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 이은화 작가 시 읽기 81] 투명 물고기

이은화 작가 / 기사승인 : 2026-05-04 10: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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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물고기

권혁재


내 사랑을 당신에게 보여줄 수 없을까
체온만 겨우 남은 당신 사랑 때문에

스쳐도 느끼지 못한
지느러미 흔적들

뒤에서 밀고 오는 그 파문의 힘으로
사랑의 맹세를 새길 수 있을까

지워도 훤히 보이는
유리 같은 손바닥에

당신이 울수록 떨어지는 물빛 비늘
사랑을 다 비워낸 당신의 얼굴빛이

드넓은 바다 같아서
손을 대도 닿지 않는 당신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 시 감상 ) 투명하다는 것은 어떤 감각일까요. 보여줄 수는 있지만 전해질 수는 없는 사랑 앞에서 시인은 조심스럽게 물음을 내밉니다. “내 사랑을 당신에게 보여줄 수 없을까”라고. “지느러미의 흔적”만이 수면에 남듯 파문으로 새겨지는 사랑. 파문(波紋)의 힘은 이 시의 가장 아름다운 언어예요. 닿지 못한 마음이 오히려 더 넓게, 더 오래 번져가는 노래니까요.

“당신이 울수록 떨어지는 물빛 비늘”의 이미지는 시인의 상상력이 빚어낸 가장 슬픈 생리학이지요. 슬픔이 깊어질수록 자신을 지키던 것들이 하나씩 벗겨지는 사랑. 그렇게 사랑을 비워낸 “당신의 얼굴빛”은 바다와 같아, 그 모습 투명해 내 사랑이 가닿지 못한다고. 당신과 나 사이 파문의 울음처럼 번지는 흔적만 있다고요. 손을 담글 수는 있어도 쥘 수는 없는 바다 같은 당신. 그 가장자리에서 나는 손을 내밀 뿐이라고.

이 시의 시작이 불가능의 안타까움이었다면, 마지막의 불가능은 수용이에요.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손을 내미는 마음, 이것이 이 시가 도달한 사랑의 형태가 아닐까요. 투명한 것은 사라지지 않아요. 다만 보이는 방식이 다를 뿐이지요. 닿지 않을 슬픔을 노래하는 이 시의 파문은 오래 퍼지지요. 이 순간 누군가의 전하지 못한 사랑도 이렇게 번져나가고 있을지 몰라요.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도요.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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