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화 시인의 작가 초대석 ] 5만 명의 독자가 읽은 박상열 시인의「팔도광대」 전통문화에서「AI 시대 교육 선언문」

이은화 작가 / 기사승인 : 2026-04-20 11: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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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행: 이은화
대담자: 박상열
▲ 박상열 시인

 

 

박상열 늦봄(晩春) 박상열은 1994년 『삶터문학』 시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하고, 1995년 『시와시인』에서 박재삼 선생의 추천을 받으며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한글나라 한주석 대표와 함께 시민의 삶을 문학의 자리로 불러내는 생활문학을 펼쳤으며, 1995년부터 1996년까지 동국대학교 문학 동아리방을 기반으로 시민 대상 생활문학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후 공연예술전문기업 ㈜굿컬처에서 공연기획 실무를 쌓았고, 현재는 팔도광대문화예술협회 대표로서 문학, 전통, 교육, 기록을 아우르는 글쓰기와 문화예술 기획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Q. 이 시간은 시를 쓰며, 「팔도광대」, 「문화예술교육 선언문」, 「AI 시대 교육 선언문」의 연재를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는 박상열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반갑습니다. 시에서 출발해 공연, 전통연희 기록까지 확장해 오셨습니다. ‘박상열’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신다면요?

▶ 저는 저 자신을 삶이 지나간 자리를 오래 바라보며, 그것을 언어와 기록으로 남겨 온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게 문학은 한 장르이기 전에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였습니다. 그래서 글만 쓰는 사람으로 머물기보다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시민과 함께 생활의 언어를 문학으로 불러내는 자리도 있었고, 공연예술의 현장도 있었고, 전통연희를 기록하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다시 읽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제 길은 달라 보이면서도 결국 하나였습니다. 사람의 삶이 어떻게 말이 되고, 그 말이 다시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는지를 오래 지켜보는 일이었습니다.


Q. 1994년 『삶터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하시고, 이듬해 『시와 시인』에서 박재삼 선생님의 추천을 받으셨습니다. 선생님께서 남기신 말씀 중 지금도 마음 깊이 새기고 있는 것이 있다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박재삼 선생님께서 제 시를 보시고 앞으로 더 시를 시답게 써 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씀해 주신 것이 오래 남아 있습니다. 그 말은 제게 격려이면서도, 동시에 오래 붙들어야 할 물음이 되었습니다.

시는 결국 자신을 속일 수 없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장이 아무리 단정해 보여도 삶의 깊이에 닿지 못하면 오래 남지 못하고, 감정이 아무리 넘쳐도 진실이 없으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그 추천을 쉽게 앞세우지 못했습니다. 큰 이름을 빌려 저를 설명하기보다, 그 이름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과 글을 살아내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글을 쓸 때면 먼저 묻습니다. 이 문장이 정말 삶의 안쪽에 닿고 있는가. 사람의 마음 앞에 부끄럽지 않은가. 그 질문의 시작점에 박재삼 선생님이 계십니다.


Q. 1990년대 '생활문학' 활동은 오늘날의 문화예술교육 흐름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1995년부터 동국대학교 문학 동아리방을 거점으로 시민 대상 프로그램을 이끄셨는데, 글쓰기를 통해 변화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직접 목격하신 기억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 제가 생활문학에서 가장 먼저 붙든 생각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누구나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문학은 특정한 집단이나 지성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저는 믿었습니다. 노동자도, 가정주부도, 학생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언어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시이고 예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아이에게 남긴 짧은 쪽지, “아들, 힘들지. 사랑해.” 그 한 줄이 하루의 끝에서 한 사람의 마음을 붙들 수 있다면, 저는 그것 또한 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게 생활문학은 생활 바깥의 문학이 아니라 생활 속에 이미 와 있는 문학이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며 적고 남기는 모든 글, 모든 이야기에는 이미 창작의 씨앗이 들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1995년부터 1996년까지 저는 동국대학교 문학 동아리방을 기반으로 시민 대상 생활문학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그 시작에는 한글나라 한주석 대표와 함께한 실천이 있었습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시인과 작가를 초청했고, 명절을 제외하고는 한 주도 쉬지 않았습니다. 평균 20명 안팎의 시민들이 꾸준히 모였고, 그 흐름은 1996년 동국대학교 대강당에서 「생활문학」 출판기념회를 여는 자리까지 이어졌습니다. 그 시간은 제게 문학이 선택된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을 꺼내려는 모든 사람의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해 준 시간이었습니다.


 

▲ 팔도광대문화예술협회 대표 박상열 시인


 

Q. 1995년 지리산 함양에서 반년을 보내셨습니다. 도시를 떠나 그 고요한 시간 속에서 선생님의 시는 어떻게 달라졌나요? 그 이후 쓰신 작품 중 독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시가 있다면 소개해 주시겠어요?

▶ 지리산 함양에서의 시간은 제게 많은 말을 만든 시간이 아니라, 말을 덜어낸 시간이었습니다. 도시에서는 생각이 먼저 달리고 문장이 뒤따랐다면, 그곳에서는 바람이 먼저 오고, 산의 그림자가 먼저 길게 눕고, 저녁의 적막이 먼저 제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뒤에야 문장이 따라왔습니다. 그래서 제 시도 조금은 덜 설명하게 되었고, 조금은 더 오래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삶을 서둘러 해석하기보다, 오래 견디고 오래 들여다보는 쪽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제 내면의 시간을 비교적 선명하게 보여 주는 시가 「시간에 길들여진 들개」입니다. 이 시는 길들여진 시간, 원 안을 맴도는 존재, 자기 자신을 쉽게 놓아주지 못하는 내면의 불안을 담고 있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이 곧 자유로워진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 밖으로 나왔다고 해서 곧장 벗어난 것은 아니라는 감각을 이 시에 담고 싶었습니다.

전문을 다 실을 수 없다면, 

아래 문체들이 제 시의 정서를 전하는 작은 창이 되어 줄 것 같습니다.


뒤돌아볼 수 없는
자물쇠로 잠긴 시간의 지팡이에
한 번 맞고 나서야

나는
뒤창에 매달린 채
앞만 보는 법을 배웠다


- 중략 -

그 들개를 다시
원 안에 넣으면

식욕을 잃고
스스로를 버리는 쪽으로 기울거나

사람이 되기를 포기한 채
개라는 이름으로
제 몸을 오래 들여다보며 살았다


-「시간에 길들여진 들개」 부분

저는 이 시가 단순히 한 마리 들개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간에 길들여지며 자기 자신을 잃어 가는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생각합니다.


Q. 정경화 시인(필명 정태화)과의 인연이 시집 서문을 쓰며 시작됐다고 하셨습니다. 한 권의 책에서 비롯된 관계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문학이 맺어 주는 인연의 힘을 어떻게 보고 계세요?

▶ 문학이 맺어 주는 인연은 느리지만 깊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사람의 겉모습보다 먼저 그 사람의 안쪽을 만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한 권의 책, 한 편의 시, 짧은 문장 하나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래 남는 다리가 되기도 합니다.

정경화 시인과의 인연도 그랬습니다.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됐지만 오래 남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저는 문학의 힘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쉽게 끊어지지 않는 연결을 만드는 힘, 그것이 문학이라고 믿습니다.


Q. ㈜굿컬처 소속으로 제10회 젊은 연극제를 시작해 2003년 국내 최초 탭 뮤지컬 「마네킹」 기획까지 참여하셨습니다. 문학에서 공연예술로 영역을 넓히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 저는 문학과 공연예술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시가 언어의 리듬으로 사람을 만나듯, 공연은 몸과 공간의 리듬으로 사람을 만난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굿컬처에서 젊은연극제와 공연 기획 실무를 경험하면서, 예술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많은 사람의 준비와 협업 속에서 하나의 장면이 태어나고, 무대는 그 보이지 않는 시간들 위에서 완성된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배웠습니다. 그 경험은 이후 제게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 남되, 현장을 이해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더 분명히 하게 되었습니다.


Q. ‘팔도광대’라는 이름 안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나요? 그 이름을 정하기까지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 제게 팔도광대는 단순한 이름이 아닙니다.
세월을 건너 이어져 온 전통을 오늘의 삶 속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고 싶은 뜻이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저는 전통이 한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서 사람으로, 지역에서 지역으로 건너가며 이어져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팔도는 이 땅 곳곳에 이어져 온 예술의 시간과 역사를 품는 말이고, 광대는 시대의 감정과 공동체의 마음을 몸으로 옮기던 예술가의 이름입니다.

결국 전통은 기술만이 아니라, 오래 견딘 사람들의 마음과 자세를 통해 다음 세대로 건너갑니다. 제게 팔도광대라는 이름에는, 전통이 사람을 통해 오늘로 이어지고, 오래 견딘 시간 끝에 다시 다음 세대로 건너간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 서문연(서울지역대학생문학연합) 행사사진. 좌측부터 한주석(한글나라 대표), 박상열 작가, 정경화(정태화) 시인 (1990년대 중반)



Q. 2022년부터 매년 마산만날제의 「팔도광대놀음」과 「팔도광대전」에 협업 참여 그리고 「팔도광대 달구벌놀이」 의 기획·협업을 해 오셨습니다. 전통연희가 지역 축제와 만날 때 어떤 울림이 있을까요?

▶ 전통연희가 지역 축제와 만날 때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전통이 과거가 아니라 지금 이곳의 살아 있는 현재가 된다는 점입니다.

지역 축제는 그 지역의 기억과 정서, 공동체의 시간이 모이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 전통연희가 펼쳐지면 사람들은 그것을 먼 옛것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자기 고장의 공기와 사람들의 표정 속에서 전통을 새롭게 만나게 됩니다. 저는 바로 그 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은 설명될 때보다 마음을 울릴 때, 기록될 때보다 사람들 앞에서 다시 살아날 때 더 깊이 힘을 가집니다.

팔도광대문화예술협회는 그 길을 꾸준히 걸어왔습니다.
2022년과 2024년 마산만날제 「팔도광대놀음」 협업 참여, 2023년 「팔도광대전」 협업 참여, 2025년 「팔도광대 달구벌놀이」 기획·협업, 2026년 「횡성회다지소리민속문화제」 팔도광대협의회로 기획·협업에 이르기까지, 저희는 전통을 이어오며 저희는 전통을 단지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지역 속에서 다시 만나게 하고, 기록하고, 오늘의 감각 속에서 다시 살아나게 하는 일을 함께해 왔습니다.

저는 전통연희가 지역 축제와 만날 때, 그것이 단순한 공연 하나를 넘어 공동체의 기억을 다시 깨우고 지역 문화예술의 자존감을 다시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팔도광대가 해 온 일도 결국은 전통을 사람 곁으로, 지역 곁으로, 오늘의 삶 곁으로 다시 데려오는 일이었습니다.


Q. 시인으로 출발해 공연 기획자, 전통연희 기록자로 활동하는 지금 ‘시인 박상열’과 ‘팔도광대 대표 박상열’은 선생님 안에서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지 듣고 싶어요.

▶ 제 안에서 시인 박상열과 팔도광대 대표 박상열은 둘로 나뉘지 않습니다.

시인은 삶의 안쪽을 오래 들여다보는 사람이고, 팔도광대의 대표는 그 삶이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다시 살아 움직일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시를 쓰는 저는 말보다 오래 남는 감정의 길을 바라봅니다. 팔도광대문화예술협회를 운영하는 저는 그 마음의 흐름이 문학 창작, 기록형 콘텐츠, 시각예술 협업, 발표예술, 그리고 시민참여형 공공문화예술의 구조 속에서 어떻게 사람들과 만나 공감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그래서 제게 두 길은 서로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단단하게 보완해 줍니다.

특히 지금의 팔도광대는 전통예술만 다루는 단체가 아니라, 생활문학, 기록, 시각예술, 발표예술을 함께 엮어 시민참여형 문화예술 프로젝트로 확장해 가는 단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으로서의 감수성과 기획자로서의 실천은 제 안에서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는 저를 더 깊게 만들고, 다른 하나는 저를 더 넓게 만듭니다. 결국 저는 시를 쓰는 마음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팔도광대의 일을 하며 그 사람의 삶이 공동체 속에서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그 두 길은 결국 같은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삶을 예술로 만나게 하는 일, 그것이 제 안에서 시와 팔도광대가 함께 존재하는 방식입니다.


Q. 「팔도광대」, 「문화예술교육 선언문」, 「AI 시대 교육 선언문」 까지, 연재 132일 만에 독자 5만 명이 읽은 기록은 인상적입니다. 짧은 기간 동안 그토록 많은 독자와 공감을 끌어낸 힘이 어디에 있었다고 생각하세요?

▶ 저는 그것을 단순한 숫자로 보고 싶지 않습니다. 제게 더 중요했던 것은 전통과 교육, 기록이라는 주제가 독자에게 멀지 않은 언어로 전달되었다는 점입니다.

저는 전통을 옛것으로만 말하지 않으려 했고, 교육도 제도보다 사람의 문제로 되돌려 말하려 했습니다. 기록 또한 단순한 정보의 축적이 아니라, 사람의 삶과 생각의 흐름을 함께 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진정성이었습니다. 저는 유행하는 말을 만들기보다, 제가 정말 믿는 것을 쓰고자 했습니다.

2025년 10월 첫 연재를 시작으로, 2026년 3월까지 「팔도광대 1기 – 전통의 서막을 열다」 20회, 「문화예술교육 선언문」 7회, 「AI 시대 교육 선언문」 7회, 이렇게 세 편의 연재를 모두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연재 시작 132일 만에 전체 누적 5만 명이 넘는 독자 기록을 남겼습니다. 저는 이 기록이, 모든 연재가 끝나기 전부터 이미 사람과 예술을 향한 진심 어린 언어가 독자의 공감과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 준 상징적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문학·전통·교육을 잇는 이 긴 여정에서 선생님께서 남기고 싶은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 제가 끝내 남기고 싶은 것은 사람입니다.

문학도, 전통도, 교육도 결국은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람이 자기 삶의 목소리를 찾게 하는 일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지금 준비 중인 시집 『조용히, 다음 계절로』도 결국은 같은 마음에서 나왔습니다. 지나간 시간을 지우기보다 품은 채로, 끝내 다음 계절로 걸어가는 마음 말입니다. 시집의 맺음말과 뒤표지에서도 저는 남아 있는 빛, 살아 걸어가려는 마음, 그리고 끝을 닫힘이 아니라 다른 문 앞에 잠시 멈춰 서는 일로 바라보는 시선을 담았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사람에게 가까운 언어를 남기고 싶습니다. 전통이 사람에게 돌아가고, 교육이 사람을 남기고, 문학이 사람의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 그것이 제가 붙들고 싶은 한 가지입니다.


* 오늘 인터뷰에서 삶이 지나간 자리를 오래 바라보며 그것을 언어와 기록으로 남겨 온 박상열 시인과 함께했습니다. 시에서 출발해 공연, 전통연희, 교육까지 언뜻 여러 갈래처럼 보이는 길을 걸어왔지만, 선생님은 언제나 예술을 삶 가까이로 데려오는 사람이었습니다. 1990년대 생활문학의 현장에서부터 팔도광대의 전통연희 무대까지, 문학도 전통도 교육도 끝내 사람에게 닿아야 한다는 믿음 하나로 걸어온 그 한결같은 걸음이 132일 만에 5만 독자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곧 출간될 시집 『조용히, 다음 계절로』가 벌써 기다려집니다. 귀한 시간 함께 주신 박상열 시인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이은화 시인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일요주간 문화예술 전문 주필위원.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cactus681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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