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사각지대②] 물류센터가 창고? 느슨한 규정에 온열질환 등 안전 무방비

성지온 기자 / 기사승인 : 2022-07-31 17:2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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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법상 창고시설 분류…비주거공간인 탓에 주거공간 대비 규정·기준 낮아
-더위, 추위에 노출된 근로환경, 체감 노동 강도 가중시키는 요인…개선 시급해
▲ 국내 이커머스, 유통업체가 운영 중인 물류 센터는 건축법상 창고 시설로 분류된다. 물건 적재 및 보관이 목적인 비주거시설인 관계로 주거시설보다 설비, 안전 기준이 느슨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코리아센터 제공>

 

[일요주간 = 성지온 기자] 창고(倉庫)는 ‘물건’을 쌓아두거나 보관하는 공간이다. ‘물건’이 핵심이므로 건축허가 시 냉‧난방, 공기정화 설비와 같은 기술‧안전기준이 따로 없다. 그러나 건축법은 수천 명의 ‘사람’이 근무하는 물류센터를 ‘창고시설’로 묶음으로써 사회적 문제를 초래했다.

배송서비스는 코로나 19 팬데믹(대유행)을 기점으로 급성장했다. 오프라인 중심의 유통브랜드도 각 지역 거점별 물류센터를 구축하는 등 경쟁적으로 ‘새벽 배송’시장에 뛰어들었다. 국토교통부의 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전국에 등록된 연면적 1,000㎡ 이상 물류창고는 1519곳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215곳이 늘었다. 특히 쿠팡의 경우 물류 경쟁력을 기반으로 급성장하면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를 이어 3대 고용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기업 몸집이 성장하는 동안, 노동 환경 발전 속도는 상대적으로 더뎠다. 가파른 산업 성장은 출혈 경쟁으로 이어지면서 효율 극대화가 각 업체의 최대 목표가 됐다. 이 과정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입고, 재고 관리, 피킹 및 패킹 과정이란 시스템 중 ‘일부’로 편입됐다. 이는 결국 노동자로 하여금 고강도, 장시간 업무를 감수하도록 만들었다. 실제로 과중한 업무 탓에 근육이 파괴되거나 심근경색으로 사망하는 사례도 속출했다.

 

여기에 덥고, 습한 근로 환경까지 더해지면서 노동자들이 체감하는 업무 강도는 나날이 커졌다. 물류센터는 건축법상 ‘창고시설’로 분류되기 때문에 기계설비 허가 및 검사를 받지 않는다. 적정 온도를 조절하는 냉‧난방시설, 환기시설 등과 같은 기준 자체가 마련되어있지 않고 이를 사전에 점검‧확인할 의무도 없다.


물류센터 화재, 잦은 배경엔? 느슨한 규정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최근까지 경기도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 사고 16건 중 7건은 모두 물류센터에서 발생했다. 2020년 이천 한익스프레스, 2021년 이천 쿠팡 덕평 물류센터, 2022년 마켓컬리 평택 청북읍 팸스 물류센터 등이 대표적 참사다. 

 

반복되는 물류센터 화재 사고 배경엔 느슨한 규정이 있다. 창고 건물 등은 통상적인 주거·공장 건물과 달리 방화 규정이 세밀하지 않다. 건축법 시행령에 따르면, 실내 공간 1000㎡마다 방화 구획을 편성해 방화 셔터 등을 설치하도록 되어있다. 반면, ‘내부설비의 구조상 방화벽으로 구획할 수 없는’ 창고 시설은 예외 대상에 속한다.  

 

다수의 단열재 사용도 화재 위험성을 높인 원인이다. 대부분 신선 식품 배송인 관계로 온도 유지 기능이 뛰어난 ‘우레탄폼’을 마감 자재로 선호하는데, 한번 불이 붙으면 잘 꺼지지 않는 게 특징인 물질이다. 폭발 위험이 높다는 사실이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레탄폼만한 가성비 높은 재료가 없어서 수요가 끊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 지난 5월 23일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한 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대원들이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제공>

 

◆ 비주거시설 ‘창고’, 사람 안전·건강 고려한 규정 필요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이와 관련해 건축법상 물류센터를 창고시설로 분류한 것을 현실에 맞게 재정리해야 한다고 봤다.

최 실장은 지난 26일 무더위 속 온열 질환 예방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물류창고는 사람이 그 안에서 작업을 하는 것을 전제로 한 기술기준, 안전기준에 대한 점검과 검토 없이 건축된 건물”이라면서 “공기 흐름에 대한 설계와 운영이 취약한 곳에서 중량물 작업과 수배명의 노동자가 일하면 습도가 매우 높은 작업장을 만들 수 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습도는 기온, 복사열보다 높은 비중으로 온열 질환을 발생하게 하는 요인”이라면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559조 고열작업 추가 확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총칙 개정, 물류창고 관련 기계설비법 시행령 개정 등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이처럼 시설 설비 의무가 없다 보니, 현재 많은 물류센터 내에는 기본적인 냉‧난방 기기가 없는 경우가 많다. 폭염 주의보가 내리는 여름철에도 선풍기나 천장 위 대형 실링펜 정도만 운영된다. 이마저도 전력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꺼진다고 한다. 

이에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위 국회 토론회에서 물류센터 작업장을 ‘사우나’에 비유하면서 “이미 뜨거운 공기가 가득한 곳에서 선풍기 틀어봤자 뜨거운 바람밖에 더 나오겠느냐?”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권영국 중대재해전문가넷 변호사 역시 “판매하는 생물에 대해서는 신선도 유지를 위해 냉방 설비를 갖추면서도 일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건강하게 일할 환경을 마련하지 않아도 되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느냐”라면서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물건이나 기계가 아니”라고 목소리 높였다.

이어 “물류센터 노동자들에게도 온도나 습도로 인한 건강 장해에 대한 예방조치 의무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려면 기준을 제대로 마련하고 강제력을 부여해야 한다”라면서 “건축법상 분류체계를 개정하고 산업안전보건법상의 보건조치의물르 보다 현실에 맞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라고 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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