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떠나는 간호사들, 팬데믹 겪으며 임계치 넘어 [기로에 선 간호인력인권법①]

성지온 기자 / 기사승인 : 2022-07-04 16:3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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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병동·특수부서 등 근무 장소별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 수 제한 ‘강제·처벌화’
-국내 간호사 1인당 평균 16.3명 환자 돌봐…미국, 스위스, 영국 대비 2~3배 많다
-업무 과부하→숙련직 사직→신규간호사 충원→의료서비스 질 하락 ‘악순환 반복’
▲행동하는간호사회, 의료연대본부 등 28여 개 단체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환자안전과 간호인력기준 법제화를 위한 시민행동 출범식을 열고 간호인력인권법 제정을 위한 행동을 전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사진=성지온 기자>

 

[일요주간 = 성지온 기자] 의료현장의 최전선에서 환자의 손과 발이 되어주고 있는 간호인력 부족이 심화되면서 의료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약칭 ‘간호인력인권법’ 제정을 위한 시민사회 연대체가 출범했다. 이들은 환자에 대한 의료 서비스 질과 간호사 업무 환경 개선을 위해 간호인력인권법 제정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 수 제한하는 ‘간호인력인권법’
행동하는간호사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의료연대본부 등 28여 개 단체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환자안전과 간호인력기준 법제화를 위한 시민행동(이하 시민행동)’을 출범을 알렸다. 시민행동은 향후 간호인력인권법 제정을 위한 여러 활동을 전개해나갈 예정이다.

간호인력인권법은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 수 축소에 관한 청원에서 촉발됐다. 전년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병원 내 간호사가 환자 수 대비 적다면서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수를 줄이기 위한 10만 국민동의청원운동을 시작했다.

의료연대본부에 따르면 국내 간호사 면허소지자는 OECD 평균보다 높고 간호대 졸업생도 매년 정원이 늘고 있다. 그러나 실제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수는 2019년 기준 OECD 평균 7.9명보다 적은 4.2명으로 집계됐다.

◆그 많던 간호사들은 어디로 사라졌나.
병원 근무 간호사가 적은 이유 중 하나는 고강도 업무에 의한 ‘퇴사’가 있다.

앞서 간호사들의 업무량은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전환된 이래로 2년여간 임계치를 넘었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전국 14개 국립대병원 간호사 절반 이상이 ▲법정 근로시간 초과근무 ▲휴게시간 미보장 ▲연차휴가 강제지정 등 격무에 시달렸다.

이날 출범식에서 김민정 간호사(행동하는 간호사회 운영위원)은 “병원 내 간호인력은 점점 부족해지고 간호사가 담당하는 환자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의료 행위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더 많은 환자를 받기 위해 환자들을 빨리 퇴원시키면서 업무량과 중요도는 높아져 가지만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숙련된 간호사는 더욱 부족해지고 있다”라면서 “간호사 이직률과 신규 간호사의 1년 이내 사직률도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2020년 신규 간호사의 1년 이내 사직률은 47.7%로 매년 입사자의 절반 정도가 사직한다”라고 증언했다.

그는 “간호대 정원을 늘려 간호사를 아무리 많이 배출해도 결국 해결되지 않는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간호사들은 떠나고 간호인력과 관련한 지표들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라면서 간호인력인권법 제정의 필요성을 힘주어 말했다.

간호인력인권법은 ‘일반병동과 특수부서 등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 수를 제한하는 것’이 핵심이다. 현행 의료법은 간호사 1명이 12명의 환자를 간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강제 및 위반 시 처벌 조항이 없어 현장에선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했다.

대한간호협회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간호사 1인당 평균 환자 수는 16.3명이다. 간호사 1명이 환자 30~40명을 돌보는 병원도 적지 않다. 간호사 1인당 평균 5.3명의 환자를 돌보는 미국이나 스위스(7.9명), 영국(8.6명) 등과 비교하면 2~3배 많은 상황이다. 

 

▲환자안전과 간호인력기준 법제화를 위한 시민행동 관계자가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출범식에서 국가별 간호사 1인당 환자수를 비교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성지온 기자>


◆ 국민동의 10만 명 넘겨도, 본회의 부의 
해당 청원은 지난해 10월 국회 소관위원회 회부 조건을 충족했지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본회의 상정을 보류키로 했다. 간호사 처우개선 내용을 담은 간호법 취지에 이미 반영됐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시민행동은 간호법과 간호인력인권법은 전혀 다른 법안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민정 간호사는 “겉으로는 코로나 영웅이라고 하면서 간호인력인권법 취지가 간호법으로 달성될 수 있다며 폐기될 뻔한 상황을 생각하면 아직도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라면서 “간호법에는 책무만 명시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인력 기준이나 강제 조항이 없다”라고 설명했다.

이서영 인도주의 실천의사협의회 기획팀장 역시 “간호인력인권법은 현실적인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며 그것을 지키지 않을 경우 병원이 책임을 지도록 하는 법”이라면서 “현행 의료법상에 부족하나마 인력 기준이 존재하지만 유명무실하여 지금껏 국내 병원들은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를 지키지 않아도 병원은 아무 제재를 받지 않았다”라고 꼬집었다.

 

▲환자안전과 간호인력기준 법제화를 위한 시민행동 관계자들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출범식에서 간호인력인권법 제정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는 모습. <사진=성지온 기자>


◆ 간호사 근무 여건 개선, 곧 의료서비스 질 상승
시민행동은 간호사 1인당 적정 환자 수를 법제화하면 간호의 질, 환자 건강권도 높아질 것이라고 보았다. 시간에 쫓겨 최소한의 간호로 그치지 않고 환자마다 세심하게 보살필 수 있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김경오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 서울대병원 조직부장은 “병원에 환자가 입원해서 하루 24시간 중 제공 받는 간호 시간은 2.7시간 밖에 되지 않는다. 모든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지만 너무 많은 환자를 봐야 해서 최소한의 간호 밖에 제공할 수 밖에 없다”라면서 “응급환자가 생겨 너무 바쁠 때면 저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의 부름을 못 본척 할 수 밖에 없었다”라고 밝혔다.

이어 “간호사를 돈으로 생각하는 병원과 정부 덕분에 많은 간호사들은 병원을 떠난다. 숙련된 간호사들이 나간 자리는 신입 간호사로 채워진다. 숙련된 간호사 부족은 곧 의료의 질이 저하되는 것이며 환자 안전도 위험해지는 것”이라면서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 수를 줄이고 간호사의 근로조건을 개선하면 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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