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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
정치가 있는 곳에서 돈은 웅덩이 물이 고이듯 고여 있다. 고인 돈은 음습한 곳으로 흘러가 정치의 수단으로 작용한다. 돈이 정치적 채널을 따라서 밀실에서 정치와 결탁하면 검은돈이 되며 주변을 오염시킨다는 사실은 백번 강조해도 틀림이 없다.
돈 때문에 시끄러웠던 우리 정치는 지난 수십 년간 제도를 고쳐왔지만, 그때뿐 만족할 만한 제도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정치인에게 그것을 고치거나 논하는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는지 모른다. 그렇기는 하지만, 정치 지도자에게 돈으로부터 초연함이 요구되는 것은 불가피한 것이면서도 그것을 지나치게 엄격히 적용하는 것도 현실 정치에서 맞지 않은 경우도 있다. 돈은 실물을 지배할 뿐 아니라 인간의 판단과 가치, 정치적 이해관계까지도 지배하기 때문이다.
정치가 금권으로 사사로운 권력의 추구가 없어져야 한다는 요구는 정당한 일이라 하겠지만, 국민의 인지도로 정치인의 생사가 결정되는 구조에서는 나름의 문제를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명성을 강조하는 요구는, 보다 근원적인 차원에서 어떤 이상적 사회질서에 대한 국민들의 깊은 갈망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정(政)이 정(正)이란 생각은 동양의 정치사상과 뿌리 깊은 연관성이 있다. 인간 역사에서 많은 유토피아 꿈의 배경에는 이러한 생각이 잠재되어 있다. 그러나 정치의 올바름이 바로 정치의 근거를 파괴하고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조선 시대 주장만이 강한 붕당 정치가 각종 사화(士禍)의 주요 원인이었다는 것을 역사적 사건에서 우리는 보았다.
우리 정치는 주로 유교적 전통을 기반으로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적용되어 도덕과 윤리가 으뜸 덕목으로 자리매김했다. 민생 안정과 같은 문제는 중요한 정치의 과제였으나, 국민이 요구하는 정치의 역점은 올바름과 투명성에 놓이는 경우가 많았다. 국가의 일을 바르게 하려면 정치인의 높은 덕의 힘이 요구되기에 정치가 금권과 결탁하거나, 출세의 수단이 되어서 안 된다. 정치인의 바른 처신은 사회 규범이 되며 국민들로 하여금 스스로 바르게 행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정치의 본령은 사회에 조화된 질서를 구현하는 것이며, 정치인 의무는 수신하며 이 질서에 구심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황금만능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돈은 몸을 지탱해 주는 혈액과 같은 것이다고 비유함은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그 피가 탁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답은 자명하다. 요즘 우리 사회 정치 지도자 가운데 탁한 피를 마시고 시련을 겪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들이 공개한 재산내역을 보면 다들 서민은 꿈도 못 꿀 재력가들인데, 무슨 욕심으로 돈 때문에 시련을 겪을까. 이해 불가다. 돈이 인간의 마음속에 어떤 무늬와 질감을 드리우고 있는지 말하기는 쉽지 않다고 해도 아무리 돈이 추상성과 구체성을 동시에 완벽하게 완성해 낸다 한들 돈에 기갈이 들지 않고서야 그럴 수 없다. 소름 끼치는 일이다.
돈은 실물인가, 아니면 실물을 유통시키고 교환시키는 기호에 불과한 것인가. 이런 질문에 답하기 어렵기에 늘 주눅이 든다. 돈은 먹는 음식이거나 만져지는 물건이 아니기에 기호인 것이 틀림없다. 우리에게 돈은 너무나도 친숙하고 또 위력적이어서 실물인지 기호인지 얼른 구분되지 않는다. 돈이 있는 곳에 실물도 함께 있으니까 기호와 실물은 사실 구별되는 게 아니다. 돈은 세상 만물에 대한 포괄적 구매력을 행사한다. 사람들이 미치도록 돈을 좋아하는 이유가 돈의 포괄성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포괄성을 좋아하다 패가망신하고 있다. 기호와 실물 사이에는 지옥이 있고 이 지옥에 떨어지면 헤어날 길이 없다.
민주당이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으로 최악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당대표의 방탄 국회 시비 와중에 불거져 나온 돈 봉투 사건은 정치불신에 기름을 부어 불을 붙이는 꼴이다. 정부 여당은 떨어지는 지지율과 외교적 실책으로 수세에 몰려있는 국면에서, 모처럼 호재를 잡은 듯 날 선 반응을 보이며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호들갑이지만 일관성이 결여되어 시끄럽기만 하다. 보수 언론도 신이 난 듯 연일 머리기사로 보도하며 여ㆍ야 싸움에 기름을 붓는다. 그러나 정작 소리내어야 할 검찰은 별말이 없다. 국민들은 식상한 듯 저쪽 사람들은 "다 그런 건데"라며 관심조차 없다.
정작 관심거리가 되는 것은 사안의 중대함을 가볍게 생각하는 그들의 사고다. "차비, 기름값, 식사 값" 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대목이다. 비록 밥값으로 받은 돈이 직무와는 관련이 없다 하더라도 반드시 직위와는 관련이 있다. 그들이 지역구 위원장이 아니면, 전당대회 지역구 당원들에게 영향력이 없다면, 누가 돈을 주겠는가. 역시 고관대작들은 통이 커서인지 먹는 것도 크고 생각도 다르다. 국민의 배는 생각 않고 내 배만 생각하는 세상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가장 우려되는 것은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져야 하는 공당의 전당대회가 돈으로 치러졌으며, 당권 창출에 정치 권력의 개입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민주적 정치 질서, 또는 사회의 도덕적 기강, 그 어느 관점에서도 그대로 방치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돈과 정치가 서로 섞일 수 있는 영역은 생각보다 널리 존재한다. 문제는 이것을 규제하는 법과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 운영의 현실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 봉투 사건을 보며 느끼는 것은 상징적인 부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우리 사회 현실의 위험 지역을 밝혀줬다는 것이다. 돈과 정치 둘 사이에는 필연적인 관계가 아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일은 지나친 듯한 도덕주의도, 삶의 여유와 함께 기율을 확보해주는 제도가 제대로 갖추어지기까지는, 유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어제까지 멀쩡해 하는 사람이 하루아침에 부패한 사람으로 몰리며 자신의 삶 전체가 부정당하는 세상이다. 결국, 돈과 얽히게 되면 패가망신하는 정치 풍토는 정치인 자업자득의 꼴이다. 구체성과 추상성, 밀실과 광장을 표표히 넘나드는 돈의 복합성이 유죄와 무죄를 양산하며 많은 정치적 지도자를 인생 학교에 가둔다. 돈에 관한, 돈 앞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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