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은 그대로인데, 금융이 움직이는 방식이 진화하고 있다

금융시장에서 ‘디지털본드’라는 용어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 개념은 이름만으로 직관적으로 이해되기 어렵다. 디지털이라는 단어는 익숙하지만, 본드(Bond)는 채권을 의미하고, 두 개념이 결합된 이 용어는 일반 독자에게 “컴퓨터로 만든 채권” 정도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이러한 이해는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디지털본드가 가지는 본질적인 의미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디지털본드는 새로운 금융상품이라기보다 기존 금융상품이 작동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에 가깝다. 국채나 회사채와 같이 돈을 빌리고 일정 기간 동안 이자를 지급한 뒤 만기에 원금을 상환하는 채권의 기본 구조는 전혀 변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채권이라는 금융상품의 내용은 그대로 유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본드가 금융시장 전반의 변화를 이끄는 핵심 요소로 언급되는 이유는 채권의 ‘내용’이 아니라 ‘운영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채권의 본질은 단순하다. 일정한 조건 아래 돈을 빌리고, 그 대가로 이자를 지급하며, 약속된 시점에 원금을 상환하는 계약이다. 그러나 이 단순한 약속이 실제 금융시장 안에서 작동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구조가 필요하다. 채권이 발행되면 해당 정보가 기록되어야 하고, 투자자가 누구인지 확인되어야 하며, 거래가 발생할 경우 소유권이 이전되어야 하고, 이자 지급이나 만기 상환 시에는 정확한 자금 이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개인 간 거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증권사, 은행, 수탁기관, 예탁기관, 결제기관 등 다양한 금융기관을 거치며 처리된다.
결국 채권이 복잡한 것이 아니라, 그 채권을 안전하게 유지하고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금융시장이 다층적인 구조를 만들어 온 것이다. 전통 금융 시스템은 이러한 방식으로 오랜 기간 동안 안정성을 유지해 왔다. 즉 금융은 기술이 아니라 신뢰를 중심으로 구축되어 왔으며, 이 신뢰를 보장하기 위해 여러 기관이 중간에 개입하는 시스템을 형성해 왔다.
디지털본드는 바로 이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에서 출발한다. 채권이라는 상품 자체는 그대로 두면서, 그 채권을 기록하고 관리하며 이동시키는 방식을 보다 효율적인 형태로 재구성하려는 것이다. 기존에는 채권의 소유권과 거래 내역이 중앙화된 시스템과 기관의 장부를 통해 관리되었다면, 디지털 방식에서는 이러한 기록과 처리를 하나의 연결된 디지털 구조 안에서 수행하려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전환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채권의 형태가 아니라 흐름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전통적인 채권시장은 여러 기관을 거치며 정보와 자금이 순차적으로 이동하는 구조였다. 반면 디지털본드가 지향하는 구조는 기록, 확인, 실행이 하나의 연결된 환경 안에서 동시에 처리되는 형태에 가깝다. 즉 채권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채권이 이동하는 경로와 방식이 바뀌는 것이다.
이 때문에 디지털본드는 특정 금융상품으로 보기보다 금융 인프라의 변화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금융이 디지털화되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우리는 모바일 앱을 통해 송금하고 투자하며 대부분의 금융 활동을 화면으로 처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사용자 경험의 디지털화에 가깝고, 금융의 내부 구조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재의 금융 시스템은 여전히 중앙화된 구조와 다단계 기관 체계 위에서 작동하고 있으며, 디지털은 그 위에 덧씌워진 형태인 경우가 많다.
디지털본드가 의미하는 변화는 바로 이 내부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다. 단순히 화면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기록 방식과 거래 방식, 그리고 정산 구조 자체를 재설계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금융 시스템의 근간을 다시 구성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세계 금융기관들이 이 흐름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금융은 결국 기록을 확인하고 신뢰를 검증하며 자금을 이동시키는 과정인데, 이 과정이 보다 단순하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시장 전체의 비용 구조와 처리 속도는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단기간에 완성되기는 어렵다. 금융은 무엇보다 안정성과 책임이 중요한 영역이기 때문에 기존 구조를 한 번에 대체하기보다는 점진적인 방식으로 변화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디지털본드는 기존 금융을 무너뜨리는 혁신이라기보다 기존 구조 위에서 작동 방식을 조금씩 바꾸어 가는 전환 과정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이 흐름을 이해할 때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금융이 어떤 방식으로 재구성되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디지털본드는 새로운 채권이 아니다. 채권이라는 금융상품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그 채권을 기록하고 거래하며 관리하는 방식이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디지털본드는 상품의 전환이 아니라 금융 시스템의 변화이며, 금융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이동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신호라고 할 수 있다.
◆ 해외는 이미 구조 전환이 시작됐다
▶ 디지털본드는 ‘실험’이 아니라 ‘구조 경쟁’이다
디지털본드는 아직 낯선 개념처럼 보이지만, 해외 금융시장에서는 이미 개념을 넘어 실제 구조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특히 스위스, 유럽, 싱가포르, 홍콩은 단순한 기술 실험을 넘어 제도와 인프라를 결합한 형태로 디지털 채권 시장을 구축하고 있으며, 이 흐름은 점차 자본시장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지역은 스위스다. 스위스는 디지털본드를 단순한 블록체인 기술이 아니라 제도권 금융 인프라 안으로 끌어들인 대표적인 사례다. SIX Digital Exchange는 기존 증권거래소 체계를 유지하면서도 디지털 자산 거래와 예탁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구조를 구축했고, 여기에 스위스국립은행의 결제 시스템이 연결되면서 발행, 거래, 결제, 수탁이 하나의 체계 안에서 작동하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실제로 세계은행은 이 구조를 활용해 디지털 채권을 발행하며, 디지털본드가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제도권 금융 안에서 실행 가능한 모델임을 보여주었다.
유럽은 접근 방식이 다르다. 유럽은 발행보다 ‘결제’를 먼저 해결하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은 디지털 자산 거래가 확산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앙은행 화폐 기반 결제가 연결되어야 한다고 보고, 기존 결제 시스템과 디지털 플랫폼을 연결하는 구조를 단계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이는 디지털본드 시장의 핵심이 기술이 아니라 결제의 신뢰와 최종성에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채권을 디지털로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채권이 안전하게 돈으로 교환될 수 있는 구조를 확보하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싱가포르 통화청은 특정 플랫폼을 중심으로 시장을 만들기보다 다양한 금융기관이 참여할 수 있는 표준과 프레임워크를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Project Guardian’을 통해 채권 토큰화의 발행 구조, 데이터 방식, 투자자 접근, 규제 기준 등을 정리하면서 시장 전체가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있다. 이는 디지털본드가 특정 기술이나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 전체가 함께 맞춰야 하는 구조적 변화라는 점을 보여준다.
홍콩은 보다 적극적인 정책 모델을 선택했다. 홍콩금융관리국은 정부가 직접 디지털 그린본드를 발행하며 시장을 주도했고, 동시에 발행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를 도입해 민간 금융기관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이는 초기 시장 형성 단계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리스크를 정부가 일부 흡수하면서 디지털본드 생태계를 빠르게 구축하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홍콩은 디지털 채권을 통해 글로벌 자금 유입과 금융허브 경쟁력을 동시에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네 지역의 접근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어느 국가도 디지털본드를 단순한 금융상품으로 보지 않고 금융 인프라를 재편하는 핵심 요소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위스는 통합 인프라를, 유럽은 결제 시스템을, 싱가포르는 표준을, 홍콩은 정책을 중심으로 각각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결국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
디지털본드가 단순한 정책 실험이 아니라 실제 금융시장 구조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글로벌 투자은행의 움직임이다. 이 흐름을 실제 구조로 전환한 대표 사례가 JPMorgan Chase다. 디지털 자산 인프라를 가장 적극적으로 상용화한 금융기관 중 하나로 평가된다.
JPMorgan Chase는 자체 블록체인 네트워크 ‘Onyx’를 기반으로 채권 거래와 자금 이동 구조를 디지털 방식으로 구현해 왔으며, 이를 통해 기존 금융 시스템과 디지털 인프라를 연결하는 실험을 넘어 실제 거래 환경에 적용하고 있다. 특히 싱가포르 통화청과의 협업 프로젝트를 통해 토큰화된 자산을 활용한 채권 거래와 결제 구조를 검증하면서, 디지털본드가 기술적 가능성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금융 구조로 작동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Goldman Sachs는 디지털본드를 단순한 거래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자본시장 인프라 자체를 디지털화하는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유럽 투자은행(EIB)과 함께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채권 발행에 참여하며, 기존 채권 발행 프로세스를 디지털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데 집중해 왔다. 이 과정에서 발행, 청약, 배분, 결제에 이르는 전체 과정을 디지털화하면서 채권 시장의 운영 구조 자체를 재설계하는 방향을 보여주었다. 골드만삭스의 전략은 거래 효율성보다 시장 구조 혁신에 가깝다.
HSBC는 글로벌 네트워크와 기업 고객 기반을 활용해 디지털본드를 실제 상업 금융 영역에 연결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홍콩과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디지털 채권 발행과 유통에 참여하며, 기존 기업 고객과 기관 투자자를 디지털 구조 안으로 자연스럽게 유입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HSBC의 접근 방식은 기술보다 고객과 시장 연결 구조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사례에서 중요한 점은 글로벌 투자은행조차 기존 제도 안에서 기술이 아니라 적용 방식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이는 디지털본드가 기존 금융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금융 위에서 확장되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 자산운용사의 역할 변화도 요구한다. 전통적인 자산운용사는 자금을 모아 투자 대상을 선정하고 수익을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디지털본드 환경에서는 단순히 어떤 자산에 투자할 것인가보다 어떤 구조 위에서 자산을 연결하고 운용할 것인가가 더 중요해진다. 즉 자산운용사는 더 이상 단순히 상품을 운용하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는다. 디지털본드 환경에서는 자산운용사가 자본, 기술, 제도를 연결하는 설계자 역할로 이동하게 된다.
◆ 한국은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가
▶ 디지털본드는 ‘직접’이 아니라 ‘구조’로 들어온다
디지털본드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한국 자본시장에 이를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이 한계는 기술이 아니라 제도에서 비롯된다.한국 금융시장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을 중심으로 매우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으며, 채권 발행과 유통, 펀드 운용, 수탁과 결제까지 모든 단계가 명확한 법적 구조 안에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시장 안정성과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는 강력한 장점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금융 인프라를 도입하는 데 있어서는 제약으로 작용한다.
특히 디지털본드는 투자자의 지위와 자금 흐름 구조에서 기존 펀드와 근본적인 차이를 가진다. 국내 펀드는 투자자가 출자자로 참여하는 반면, 디지털본드는 채권 투자자로 참여한다. 이 차이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법적 성격의 차이이며, 현재 한국에서는 보안토큰이 법적으로 증권으로 편입되는 방향이 확정되었고, 관련 제도는 2027년 2월 4일 시행 예정인 전자증권법 개정을 통해 본격적으로 제도화될 예정이다.
개정 전자등록법 체계에서는 분산원장이 일정 요건 하에서 증권원부로 인정될 수 있으며, 보안토큰 발행자는 한국예탁결제원의 전자등록 절차를 따라야 한다. 또한 보안토큰 역시 자본시장법상 기존 증권 규제(공시, 투자자 보호, 불공정거래 규제 등)를 동일하게 적용받게 된다. 즉 “토큰이기 때문에 별도의 우회 구조로 펀드에 직접 편입할 수 있다”는 접근은 현재 제도상 인정되기 어렵고, 2027년 제도 시행 이후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기 어려운 구조다.
이 점에서 한국 자본시장에서는 디지털본드 투자자와 국내 펀드 LP를 동일한 법적 지위로 해석하기 어렵다. 펀드는 기본적으로 출자자(LP)가 펀드 지분을 보유하는 구조인데, 디지털본드는 원칙적으로 채권자 방식이기 때문이다. 채권자는 수익과 상환을 약정받는 지위이고, LP는 집합투자기구에 출자하여 지분을 보유하는 지위이므로, 양자는 법적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해외 투자자가 디지털본드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국내 사모펀드의 LP로 직접 인정되는 구조는 제도적으로 정합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특히 한국은 보안토큰 역시 기존 증권 규제를 따르도록 설계되므로, 디지털본드 투자자가 국내 펀드에 직접 출자자로 참여하는 구조는 현재 기준으로도, 2027년 제도 시행 이후에도 현실성이 낮다.
여기에 수탁과 자산 보관 구조까지 고려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한국 금융시장은 수탁기관과 한국예탁결제원을 중심으로 자산의 보관과 권리관계를 관리하는 체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투자자 보호의 핵심 기반이다. 반면 디지털본드는 별도의 디지털 커스터디와 네트워크 기반 기록 방식을 활용한다. 두 구조는 기술적으로 연결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법적으로 동일한 권리 체계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결국 현재 시점에서 디지털본드를 한국 펀드 구조에 직접 연결하는 방식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불가능하다”가 아니라 “어떤 구조로 현실화할 것인가”이다. 현재 제도 안에서 작동 가능한 구조는 이미 일정 부분 정리되어 있다. 핵심은 디지털본드와 국내 펀드를 직접 연결하지 않고, 그 사이에 별도의 법적 구조를 두는 방식이다.
가장 현실적인 해법은 해외에서 디지털본드를 발행하고, 해당 자금을 하나의 법적 주체(SPV 등)로 집합시킨 뒤, 이 주체가 국내 자산운용사 펀드에 출자하는 방식이다. 즉 디지털본드 투자자는 해외 구조 안에서 채권자로 존재하고, 국내 펀드에는 기관 투자자 형태로 참여하는 구조다. 이 구조의 핵심은 디지털 자산 자체를 국내로 들여오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본드를 통해 조달된 자금을 국내 투자 구조로 연결하는 데 있다. 이 과정에서 국내 펀드는 기존 자본시장법 체계 안에서 그대로 유지되며, 수탁과 결제 구조 역시 기존 금융 인프라를 따른다.
이 방식이 현실적인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법적 충돌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해외 구조와 국내 구조를 분리함으로써 각각의 규제 체계 안에서 운영이 가능해진다. 둘째, 수탁과 책임 구조를 유지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기존 금융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하면서 투자자 보호 체계를 유지할 수 있다. 셋째, 자금 이동 구조를 단순화할 수 있다. 디지털 자산이 아닌 현금 형태로 국내에 유입되기 때문에 외환 규제 및 결제 리스크를 현실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결국 이 방식은 현재 제도 안에서 디지털 자산과 전통 금융을 연결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구조에 해당한다.
이 시점에서 한국 금융시장에 필요한 방향도 분명해진다. 디지털본드를 단순히 기술이나 새로운 상품으로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핵심은 금융 인프라의 변화이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준비가 필요하다.
특히 향후에는 다음과 같은 과제가 중요해질 가능성이 높다.
첫째, 디지털 자산의 법적 지위와 권리 구조에 대한 명확한 기준 정립, 둘째, 기존 수탁 체계와 디지털 커스터디 구조 간의 법적·기술적 연계 기준 마련, 셋째, 해외 디지털 금융 인프라와 국내 금융 시스템을 연결할 수 있는 규제 정합성 확보, 이러한 준비가 이루어질 경우, 디지털본드는 단순한 외부 금융 흐름이 아니라 국내 자본시장과 결합된 새로운 투자 구조로 확장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자산운용사가 있다.
과거 자산운용사는 투자 대상을 선택하고 자금을 운용하는 역할에 집중했지만, 앞으로는 자금이 유입되는 구조 자체를 설계하는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글로벌 자본과 국내 시장을 연결하고, 제도와 기술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핵심 경쟁력이 된다. 즉 자산운용사는 더 이상 단순한 운용자가 아니라 글로벌 자본과 국내 금융 시스템을 연결하는 구조 설계자로 변화하게 된다.
디지털본드를 한국 자본시장에 직접 적용하는 것은 아직 어렵다. 그러나 디지털본드를 활용해 한국 자본시장에서 펀드 방식으로 자금을 유입하는 것은 직접 구조가 아니라 해외 SPV를 경유한 간접 구조를 통해서만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이 방식은 현재 제도 안에서 작동 가능한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며, 동시에 2027년 제도 정비 이후에도 유효하게 작동할 수 있는 구조적 해법이다.
토큰을 국내 펀드에 편입하는 것이 아니라, 토큰을 통해 조달된 자금을 국내 펀드에 연결하는 방식이다.
해외 구조를 활용한 자금 유입 방식은 현재 기준 가장 현실적인 해법으로 평가된다. 동시에 한국 금융시장 역시 이러한 흐름을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라 인프라 변화로 인식하고,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제도적 준비를 서둘러야 할 시점이다.
자산운용사는 제도 안에서 작동하는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 디지털본드 시대에서 자산운용사의 역할은 단순한 투자 실행을 넘어 구조 설계로 이동하고 있지만, 제도를 벗어난 방식은 현실적인 선택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자산운용사가 취해야 할 전략은 명확하다.
첫째, 해외 디지털본드 구조를 직접 도입하기보다 이를 통해 조달된 자금을 기존 펀드 구조 안으로 안정적으로 연결하는 전략, 둘째, 국내 수탁·결제 체계를 유지하면서 글로벌 자금과의 접점을 설계하는 구조, 셋째, 투자자 보호와 책임 구조가 유지되는 범위 내에서 디지털 자산 연계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전략, 이러한 접근은 보수적인 선택이 아니라 가장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전략이다. 금융은 신뢰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이며, 제도적 안정성을 훼손한 상태에서의 혁신은 시장 확산으로 이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자산운용사는 기술을 선도하기보다 구조를 설계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디지털본드라는 새로운 자금 조달 방식이 등장한 상황에서, 이를 무리하게 국내 시스템에 이식하기보다 글로벌 구조와 국내 제도를 연결하는 접점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디지털본드는 한국에 직접 들어오지 않는다. 자금만 들어온다. 따라서 자산운용사는 더 이상 단순한 운용자가 아니라, 제도 안에서 혁신을 구현하는 금융 설계자로 자리 잡게 된다.
▶ 진화하는 디지털본드가 아직 확산되지 못하는 이유
디지털본드가 금융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시장 규모는 아직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이는 기술의 문제라기보다 금융이 작동하는 방식 자체에서 비롯된 구조적 한계에 가깝다. 많은 논의에서 디지털본드의 확산이 더딘 이유를 기술 성숙도에서 찾지만, 실제로는 기술보다 훨씬 근본적인 요소들이 시장 확장을 제한하고 있다. 금융은 단순한 거래 시스템이 아니라 신뢰와 책임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새로운 방식이 등장하더라도 기존 체계와 충돌하는 지점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문제는 법적 권리의 불명확성이다. 채권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법적으로 보호되는 권리이며, 누가 채권자인지, 어떤 방식으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지가 명확해야 한다. 그러나 디지털본드의 경우, 토큰 형태의 보유가 곧바로 법적 채권자 지위를 의미하는지에 대한 해석이 국가마다 다르고, 제도적으로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부분이 존재한다. 이는 투자자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의 기반을 흔들 수 있는 요소다.
두 번째는 수탁과 자산 보관 문제다. 전통 금융에서는 자산의 보관과 관리 책임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으며, 수탁기관을 중심으로 권리관계가 정리된다. 반면 디지털 자산은 네트워크 기반으로 보관되며, 기술적으로는 효율적일 수 있지만 사고 발생 시 책임 주체를 명확하게 특정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진다. 금융시장에서 책임의 불명확성은 곧 리스크로 이어지기 때문에, 기관 투자자들은 이러한 구조에 쉽게 접근하지 않는다.
세 번째는 결제 구조의 문제다. 채권 거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결제의 확정성이다. 즉 거래가 이루어졌을 때 자금이 확실하게 이전되고, 그 결과가 되돌릴 수 없는 상태로 확정되어야 한다. 현재 디지털본드 구조는 이러한 결제 확정성을 전통 금융 수준으로 완전히 확보하지 못한 경우가 많으며, 특히 중앙은행 화폐와의 연결이 제한적인 상황에서는 대규모 기관 자금이 참여하기 어려운 조건이 된다.
네 번째는 유동성 문제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유동성은 거래 인프라의 부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시장 차원에서의 시장 형성 수준과 깊이(Market Depth)의 문제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현재 디지털본드 시장은 기술적 측면에서는 이미 일정 수준 이상의 거래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다. 기관급 디지털 자산 인프라를 통해 발행, 이전, 결제에 이르는 거래 기능 자체는 구현 가능하며, 이는 기존 금융시장 대비 효율적인 구조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시장 관점에서 보면 상황은 다르다. 디지털본드의 발행 규모가 아직 제한적이고, 참여하는 기관 투자자와 시장 참여자 역시 충분히 확대되지 않은 상태다. 이로 인해 2차 시장에서의 매수·매도 양측 호가가 지속적으로 형성되지 못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시장 깊이와 거래 연속성이 확보되지 않는 구조가 나타난다. 금융학적으로 유동성은 단순한 거래 가능성(tradability)이 아니라, 시장 충격 없이 자산을 신속하게 현금화할 수 있는 능력(liquidity resilience)을 의미한다.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디지털본드 시장은 거래 인프라는 존재하지만, 시장 참여자 기반과 거래 밀도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아 유동성이 구조적으로 낮게 관찰되는 단계에 있다.
즉 현재의 유동성 부족은 디지털본드라는 자산의 본질적 특성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라, 발행 규모, 투자자 기반, 시장 참여 구조가 아직 임계 수준에 도달하지 않은 초기 시장 형성 단계에서 나타나는 결과 변수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디지털본드의 유동성 문제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 미시구조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관 투자자가 시장을 신뢰할 수 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이러한 요소들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다. 법적 권리가 명확하지 않으면 수탁 구조가 불안정해지고, 수탁 구조가 불안정하면 결제 신뢰가 약화되며, 결제 신뢰가 약화되면 유동성이 형성되기 어렵다. 결국 디지털본드 시장의 확산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단일 문제가 아니라 금융 인프라 전반에 걸친 구조적 미완성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점은 시장이 성장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성장할 준비를 하는 단계에 있다는 점이다. 금융 시스템은 한 번 구조가 정립되면 빠르게 확산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정체는 오히려 인프라가 정비되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해외 주요 금융시장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 지속되고 있다. 법적 기준을 정비하고, 결제 시스템을 연결하며, 수탁 구조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디지털본드 시장의 기반을 점진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이는 단기간에 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접근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금융 인프라를 형성하기 위한 과정이다.
한국 역시 이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디지털본드를 단순히 새로운 투자 상품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금융 인프라 변화의 일부로 인식하고 접근해야 한다. 특히 자산운용사의 관점에서는 시장이 아직 작다는 이유로 이 흐름을 외면하기보다, 왜 시장이 커지지 못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향후 시장이 열렸을 때 적절한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디지털본드 시장이 아직 제한적인 이유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금융이 요구하는 신뢰 구조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적 권리, 수탁 구조, 결제 안정성, 유동성이라는 네 가지 요소가 동시에 충족되어야 시장은 본격적으로 확장될 수 있으며, 현재는 이 조건이 점진적으로 형성되는 단계에 있다. 앞으로 금융의 미래는 기술이 아니라 구조에서 결정될 것이다. 따라서 디지털본드를 이해하는 핵심은 “왜 성장하지 않는가”가 아니라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성장하는가”를 보는 데 있다.
▶ 국제자본시장 전환기, 경쟁력은 인프라에서 결정된다
디지털본드에 대한 논의는 종종 새로운 투자상품의 등장으로 이해되지만, 실제로는 금융의 경쟁 구조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채권이라는 형태는 유지되지만, 그 채권이 발행되고 이동하며 결제되는 방식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금융시장의 경쟁력은 오랫동안 어떤 상품을 만들 수 있는지에 의해 결정되어 왔다. 더 높은 수익률, 더 정교한 구조, 더 다양한 투자 전략이 경쟁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디지털본드가 등장하면서 경쟁의 축은 점차 상품에서 인프라로 이동하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 트렌드가 아니라 금융이 작동하는 방식 자체가 전환되는 과정이다. 기존 금융에서는 은행과 증권사, 수탁기관과 예탁기관이 역할을 나누며 자본의 흐름을 관리해 왔다. 반면 디지털 구조에서는 기록, 거래, 결제, 관리가 하나의 연결된 체계 안에서 처리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정착될 경우 금융은 특정 기관 중심으로 작동하는 구조에서 점차 벗어나게 된다. 자본은 네트워크를 통해 이동하고, 투자 구조는 국가 경계를 넘어 설계되며, 자금 조달 방식 역시 더욱 다양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다. 금융은 언제나 기술을 활용해 발전해 왔지만, 그 본질은 신뢰와 제도에 있다. 디지털본드 역시 기술이 금융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이 기술을 활용해 스스로를 재구성하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의 변화는 단순히 블록체인이나 디지털 자산이 얼마나 확산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구조를 제도 안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정착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 자본시장 역시 이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현재는 제도적 한계로 인해 디지털본드가 직접적으로 시장 안에 들어오기는 어렵지만, 해외 구조를 통해 자금이 유입되는 방식은 이미 현실적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구조가 점진적으로 확대될 경우, 국내 금융시장 역시 글로벌 디지털 자본과 연결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속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정확히 설정하는 것이다. 디지털본드를 단순한 투자 기회로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이를 금융 인프라 변화의 일부로 인식하고 준비해야 한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자산운용사가 있다. 전통 금융에서 자산운용사는 자금을 운용하고 수익을 관리하는 역할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디지털본드 환경에서는 자금이 유입되는 방식과 구조 자체를 설계하는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글로벌 자본과 국내 시장을 연결하고, 제도와 기술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핵심 경쟁력이 된다. 즉 자산운용사는 더 이상 단순한 투자 실행자가 아니라 자본의 흐름을 설계하는 인프라 설계자로 변화하게 된다.
디지털본드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시장 규모도 제한적이며, 제도 역시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금융 인프라가 재편되는 초기 단계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의 규모가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가다. 결국 디지털본드는 하나의 상품이 아니다. 디지털본드는 자본이 이동하는 방식이다. 금융의 미래는 기술이 아니라 구조에서 결정된다. 디지털본드는 그 변화의 시작일 뿐이다.
디지털본드의 확산은 단순한 기술이나 구조의 문제가 아니다.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자본이며, 자본은 이해되는 구조보다 받아들여지는 구조를 선택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완성된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모델이다. 금융시장에서 자금은 설명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구조가 명확하게 보이고, 적용 가능성이 확인될 때 비로소 유입된다. 디지털본드는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있다.
이는 새로운 금융 상품이 아니라 자본이 이동하는 방식 자체를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연결의 핵심에는 구조와 함께 시장을 설득하고 자본을 끌어들이는 ‘소통’이 존재한다. 결국 디지털본드의 경쟁력은 기술이나 개념이 아니라 얼마나 현실적인 구조로 설계되고, 시장과 연결될 수 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금융은 기술로 완성되지 않는다. 시장이 받아들일 때 비로소 자본이 움직인다.
일요주간 / 서정선 칼럼니스트 jacobxu0304@gmail.com
[필자 주요약력]
現 INTERPRO H.K PEF 대표
現 일요주간 부회장
前 Proton International LLC (H.K) 법인장
前 Proton Asia PEF GP
前 Proton Asia PEF
아시아 국제 금융 법률,회계 전문위원
前 화중 테크 대표이사
前 화중아이앤씨 대표이사
前 중국 대련보세구 정부 위촉 외자유치 및 투자 구조 자문 대표
前 중국 천진 한화종합유한공사법인장
前 중국 주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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