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 심사 무기가 된 '의료자문'… 자문 결과 불복 분쟁 70% 육박

임태경 기자 / 기사승인 : 2026-06-09 09: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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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년간 피해구제 신청 4560건 분석… 지난해 지급 거절 비중 85.8% 달해
주치의 진단 배척하는 수단 악용… 후유장해 78.8%·실손 70.7% 의료자문 요구
소비자원 "지급 거절 67.4%가 주치의 진단·치료 불인정… 의료자문 남용 우려"

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분쟁이 꾸준히 늘고 있는 가운데, 보험사가 주치의 진단을 인정하지 않거나 의료자문을 요구하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사례가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소비자원(이하 소비자원, 원장 윤수현)은 지난 7일 ‘보험금 지급 거절 피해구제 신청 현황’을 분석한 결과, 이 같은 소비자 피해가 지속되고 있다며 ‘피해예방주의보’를 발령했다.

최근 5년간(2021~2025년) 보험 관련 피해구제 신청은 총 4560건으로 매년 꾸준히 접수됐다. 이 가운데 보험금 지급 거절로 인한 신청은 3854건으로 전체의 84.5%를 차지했다. 특히 지난해(2025년)에는 930건 중 85.8%(798건)가 보험금 지급 거절과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 지급 거절 원인 67%는 주치의 진단 불인정… 의료자문 거친 분쟁 70% 달해


지급 거절 사유를 보면 ‘주치의 진단·치료 불인정’이 67.4%(538건)로 가장 많았다. 이어 ‘약관 적용 이견’ 20.7%(165건), ‘손해액 이견’ 9.0%(72건) 등이 뒤를 이었다. 즉, 상당수 분쟁이 의료 판단 자체를 둘러싸고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주치의 진단을 인정하지 않는 과정에서 의료자문이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주치의 진단이나 치료가 인정되지 않은 538건 중 70.1%(377건)는 소비자가 의료자문 절차나 결과를 수용하지 않아 분쟁이 발생했다.

보험금 종류별로 보면 실손의료비와 진단비에서 의료자문 요구 비율이 각각 70.7%, 66.7%로 높았고, 후유장해의 경우 78.8%에 달했다. 이는 보험금 심사 과정에서 의료자문이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의료기관별로는 종합병원급 의사가 진단한 경우에도 보험금 지급이 거절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의료자문이 요구된 377건 중 종합병원급이 38.5%(145건)로 가장 많았고, 병원급 31.3%, 의원급 30.2% 순으로 나타났다. 대학병원 등 전문 의료기관의 진단조차 보험사가 인정하지 않는 사례가 상당한 것이다.

금액 규모도 적지 않았다. 의료자문을 이유로 지급이 거절된 보험금은 평균 1618만 원으로 집계됐다. 구간별로는 ‘1000만 원 이상~3000만 원 미만’이 39.1%로 가장 많았고, 500만 원 미만은 28.0%, 5000만 원 이상~1억 원 미만도 4.4%를 차지했다.

 

◇ 소비자원, “불필요한 의료자문 줄이도록 내부통제 개선 요청”


실제 소비자 피해 사례도 다양하다. 한 소비자는 대학병원에서 경동맥 협착 진단을 받고 뇌졸중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보험사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의료자문 동의를 요구하며 심사를 중단했다. 또 다른 사례에서는 항암치료를 위한 케모포트 삽입술을 받았음에도, 보험사가 이를 ‘암 치료 목적 수술’로 인정하지 않아 보험금 지급이 거절됐다.

이 외에도 입원 치료나 도수치료의 필요성을 둘러싸고 의료자문 결과를 근거로 보험금 지급이 거절되는 사례가 확인됐다. 특히 장기간 치료를 이어온 환자의 경우에도 추가 치료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아 보험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소비자원은 이러한 문제의 배경으로 의료자문 제도의 운영 한계를 지적했다. 현재 손해·생명보험협회는 ‘의료자문 내부통제 기준’을 운영하고 있지만, 의료자문 대상에 대한 명확한 제한이 없어 사실상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관련 기준에 따르면 보험사는 의료자문 결과만을 근거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거나 지연해서는 안 되며, 소비자가 제출한 의료기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공정하게 심사해야 한다. 또한 의료자문을 실시할 경우 의뢰 사유와 내용, 제공 자료 등을 소비자에게 충분히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현행 법률도 보험사의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보험업법’에 따르면 보험사는 약관에 기재된 내용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며, 지급 거절 시 그 사유를 소비자에게 설명해야 한다. 또 표준약관은 분쟁 발생 시 제3의 전문의를 통해 판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소비자원은 소비자들에게 사전 예방도 당부했다. 고액 비급여 치료를 받기 전 보험금 지급 기준을 확인하고, 병원이나 설계사의 안내를 보험금 지급 보장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의료자문 요구를 받을 경우 그 사유와 내용을 충분히 확인하고, 필요하면 주치의 소견서를 추가 제출하거나 재감정을 요구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소비자원은 이번 분석을 바탕으로 보험업계에 불필요한 의료자문 요구를 줄이기 위한 내부통제 기준 개선을 요청할 계획이다.

보험금 분쟁이 증가하는 가운데, 의료 판단과 보험 기준 사이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요주간 / 임태경 기자 allonbeb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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