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 시력 약하나 '청각 발달' 牧者 음성 쉽게 구분
[일요주간=소정현 기자] 바이블에 무려 500번 이상 출현하는 양은 역사 시초부터 인간과 부대껴온 동물로서 창세기 4장부터 소개된다. 아담의 두 아들인 가인은 농사를 지었는데 아벨은 양치는 목동이었다.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창세기 4:1-3)
신구약에 예시!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다
스코틀랜드의 한 교회에는 십자가 대신에 양 한 마리가 올려있다고 한다. 사연을 들어보면, 교회를 건축할 때 지붕에 한 인부가 낙상의 순간에서 마침 지나가던 양떼 위에 떨어져 다행히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양은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한다.
신약에서 예수는 양의 비유를 들어 핵심 진리를 명료하게 설파하셨다. 예수 당시 공생애 사역의 거점이었던 팔레스타인 지역은 목축을 생업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에 마을마다 공동 소유로 양의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이것은 이리와 짐승 떼와 도적으로부터 양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양의 우리는 약 3m 정도의 높이로 울타리가 처졌고, 밤이 되면 문지기들은 양떼들을 보호하려고 밤새 보초를 섰다. 캄캄한 밤에 양들을 훔치고자 몰래 조용히 담을 넘어 찾아오는 자들이 있었으니, 바로 이들이 절도요 강도였다.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요한복음 10:1)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어 목자들이 오면 문지기는 문을 열어 준다. 목자들이 각각의 양들에게 부여한 이름을 부르면 양들은 신기하게도 목자의 음성을 금방 알아듣고 목자 앞에 나란히 선다. 이어 목자들이 양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에게 노래를 불러주면, 그 양들은 그 소리를 듣고 자신의 목자를 따른다. 이것이 많은 양떼 속에서도 자신의 양들을 구분해 내는 독특한 방법이다.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 오되”(요10:3-4)
너무 신기하게도 양의 주인은 자신의 양들의 이름을 부른다. 양들은 청각이 발달되어 있어서 목자의 음성과 타인의 소리를 쉽사리 구분한다. 목자가 양의 이름을 부르고 양이 그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목자와 양의 관계가 인격적이고 긴밀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목자는 양들을 도매금으로 부르거나 번호를 붙여 부르지 않는다. 이름을 붙여주고, 양도 목자가 자기에게 붙여준 이름을 알게 된다.
1980년대 후반, 팔레스타인 폭동기간 동안에 이스라엘 군대가 세금을 체납한 베들레헴 부근의 한 마을을 응징하기로 결정하고서 이곳 마을의 짐승들을 모아 가시철조망을 두른 커다란 우리 안에 가두었다.
며칠 후 한 여인이 그에게 찾아와 자신의 가축들을 풀어 달라고 애원했다. 그녀의 남편과 사별했기에 그 가축들이 그 여인의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다. 그러나 지휘관은 이 많은 짐승들 가운데 어떻게 그녀의 가축을 찾을 수 있느냐며 빈정대었다.
목자는 양들 구조신호에 늘 민감하게 깨어 있어야
양들의 여러 소리 의미를 생생하게 확신 있게 분별
그녀는 자신의 가축을 구분하여 낸다면 가져가게 해달라고 애원하자, 지휘관은 마지못해 동의했다. 그녀가 우리의 문으로 들어가자 여인의 아들이 작은 갈대 피리로 단순 멜로디를 반복해서 연주하기 시작하자, 양들이 이곳저곳에서 머리를 쳐들었다. 그 소년은 음악을 연주하며 집으로 걸어갔고, 25마리의 양들이 그 뒤를 연신 따라갔다.
이렇듯, 양은 목자의 음성에 즉각 순종을 나타낸다. 그러나 양은 낯선 사람의 음성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어떤 낯선 관광객 한 명이 목자처럼, 양의 이름을 차례로 불렀지만 시큰둥하기만 했다.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요한복음 10:5)
그렇다면 목자의 음성을 녹음한 테이프를 양들에게 틀어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들 양들은 녹음된 목자의 목소리를 식별하고 민감하게 반응했다.
양의 사육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는 바이블의 목자의 용어는 고려시대의 것을 차용한 것이다. 목자는 고려시대 각 목장에서 우마(牛馬) 사육에 종사하는 사람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주목조(濟州牧條)에 의하면 고려시대에 양노(養奴) 또는 노자(奴子)라 했고, 그 뒤 몽고가 제주도의 목장 경영을 위해 목마사육 전문가인 목호(牧胡)를 파견했는데, 1367년(공민왕 16)부터 목자라 한 데서 비롯되었다.
생태학적 특성들! 계절에 따라 이주
야생 양은 고원지대에서 주로 발견된다. 경사가 있는 산지나 울퉁불퉁한 언덕, 바위 언덕 등에서 서식한다. 무더운 날씨에는 낮엔 주로 휴식을 취하고, 온도가 내려가는 밤에 주로 먹이 활동을 한다. 대부분 계절에 따라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다. 여름에는 넓은 고지대로 올라가고, 월동기인 겨울에는 절벽이나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좁은 계곡으로 이동한다.
떼를 지어 서식하는 양의 성질은 온순하며, 풀·나뭇잎·나무껍질 등의 식물을 선호한다. 임신기간은 147∼161일이고, 한배에 1∼2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다산종은 3∼5마리를 낳는다. 생후 1개월이면 먹이를 먹고, 3개월이면 이유한다. 2년이 지나면 새끼를 낳을 수 있으며, 7∼8년까지 번식이 가능하다.
양은 반드시 한 번 왔던 길을 다니는 습성이 있으므로, 처음에 사람들은 돌아오는 야생의 양떼를 기다렸다가 사냥을 하였다. 그러나 식량으로 야생의 양을 필요로 하는 일이 많아지자 직접 양떼를 따라 사람도 이동하면서 양을 순응화 시키는 목축업을 시작한 것이다.
양의 가죽은 추운 지방에서 의복이나 덮개로 이용되었는데, 양의 부드러운 가죽은 그리스·로마 시대에 글을 쓰기 위한 양피지로 이용되었고, 중세에는 기독교의 성경을 여기에 기록했다.
고대의 수메르·이집트·그리스·로마·게르만 민족들은 양을 신에게 제물로 바쳤다. 고대 중국에서는 은(殷)나라 때부터 식용하고 있었으며, 한국에서는 고려시대에 금나라에서 면양을 들여와 사육한 기록이 있다.
매우 취약하고 불리한 유전적 특성
양에 대한 문화적 인식에 차이가 있는데, 우리 한국인들은 무척 좋게 말한다. 유순하고 깨끗한 동물, 하얀 털을 갖고 있는 양에 후한 점수를 준다.
그러나 분명 양은 고집이 세고 성질이 급한 동물이다.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는 양의 특성에 대해 정곡을 찌르고 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갈 길로 갔거늘”(이사야 53:6)
한국에서 가장 심한 욕이 ‘개새끼’라면 중동에서는 고집이 세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모르는 사람을 ‘양 같은 놈’이라 한다. 오래 전부터 양을 치며 살아온 중동의 사람들이 양에 대해서는 주도면밀하게 본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양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생존에 있어 매우 취약하고 불리한 유전적 특성을 다수 소유하고 있다.
▽ 길을 분별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개와 고양이 등은 용이하게 원래의 길을 찾아간다. 또한 비둘기나 연어 같은 동물은 오랜 시간 장거리를 여행하고도 향을 찾아가는 놀라운 방향감각을 지녔다. 그러나 양은 길을 잃을 때 스스로 길을 찾아가지 못하기에 쉽게 길을 잃어버린다. 양의 시력은 무척 나빠 3m 앞도 잘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목자의 인도는 필연적이다.
▽ 양은 스스로의 방어능력이 없다.
대부분 동물들은 자기를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다. 고슴도치는 밤송이처럼 생겨서 구분이 잘 안되고, 잘못 접근하면 심하게 찔려 자신들을 해하려하는 동물들을 고통에 울먹이게 한다. 양은 사자나 호랑이처럼 용맹스럽거나 빨리 달리지도 못하며 카멜레온처럼 자신을 위장할 수도 없다. 이처럼 양은 자신을 보호할 특별한 무기가 부재하다.
양은 스스로의 방어능력이 없는 만큼 겁이 많은 짐승이다. 그러다 보니 함께 무리를 지어 다니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이리가 한 마리만 양 우리로 뛰어 들어와도 양들은 다른 동물처럼 합십하여 물리칠 생각은 하지도 못한 체 모두 뿔뿔이 흩어질 뿐이다. 이러니 돌봐 주는 목자가 없다면 결국 동물의 밥이 되기 십상이다.
▽ 양은 먹을 것을 스스로 구하지 못한다.
다른 동물들은 예리한 감각을 가지고 스스로의 적합한 먹이를 찾는데 비해 양은 독초조차 해로운 줄 모른다. 그래서 목자의 돌봄 없이는 스스로 살아갈 아무 능력이 없는 것이다. 양은 이처럼 부족한 것이 수많은 결점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선천적으로 수많은 구조적 불리한 요건을 가지고 있는 양들의 생존은 목자가 마치 부모가 자녀를 대하듯 하지 않으면, 양들의 성장과 번성은 아예 불가능에 가깝다. 목자는 양에 대해서 양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양의 필요, 양의 건강 상태, 양의 요구 등을 익히 알고 있다.
목자는 양들의 구조신호에 늘 민감하게 깨어 있어야 한다. 초보 목자들이 프로 목자들에게 훈련을 받을 때 수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것은 양들이 내는 여러 소리의 의미를 생생하게 확신 있게 분별하는 것이다.
행복한 소리, 배고픈 소리, 산책하고 싶은 소리, 위기에 처한 소리가 어떻게 다른 것인가를 예민하게 철두철미 분별시킨다. 무엇보다 위기의 신호에 대해서는 지체 없이 반응하도록 혹독하게 훈련시킨다. 그리고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까지 두려워하지 않는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한복음 10:11)
주지하다시피, 목자의 일은 어렵고, 지겹고, 위험하다. 위험이 닥치면 도망가고 자기 이익에만 관심을 가지면 양은 안전할 수 없다.
양을 치는 목자들에게 있어서 제일 경계해야 되는 것은 이리떼나 맹수들이다. 진정한 목자는 양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 지킨다. 다윗도 양을 칠 때 사자와 곰과 정면으로 대결했다.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쳐 죽였었나이다.”(사무엘상 17:34-35)
중동에서 양을 치는 목자들은 광야에서 밤이 되면, 벽으로 둘러싸인 장소 안에 양을 모아 두었다고 한다. 그곳은 대개 뒤쪽이 솟아 있는 절벽이나, 협곡이 끝나는 곳이었는데, 허리 높이 정도로 돌 벽을 쌓고 그 위쪽에는 가시나무 가지를 두어 야생동물에게 희생되지 않도록 했다. 그 돌 벽에 만든 작은 문을 통해서만 양들의 출입이 가능하도록 한 후, 목자 자신이 보초로서 그곳을 지켰다.
또한 목자는 양을 자식처럼 여기고 보살핀다. 그렇기 때문에 일백 마리의 양 중 한 마리라도 잃으면 목자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버려두는 위험을 감수하고 그 한 마리를 찾아 나선다.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누가복음 15:4)
그러나 양을 자녀처럼 보살피지 않는 목자들도 분명 상존한다. 이른바 대가를 받고 양을 치는 삯군목자이다. 유대민족들은 양이 300마리 이상일 경우 대규모 목축이기에 별도로 양을 칠 일꾼을 고용했다.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요한복음 10:12)
양들에게 위협이 있을 때 삯군목자는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는다. 유대인들의 구전 전승 모음집인 ‘미쉬나(Mishnah)’을 보면, 삯군목자의 책임 한계는 이리 한 마리의 공격으로 제한되어 있다. 이리 한 마리의 공격으로부터의 공격은 막아야 할 책임이 있지만 2마리 이상의 이리떼나 다른 맹수들로부터 지킬 책임이 없는 것이다.
'시민과 공감하는 언론 일요주간에 제보하시면 뉴스가 됩니다'
▷ [전화] 02–862-1888
▷ [메일] ilyoweekly@daum.net
[저작권자ⓒ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부산 덕포동 중흥S클래스 건설현장서 화재 발생...검은 연기 치솟아 [제보+]](/news/data/20220901/p1065590204664849_658_h2.jpg)
![[포토] 제주 명품 숲 사려니숲길을 걷다 '한남시험림'을 만나다](/news/data/20210513/p1065575024678056_366_h2.png)
![[포토] 해양서고 예방·구조 위해 '국민드론수색대'가 떴다!](/news/data/20210419/p1065572359886222_823_h2.jpg)
![[언택트 전시회] 사진과 회화의 경계](/news/data/20210302/p1065575509498471_939_h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