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천우 역사장편소설 女帝 정희왕후(35)

황천우 작가 / 기사승인 : 2014-01-21 10:3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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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동생의 하는 양을 바라보니 참으로 걱정이 앞서는구나. 자신이 아닌 한명회라는 사람을 향하는 칼날에 제가 겁을 지레 먹고 저리 일처리를 하다니.”
[일요주간=황천우 작가] 평소 남이 장군에게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던 예종이 전격적으로 그들의 주청을 받아들여 남이를 즉각 좌천시켜버렸다. 즉 정 2품인 병조판서에서 종 2품인 겸복사장으로 인사를 단행했다.

남이의 오늘을 있게 한 세조의 죽음이 불러온 당연한 조처였다. 그러나 혈기왕성한 남이는 그를 묵과할 수 없었고 그 칼날이 구공신들 특히 한명회에게 향했다. 그리고 모종의 움직임을 전개하려고 하는 순간 병조참지로 있는 유자광에 의해 역모로 몰려 고변을 당하게 된다.

유자광은 서자 출신으로 신분 상승에 한계를 지니고 있었던 인물로 갑사로서 건춘문의 경비를 서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신분 상승의 기회를 주었던 사건이 바로 이시애의 난이었다. 신숙주와 한명회가 역모의 혐의로 투옥이 되었었던 그 사건이다.

귀성군 이준이 토벌대장으로 나간 그 사건이 지루하게 시간을 끌자 유자광이 스스로 전장에 나가 이시애의 목을 베어 오겠다고 상소를 올렸고 그 상소문이 운 좋게 세조의 손에 들어갔다.

그 일로 세조에 의해 전격적으로 발탁되어 전장의 연락관이 되었고 전장터와 궁궐을 오가면서 전장의 상황을 정확하게 보고함으로써 이시애의 난을 평정할 수 있었다. 난이 끝나자 유자광은 병조정랑으로 고속 승진을 한다.

일의 전모를 전해들은 정희가 급히 영의정인 귀성군 이준을 불렀다. 사태에 대해 정확한 경위를 알아보아야할 일이었다. 비록 원상이 있고 임금이 있지만 최종 권한은 정희에게 있었다. 영의정 이준이 들어와 예를 올리고 자리를 잡았다. 정희의 곁에는 며느리 인수가 있었다.

“영상, 국상이 진행 중인데 이 무슨 일이요!”
“송구스럽습니다, 마마.”
“수고스럽겠지만 영상이 자세한 내막을 그리고 지금 어찌 진행되고 있는지 나에게 알려주시오.”
“일이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다면!”
“남이가 자신의 역모 사실을 인정했고 그와 관련된 사람들 역시 자신들의 죄를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조만간에 그들을 처벌하려고 합니다.”

조카 이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에게 고하지도 않고 일을 마무리 짓고 있다니, 감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영상, 그 무슨 소리요!”

차분하게 아니 차갑게 입을 열자 이준이 아차 했는지 그 자리에서 부복을 하고는 머리를 바닥에 부딪쳤다.

“마마, 이 불민한 소자를 벌하여주시옵소서.”
“아니야, 영상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내가 아들을 잘못 키운 탓이지!”
“어마마마!”

인수 역시 가슴에 뜨거운 기운이 타 오르는 모양이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시어머니, 정희를 제치고 일을 마무리하는 그 처사는 엄연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영상, 정확한 경위를 설명해보시게.”

자세를 바로 한 이준이 그간의 경위에 대해서 고변하기 시작했다. 유자광의 고변을 예종이 그대로 받아들였고 관련자 전원을 국문하자 그들이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는 이야기였다.

“영상, 유자광이 누구 사람이오!”

이준이 망설였다.

“상당군 대감 사람이 아니오!”
“굳이 표현하자면......”
“그리고 남이 장군이 한명회를 죽이고자 했다고 하면서!”
“그러하옵니다, 마마.”

가벼이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권력 싸움이 시작되었어, 권력싸움이.”
“마마, 권력 싸움이라고 하시면.”
“세조 임금께서 돌아가시자마자 서로들 자신들의 권익을 챙기고자 싸움을 시작한 것이지.”
“그렇다면!”
“그동안 세조 임금의 권위에 눌려 자기 보신에 급급했던 사람들이 이제 세조 임금이 돌아가시고 나니까 마치 저희 세상을 만났다는 그런 기분들이 들은 것이지. 그리고 그 틈새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정적을 제거하고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려는 음모가 시작된 거야.”

이야기를 듣는 인수나 귀성군의 얼굴에 긴장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마, 일이 그러하다면 가만히 보고 계실일이 아닌 듯하옵니다. 어머님께서 나서셔야하지 않습니까!”

잠시 세종임금께서 돌아가실 때를 생각해보았다. 나약한 왕 문종임금이 보위에 올라서자 신하들의 권력싸움에서 수양대군이 크나큰 곤욕을 겪었었다. 마치 당시의 상황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결과는.

순간 눈앞이 아찔해졌다. 비참한 말로가 이미 정해져있었다. 단순히 사람 한 둘 제거되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토록 피 흘려 쌓아놓은 조선의 운명이 걸려있는 상황이었다. 정희가 깊이 한숨을 내쉬자 그를 바라보는 귀성군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마마, 소자를 죽여주십시오!”
“아니야, 지금은 세조 임금의 상중이라 내 가만히 지켜볼 것이야. 그러나 어림도 없는 일들이지. 그새를 참지 못하고 권력싸움이라니!”
“마마!”
“알았네. 영상은 바쁠 터이니 이만 물러가게. 그리고 백부님의 국장을 차질 없이 치르는데 전념해주게나.”
“마마, 소신 온몸을 다 바쳐서 명심하겠습니다.”

말을 끝낸 귀성군이 어색하게 몸을 일으켜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 번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마!”
“어미야, 이것이 다 나의 불찰이다. 네 지아비, 의경세자가 살아있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꿈에라도 일어날 수 있겠니!”
“어마마마!”
시어머니를 부른 인수가 정희의 품으로 쓰러졌다.
“네 지아비가 왕의 자리에 있었다면 남이 정도를 신경이나 썼겠니! 아울러 지금의 일이 가당키나 하겠니! 바로 지금의 주상이 나약해서 신하들이 발호하고 또 주상의 열등의식이 결국 아까운 젊은이를 보내는구나.”

정희의 품에 쓰러져있던 인수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런 경우라면 막아야하는 일이 아니옵니까?”
“어미야,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그것이 바로 정치고.”
“네?”

인수가 정희의 말 뜻을 모르겠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나약한 임금에게는 희생양이 필요하지. 그렇지 희생양이.”
“어머니, 희생양이라고 하셨어요?”
“그래, 희생양 말이야. 네 시아버지나 네 지아비 같이 강단 있는 사람의 경우는 굳이 희생양이 필요 없지. 그러나 약하디 약한 지금의 임금이 차후에 정치를 원만히 해나가려면 시초에 뭔가 본때를 보여야하지.”

그제야 인수가 정희의 말을 새겨듣는 듯했다.

“네 시동생의 하는 양을 바라보니 참으로 걱정이 앞서는구나. 자신이 아닌 한명회라는 사람을 향하는 칼날에 제가 겁을 지레 먹고 저리 일처리를 하다니.”

인수가 어금니를 깨물었다.

“어미야, 사돈어른을 항상 조심하거라!”
“상당군 대감 말이에요?”
“그래, 아무래도 이번 일이 상당군 대감의 작품인 듯하다. 멋모르는 임금은 그에 넘어가는 듯하고......남이 장군이 자신에게 그토록 가까운 친구인 권람 대감의 사위인데도 불구하고......권력이란 피도 눈물도 없는 것이란 생각이 드는구나.”

인수가 가벼이 몸을 움츠렸다.

“그건 그렇다고 하고 일단 시아버지 국상에 전념하도록 하자꾸나. 그런 연후에 시시비비를 가리도록 하자꾸나.”

말을 마친 정희가 인수의 손을 잡았다.

“어미야, 월산군과 자산군은 강하게 키워야한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힘, 힘만이 능사야!”
정희가 힘을 강조하면서 인수의 아들들을 강하게 키우라고 했다. 그 말을 곱씹던 인수가 가볍게 몸을 떨었다.

죽느냐 사느냐

“대비마마, 큰일이옵니다!”

최 상궁이 급히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창백한 얼굴로 정희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로 그리 호들갑을 떠는 게냐!”
“마마, 지금 대전에서 수빈마마의 일로......”
“수빈이 무엇을 어찌했다고 그러느냐!”
“수빈마마께서 상소를 올렸고 그 문제로 일이 시끄럽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안타깝다는 듯이 최 상궁의 얼굴을 응시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해야 할 것 아니냐!”
“수빈마마께서 세조대왕의 봉분이 너무 초라하고 약하다고 돌로 쓰자고 상소문을 올렸습니다. 그래서 그 일로 상감마마의 진로가 대단하십니다.”
“상감의 진로라......”
“그러하옵니다, 마마. 봉분을 돌로 쓰지 못하게 하신 일이 세조대왕님의 유언이었는데 그를 정면으로 뒤집는 상소라 상감마마의 진로가 대단하십니다.”
“그래서 어쩌겠다는 말이냐!”
“네?”

오히려 말을 꺼낸 최 상궁이 민망한지 얼굴색이 발갛게 변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천장으로 주었다.

서방님 세조대왕께서 비용절감 차원에서 석실을 쓰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 바 있다. 그렇다고 그를 곧이 곧대로 따라하는 임금의 처사가 달갑지 않았다.

“그래, 지금 상당군 대감과 고령군 대감 등은 어찌하고 있느냐?”
“그 분들의 경우도 분묘 사건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합니다. 단지 그 일로 인해서 수빈마마의 위치가 위태롭게 진행되자 그를 막기에 급급하다고 합니다.”
“무엇이라! 수빈을! 제 형수를!”
“마마!”
“최 상궁은 지금 바로 상당군 대감과 고령군 대감을 이리로 들도록 하라 이르게!”
“마마!”
“빨리 움직이지 않고 무엇을 망설이느냐!”

서방님, 세조임금이 죽고 난 후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그 요체는 과연 현 왕인 예종이 선왕의 유지를 제대로 받들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만약에 그러지 못할 경우라면 세조임금과 정희 자신의 그간의 노력은 그야말로 물거품이 될 터였다.

현왕을 바라보면 문종임금의 얼굴이 떠오르고는 했다. 신하들의 위세에 밀려 자기가 해야 할 바를 정확하게 이루지 못하는 유약한 임금, 문종임금 말이다.

물론 정치를 행함에 있어서 반드시 신하들이 있어야한다. 모든 일을 임금 혼자서 정확하게 진단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차원에서 신하들의 존재는 필수였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언제나 왕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고 최종에는 지엄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바로 그것이 임금의 역할이고 그래야 모든 일이 원활하게 흘러간다는 사실을 정희가 꿰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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