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대통령제 타파…제도개혁이 우선인가, 현실정치가 우선인가

김진영 / 기사승인 : 2014-01-17 13: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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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오히려 헌법을 이용…장기적인 안목과 종합적 검토 필요

[일요주간=김진영 기자] 무소불위 절대권력을 갖는 제왕적 대통령제 문제점과 거대 양당을 중심으로 한 대결 위주 현실정치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으로 끊임없이 선거제도 개혁과 개헌 필요성이 논의되고 있으나 그 우선순위를 제도개혁으로 둘 것인지, 현실정치 정상화에 둘 것인지 이견이 갈리고 있다.

정치권과 학계 모두 87년 체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큰 틀의 공감대는 형성하고 있으나 우리나라 정치현실에 맞는 방법론에는 주장이 엇갈린다.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의 싱크탱크격인 동아시아미래연구소는 신년하례회를 겸한 토론회 ‘통합의 정치와 합의제 민주주의’를 주최하고 한국정치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

한국정치의 문제와 87년 체제의 한계

16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열린 ‘통합의 정치와 합의제 민주주의’ 대토론회에서 손학규 대표는 기조발언을 통해 “한국정치가 당면하고 있는 최대 과제는 사회적 양극화와 분열을 해소하고 대결구조를 혁파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손 고문은 “대결과 증오는 이미 우리의 정치문화가 돼 버렸다”며 “이러한 정치체제가 게속되는 한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인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건설은 불가능하다”며 87년 체제를 넘어설 것을 주장했다.

합의제 민주주의는 갈등이 없는 사회를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다원화된 사회 속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관리할 시스템으로서 정당의 역할이 중요함을 시사한 손학규 고문은 “개인적으로는 독일식 비례대표제가 가장 적합한 개혁모델로 생각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안정과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제도개혁에 적극 나서야 한다. 필요하다면 개헌에도 주저할 이유가 없다”며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광범위한 공론의 장을 개설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한국정치의 핵심문제는 정당정치의 후진성에 있음을 지적한 손 고문은 “이념, 가치, 정책 중심의 온건다당제를 견인하는 선거제도의 도입이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본격 토론에 앞서 기조발제를 맡은 장달중 서울대 명예교수는 87년 체제가 시대적 소명을 다한 것이 아니냐는 관점에서 논의를 이어나갔다. 장 교수는 “지난 87년 체제는 정통성의 문제는 해결했지만 여타 서구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통치능력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화 이후 가장 고질적인 정치현상으로 제왕적 대통령제 하의 관료공화국 현상과 승자독식의 양극화를 꼽은 장 교수는 그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는 4년 중임제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그는 “4년 중임제를 한다 해도 레임덕 현상은 2년차부터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통령 단임의 임기를 일년 정도 늘이고 국회의원 임기를 일년 정도 단축해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동시에 실행하는 방법(6-3년제)도 강구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중 어느 것이 우수하냐를 따지기 이전에 우리 정치현실에 맞고 또 통일 이후의 장기적인 발전까지 생각하는 보다 종합적인 관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형태의 문제는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한 상태에서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대통령제의 대안으로 의원내각제를 도입코자 했을 때 도입 자체가 성공할 수 있느냐는 점, 도입 후 효율적으로 운영이 가능하겠느냐는 점 등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독일식 비례대표제에 대해서도 정당제도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성공조건으로는 정당조직이 뿌리내리는 것이 먼저라는 의견이다.

그는 “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가는 것이 중요할 수는 있다. 하지만 가볍게 다룰 것은 아니다”라며 “제도를 바꾸는 것은 사회적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신중함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제도보다 현실정치의 문제에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춰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이 지향하고 있는 것은 헌법에 따라 정치를 하라는 것인데 정치가 오히려 헌법을 이용한다는 것”이라며 원인을 잘못 짚고 있음을 지적했다.

김종철 교수는 “국정원 정치가 대통령이 제왕적이어서 그런가, 권한이 막강한 이유가 우리 정부형태가 대통령에 주고 있는 것 때문인가. 정치 상황 때문이다”라며 “또 아무리 대통령제라 하더라도 국회가 법을 제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문제를 잘못 짚고 있음에 대안도 잘못될 수밖에 없다는 그는 헌법에서 명기한 자유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서는 국민들의 정치참여를 막는 제도 개선이 먼저라는 입장을 개진했다.

독일식의 비례대표제와 관련해서도 “지욱겨 의석수와 비례대표를 거의 동수로 두고 배분해야 되는데 현 300석으로는 달성해 낼 수 없다. 최소 500석 정도 돼야 비례대표제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개혁 선행돼야 합의제 민주주의 실현 가능

이어진 토론에서 박찬욱 서울대 교수는 “개헌보다는 선거나 정당제도 등 헌법규정 외에 여러 가지 조건을 개선함으로서 정치를 좀 더 정상화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최근 다시 제왕적 대통령제 문제가 논란이 되면서 오로지 헌법 규정 때문은 아니지만 여기서부터 원인을 찾아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굳게 갖게 됐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론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지만 국회 주도하의 개헌논의를 내년으로 미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박 교수는 “18대 국회부터 상당히 논의가 돼 있기 때문에 백지부터 출발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개헌논의와 별도로 또 병행해서 정치개혁특위가 약속한 여러 가지 정치개혁을 해야 한다”며 “이러한 제도개혁에서 지향해야할 원리는 합의제 민주주의”라고 덧붙였다.

구조화된 다당제와 연정형 권력구조 제도화가 핵심 제도조건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는 “핵심은 정치가치, 이념주의로 구조화된 다당제의 건설이 첫 번째가 돼야 하고 그들이 의회뿐 아니라 상시적으로 포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합의제 민주주의 구현의 전제조건은 정당의 구조화, 즉 정책과 이념중심의 다당제 확립과 연정형 권력구조의 제도화이며, 의원내각제와 관련해서도 양당제 타파가 선행되지 않으면 오히려 1당독주체제가 우려된다는 입장이다.

최태욱 교수는 “통합과 포용의 정치구현 합의제로 가기 위해선 우선 선거제도 개혁을 통한 온건다당제 확립이 전제조건”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정치가 오히려 헌법을 이용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현 대통령제가 대통령의 권력이 무력화된 경우도 많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동국대 박순성 교수는 “87년 헌법 이후 나타난 현상은 오히려 (대통령이)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며 대통령제는 곧 독재화와 무력화라는 이중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현실정치의 문제가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권력구조에서 나오고 있느냐에 대해 면밀하게 검토해봐야 한다”는 박 교수는 “대한민국 헌법이 정하고 있는 한계는 제왕적 권력을 행사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현행 헌법에서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 실현을 현실정치에서 하려는 노력이 먼저다”라고 덧붙였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도 개헌론은 끊임없이 논의돼 왔지만 한번도 개헌이 의제가 된 적은 없다고 강조하며 “개헌론의 정치는 있었지만 개헌의 정치는 없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헌법이 제왕적 대통령제로 등식화 되는 것은 잘못된 이해관계이며 오히려 대통령제는 강해보이지만 약한 체제라는 것. 그는 “조기 레임덕을 어떻게 피할까 노심초사하는 구조가 훨씬 더 문제”라며 “금년도 조금만 지나고 나면 대통령 권력이 강해서가 아니라 무력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제도는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 만큼 제도만 앞세우는 접근법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며 나아가 제도만을 자주 바꾸는 것은 오히려 관료제 강화 등 역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박상훈 대표는 “제도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산물이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적절히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라며 “제도를 자주 바꾸면 관료가 커진다. 제도외적인 문제들을 신중하게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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