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민주주의 선진국인가? 대한민국이 또다시 이 물음 앞에 섰다. 민주주의의 위기에 맞서 잠실에서 2030 청년들이 물었다. 참정권이 무너졌는데 이 시대의 그 많은 어른은 다 어디에 있는가. 민주주의를 외쳤던 시민 사회단체는 왜 침묵하는가를.
보통 시민이 사는 민주주의 세상에는 정치보다 더 거룩하고 본질적인 국면이 반드시 있을 것이며 그것이 선거제도다. 그런데 선거제도의 토대가 무너지면 그 위에 세워놓은 것들이 대부분 무너진다. 그것은 민주주의 부실이며 삶의 적이다.
선거관리위원회의 부실 운영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데 선관위의 부실은 파면 팔수록 번져 나와 끝 간 데를 알 수가 없다. 여당은 입으로 국정조사 으름장을 놓고 있는 사이 국민의 분노는 잦아들 줄 모르고 확대일로 있다.
일반 보도에 따른 선거제도 총체적 부실은 이미 기능화되었고 오랫동안 군집화되었다. 그 기능화와 군집화의 정도는 너무나도 고질적이어서 이제는 무엇이 잘 못 되었고 무엇을 고쳐야 할지 돌아보기조차 어려운 지경이다.
언제나 올바른 제도의 기본 축은 과거와 미래를 관통한다. 민주주의의 발전은 선거제도 문화 전체를 바르게 행사토록 제도화하였고 그 제도화된 결과를 주권자가 투표로 새로운 세계를 선출하는 전인성에 있다. 그러나 그 전인성은 끝났고 주권자의 참정권이 나날이 박탈당하며 선거의 공정성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한민국이 민주국가의 정점은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시작해 오늘에 이른 보통 평등 직접 비밀 선거다. 그 선거제도로 우리는 그동안 크고 작은 혁명적 변화를 이끌어왔다. 그걸 관리하기 위해 별도의 법을 만들어 독립기구로 운영되어 온 선거관리위원회가 6.3지방선거에서 보여준 총체적 부실은 민주주의 보루로서의 자질을 의심하게 되었다.
선거관리위원회 총체적인 선거관리부실로 국민 참정권 침해를 받는 시대, 우리는 과연 민주주의 선진국인지 의문이 든다. 지방선거에서 투표용지 부족뿐만 아니라 개표 오류 같은 선관위의 문제가 끝없이 드러나고 있다. 경기, 전북 교육감 선거에선 개표 사무원이 후보 간 득표수를 바꿔 입력하거나, 한 투표소 개표 결과를 다른 투표소 결과로 입력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주권자인 청년들이 들고일어나 항의하는 너무나 당연한 사태가 발생했으며, 용지가 없어 투표를 못 하고 개표 방송을 보며 투표하는 참사가 빚어졌다. 문제가 된 91개 선거구는 거의 예외 없이 야당 강세 지역이다. 그간 민주당이 선관위를 감사원 감사 대상에서 빼는 법안까지 내며 시종 감쌌다는 사실이 더해져 의혹을 키웠다.
투표용지를 소쿠리에 담아 보관하고, 친인척 특혜 채용, 재외선거율 부풀려 해외 출장용 예산 과대 확보 등 많은 문제점으로 국민으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급기야 이번 선거에서 전국 91개 투표소에서 용지 부족 사태를 일으켰다. 이게 무슨 도깨비 씨 나락 까먹는 소린가 하겠지만 이게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다. 선진 대한민국에서 이런 해괴한 짓거리가 벌어졌다니 황당할 뿐이다.
이 모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진보 세력과 민주당은 작은 흠결도 놓치지 않고 뻥 튀겨 정치 쟁점으로 만드는 기술자들로 채워져 있다. 과거 보수 정권의 작은 흠결에는 걸핏하면 선동정치를 일삼아왔던 민주당은 국민의 참정권이 무시되었는데도 시간 끌기를 하며 사건이 잠잠하기를 기다린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역시 정치 9단 집단답게 행동하고 있다. 어디 그뿐만 아니라 그 많았던 시민 사회 단체들은 어디에 있는지 목소리도 없다. 왜들 이러는가.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보기에 이런 짓거리를 하는지, 대한민국은 지금 국민 무시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이 사태로 보며 국민을 우습게 여기는 경찰과 여당의 국민 무시 형태를 보고 있다. 시위에 참가하면 '패가망신'을 당할 수 있다며 서울경찰청장은 기자를 불러놓고 말했다. 야당을 적으로 보고 깨부수겠다는 여당 대표를 보며 과연 이 방법이 올바른가에 의문이 든다. 국민은 경악했다. 아무리 정치 권력의 언어가 추상화되어 있다지만, 경찰이 시위 진압을 위해 그럴 수 있다지만, 듣고 보는 국민의 시선은 주관적이다. 국가에서 부여받은 힘을 집행하는 자들은 법률로 보장된 정당과 국민을 옥죄고 비틀어도 되는가. 이들 언사는 말할 수 있는 자유도 아니며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들의 행동은 국민이 눈 아래 보이는 파쇼 집단들이나 하는 행동이다.
도대체 이 집단들은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누구를 위해 저러는지 모르겠다. 지금 힘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야당의 주장을 모아 깨 부스겠다는 것은 여당으로는 해야 할 말이 아니다. 여당이 야당과 다른 점은 국가와 국민을 책임진다는 관점에서 한쪽으로 치우치면 정치가 내전 상태에 빠진다. 여당이 편협해서야 되겠는가.
선관위의 집단 오류는 전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저질러졌다. 말할 게 뭐 있느냐 제일 윗선에서부터 썩었는데 아래야 말할 게 없다. 대법관의 모자를 쓴 위원장이라는 사람은 세금으로 부인을 동반해 수차례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의 가치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란 걸 보여줬다. 선관위가 일방적으로 모든 제약에서 자유롭기에 벌어진 일이다. 부실해도 눈 하나 깜짝 않는 선관위라는 '불공정 산실'을 견제할 수 있는 법 규정이 없었던 것이 최대한의 이유다.
지금 선관위 개혁을 말하는 사회적 공론은 개혁이냐 해체 수준이냐를 두고 여ㆍ야당이 맞서고 있다. 선관위 부실 운영, 이건 좌ㆍ우를 떠나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맞느냐는 개념에 관한 문제다. 국가의 기본 틀인 선거제도부터, 운영 주체의 책임까지 백지 위에 제대로 된 그림을 그려야 하지 않겠는가. 구성원 모두는 대한민국이 민주국가라는 확신을 지키는 대열에 합류해 나라의 기틀을 잡았으면 한다. 그 출발은 국가의 위상과 품격에 한참 못 미치는 선거 관리 제도를 다잡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ch258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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