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소득 4만 불 돌파를 눈앞에 둔 지금, 소상공인은 장사가 안된다고 아우성이다.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방황하고, 노인들은 거리에 넘쳐나며 수많은 실직자가 배를 곯고 있는 상황이다. 사회는 개인주의와 권리의식이 무한 경쟁을 촉발해 부익부 빈익빈이 확산 일로에 있다. 이 어지러운 시대, 사회야 어떻게 되든 무풍지대의 선거 세상은 모든 것을 삼켰다.
지방선거를 목전에 둔 일부 출마자들의 과거 행동은 파면 팔수록 민낯이 드러나 그 뻔뻔함은 이미 제도화되어 있다. 공인 후보로 처신 잘못이 도마 위에 오르는 문제는 못 본체 넘어가는 것이 사회 구성원들의 정서로 굳어진 지 오래고 세상은 도덕 불감 중에 걸려 있다. 정당은 정책의 비전보다 마타도어로 서로를 비난하는 언설이 공세와 방어로 이어지며 연일 고함과 삿대질을 거듭하니, 선거를 하는지 싸움질을 하는지 진흙탕 속으로 유권자를 끌어넣고 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이 치열함 속에 이른바 출마자들의 정치적 재기를 위한 와신상담과 잃어버린 자리를 되찾기 위해 권토중래가 얽힌 지방선거는 누구를 뽑아야 하는가. 귀족을 뽑을 것인지 머슴을 뽑을 것인가 유권자는 헛갈린다. 이들이 그동안 닦고 쌓은 행적이 개인 출세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공적 소명을 위해 노력한 것인지 판단의 기준이 모호하다. 선출 권력자는 기준이 공익에의 긴장과 책임 의식, 타인의 배려, 공동체적 헌신과 봉사인데 말이다.
◆ 지방정부의 수장과 주민 대표인
지방의원을 뽑는 지방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내 고장의 발전을 위하는 선거 행사로 우리의 일상과는 밀접한 관계로 엮여, 국가와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대선이나 총선과는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밑바닥 민의를 잘 반영해야 하는 지역정치인은 시민과 더 밀접하게 접촉하는 절대적 기능을 하며,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행적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문제는 눈에 띄는 자질 미달 후보자와 거짓말을 일삼는 인격자들이 검증의 틀을 빠져 정당 공천 후보자로 등록해 선거 본질을 흩트리고 있다.
선거 본질의 목표가 흐물흐물 해졌다. 정당은 인품과 능력의 공천보다 충성도와 내 편 공천으로 공천 기준이 바뀌며 선거 본질은 이미 희석되었다. 정당 공천은 기준이 무엇이고 그 기준을 왜 정했는지 알 수가 없다. 전문성이 부족해도, 전과자든, 위선자든, 거짓말을 일삼으며 품행이 바르지 못해도 그것은 공천 기준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더 웃기는 것은 공천 후 공당에서도 구차한 변명으로 거짓말을 정말처럼 반복하는 것을 보며 유권자는 절망스럽다.
정치인들이 생산해 낸 공식 담론은 지겨울 정도 내 고장 발전을 외치고 있으며 그걸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주장이 흘러넘친다. 모든 정치인이 내 고장 발전은 외쳤는데도 지방은 소멸이 되어 가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런 외침이 빈말이거나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이 문제의 정답을 말할 정치인은 없다. 정답을 말한다며 허구거나 사기에 가깝다.
내 고장 지도자를 뽑는 그 의미와 내용은 심오하다. 그것은 공맹노장(孔孟老壯)이론보다 더 심오하다. 텃밭에서의 정치와 권력을 비할진대, 유물론이나 유심론은 아무 작에도 쓸모없는 이론에 불과하다. 여당이 되어야 한다거나 야당이 되어야 된다는 그들만은 논리는 불필요하거니와 현실에도 맞지 않는 언어유희다. 유권자는 이걸 혼동해서는 안 된다.
정치인들이 유권자에게 말하는 모든 공약 속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우리는 잘못 뽑는 순간에 낚싯바늘을 동시에 물게 된다. 낚시를 발라 먹이만을 집어 먹을 수는 없다. 세상은 그렇게 어수룩한 곳이 아니다. 낚싯바늘을 물면 어떻게 되는가. 입천장이 꿰여서 끌려가게 된다. 이 끌려감의 비극성을 알고 그 비극을 수용하며 살아 지내야 하는 게 유권자의 길이다.
나는 정치 신기루가 작동하는 방식은 짐작할 수 있지만, 그 정체와 본질을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소박하게 말해서 여론 조성에 따라서 상황을 판단하며 여론에 따라 선출직 단체장을 뽑아야 하는 것이 지금의 선거 형식이라면 우리는 올바른 선거를 한다고 말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선거는 사실의 기초를 가진 것보다 조성된 여론으로 신기루를 잡는 것처럼 보인다.
여ㆍ야당의 선거전에 비롯된 이 전방위의 싸움 방식은 사실관계를 규명하려는 노력보다 여론몰이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말은 질펀하게 넘쳐났고 진실의 하중을 통과하지 않은 웃자란 말들이 선거판에 굴러다니니 듣는 귀를 씻어야 할 지경이다. 상대의 억압된 소리에 대응하려는 전투의식이 고발 고소로 이어지며 철친지 원수처럼 싸우고 있다. 고소당한 인사들은 검찰수사가 시작되지도 않았고, 그들의 혐의가 입증되기 전부터 법을 어긴 '확정 이론'과 '근거 없는 주장'이 서로 적대하며 부딪쳤다. 그 두 개의 여론은 사실 기초가 애매해 조성된 여론에 가깝다.
선거에서 상대보다 숫자가 많고 상대보다 공격적인 여론을 끌어들이는 쪽이 싸움에서 이긴다는 전투 방식을
적대하는 진영들은 공유하고 있다. 다들 격렬한 언설을 한바탕 토해낸 다음 '국민이 심판할 것이다'라는 협박을 후렴으로 달고 있다. 이 말은 내 편이 더 많다는 전략적 선전에 불과하다.
이때의 국민은 허수아비와 같다. 사실에 기초가 없는 상황에서 헛소리를 듣고 국민이 무엇을 판단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이 사실관계를 국민이 판단할 수 있으면 경찰과 검찰 법원은 왜 있는가. '국민이 판단해 달라' 는 호소는 협박으로 선거를 앞세운 전체주의의 탈을 쓴 파시즘에 불과하다. 이 파시즘은 사실을 사실로써 정립시키지 않고 사실을 대중과 내 편들의 정서 속에 은폐시키려는 기만술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기만술은 유권자를 무지몽매 속으로 빠지게 한다.
여ㆍ야당 모두 문제지만 유권자의 문제도 이 못지않게 크다고 할 수 있다. 복장의 색깔을 보며 무조건 찍는 투표, '우리가 남이가'라며 묻지마식 권하는 투표, 국토 서쪽은 파란색, 동쪽은 붉은색 일변의 문제 등은 공공성을 향한 자각으로 고쳐야 할 것들이다. 유권자는 내 한 표의 지엄함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알면 선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아는 것이고 이걸 모르면 영원한 정치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다.
대선, 총선은 세상을 바꾸지만 내 일상은 지방선거가 바꾼다. 좋고 나쁨의 내 기준보다 옳고 그름의 평가와 잘할 수 있느냐 잘할 수 없느냐가 중요하다. 유권자가 이것을 외면한다면 풀뿌리 민주주의는 요원하다. 다들 포기하지 말고 잘 가려서 잘 뽑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ch2585@hanmail.net
'시민과 공감하는 언론 일요주간에 제보하시면 뉴스가 됩니다'
▷ [전화] 02–862-1888
▷ [메일] ilyoweekly@daum.net
[저작권자ⓒ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부산 덕포동 중흥S클래스 건설현장서 화재 발생...검은 연기 치솟아 [제보+]](/news/data/20220901/p1065590204664849_658_h2.jpg)
![[포토] 제주 명품 숲 사려니숲길을 걷다 '한남시험림'을 만나다](/news/data/20210513/p1065575024678056_366_h2.png)
![[포토] 해양서고 예방·구조 위해 '국민드론수색대'가 떴다!](/news/data/20210419/p1065572359886222_823_h2.jpg)
![[언택트 전시회] 사진과 회화의 경계](/news/data/20210302/p1065575509498471_939_h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