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주취폭력자의 고백, 1년 6개월 교도소 생활 마치고 막노동판 전전 사연

이호준 / 기사승인 : 2015-05-22 18:3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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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주간=이호준(실직노숙인 조합 위원장)] 어제 J(52. )가 왔다. 노크를 대신한 카랑한 헛기침으로 숙소 겸 사무실(실직노숙인 조합) 문을 밀더니 캔 커피를 앞세운 인사를 했다. 잘 잤나!”
주취폭력으로 16개월간의 교도소 생활을 마치고 지난 3월 출소를 했었던 J(52. )는 현재 부산역 인근에 월세(10만원)방을 얻어 막노동을 하며 지내고 있다.

이제부터 최근 그와 얽혔던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할까 한다.
그날은 하는 일 없이 잠이 안 왔다.
12시가 넘은 시각, 억지로라도 눈을 붙여 볼 량으로 사무실 한쪽에 마련해 놓았던 침대에 몸을 뉘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희미한 정적을 깨는 휴대폰 벨소리, 나는 거리노숙인들의 특성상 늦은 밤 크고 작은 사건에 연루되는 경우가 많음을 알기에 태연하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밤늦게 미안하다.”
! ! 무슨 일 있습니까?”
아니,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는데.....”
M씨였다.
올 초 뇌경색에 관한 수술을 한 M씨의 말인즉 J가 만취 상태에서 오토바이 접촉사고를 일으켜 경찰서에 잡혀 있으며 담당수사관이 보호자를 요구해 자신에게 전화를 했으니 대신 가줬으면 했다.

나는 서둘러 옷을 입고 사무실을 나섰다.
J는 어렸을 때부터 부산역을 들락거렸던 토박이로 15년 전 실직노숙인 조합을 결성할 당시 가입했던 몇 안 되는 초기 조합원들 중 한사람이었던 만큼, 나는 그를 잘 알고 있었다.
170Cm 정도의 키를 한 그는 고등학교 시절 유도를 한 탄탄한 체격에 까무잡잡한 메기 상이여서 인상 자체가 왠지 꺼려지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알고 나면 누구보다도 살갑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한때는 고교 시절 열심이었던 유도(공인3)를 그만두고 여성 만나 딸을 출산 하는 등의 단란한 미래를 꿈꾸기도 했었다.

그러나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막노동판 수입에 궁핍한 살림살이를 견디다 못한 부인이 집을 나가버리자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갓난쟁이를 고아원에 맡긴 채 녹녹치 않은 현실을 술로 달래다 마음에도 없는 폭력을 휘두르게 되었고, 그런 이유들이 쌓여 형제들과 친구들에게서 멀어졌으며 주취폭력으로 몇 번의 교도소 생활이 이어지는 동안 거리노숙인에서 폭력전과자로 전락해 버렸다.

그런 상념에 젖어 도착한 관할경찰서 나는 서둘러 교통조사계로 향했다.
2층 출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시끄러웠다. 만취한 J가 당직 조사관에게 미주알고주알 따지며 난동 아닌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나는 늦은 시간에 그것도 택시비까지 들여가며 찾아간 경찰서에서 그 꼴을 봐야 한다는 것에 화가 났다.
경찰관의 어떻게 오셨습니까?”라는 용무 섞은 인사를 무시한 역정을 부렸다.
지금 뭐 하는 건데?”
자신을 향한 고함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확인한 J왔나!”고개를 떨어트리는 딴청을 부렸다. 나는 경찰관에게 고개를 까닥이는 뒤늦은 인사와 함께 명암을 건넸다.
이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실직노숙인 조합, 선생님이 위원장님입니꺼?”
, 제가 위원장입니다. 근데 어떻게 된 겁니까?”
만취한 상태에서 오토바이를 운전하다가 남의 오토바이를 뒤에서 들이받고 도주를 하다 붙잡혔는데예. 사람은 다치진 않았으니 크게 걱정할 것은 없고예. 이런 상태로는 조사를 꾸밀 수가 없으니 오늘은 모셔 가시고 내일 조사받으러 같이 오시이오.”

J
는 다음날 나와 함께 경찰서에 출두하여 2~3시간의 고분고분 조사를 받았다.
그 모습에 전날 곤욕 아닌 곤욕을 치러야했던 담당조사관이 코웃음을 치더니 오토바이 교통사고 전과가 많아 구속을 당할 수도 있으니, 빠른 시일 내로 피해자와 합의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조언을 해줬다. 그런데 교도소에서 출소 한지 1달 남짓 밖에 안 된 J가 피해자와 합의를 볼 만큼의 돈을 소유하고 있을 리 만무했다.
그리고 접촉사고 내게 된 경우를 들어보니 기가 막혔다. 그 내용인 즉 주취폭력으로 구치소에 수감되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을 당시 평소 부산역에서 형 동생하며 지내던 K씨가 면회를 와 합의서를 작성할 합의금으로 20만원을 요구했고 J는 지인을 통해 20만 원을 건넸다.
그런 덕분인지 구형이 3년에서 16개월로 반 토막이 났고 만기출소를 했다.

하지만 출소하여 당시 주취폭행 피해자를 만나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그것은 합의는 다른 지인들과 50만 원에 봤으며 정작 자신에게서 합의금조로 20만 원을 받아간 K씨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란 것이었다. 밀려드는 배신감에 달셋방이라도 얻을 요량이었던 돈으로 부산역에 퍼질러 앉아 며칠을 술을 달고 살았다.
그리고 때마침 눈에 뜨인 K씨에게 20만 원을 돌려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K자꾸 돈 달라고 하며 집어 넣는다는 협박에 만취하도록 술을 마신 채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엉뚱한 행동을 하다 접촉사고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결국 실직노숙인 조합위원장인 내가 나서야 했다.
우선 친분이 있는 오토바이 수리 점을 찾아가 사고 경위를 설명하고 수리비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봤다.
공교롭게도 K씨가 합의금조로 챙긴 “20만 원 정도면 어딜 가나 수리를 할 수 있다는 답을 얻었다.
하지만 실직노숙인 조합이 미인가 시설인데다 후원보다는 벌어 운영해 왔던 관계로 나 또한 J와 다를 바 없는 무일푼 신세였다.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끝에 대구 YMCA 부이사장을 역임하였으며 오는 30대구경북 와이즈맨지방장으로 취임하는 윤재섭씨에게 전화를 했다.
지난 3년 동안 겨울철이면 시작하는 실직노숙인 조합노숙인 무료급식 프로그램에 사비를 털어 쌀을 비롯한 소뼈와 시래기 등의 음식재료들을 구입해 보내줬던 인연이 있어 J의 사정 이야기하고 20만 원을 후원해줄 것을 부탁했다.

윤재섭씨는 그래도 교통사고인데 200만 원도 아닌 20만 원가지고 되겠냐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하며 흔쾌히 20만 원을 문화복지실천) 여섯줄 사랑회통장으로 보내줬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당시 나는 수리비만 마련하면 합의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아리송한 자신감에 쌓여있었다.

그리고 그런 마음들이 통했던 것인지 합의서를 작성하기 위해 만난 피해자도 노숙인들 도우며 부산역에서 노래하시는 분 아니세요라며 나를 알아 봤다.
잘 됐다 싶어 거두절미하고 20만 원을 건네자 좋은 일 하시는데라는 말꼬리를 흐린 그는 J를 향해 앞으로 음주운전은 하지 마세요로 시작한 제법 장황한 그러나 기분 좋은 충고 늘어놓으며 꾸며진 합의서에 이름을 적고 서명을 했다. 그렇게 작성한 합의서를 챙긴 J는 다음날로 아침 일찍 사라졌다 늦은 밤이며 부산역 3층 대합실에 나타나 노숙인들 틈에 끼어 박스 한 장을 깔고 자는 행동으로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더니, 5일 째 되는 날 저녁 사무실 찾아왔다.

그리고 자질구레 것들로 어지러운 책상 위에 주머니에서 꺼낸 하얀 봉투를 내려놓았다.
뭐요.”라며 안을 들여다보니 만 원권 지폐뭉치였다.
“20만 원이다.” 뭔데?” 거 합의금으로 빌린 돈 아이가!” 그건 후원금이라니까.”
됐다. , 생면부진데, 갔다 쭈라.” 아니 그 돈은 실직노숙인 조합에서 정식으로 후원을 받아 집행한 돈이라니까.” 그라면 우째 해야 돼겠노?” 우째하긴, 뭘 우째, 가지고 가서 월세 방이라도 얻으면 나야 고맙지.”
“...” 그리고 화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대구 쪽을 바라보고 감사합니데이~ 열심히 살께예~ 해보이소!”
그렇게 나의 농 짓에 걸걸한 웃음으로 받아 넘기며 시간을 보네다 수줍게 봉투를 챙겨 들고 나갔다.
그런 그가 어제 아침 캔 커피 2개를 챙겨들고 찾아온 것이다.

멋쩍은 인사로 캔 커피를 건네더니 남포동과 송도 중간 즘에 보증금 없이 월 10만 원을 지불하는 단칸방을 얻었으며 주소지를 신고한 관계로 정착지원금혜택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젠 다 커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딸과도 통화를 했다며 제법 장황한 너스레를 늘어놓더니 뜬금없이 물었다. 동생아, 때구가 어느 쪽이고?” ? ,” 니가 하라는 대로 하니까 효과 있드라.” 어떻게 했는데?” 어떻게 하긴 대충 감사합니데이, 열심히 살꼐예, 했는데, 그냥 마 미안해지고 그렀테, 그래가 많이 울었다 아니가. 그라고 요즘은 노가다를 열심히 다닌다.”

이사회에서 보편성 이상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누군가는 기회라고도 하고 행운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꼭 기회나 행운 같은 개인적인 것들을 필요로 하고 채워야 성공한 사람이고 성공한 사회일까?
내가 실직노숙인 조합위원장으로 만났던 사람들 중에는 행운이나 기회보다는 인간의 정을 그리워하고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 감히 말해본다. 서로가 느낄 수 있는 정 하나로 보편성 이상의 것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우리 모두 노력하자고..아무튼 윤재섭님, 오는 530대구경북 와이즈맨지방장 취임을 축하하고 님께서 기부한 20만 원이 한 사람의 인생에 훈훈함을 넘어 변화의 단초가 된 것 같아 이 지면을 통해 짧게나마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PS. J(52. )씨는 현재 실직노숙인 조합의 도움으로 K씨를 갈취 및 공갈 협박으로 경찰에 고소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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