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활발한 경영 활동 중인 이 부회장…취업제한 규정 무시한 처사
-업무 참여 혹은 관여할 수 있는 지위나 권한 갖고 있는 지 중점으로 봐야 해
▲ 14일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에서 경제개혁연대, 경제민주주의21, 금융정의연대, 참여연대 등은 경찰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취업 제한 위반 고발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내린 것에 이의 신청을 했다. <사진=성지온 기자> |
[일요주간 = 성지온 기자]
‘취업제한’은 경제 윤리에 반하는 특정경제범죄 행위자에게 형사벌 이외의 또 다른 제재를 가함으로써 특정경제범죄의 유인 내지 동기를 제거하면서도, 범죄행위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기업체에서 일정 기간 회사법령 등에 따른 영향력이나 집행력 등을 행사하거나 향유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관련 기업체를 보호하여 건전한 경제질서를 확립하고자 한다. (2020구합67681 판결)
지난해 2월 서울행정법원이 특정경제범죄법에서 유죄확정판결을 받은 자가 제기한 취업 불승인 취소 처분을 기각하면서 밝힌 특정경제범죄법 목적이다. 취업제한 규정은 중한 경제범죄를 저질러 기업체에 재산상 손해를 끼친 사람이 다시 피해 입힌 회사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문제의식이 반영된 조항이다.
경제개혁연대, 경제민주주의21, 금융정의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참여연대 등은 14일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취업제한 위반에 대한 경찰 재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특경법 유죄 판결 시 일정기간 취업 제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경법) 제14조는 법률상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징역형의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된 날부터 5년간 범죄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체에 취업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취업제한 대상 기업체는 동법 시행령 제10조에서 “유죄 판결된 범죄행위로 인해 재산상 손해를 입은 기업체”라고 적시했다.
국정농단 사건에서 횡령 및 뇌물공여 혐의에 대해 유죄판결을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취업제한 규정 대상자’가 된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부회장’이란 직함으로 여전히 경영 활동을 활발히 전개 중이다.
앞서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 측에 경영권 승계 청탁과 함께 회삿돈 86억 8000만 원을 횡령해 뇌물을 준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는 몇 개월 간 복역하다 지난해 8월 가석방됐다.
취업제한 규정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오는 2027년까지 사실상 정상적인 경영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출소 직후 삼성 서초사옥을 찾아 경영 현안에 대해 보고 받거나 투자·고용 방안을 발표하는 등 활발한 경영 활동을 이어갔다.
이에 시민사회단체가 지난해 이 부회장을 서울경찰청과 서울중앙지검에 취업제한 규정 위반 혐의로 고발했으나 지난 6월 경찰로부터 ‘불송치 결정’을 받았다.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로부터 ‘보수’를 받지 않으므로 취업으로 볼 수 없다는 게 경찰 측 입장이다.
이 부회장을 고발한 시민사회단체는 경찰의 결정에 대해 “법 취지를 몰각한 해석”이라면서 반발하고 나섰다.
김은정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이날 경찰 불송치 이의신청 기자회견에서 “이 부회장은 작년 8월 출소하자마자 경영 활동을 이어가면서 기업 내 영향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기이하고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라면서 “경제질서와 사법 질서의 근간을 흔든 범죄를 저지르고 이에 대한 죗값도 치르지 않은 경영인에게 너무 관대한 것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노종화 변호사(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이 14일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에서 열린 '이재용 부회장 취업제한 위반 불송치 결정 이의신청'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성지온 기자> |
◆ ‘보수’수령 여부 아닌 업무 참여 지위·권한으로 판단해야
참여연대 등은 취업을 단순히 돈을 받고 노무를 제공하느냐가 아니라 경영 전반에 대한 지배력 및 사실상의 의사결정 권한 여부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이재용 부회장이 ‘부회장’직책을 내려놓지 않는 한 그룹이나 회사에 대한 지배력, 의사결정 권한이 사실상 유지된다고 보았다.
이날 노종화 경제개혁연대 변호사는 “상식적으로 보통의 임직원이라면 경제범죄를 저질러 회사에 중대한 피해를 줬다면 계속 재직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계속 취업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 부회장과 같은 대기업 집단의 총수 일가와 지배주주들”이라면서 “취업제한 제도는 이러한 예외적인 분들을 위해 존재하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경영진이 일정 기간 회사에 재직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재범을 방지하는 일종의 냉각기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부회장의 경우 횡령 피해 입은 삼성전자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지 말라는 것이 중요한 입법 취지”라면서 “그렇다면 취업제한에서 중요한 것은 형식상 상근을 하는지, 보수를 받는지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실제 회사 의사결정에 관여할 수 있는 업무 혹은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지위나 권한이 있는지 등을 봐야 한다”라고 했다.
노 변호사는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재판을 받을 때에도 실형 집행 중에도 가석방 후인 지금까지 한반도 ‘부회장’이라는 직책을 내려놓으신 적이 없다”라면서 “출소 후 바로 경영에 복귀하셨고 최근에는 각종 해외 출장 등을 다니시면서 업무 수행하고 계시다. 주요 투자 의사 결정에도 관여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상태를 두고 어떻게 취업 상태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느냐”라고 목소리 높였다.
또 다른 법률 전문가는 아동복지법상 취업 제한 규정을 예시로 들었다. 아동학대 범죄를 억제하고 재범을 방지하려는 목적에서 특경법과 입법취지가 유사하다는 게 골자다.
▲김종보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는 14일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에서 열린 '이재용 부회장 취업제한 위반 불송치 결정 이의신청' 기자회견에서 재판부의 공정한 판결을 촉구했다. <사진=성지온 기자> |
김종보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는 “아동보호법 중 성범죄자는 아동보호기관에 종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어떠한 노무도 제공하지 말고 아예 근처를 가지 말라는 뜻이다. 어떤 성범죄 전과가 있는 사람이 보수를 받지 않고 어린이집에 자원봉사 의사를 밝히면 어떨 것 같냐. 당연히 안 된다. 왜냐하면 재범의 우려, 아동에 대한 성범죄 피해가 혹시 또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취업제한의 의의”라면서 “특경법상 경제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이재용 부회장이 86억을 횡령했다는 사실은 명백히 밝혀졌다. 재범 우려에 대해 물론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어느 누가 본인 입으로 ‘또 횡령할게요’라고 말하겠느냐”라면서 “아직 신뢰하지 못하겠으니 우선 반성하고 당분간은 취업하지 말라는 게 우리 법 정신이다. 현재 이 법 정신이 훼손됐고, 이를 앞장서서 지켜야 할 경찰이 봐주기 해석을 적용했기 때문에 이의 신청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라고 밝혔다.
◆ 코리아 디스카운트 주 원인, 재벌 총수 봐주기
시민사회단체는 사법부가 유독 대기업 집단의 경제 범죄에 관대하다며 이러한 ‘솜방망이 처분’ 관행이 국가 및 기업의 신용도를 떨어뜨리는 ‘병폐’라고 꼬집기도 했다.
▲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오)이 14일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에서 열린 '이재용 부회장 취업제한 위반 불송치 결정 이의신청'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성지온 기자> |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최근 언론은 이 부회장이 취업제한 규정에 발목 잡혀 글로벌 억만장자 모임에 참석을 포기했다면서 한국 경제에 먹구름이라도 드린 양 호들갑을 떨었다”라며 “유럽 출장도, 사장단 회의도 마음껏 기업 내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 부회장이 해외 모임 하나 다녀오지 못한다고 해서 우리 경제가 흔들릴 리 만무하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부회장이 없어서 아무 결정도 못하는 회사라면 도대체 이사회는 왜 존재하냐”라면서 “이 부회장과 같이 사적 이익을 위해 회사를 수단으로 이용한 총수가 그룹을 좌지우지하는 후진적 기업 지배구조 문제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이고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한 원인”이라고 비난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란, 한국 기업의 주자가 비슷한 수준의 외국 기업에 비해 낮게 형성되어 있는 현상을 의미한다. 주로 남북관계로 인한 지정학적 불안 요인과 회계의 불투명성, 노동시장의 경직성 등이 원인으로 거론된다.
김 협동사무처장은 “경제 활성화를 빌미로 경제 유리에 반하는 엄중 범죄를 저지른 재벌 총수에 대해 면죄부를 남발하여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 우리 경제에 더 악영향”이라면서 이 부회장의 경영 중단과 경찰 재수사 등을 촉구했다.
▲14일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에서 경제개혁연대, 경제민주주의21, 금융정의연대, 참여연대 등은 경찰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취업 제한 위반 고발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내린 것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성지온 기자> |
◆ 광복절 특사 사면 시, 취업 제한 사라진다
한편, 이재용 부회장은 오는 광복절 특별 사면 복권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법무부는 이달 말까지 대상을 확정하고, 다음 달 초 심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만약 이 부회장이 광복절 특사에 포함될 경우 취업 제한 규정은 해제된다.
'시민과 공감하는 언론 일요주간에 제보하시면 뉴스가 됩니다'
▷ [전화] 02–862-1888
▷ [메일] ilyoweekly@daum.net
[저작권자ⓒ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