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개 노동·시민사회단체, 간호인력인권법 제정 위해 연대체 출범
-10만 청원 달성에도 ‘간호법’에 묻혀 본회의 부의 거절 되기도
-환자 안전·간호 인력 수급난 해소 등 1인 당 환자수 법제화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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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현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집행위원장은 지난 4일 <일요주간>과의 인터뷰에서 “인력 배치과 관련하여 기관 별 역할을 제시하고 있을 뿐인 간호법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간호사 1인 당 적정 환자 수를 법제화 한 간호인력인권법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사진=의료연대본부 제공> |
[일요주간 = 성지온 기자] 의료기관은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해서 규모별 적정 의료인 수를 정하고 있다. 현행 의료법 시행규칙 38조 별표5가 그 예다. 이에 따르면 환자 12명 당(연평균 1일 입원환자÷2.5 몫) 간호사 1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간호사는 기준 대비 2~4배 많은 환자를 홀로 감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년 여 간의 코로나 19 팬데믹 끝에 앤데믹을 맞은 오늘날, 지속 가능한 간호·간병 체계를 위해 시급한 과제는 무엇일까.
◆ 간호사·환자 모두 살리는 ‘간호인력인권법’
폭염주의보가 발효된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파란 조끼를 입은 이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이들은 각자 ‘핵심은 간호사 1인당 환자수’, ‘간호인력기준 법제화’라고 적힌 손팻말과 ‘국가별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라는 제목의 판넬을 들고 카메라 앞에 섰다. 이들은 ‘하나의 목표’를 위해 모인 28개 시민사회단체 소속 회원들이었다.
이날 행동하는간호사회, 인도주의 실천의사협회 등은 ‘환자안전과 간호인력기준 법제화를 위한 시민행동(약칭 간호인력기준 법제화 시민행동)’을 결성하고 향후 ‘간호인력인권법’ 제정을 위한 여러 활동을 예고했다.
‘간호인력인권법’은 일반병동과 특수부서의 간호인력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의료기관에 대해 징역과 벌금을 부과하는 처벌 조항을 담은 법안이다. 간호사 1인 당 담당 환자 수는 현행 의료법에도 정해져 있지만, 강제 및 처벌 조항이 없어 사실상 현장에선 사문화됐다는 평이다.
지난해 의료연대본부는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 수 축소에 관한 청원’을 내어 29일 만에 10만 명의 동의를 받아냈다. 이에 소관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에 회부됐으나 올해 5월, 해당 청원 내용이 이미 간호법 수정안에 포함되어 있다면서 본회의에 부의되지 못했다. 현재 해당 청원은 시민사회단체의 항의에 따라 논의 필요성이 인정돼 청원심사소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 유명무실한 현행 의료법 내 간호인력기준
이날 현지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집행위원장은 <일요주간>과의 인터뷰에서 “간호법과 간호인력인권법은 전혀 다르다”라고 선을 그었다. 간호법은 간호사 처우 개선을 위한 포괄적인 법안이라면 간호인력인권법은 구체적인 간호인력기준을 명시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행 의료법 시행규칙 38조 별표 5 ‘간호사 정원’에서는 간호사 1인 당 환자 12명을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간호사들이 담당하는 환자 수는 해당 기준을 웃돈다. 실제 병원급 이상 의료 기관의 간호사 법정 정원 미준수율은 4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20년 자료). 10곳 중 4곳 이상이 간호 인력 미달 상태인 셈이다. 이중 30병상 이상 100병상 미만 병원의 미준수율은 무려 66%로 나타났다.
현 집행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간호 인력 기준을 지키지 않더라도 어떠한 불이익 조치가 따르지 않고 있다”라면서 “이러한 이유로 현행 의료법상 간호 인력 기준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 만큼 현장에선 사문화된 지 오래”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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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20년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심사평가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 병원급 간호사 법적 정원 미준수율이 4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강선우 의원실 제공> |
◆ 간호사 1인 당 환자 수 적을수록 건강 관련 지표 ‘개선’
배성희 이화여자대학교 간호대학 교수(2019)에 의하면 국내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 내 간호사는 1명 당 평균 16.3명의 환자를 담당한다. 의원급처럼 작은 의료기관의 경우 무려 43.6명을 담당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5.7명), 스웨덴(5.4명), 노르웨이(3.7명)와 비교하면 최소 3배, 최대 11배 높다.
배 교수는 이와 관련해 “간호사 1명 대비 과도한 환자 수는 간호사에게 장시간 근무나 초과 근무, 높은 업무 강도, 충분하지 않은 휴게시간 등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결국 병원은 떠나게 함으로써 인력 수급 불균형의 원인이 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환자 수 대비 적은 간호사 수는 장기간 근무 및 초과 근무, 고강도 업무 및 불충분 휴게시간으로 이어졌고 이들이 1년도 안 돼 병원을 떠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의료연대본부에 의하면 2020년 신규 간호사의 1년 이내 사직률은 47.7%이다. 매년 입사자의 절반이 버티지 못한다는 의미다. 한국의 병상 수는 유례없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의료 행위는 복잡해지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숙련된 간호사는 부족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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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를 촉구하는 온라인 운동을 전개했다. <사진=의료연대본부 제공> |
환자 수 대비 간호사가 많이 배치될수록 의료서비스의 질은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벨기에, 잉글랜드, 네덜란드 등 유럽 9개국 300개 병원에서 수술 받은 환자 42만 2,73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의하면 간호학 학사학위 간호사 비율을 10% 높이면 환자 사망률이 7% 감소했다. 이 외에도 간호사 1인 당 환자 수가 적을수록 감염률, 입원기간, 재입원률, 투약오류 등이 떨어졌다.
현 집행위원장은 “간호대 정원을 늘려 간호사를 아무리 많이 배출해도 결국 해결되지 않는 노동 환경으로 인해 간호사들은 떠나고 간호 인력과 관련한 지표들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라면서 “의료법과 간호법은 책무만 명시할 뿐 구체적인 인력 기준이나 강제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 그렇기에 ‘간호인력인권법’ 제정을 통해 간호사가 담당할 수 있는 적정 환자 수를 법으로 정해야 병원에서의 근무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다”라고 목소리 높였다.
이어 “간호사 1인 당 담당 환자수 법제화를 통한 간호 인력 확충은 더 이상 간호사만의 문제가 아니”라면서 “간호사 1인 당 담당 환자 수를 줄이면 간호사의 사직률이 낮아지고 숙련된 간호사가 늘어나면 환자들이 더 안전한 간호를 받을 수 있다. 이미 미국, 호주 등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법제화가 되었고 국제간호협의회에서도 이를 권장하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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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현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집행위원장이 국립대병원 간호사 1인당 환자수 축소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진행하는 모습. <사진=의료연대본부 제공> |
<현지현 의료연대본부 집행위원장과의 일문일답>
Q. 현행 의료법 시행규칙 38조 별표5에선 간호사 1인당 환자 12명 정도가 적정 인원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선 이 마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호소 중이다. 의료연대본부 측의 간호사 1인 당 맡아야 하는 적정 환자 수는 몇 명인가.
우선 행정, 수간호사를 제외하고 직접 환자를 간호하는 간호사를 기준으로 일반 병동은 병원 종별과 관계없이 환자 12인 당 간호사 1인 이상으로 한다. 응급 상황 대처와 환자 안전 보장을 위해 환자 수와 관계없이 병동 단위의 근무조별 간호사 수는 최소 2인 이상이 되어야 한다.
중환자실은 환자 2인 당 간호사 1인 이상, 중환자 위기 상황 관리 및 안정적인 의료 서비스 제공을 위해 중환자실 근무조별 간호사 수는 최소 3인 이상이 필요하다. 이 외에 ▲외상 응급실(환자 1인 당 간호사 1인) ▲수술실 (환자 1인당 간호사 2명) ▲신생아·관상동맥환자 집중 치료실(환자 2인 당 간호사 1인) 등이다.
Q. 올해 5월,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간호인력인권법’ 본회의 부의를 거절했다. 해당 법이 이미 간호법 취지에 포함된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기존 의료법을 강화하거나 간호법 제정을 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간호인력인권법이 단독으로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간호법’과 ‘간호 인력 인권법’은 완전히 다르다. 간호사의 처우와 노동조건을 개선하려면 간호법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간호법’은 인력 배치와 관련하여 기관별 역할을 제시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기준 제시가 없다.
반면, ‘간호 인력 인권법’은 간호사 1인 당 근무 조항 적정 환자 수와 응급 상황 및 환자 안전을 위한 최소 간호사 수를 법에 명시하고 있다. 현행 의료법과 달리 인력 배치를 기준보다 적게 한 의료 기관은 징역 및 벌금을 물릴 수는 처벌 규정도 있다.
이미 다른 나라들은 간호 인력 기준이 법제화되어 있다. 단순히 권고하거나 적정 인원 배치를 노력해야 한다는 식의 소극적 태도로는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없다.
Q. 정부는 2008년 간호관련학과 입학정원을 늘려 간호 인력 배출을 확대한 바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현장에선 간호 인력 수급불균형 문제를 겪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국내 간호 대학 졸업자는 인구 10만 명 당 40.5명으로 이는 OECD 평균(31.9명)을 웃도는 수치다. 간호대 정원도 매년 늘어나고 있고 면허 합격자 수도 증가세다. 하지만 임상 간호사 수(234,017명)는 면허소지자 수(458,306명)의 절반 수준이다. 인구 1천 명 당 간호사 수도 OECD 평균이 7.9명이지만 국내는 4.2명에 불과하다.
많은 간호사가 불규칙한 근무형태, 고강도 업무 스트레스, 경직된 조직문화, 휴식시간 미보장 등으로 면허를 포기하고 병원을 떠나고 있다. 그 결과 병원 내 간호 인력은 점점 부족해지고 1명의 간호사가 담당할 환자들은 또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간호사 이직률과 신규 간호사의 1년 이내 사직률은 실제로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2020년 신규 간호사의 1년 이내 사직률은 47.7%다. 매년 입사자의 절반이 사직한다는 의미다. 간호대 정원을 늘려 간호사를 많이 배출해도 이러한 노동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한 병원 내 의료인력 수급불균형 은 해소되지 않거나 오히려 악화될 듯하다.
Q. 코로나 19, 각종 변이바이러스, 원숭이 두창 등 새로운 전염병들이 연이어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숙련된 의료 인력의 중요성은 점차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숙련직은 사직하고 신규 간호사들로만 채워지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감염병 확대 국면에서 보건 당국이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이라고 보는지.
의료연대본부는 코로나 외에도 다른 감염병이 계속 올 거라고 예상하여 작년 2월 코로나19 감염병동 중증도별 간호 인력 기준을 요구한 바 있다. 그로부터 7개월 후 보건복지부가 코로나 19 간호 인력 배치기준을 마련하고 그해 10월부터 시범 적용 후 의료 현장에 도입·적용하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진척된 게 없다. 관련 예산 배정 등 어떠한 논의도 없었다.
지난 2년 동안 현장에선 코로나 19를 전시 상황에 비유하며 간호 인력 기준을 마련해줄 것을 정부 측에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경제적 논리로만 접근하는 탓에 병원과 보건당국은 위 기준이 ‘과도하다’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선제적인 감염병 대응을 위해 하루빨리 감염병동 인력 기준을 비롯해 의료인의 기본권을 보호할 수 있는 간호인력인권법 제정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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