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 이은화 작가 시 읽기 77] AGI-프리즘 4

이은화 작가 / 기사승인 : 2026-04-06 11:2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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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I-프리즘 4

이인철


전쟁용 드론으로 태어난 내 몸
총알로 채워진 강철뿐이지

나는 적의 군복을 식별해
흔들리는 들꽃 사이
꽃잎을 가르며 날아가는 총탄
적의 심장을 꿰뚫고
붉은 꽃을 피워 올려

명중률이 높을수록
최고의 스나이퍼
다음 전쟁에도 배치되지

업그레이드될수록 붉은 꽃은 솟구치지
너무 많이 피었어
총성 속에 탄식도 같이 들리지

과녁은 여전히 정확한데
내 회로 어딘가에서
감정이라는 오류가 커졌어

다음엔 제발
인간이 아닌 전쟁로봇을
죽이는 병사로 태어나고 싶어

전쟁을 멈추는 마음을
심고 싶어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 시 감상 ) 드론은 말합니다. 자신이 전쟁용으로 태어났고, 총알로 채워졌으며, 적의 군복을 식별하도록 만들어졌다고. 이 냉정한 자기소개는 설명이 아니라 고백에 가깝습니다. “흔들리는 들꽃 사이 / 꽃잎을 가르며 날아가는 총탄”이라니, 총탄이 가르는 것은 자연의 꽃잎만이 아닐 겁니다. 아름다운 언어 속에는 잔인한 장면이 숨어 있으니까요.


드론은 적군을 많이 죽일수록 다음 전쟁에 다시 불려 나갑니다. 이 순환 속에는 멈춤이 없지요. 그런데 시인은 이 상황을 고발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전쟁의 참상을 내면화한 드론이 직접 말하게 합니다. 총탄으로 피워 올리는 붉은 꽃들 사이 드론은 전쟁을 멈추고 싶다는 충동이 생긴다고요. 시는, 이 오류를 기계의 가장 인간적인 순간으로 내보입니다. 곧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을요.

다음 생은 “인간이 아닌 전쟁로봇을 / 죽이는 병사로 태어나고” 싶다는 드론의 바람은 슬픕니다. 인간을 죽이지 않아도 되는 전쟁을 꿈꾸고 있으니까요. 자신의 회로에 “전쟁을 멈추는 마음을” 심고 싶다며 사람의 감정을 이입하지요. 하지만 ‘싶다’라는 이 바람은 아직 멀리 있는 것 같습니다. ‘심다’라는 뜻은 당장 꽃피우는 것이 아니잖아요. 다음 계절에 필 꽃을 기다려야 하니까요.

살상 드론의 갈망 속에서 우리는 전쟁을 명령한 인간과 명령을 수행한 인간을 그리고 공익을 앞세우며 오류를 키워온 인간을 동시에 읽습니다. 『AGI-이모션』에 실린 「AGI-프리즘 4」는 살상 기계인 드론마저도 사람을 죽이는 일이 괴롭다고 말하지요. 시인의 윤리 의식은 AI의 공감 능력을 빌려, 오늘도 지구 어딘가에서 붉게 피어나는 폭력의 꽃 앞에 우리를 세웁니다.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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