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년층 병고.빈고.고독에 무직...회한의 눈물

서지홍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14-03-27 1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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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한국 노인들의 '2014 자화상' 한국 노년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
꽃이 벌에게 조건없이 꿀을 내주는 것과 같은 존재

ⓒNewsis
[일요주간=서지홍 칼럼니스트] 새싹이 돋아나는 봄이다. 들꽃이 소담스레 피어있는 시골길을 걸어본다. 지난 세월 그림 같은 밀밭 길 따라 산모롱이에 숨어 콩 사리, 밀 사리를 해 먹었던 옛 시절이 그립다.

시원한 샘물에 보리밥 한 덩이 말아 금방 따 온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먹던 기막힌 그 맛이 그립고, 해질 녘 농촌 마을에 저녁밥 짓는 매캐한 솔가지 태우는 연기의 정취마저 그립다.

어려운 시절에도 ‘희망의 용솟음’

그때는 그래도 가슴 벅찬 희망이 용솟음쳤고 이웃과 이웃, 사람과 사람사이 풋풋한 정이 흘러 사람 사는 맛이 있었던 시절이었다.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냇가에 미역을 감았고, 겨울에는 화롯가에서 군고구마며 군밤을 구어 먹던 추억이 우리가 살았던 그때의 사람은 세상의 이치였다.

음(陰)이 있으면 양(陽)이 있고, 밤이 있으면 낮이 있다. 밤하늘에 달과 별이 또 있으면 어느새 새벽이 오고 아침 해가 떠오른다. 닭이 홰를 쳐서가 아니라 우주섭리는 이렇게 양분되어 인간들에게 낮과 밤처럼 선과 악을 구분 짓고, 젊음과 늙음을 구분해 놓았다. 도시의 찌든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산길을 거닐다 보면 잊고 살았던 깨달음을 얻곤 한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돌멩이와 구부러진 나무들, 그리고 이름 없는 야생화는 예쁘게 포장되어 있는 장미꽃이 지니고 있지 않는 수수함과 또 다른 향기를 느낄 수 있다. 그 수수함에 인생은 하염없이 늙어 가는 가 보다.

이 사회에 모든 것을 희생하고, 마치 꽃이 벌에게 아무 조건 없이 꿀을 내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의 노년들은 그렇게 이 사회에 모든 것을 바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평생을 살아왔다.

화려한 명동거리, 젊음이 넘쳐나는 대학로를 걸어보아도 공허한 가슴은 채워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아주 긴 세월 아련히 떠오르는 풋풋한 추억을 잊었기 때문이리라. 모든 것을 빼앗긴 슬픔, 이제 화려한 거리, 최첨단 상품이 지천으로 쌓인 백화점, 명품거리도 우리에겐 의미 없이 빼앗긴 거리가 되었다.

나홀로 노인들 훨씬 더 가난하고 자살할 확률 높아
세대 간 통합과 신에너지 창조의 소중한 인적 자원


누가 그 길을 걷기 말라고라고 하지 않아도 그런 길을 갈 수 없는 것이 노인들이다. 그래서 옛날이 그리워지는 것일까, 갈수록 힘들어 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도 점점 두터워지는 느낌이다.

노년은 빛바랜 젊음으로 보는 사람들은 노년은 ‘추억을 먹고 사는 자들’이라고 부른다. 이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매달려, 무너진 간이역 자리를 보며 20대 낭만의 그림자를 밟고 있는 노년의 모습이 우리 노인들의 실체라고 말한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의 ‘고통과 슬픔’

늘어나는 가난한 노인들, 병마에 시달리는 노인들 가운데 자살유혹을 받은 사람이 어찌 없을 수 있을까? 몸이 너무 아파서, 먹고 살기 힘들어서 죽는 편이 낫다고, 목숨을 끊어 달라는 사람의 늘고 있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살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심리학자 토머스 조이너의 지적이 떠오른다. 병들어 의료비는 많이 필요한데도 당장 끼니를 해결할 돈도 없는 노인들, 게다가 홀로살 수밖에 없다면 어떨까? 혼자 살면서 소속감도 없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노인이라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쉽다. 자살이 아니라면 홀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노인복지는 제대로 되어 있지 못한 데다 기대수명은 높아지니까, 오래 살면 살수록 빈곤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노인빈곤은 고령자일수록 올라간다. 게다가 이 땅에서 온자 살아가는 노인은 누군가와 함께 사는 노인보다 훨씬 더 가난하고 자살을 할 확률이 높다.

고립되어 사는 가난한 독거노인이 병이 들면 자살의 유혹이 어찌 크지 않겠는가. 더 살고 싶지도 않겠지만 더 살 길도 막막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병들고 가난한 노인들의 자살률이 높은 것이다.

몇 년 전 신문에서 72세의 노인인 아들이 94세의 어머니를 목 졸라 숨지게 한 사건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전남 고흥에 살던 김 모라는 72세 노인은 12년 전에 아내를 잃고, 자식마저 먼 타지로 떠나보내고 홀로 살면서 조그마한 농토를 빌려 소작을 하면서도 90이 넘은 노모를 극진히 섬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노모를 얼마나 극진히 모셨는지 동네에서 효자라는 소문이 자자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셋째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게 되었다.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마음은 짐작이 가겠지만, 홧김에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그만 자신의 몸마저 망가뜨리는 지경까지 가게 되었다.

자신의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늙은 노모를 모기는 것도 한계에 도달하게 되었다.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 노모를 모시기는 어렵게 된 김 노인은 생각다 못해 자식들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그래서 경기도 안산에 사는 막노동을 하는 큰아들을 찾아갔다. 큰 아들은 90이 넘은 할머니와 아버지가 들어 닥치니 무척 당황했다.

전혀 반기는 기색이 없었다. 그러니 눈치 빠른 노인들이 이것을 모르겠는가. 큰아들의 입장을 아는 두 노인네는 이번에는 영등포에서 사진관을 하는 둘째 아들을 불렀다. 큰 아들 집에 도착한 둘째 아들은 할머니와 아버지가 와서 자기를 기다리는 것을 보고는 ‘이거 큰일 났구나’하는 생각으로 “저는 일이 바빠서 그만 가봐야 됩니다.”하고는 부리나케 큰아들 집을 떠나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셋째 아들은 얼마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고, 넷째는 외항선원으로 멀리 나가 소식이 없고, 그렇다고 아직 자립도 못한 다섯째 아들에게 기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여수에 사는 여동생 집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갔다. 거기서 김 노인은 며칠을 식음을 전폐한 채 흐느끼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고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는 고향에 가던 길에 자기 부인의 묻혀 있는 묘소를 찾아 통곡을 한 후 거기에서 구순의 노모를 목 졸라 숨지게 했다. 얼마나 세상이 비관되었으면 어머니를 목 졸라 숨지게 하는 존속살해를 했겠는가.

그는 경찰서에서 “나도 어머니를 따라 죽었어야 했는데, 죽지 못해 한스럽다고 하며 어머니를 더 이상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서 저지른 일이지만 천수(天壽)를 다 못 누리게 한 죄 무엇으로 갚겠습니까?” 하고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그는 당연히 존속 살해로 형을 받았겠지만 현대사회에서 일어난 기가 막힌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세 모녀의 자살 사건도 있었지만, 이것이 어찌 남의 일이라 하겠는가. 우리 모두의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국가나 사회가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보살펴 주지 않는 것도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으며 어찌 복지국가라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장차 우리 눈앞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삭막하고 무서운 세상을 살고 있다. 노인인구 600만 명을 넘는 시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1.8%, 이는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인구에 관한 통계이다. 지난 2000년 7%를 넘어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후, 세계에서 유례없이 급속하게 고령사회로 진행되고 있는 추세로 5년 후면 18% 이상이 될 전망이다.

평균 수명도 여자가 84세, 남자가 77세로 10년 전과 비교하면 5살 정도 늘어서 그야말로 ‘100세 시대, 인구 고령화 사회’의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급속히 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평균수명이 연장되고, 노인인구는 많아졌지만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노인은 그리 많지 않다. 노년기는 4고(苦)를 말한다. 노년기는 아프고(病苦), 가난하고(貧苦), 외롭고(孤獨), 할 일이 없는(無爲苦) 시기라며 노인을 돌봄의 대상으로 부른다.

아프고, 외롭고, 돈 없고, 힘겹고.... 노인들이 겪는 4가지 고통, 죽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노후를 보내고 있으며, 이에 노인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중 1위라는 오명도 얻게 되었다.

‘소모적 복지’ 생산적 복지로 환골탈태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평균 12명의 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한다. 즉 노인자살이 전체 자살의 28.1%에 이를 정도로 자살률이 높고, OECD국가에서 노인자살률 최고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가난과 노인자살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염두에 둘 때, 우리나라 노인들의 경제형편이 어느 정도 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우리나라 노인 상당수가 빈곤하다는 것이다.

65세 이상 노인들의 빈곤율을 살펴보니 2011년 통계에 의하면 48.6%이다. 우리나라 중위소득이 월 200만 원이 좀 넘는다. 따라서 월 소득 100만 원 보다 적은 가구라면 ‘빈곤하다’ 할 수 있다.

게다가 물가는 오르고 중위소득은 해를 거듭할수록 줄어드는 데 반해 노인 빈곤율은 더 높아지고 있어 노인들의 경제사정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이렇듯 많은 노인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노인복지가 형편없기 때문에 생계를 꾸리기 위해서 밥벌이에 나선 노인들이 적지 않다.

이 노인들은 폐지수집과 같은 비임금 자영업이나 청소용역, 택배 배달과 같은 저임금 임시직 일자리로 내몰린다. 이것이 바로 65세 이상의 노인 고용률이 39.6%로, OECD 국가 중 최고이면서 노인복지는 최하위에 속하는 나라의 실정이다.

노인 복지 수준이 낮아서 노인들이 생계형 노동을 하지 않고서는 먹고 살 수 없다면, 가난한 노인들이 건강을 잃을 경우 살길이 막막할 수밖에 없다. 노인의 의료비 지출은 날로 증가하고 있고, 전체 진료비의 36%에 해당된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건강상의 어려움이나 질병의 고통을 더 겪는 것은 당연하다. 노인들은 그 어떤 세대들보다 질병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고 신체적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노인들이 가난으로 인해 생계노동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 가혹하기만 하다.

이에 우리 사회가 다양한 측면에서 질병 수명에 놓여있는 노인들을 건강수명으로 삶의 질을 유지 증진시킬 수 있도록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과제가 정책적으로 입안되어야 할 것이다.

생계유지나 기본적인 의료혜택의 기본적인 소모적 복지에만 머룰 것이 아니라, 노인들의 역량을 재개발하고 사회적 자원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생산적 복지가 절실하다. 그렇게 되면 국가적으로 큰 부담이 되고 있는 노인의료비 감소나 복지비용 절감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만난 대부분의 노인들은 자의든 타의든 여전히 일을 하고 싶어 하고, 생의 만족과 삶의 보람을 찾으려는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자신들이 가진 지식과 기술을 사회에 공헌하며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한다.

더구나 사회에 재적응해 지속적인 활동을 위해 시대에 맞는 변화의 필요성도 잘 인식하고 있다. 다만, 노화된 체력의 신체적 측면과 우울성, 경직성 등의 특성을 보이는 심리적 측면, 이로 인한 사회성 감소 등은 노인 스스로가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이므로 우리 사회가 보완하고 해결해 나가야 할 필연적 숙제다.

노인은 더 이상 짐이 되거나 뒤로 물러나 있어야 되는 대상만은 아니고, 우리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요. 노소간, 노노간의 교류와 사회참여를 통해 세대 간의 통합과 새로운 에너지를 창조해 낼 수 있는 소중한 인적 자원이다.

어느 작가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을 냈다. 그러나 정작 아픈 것은 이 나라 노인들이다. 집 한 채, 텃밭을 자식들에게 침식당하고 석양이 머무는 길모퉁이에서 자식들이 잘 살기를 비는 마음이 오늘의 노인들이다.

시간은 멈출 수도 붙들어 맬 수도 없는 것인가 보다. 한 해가 가고 새해를 맞으면 누구나 한 번쯤 고향과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다. 고향은 언제나 그리움의 상징이고, 부모님은 늘 그립고 보고 싶은 존재다. 우리는 적어도 1년에 한 두 번은 부모님을 찾아뵙고 또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찾아뵙지 못하면 전화라도 드려야 하는 것이 자식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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