니오, 부인. 내 부인의 마음을 읽을 것 같소.”

정희가 눈물을 닦으며 억지로 미소를 머금었다.

“무엇을 말이오?”
“부인, 내가 죽어서 아버지 앞에 가면 무슨 변명을 늘어놓아야 할 지 그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부인의 얼굴을 바라보니 변명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구요.”
“그것은 또 무슨 말입니까?”
“나는 가더라도 부인이 남아있으니 부인의 몫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지금 제게 시아버지께 변명하라는 말씀인가요?”
“그것이 아니지요. 아버지, 세종임금의 판단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가슴이 뭉클해졌다. 소중하게 서방님의 손을 잡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전하, 내가 전하께 한 가지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 있어요.”

세조가 마치 그를 알고 있다는 듯이 빙긋이 웃었다.

“왜 웃으시는지요?”
“부인, 내가 말이오. 비록 왕위에 내가 앉아있었지만 그 자리는 엄연히 이야기해서 나의 자리가 아니었소. 바로 부인의 자리였다 이 말이오. 그리고......”
“그리고 또 뭐요?”

자꾸 세조의 호흡이 거칠어지고 있었고 몸에서 정신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어떻게 해서든 그를 붙잡아야 할 일이었다.

“이제는 부인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어야 한다 이 말입니다.”

정희가 얼굴을 세조에게 가까이 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요?”

세조가 다시 애써 웃음을 보내고 있었다.

“부인은 내가 그리도 멍청한 인간으로 보였다는 말이오?”
“하오면?”
“공교롭게도 부인이 점을 본 그 집, 그 집에 나도 갔었다오.”
“네?”

정희가 경악스럽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왕의 사주는 부인이 가지고 있었소.”
“그렇다면?”
“결국 아버지와 부인의 사주가 충돌을 일으켰고...... 그것이 나에게는 왕의 보위에 앉게 해주었고...... 그런 것이었습니다.”

이미 서방님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하기야 정희 자신만 사주를 보라는 법은 없었다. 그를 깨닫고 가만히 부처님을 찾았다. 그러기를 잠시 후 세조가 가까이 다가오라는 듯 간절한 시선을 주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그 둘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을 의식하며 귀를 세조의 입에 가까이 가져갔다.

“부인, 이제는 부인 몫이오. 절대로..... 우리가 이루어 놓은 일이...... 헛되이 되어서는...... 아니 될 일이요. 만약...... 그런 징조가 나타난다면 부인은...... 결단을 내려야하오. 물론 우리 아들이라고 해서...... 예외 될 수 없어요.”

정희가 몸을 움찔거렸다. 그러나 귀를 떼지는 않았다.

“부인이 이야기한 운명입니다, 운명.”

온몸에 힘을 모아 힘겹게 이야기한 서방님의 눈이 서서히 감기고 있었다. 정희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편에 앉아 있는 내의원에게 세조의 운명을 맡기고 문으로 향했다.

해양대군, 월산군, 자산군, 귀성군 등이 자리에서 일어난 정희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중에 며느리 인수와 근빈, 최 상궁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인수 뒤를 따랐다.

“근빈과 며느리는 주상 곁에 함께 있어요. 나는 내불당으로 갈 터입니다.”

부처님에게 의지해보겠다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를 새겨들은 근빈과 인수가 몸을 돌렸고 정희는 내처 내불당으로 이동했다. 불당에 들어서자 김수온이 잔잔한 표정을 지으며 맞이했다.

“마마, 이미 예불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가만히 부처님 앞에 자리 잡았다. 한없이 자비로운 모습으로 세상을 밝힐 듯한 미소로 부처께서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몸을 숙여 배를 올리기 시작했다.
‘결국 지난 시절 모든 행위가 저의 업보였습니다. 서방님의 손을 빌렸지만 저의 행동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배를 마치고 다시 자세를 바로 했다. 다시 배를 올리기 위해 몸을 숙였다.

‘이제 부처님께 향하는 불쌍한 중생, 제 서방님의 모든 업보를 저에게 남겨주시고 극락으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몸을 일으켰다. 다시 배를 올리기 시작했다.

‘후일 제가 세종임금께 모든 일을 낱낱이 고하리다. 그리고 시동생 안평대군, 금성대군, 혜빈마마, 특히 어린 조카 단종에게 내가 찾아뵈올 때까지 서방님에 대한 오해를 접어두게 하시옵소서.’

배를 올릴 때마다 세조의 손을 빌어 먼저 이승을 떠난 사람들의 얼굴을 일일이 떠올리고 그들의 복을 빌었다.

김종서...... 황보인...... 성삼문...... 박팽년......

어느 순간 온 몸이 땀으로 뒤덮였고 몸이 휘청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도 떠올릴 사람이 남아 있었다. 혼신을 다해서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배를 올리는 중에 정희 자신도 모르게 몸이 마루로 기울었다.
순간 며느리 인수와 최 상궁이 다가왔다.

“마마!”

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얼굴이 눈물로 범벅되어 있었다. 고개를 살며시 돌려 법당의 전경을 둘러보았다. 초롱불이 켜져 있는 것으로 보아 저녁 무렵인 듯했고 곁에서 김수온이 여전히 배를 올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급히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몸이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인수가 시어머니의 마음을 읽은 모양이었다. 천천히 시어머니의 몸을 일으켜 자세를 바로해서 앉도록 했다.

“전하께서는?”
“어마마마......”

인수가 울지 않았다.

“그래, 알았다.”

배를 올리느라 너무나 기운이 탈진되었는지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 법당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마마, 효령대군마님께서 드시었습니다.”

최 상궁의 소리에 몸을 돌려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냥 앉아계세요.”

효령대군이 정희 곁에 가부좌를 틀고 자리를 잡았다.

“중부님, 민망하옵니다.”

효령대군이 대답 대신 ‘나무관세음보살’을 읊조리자 정희도 가만히 따라 했다.

“그래, 사후는 어떻게 처리하기로 하였습니까?”
“왕세자인 해양대군으로 하여금 바로 보위에 오르게 해야지요. 그리고 중부님, 뒤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도리지요.”

종실의 가장 어른인 효령대군의 몫이었다. 보위 문제와 관련 정희와 잠시 대화를 나누던 효령대군이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법당을 나섰다.

“어마마마!”
“그래, 말해 보거라.”
“아버님께서......”

차마 말을 잊지 못하자 정희가 환하게 웃고 있는 부처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버님께서 어머님이 외롭고 힘들 터이니 아버님을 대신해 성심성의를 다해 모시라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몹쓸 사람 같으니라고, 당신의 책임을 며느리에게 떠넘기다니.”
“어머님!”
“그래, 어미야. 이제는 내게 남아있는 사람은 어미밖에 없는 듯하구나.”
“어마마마!”
“어미야, 이제부터 정신 바짝 차려야하느니라!”
“네!”
“이제부터 나는 고립무원에 갇혀 있는 꼭두각시가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니라. 그러니 어미는 절대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아버지의 말씀대로 성심성의껏 나를 도와 주어야할 것이야.”
“어마마마, 소녀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어머니를 보필 하겠습니다.”
“몸뿐만 아니라 정신까지도 함께 해야지!”

남이 사건

둘째 아들 해양대군의 주도로 세조의 국상이 진행되고 있었다. 해양대군의 경우 이미 서방님께서 살아계시는 동안 왕의 수업을 받았었다. 세조께서 병으로 누워있자 그 공백을 세자인 해양대군이 대신하고 있었다.

실질적으로 임금의 위치에 있던 해양대군이 예종으로 왕위에 오르자 몸소 국상을 지휘하고 있었고 정식으로 국정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국상이 진행되고 해양대군이 왕위로 즉위한 직후 뜻하지 않은 사건, 남이 장군의 역모와 관련한 일이 발생했다.

보위에 오른 왕이 20세가 되지 않아 정희가 수렴청정을 하여야 하건만 국상 중이었고 그리고 세조께서 돌아가시면서 원상이라고 해서 한명회, 구치관, 홍윤성 등의 공신들로 하여금 새로운 임금을 보필하라 하였던 터라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았었다.

남이 장군은 태종임금의 넷째 딸인 정순공주의 손자로 귀한 가문에서 태어나고 타고난 허우대하며 거침없는 성격으로 인해 세조께서 귀성군 이준과 함께 구공신 세력들을 견제하기 위해 키운 인물이었다.

그런 남이 장군이 세조께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무렵, 남이의 거칠 것 없는 행동에 위협을 느낀 구공신들의 마수에 걸려들었고 결국 강희맹, 한계인에 의해 예종에게 탄원이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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