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두려움과 슬픔은 그런 것들에 대한 집착과 욕심에서 온다"

김선국 박사 / 기사승인 : 2019-04-17 10:3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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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박사 김선국의 노자(老子) 이야기(36)
▲ 저자 김선국 박사.

[일요주간 = 김선국 박사] 구간苟簡은 구차苟且하고 간단簡單한 삶을 말하는 것이다. 좁은 농사를 지으면서 단순하게 사는 것이 오히려 먹고 살기가 편하다. 넓은 땅을 농사 지으려면 새벽에 일어나서 애를 많이 써야하고 밤새 누가 훔쳐가지나 않을까 혹은 동물들이 파헤쳐서 피해를 주지 않을까 걱정해야 한다.


그러나 작은 밭데기 하나 부쳐 먹으면 그 만큼 신경 쓸 일도,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다. 남에게 논밭을 빌려서 농사짓다보면 소작료도 내야되고 혹시 흉년이라도 들면 그 지대를 어찌 갚을 수 있는가? 빌리지 않고 그저 있는 논밭이나 부쳐먹으면서 사는 것이 가장 경제적인 삶일 수 있다. 현대를 사는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더 출세한 사람일수록 더 많은 일로 인해서 스스로를 잊고 산다. 물질과 돈의 노예가 되고 자신이란 존재의 참된 의미를 잊고 살게 된다.

그러나 단순하고 소박한 삶, 세상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그 반대로 세상을 초월해서 살고자 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노자는 그렇게 사는 삶을 진리를 캐는 놀이라고 이야기한다. 단순함 속에 살면서 먹고 사는 일에 신경 쓰는 일보다 진실 그 자체를 탐구하고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는 무위의 삶을 진정한 삶이라고 노자는 이야기한다.

以富爲是者 不能讓祿 (이부위시자 불능양록) 그래서 부를 좋아 하는 자는 녹봉을 남에게 양보할 수 없고
以顯爲是者 不能讓名 (이현위시자 불능양명) 명성을 좋게 여기는 자는 이름을 양보할 수 없으며
親權者 不能與人柄 (친권자 불능여인병) 권세를 가까이 하는 자는 남에게 권세를 넘겨줄 수 없다.

단순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지인至人의 삶이지만 세상사람들은 부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재물을 남과 나누지 않는다. 최고의 투자가인 워렌 버핏은 자신과 식사하는 사람에게 10만불의 돈을 받는다고 한다. 자신이 돈을 버는 비결을 알려줄지도 모르지만, 혹은 자신과 함께함으로써 돈의 가치를 느껴보라는 의미일지 모르지만, 그런 삶은 죽을 때까지 돈의 노예라는 생각이 든다.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신약성경에 써있다. 명성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을 높게 여기는 자들은 낮아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오히려 남의 발을 씻어주고 낮아지며 겸손한 사람이 진정 높은 사람이다. 권세를 얻은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최고의 권좌에 올랐던 이들이, 가장 추한 모습으로 인생을 마감하는 것을 많이 본다. 돈이나 명성, 권세는 본래 추구할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노자는 이야기한다. 단순하게 무위의 마음으로 세상에 속하되 세상에 지배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우리는 결국에는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본래의 우리 자신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操之則慄 舍之則悲 (조지즉율 사지즉비) 이런 것들을 잡으면 두렵고 잃으면 슬퍼하니
而一無所鑑 以闚其所不休者 (이일무소감 이규기소불휴자) 그러나 한번도 반성치 않고 그것들은 쉴 새 없이 엿보는 자는
是天之戮民也 (시천지륙민야) 하늘에 죄를 지은 자이다. 

 

 

도경 13장 삶의 오르내림(총욕편)에서 우리는 성공과 실패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우리 삶의 오르내림은 얻고 잃음 때문이 아니라 부귀화 같은 것을 잃고 얻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근심걱정으로부터 온다. 그런 두려움을 다 비운 사람은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기에 슬퍼할 일도 없다. 모든 두려움과 슬픔은 그런 것들에 대한 집착과 욕심에서 온다. 


그런 것을 다 내려놓은 사람은 이 세상을 자유로움 속에 걸어갈 것이다. 그런 것들에 사로잡혀 사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삶이며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쉴새 없이 세상에서 얻어서 안전하게 지키고 유지하는 것에 신경을 쓴다.

 

그렇게 살다보면 삶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게 되고 결국에는 하늘에도 죄를 짓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로운 사람은 얻는 것도 잃는 것도 같은 것이기에 세상에 죄 지을 것도, 하늘에 죄 지을 것도 없다. 그런 사람은 이 땅에서도 자유롭고 저 하늘에서도 자유롭다다.

怨恩取與諫敎生殺 (원은취여간교생살) 원한과 은혜, 취하는 것과 받는 것, 간하고 가르치는 것, 살리는 것과 죽이는 것,
八者 正之器也 (팔자 정지기야) 이 여덟은 정치의 도구이니
唯循大變无所湮者爲能用之 (유순대변무소연자위능용지) 오직 차례대로 크게 변통하여循大變 막히는 것이 없는 자无所湮者만이 능히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
故曰 正者 正也 (고왈 정자 정야) 그러므로 정치란 바로잡는 것이라 하며
其心以爲不然者 (기심이위불연자) 그 마음이 그렇지 않은 자는
天門弗開矣 (천문불개의) 하늘의 문이 열리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노자는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대륙을 돌아다니는 최고의 정치철학자에게 정치에 관한 훈수를 두고 있다. 최고의 정치가는 누구인가? 도경 17장 최고의 지도자(태상) 편에서 잠시 최고의 지도자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을 보자. 최고의 지도자는 백성들이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하는 지도자라고 말했다.

 

온갖 선전과 선동으로 백성들을 이념화시키고 백성들의 귀와 눈을 막고 가리는 자들은 최악의 지도자이다. 최고의 지도자는 최고의 정치를 행해야만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 최고의 정치는 은원怨恩을 살펴서 잘하는 것이다. 잘하는 백성들은 격려해주고 잘못하는 백성들은 제대로 된 규제와 벌로써 교화할 수 있다면 최고의 지도자가 될 수 있지만 교활한 백성들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다. 

 

자신의 탐욕을 먼저 찾아 챙기는 인간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언제나 ‘나의 것’을 위해서 남을 해하는 것이기에 지도자는 상과 벌 주는 것을 잘해야 하며 잘못된 것을 말해주고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현대의 교육시스템 조차도 자본주의화되어서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최고의 지도자는 이런 모든 것을 고려해서 최고의 법률을 만들어야 하지만 법률을 만드는 소위 지도자들 조차도 여러 이익단체의 이익을 위할 뿐 일반 백성의 이익을 먼저 생각치 않는다. 죽이고 살리는 것은 정치의 세계에서 비일비재하다. 

 

서로 죽이려고 안달이 나있다. 그런데 여기서 죽이고 살리는 것은 그런 정치적 투쟁을 얘기하는 것 같지는 않다. 백성들을 잘 살고 못살게 하는 것, 이것이 정치의 핵심이다. 노자는 이상의 8가지를 잘 하는 것을 최고의 정치로 보았고, 공자에게 그렇게 충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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