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화 시인의 작가 초대석 ] 도예가 김기종, 흙과 함께 걸어온 40년 “도예가의 길” 가장 고귀한 선택

이은화 작가 / 기사승인 : 2026-10-01 10:4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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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행: 이은화
대담자: 김기종
▲ 김기종 도예가

 

 

김기종 도예가. 청주대학교 공예디자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개인전 20회, 해외교류전·초대전 80여 회, 단체전 380여 회 출품. 2019년 충청북도 도자기명장 1호 및 공예명인 14호 지정. 2025년 제1회 CJB 문화예술대상 공예부문 대상 수상. 대한민국 분청도자대전 및 김해 공예품대전 심사위원장(2025), 충청북도 지방 기능경기대회 도자기심사장(2026) 역임. 현재) 사단법인 한국도예협회장, 한국미술협회 및 한국공예가협회 회원, 충청북도 미술대전 초대작가, 충청북도 명장회, 공예명인협회 회원.


Q1. 청주대학교 공예학과 재학 중 여러 공예 분야를 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도예를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다면 무엇이었을까요?

⯈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화가가 되겠다는 막연한 꿈을 품고 있었습니다. 미술전람회에도 꾸준히 참가해 여러 차례 입상했고, 자연스럽게 미술 관련 대학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마침 집안 어르신께서 한국도자기에 재직하고 계셔서 도자기를 배워보는 것도 진로 선택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공예학과를 선택했습니다. 1학년 때는 기초 교양과목 수업이 많아서 흙을 본격적으로 만난 것은 1984년, 대학 2학년 때였습니다.


당시 전공으로는 금속, 도자, 목칠, 염직 네 분야가 있었는데, 이상하게 다른 재료에는 마음이 가지 않았습니다. 유독 흙의 부드러운 감촉이 손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도자기를 주 전공으로 선택했고, 평소 패션과 의상에도 관심이 많아 염직을 부전공으로 공부했습니다.


Q2. 작업장의 이름을 ‘토지(土地)’라고 지으셨습니다. 흙을 빚는 공간에 붙인 이 이름에는 어떤 의미를 담으셨는지요?

⯈ 흙을 만지며 작업하다 보니 ‘토지인(土地人)이 되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1991년 군 제대 후 마련한 작업장에 ‘토지도예공방’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 잘 지은 이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웃음)


Q3. “전통 도자기의 현대적 변형을 통한 한국 도예의 재발견”이라는 말씀을 여러 지면에서 하셨는데, 선생님께 ‘현대적 변형’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 방식을 뜻하는지 설명해 주시겠어요?

⯈ 시대가 변하면서 작업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전기가 없던 시절에는 나무로 만든 물레를 발로 차며 돌렸지만, 지금은 전기물레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업의 기본은 예전 방식에서 찾고 있습니다. 물레가 만들어내는 정형성은 지켜가되, 그 위에 현대적인 디자인과 새로운 표면 장식을 더해 변화를 주는 것 또한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을 존중하고 지켜가는 동시에, 그 전통을 바탕으로 현대도예가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찾고 끊임없이 발전시켜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경기도 이천 전통가마실 – 가마재임



Q4. 장작 가마 소성시 가마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불과 흙이 만나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보실 때 어떤 마음이 드시는지요?

⯈ 도예가들은 가마에서 구워져 나오는 도자기를 흔히 ‘자식’이라고 표현합니다. 만드는 과정이 아버지의 역할이라면, 가마는 어머니의 역할을 하는 셈이지요. 작가의 손을 떠난 도자기가 뜨거운 불 속에서 수많은 과정을 견디고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마치 산고와 같은 고통을 이겨내야 합니다.


특히 장작가마는 전기가마나 가스가마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오묘함이 있습니다. 가마에 불을 지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감정이지요. 가마 안에서 뜨거운 불을 견디고 있는 도자기를 바라보면, 마치 내 자식이 저 뜨거운 과정을 잘 견뎌내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게 됩니다. 칸의 구멍으로 가마 밖까지 뿜어져 나오는 불꽃을 보며 가마 내부의 분위기를 짐작하기도 합니다.


오랜 시간 소성을 마친 뒤에도 바로 문을 열 수는 없습니다. 며칠 동안 가마가 충분히 식기를 기다리는 그 시간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가마 문을 열고 한 점 한 점 작품을 꺼낼 때면 감격스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무사히 세상에 나와준 작품들이 고맙기도 합니다.


Q5. 최근 조형 작업보다 생활 자기 작업에 주력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이러한 방향 전환의 계기는 무엇이었는지요?

⯈ 작업은 늘 여러 분야를 병행하며 진행하고 있습니다. 개인전을 준비할 때는 물레 작업이나 조형 작업에 주력하고, 공예페어나 아트페어를 준비할 때는 생활자기 작업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전시의 성격에 따라 작업의 비중을 달리하면서 다양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Q6. 올 상반기 5월 청주공항 초대전의 메인 테마였던 ‘한글자음 테이블웨어’는 한글을 도자에 담아내는 시도였습니다. 한글이라는 소재를 도예의 언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가장 고심하신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 한글은 우리의 자랑입니다.
오래전부터 한글을 주제로 작업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일상에서 많이 사용하는 부부 반상기와 롱 머그컵에 자체 개발한 태극 문양과 한글 자음을 삽입해 작품에 다양성을 더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청주를 대표하는 문화관광상품으로 선정되는 기분 좋은 일도 있었습니다. 오는 10월에는 중국 징더전 세계박람회에도 참여하게 됐는데, 그 자리에서도 우리의 자랑인 한글을 널리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작업장 – 물레성형



Q7. 이 전시회서 특히 코발트 색감과 한글의 조형미가 어우러진 작품이 “한국적 정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한국적 정서’란 무엇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 한국적 정서는 한국의 자연과 역사, 생활문화 속에서 오랜 시간 형성되어 온 한국인만의 감정과 미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자기에 비추어 본다면 화려함보다는 자연스럽게 절제된 아름다움, 완벽한 대칭이 아니어도 편안하게 느껴지는 미감, 그리고 백자의 담담한 색과 형태에서 한국적인 정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유약은 백색과 회백색, 청색, 흙색, 흑유 등을 떠올릴 수 있는데. 지난 전시에서는 코발트 유약을 사용해 깔끔하면서도 청렴하고 당당한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Q8. 많은 수상 이력 가운데 선생님께 특별히 마음이 머무는 상이 있다면, 그 상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도자기 외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동안 여러 상을 받았지만, 지난해 겨울 제정된 제1회 청주 CJB 예술문화대상에서 공예부문 대상이 기억에 남습니다. 청주는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가 열리는 대표적인 공예도시로, 세계적으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런 청주에서 공예 부문 대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더욱 뜻깊었습니다. 마치 그동안 한길을 걸으며 열심히 살아온 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은듯해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는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Q9. 25년 가까이 여러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셨고 지금도 여러 기관에서 도예교육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제자들에게 가장 강조하시는 점은 무엇인지요?

⯈ 1994년부터 2019년까지 25년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과 함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제가 늘 강조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흙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흙을 만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작업하다 바닥에 떨어진 작은 흙 한 줌도 함부로 버리지 말고, 잘 골라 흙통에 넣으라고 이야기합니다. 요즘 학생들이나 일반인들은 흙의 소중함을 잘 모르는 것 같아 아쉬울 때가 있습니다. 1980년대 초, 토련기(흙을 반죽하고 고르게 만드는 기계)도 없이 직접 흙을 밟아가며 작업해 본 사람이 흙의 소중함을 제대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10. 예술 관련 학과, 특히 도예과가 하나둘 폐과되는 현실에 대한 우려를 밝히신 적이 있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이 문제를 다시 짚어본다면 어떤 대안이 필요할까요?

⯈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을 논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언제부터인가 대학 평가 기준에 취업률과 창업률 등이 중요하게 반영되면서 전국의 대학에서 문화·예술·체육 관련 학과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지켜보는 처지에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제가 재직했던 여주대학교도 도자기의 고장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지만, 정작 도예과가 폐과되는 현실을 눈앞에서 바라보면서 앞으로 50년, 100년 후에는 우리 도예의 명맥이 끊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조바심과 막막함을 느낍니다. 지역의 고유한 특성을 살려 특성화된 대학으로 발전시키지는 못할망정, 그 지역을 대표해 온 학과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못내 씁쓸하기만 합니다.

▲ 전통가마 작품 - 요출 작업



Q11. (사)한국도예협회장으로서 후학 양성과 도예 문화 대중화에 앞장서고 계시는데, 협회 차원에서 가장 시급하게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 요즘 사회 전반적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큽니다. 그러다 보니 예술가들 역시 그 영향을 크게 받고 있습니다. 특별한 지원 없이 창작활동을 이어가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생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도예가로서의 직업의식과 사명감이 있기에 서로에게 “이 어려운 시기를 잘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용하다”라고 격려하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다양한 국가와의 국제교류전을 통해 견문을 넓히고, 도예 작업의 활동 영역도 한층 넓혀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어려운 경제적 현실에 부딪히면서 해외 교류와 활동을 추진하는 데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앞으로 지방자치단체와 국가 차원에서 예술가들이 지속적인 창작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Q12. 2026년 세종대 세종뮤지엄갤러리 개인전에서 ‘트임 성형 기법’을 활용한 자유로운 조형과 절제된 유약 표현을 선보이셨습니다. 이 기법이 이전 작업과 어떻게 다른 조형적 가능성을 열어주었는지 궁금합니다.

⯈ 부드러운 흙의 본질을 이용한 자유로운 손끝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절제와 순간적인 정지가 만들어내는 오묘한 선의 미학을 추구합니다. 여성적인 섬세함을 바탕으로 때로는 과감하고 거친 표현을 더하고, 도시적인 세련미와 우아한 색감이 어우러지도록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도자기가 지닌 재료의 특성과 전통적인 제작 방식을 접목해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자 합니다. 절제된 조건 속에서 기물의 표면에 나타나는 선과 유약의 변화를 살피고, 새로운 공간과 다양한 시각적 효과에 주목했습니다. 특히 보는 이들이 기물의 형태와 유약의 다채로운 발색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기본적인 물레 형태를 유지하면서 표면에 ‘트임’ 작업을 더 해 흥미로운 변화를 유도했습니다. 전통적인 형태를 바탕으로 선과 틈, 유약의 변화가 주는 새로운 조형성을 염두에 두고 전시를 준비했습니다.


Q13. 앞으로 남은 작업 인생에서 도예가 김기종으로서 가장 이루고 싶은 목표나 방향이 있다면 들려주시겠어요?

⯈ 여러 종류의 점토가 있지만, 돌이켜보면 유독 백자 작업에는 소홀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3년 정도는 백토와 함께하며 백자가 지닌 새로운 가능성을 깊이 탐구해 보고 싶습니다. 또한 역량 있는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후학 지도에도 힘써 도예의 명맥이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관공서와 각 교육기관의 특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도자 교육의 필요성과 우수성을 알리는 데에도 힘쓰겠습니다.


Q14.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끝으로 선생님께서 평생 흙과 함께 걸어오신 길을 돌아보며, 도예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선생님께 어떤 의미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말씀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 도예가란 저에게는 가장 고귀한 선택이었습니다.
도예가로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며 도전해야 하는 고독한 길입니다. 하지만 그 길에서만 느낄 수 있는 성취의 기쁨이 있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항해가 있습니다. 예술가이기에 과감하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비록 넉넉하지는 않더라도 참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예는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닙니다. 작업을 하는 동안 수없이 갈등하고 부딪히며 자신을 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흙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한 번 흙에 빠져들면 헤어나기 어려운 묘한 매력이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도예가에게는 자신의 작업에 대한 책임이 따릅니다. 고독하고 힘들지만 그만큼 창조의 기쁨이 있는 삶. 흙과 평생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도예가의 길입니다.
 

▲ 청주 작업장 내부

 

 

 

▲ 이은화 시인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일요주간 문화예술 전문 주필위원.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cactus681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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