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자기반성이 없는 우리 사회

최철원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22-08-31 16: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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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철원 논설위원
[일요주간 = 최철원 논설위원] 정권이 교체돼 100일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상당한 변화를 겪었고, 앞으로도 많은 변화가 예정된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우리 정치가 남의 문제는 돋보기로 들여다보며 따지지만 정작 자신의 문제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몰상식이 상식화되었고, 이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에는 너무도 소홀하다.

국민의 힘 내부가 난장판이다. 지도부 공백으로 정치에서 논란의 중심이 된 여당이 공론의 공간을 시끄럽게 휘몰아 가고 있다. 걱정스러운 것은 이러한 정치 논란의 쟁점이 무엇인지가 분명치 않고 헷갈린다는 것이다. 일반 국민이 받는 인상은 주로 개인 이익을 위한 것이거나 잘못 파악된 집단 이익을 위한 권력투쟁의 일환으로 느껴진다. 이러한 논란에 나오는 주장들은 강경일변도로 우리 공론계의 풍습은 크고 작은 비중이야 어떤 것이든 사안만 있으면, 그것을 피아 구분이 분명해질 때까지 최대한 밀고 나가는 악습이 있다.

지금, 우리 정치권은 과격한 언행이 주목받고, 성찰과 반성의 풍토는 사라진 지 오래다. 여당은 대통령 지지 20%대 초라한 성적표로 국정이 실종된 비상 상태인데 정치는 내부 총질의 자해 활극이 한창이다. 여당 전 대표는 "국민도 속았고 나도 속았다"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치 언어를 싸움판에 인용하며 기어이 금도의 선을 넘었다. 흔히 금도를 넘는 자극적인 발언들은 나는 이렇게 강한 말을 할 수 있으니 알아서 함부로 하지 말라는 협박성 발언이다. 이 말은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호응을 받을 수 있다 해도 일반 국민 정서에는 벗어날 수밖에 없는 언어다.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속였는지가 모호한 지금 상황에 무엇이 진실인지 누가 맞는지를 아는 것이 두렵다. 설사 진실을 안다고 해도 진실을 진실이라 말하는 것은 더욱 두렵다. 인간사 정치가 있는 곳에는 정의보다는 불의가 더 횡행하고, 어느 사회 어느 조직이든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예사로 불의와 거짓을 말하는 여러 행태의 집단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그릇된 주장은 올바름의 탈을 뒤집어쓴 거짓과 형태를 갖추며 사물화되는 허무가 고여 있다.

여당 전 대표의 "양머리를 내세워 개고기를 팔았다." 이걸 두고 양쪽이 싸운다면 그 싸움의 논거들은 주로 이념이나 주장이 아니라 현실의 아주 특정한 부분에 대한 수리적 판단 차이 때문일 것이다. 나는 지도자들의 권역에 속해 있는 현상을 옳다고 그르다고도 판단하지 않는다. 지금 벌어지는 모든 싸움에는 내적인 필연성이 있다고 믿는다. 다만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져 서민들만 피해를 볼까 걱정이 되기에 하는 소리다.

나는 지금, 그 싸움을 향해서 당사자들이 행위가 국민을 위해 과연 옳은가를 말하자는 것이며, 그 문제가 정치 일상 속에서 왜 작동되고 있는지를 묻고 싶은 것이다. 그 싸움 결과에 대한 내 생각은 매우 회의적이다. 자기 자신들의 반성은 하나 없이 주장만 매끈한 화장을 하고 백주에 발가벗고 싸우려 하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 사회는 상식과 정의가 어떤 특정 세력 또는 특수 집단에 의해 변질 당하고 피해를 입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들이 장악한 정치력에 의해 많은 공정과 상식이 무너졌으며, 그 밖에 사회 제 가치는 적지 않은 억압과 왜곡을 경험해야 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이 모든 갈등과 부조리의 근간을 오직 그 세력 또는 집단과 정치에서만 찾는 것은 너무도 염치없는 자기변명이나 책임 호피가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사회의 구성원과 다른 제 가치가 충실하고 흔들림 없이 자기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면 과연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한마디로, 우리 모두 그때 어디서 무엇을 했건 오늘에 대한 책임은 정치인이라면 누구를 가릴 것 없이 조금씩 나누어져야 되는 게 상식인 사회가 되어야 한다.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는 게 반성이란 말이다. 흔히,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격언은 도둑을 질책하기보다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의미가 많이 내포되어있는 말이다. 우리는 도둑의 잘못과 도둑질의 비윤리성에 대해서는 이미 귀에 못이 박이도록 논의되었고, 이 사회가 영위하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회자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일은 너무도 명백하여 그 일의 처리를 특별히 입에 올릴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 어떤 경우이든, 이쯤이면 한 번쯤 문단속이 허술했던 주인에게도 반성의 요구가 있어 나쁠 게 무엇이겠는가. 훔치는 도둑보다 문단속을 잘못한 주인의 책임이 더 크다는 반성의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란다. 도둑을 잡아 엄히 처벌해도 문단속이 허술하면 또 다른 도둑이 들 것이다

반성의 능력은 과학이나 철학에서도 기초가 되는 것이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데에도 필수적인 정신 작용이다. 이러한 반성과 성찰의 과정은 개인의 선택만이 아니라 집단의 선택에서도 중요하다. 최근 여당에서 다투는 문제를 두고도, 상황을 넓게 여유를 가지고 보며 문제를 반성적으로 해결할 도리는 없는 것일까? 많은 현실 문제가 그러하듯이, 사태 진전의 속도는 우리에게 그러한 여유를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태가 급할수록 반성의 공간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문제의 사항이 어떤 문제로 시작되었든 그로 인하여 정당의 기능이 마비되고 사회 전체가 불필요한 논쟁에 빠지는 것은 국가나 정당을 위해서도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내부 권력투쟁을 문제를 넘어서 여당에게는 너무 많은 중요한 과제가 산적해 있다. 우리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옳았는데 네가 모두 틀려서 그르쳤다는 식의,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스스로의 죄 없음에 만족해 있는 동안 서로 다투는 어두운 역사는 거듭 되풀이될 것이다. 어느 쪽이나 문제의 해결을 위한 반성의 여유를 회복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자기반성이 부족한 우리 사회 정치권을 보며 새삼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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