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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세대 암 치료 기술을 둘러싼 글로벌 제약업계의 경쟁이 신약 개발을 넘어 생산과 공급망 구축으로 확대되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가 악티늄-225(Ac-225) 기반 방사성접합체(RDC) 치료제의 아시아·태평양 생산거점으로 중국 광저우를 선택하면서, 연구개발과 임상·제조·자본·시장을 하나로 연결하는 산업생태계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사진=챗GPT) |
암 치료 기술의 경쟁 지형이 달라지고 있다. 암세포를 찾아가는 물질에 방사성 동위원소를 결합해 종양을 정밀하게 공격하는 방사성접합체(RDC)가 글로벌 제약산업의 새로운 경쟁 분야로 부상하고 있다. 올해 3월 중국 광저우에서 눈길을 끄는 발표가 나왔다. 글로벌 제약기업 아스트라제네카가 광저우경제기술개발구와 협약을 맺고 악티늄-225(Ac-225)를 기반으로 한 방사성접합체 치료제의 생산·공급기지를 광저우에 구축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 시설은 중국 내수시장만을 겨냥한 생산시설이 아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중국을 넘어 아시아·태평양 지역까지 공급하는 생산거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내가 주목한 것은 투자 발표 자체보다 ‘광저우’라는 장소였다.
◆ 왜 광저우일까.
세계적인 제약기업이 차세대 암 치료제의 생산거점을 결정하는 데 필요한 것은 공장 부지만이 아니다. 연구개발과 임상, 전문인력, 규제 대응, 생산과 물류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특히 방사성 의약품은 방사성 동위원소의 반감기 때문에 생산 이후 환자에게 전달되기까지의 시간과 공급망 관리가 중요하다. 따라서 아스트라제네카의 선택을 단순한 외국기업의 중국 투자 뉴스로만 읽는다면 그 뒤에서 진행되고 있는 산업의 변화를 놓칠 수 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투자 배경 가운데 하나로 광저우가 위치한 粤港澳大湾区(광둥·홍콩·마카오 대만구, GBA)의 제조 인프라와 바이오의약 산업생태계를 언급했다. 물론 기업이 밝힌 투자 이유와 해당 지역의 실제 산업 경쟁력은 구분해서 봐야 한다. 그럼에도 글로벌 제약기업이 차세대 암 치료제의 아시아 생산·공급망을 설계하면서 광저우를 선택했다는 사실은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 약을 파는 시장에서, 약을 만드는 거점으로
아스트라제네카는 올해 1월 2030년까지 중국에 1,000억 위안 이상(한화 약 20조 원 이상)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신약 발굴과 임상개발, 생산시설 확대 등이 포함된 대규모 투자계획이며 광저우의 방사성접합체 생산기지도 그 연장선에 있다. 여기에서 중국 바이오산업의 변화를 읽을 필요가 있다. 과거 중국은 글로벌 제약기업들에 무엇보다 거대한 의약품 소비시장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연구개발과 임상, 생산, 현지 바이오기업과의 기술협력까지 연결하는 산업거점으로서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광저우 역시 그 변화의 한복판에 있다.
广州国际生物岛(광저우 국제바이오아일랜드)를 중심으로 연구기관과 바이오기업이 집적되고 있고, 최근에는 인공지능을 신약개발 과정에 결합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8월 광저우 국제바이오아일랜드에서는 ‘AI赋能药物研发创新联合体(AI 기반 신약개발 혁신연합체)’가 출범했다. 눈여겨볼 부분은 참여 주체다. 바이오기업과 AI 기업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금융 플랫폼과 투자기관까지 참여해 기술과 플랫폼, 자본과 프로젝트를 연결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나는 이 대목을 중요하게 본다.
미래 바이오산업의 경쟁력은 좋은 논문이나 특허의 숫자만으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후보물질을 발견하고 전임상과 임상을 거쳐 허가를 받고, 생산시설을 구축하고, 병원과 환자에게 전달돼야 비로소 연구실의 기술은 하나의 산업이 된다. 해외시장까지 진출하려면 규제와 자본, 글로벌 유통망도 필요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연구와 임상, 제조와 자본, 그리고 시장 사이의 거리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광저우를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광저우를 들여다보면 홍콩이 보인다
광저우의 미래기술 산업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또 하나의 도시가 등장한다. 홍콩이다. 지난 9월 광저우 南沙(난사)에서는 ‘穗港科技和产业融合创新中心(광저우·홍콩 과학기술·산업 융합혁신센터)’이 문을 열었다. 香港科技园公司(홍콩과학기술원), 香港科技大学(홍콩과학기술대학교), 광저우의 越秀集团(웨슈그룹)이 공동으로 구축하고 홍콩과기대 霍英东研究院(포잉퉁연구원)이 운영하는 협력 플랫폼이다. 이곳이 그리고 있는 구조는 비교적 명확하다.
홍콩의 대학과 연구역량, 국제 네트워크를 광저우의 산업기반과 연결하고 이를 다시 연구개발, 창업·보육, 산업화로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바이오의약뿐 아니라 인공지능, 마이크로전자, 신에너지 등이 주요 협력 분야에 포함돼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GBA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관점을 제공한다. 광저우와 홍콩을 단순히 지리적으로 가까운 두 도시로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광저우가 연구성과를 시험하고 임상과 제조, 산업화로 연결하는 공간이라면 홍콩은 대학의 연구역량과 국제금융, 글로벌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드시 확인해야 할 부분도 있다.
협력센터를 만들었다고 기술사업화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투자기관이 행사에 참여했다고 실제 투자가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정부가 발표한 프로젝트 숫자와 시장에서 살아남은 기업의 숫자 역시 같지 않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봐야 할 것은 협약서의 숫자가 아니다. 어떤 기술이 실제 투자를 받았는가. 어떤 기업이 임상에 진입했는가. 어떤 제품이 허가를 받았는가. 그리고 그것이 실제 매출과 해외시장 진출로 이어졌는가. 이 결과가 축적돼야 광저우와 홍콩의 연결이 정책적 구호를 넘어 하나의 산업생태계로 작동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 아스트라제네카의 선택이 던지는 질문
나는 중국 산업을 볼 때 정부가 발표하는 거대한 목표보다 기업 하나가 왜 특정 도시를 선택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때로는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아스트라제네카의 광저우 선택도 그렇다. 한쪽에는 글로벌 제약기업이 있다. 다른 한쪽에는 중국의 병원과 연구기관, 바이오기업과 제조기반이 있다. 그리고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홍콩의 대학과 금융시장, 국제 네트워크가 있다. 이들을 연결하려는 시도가 지금 광저우와 홍콩 사이에서 진행되고 있다.
아직 이를 성공한 산업모델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이르다. 투자계획은 실제 집행으로 확인돼야 하고, 연구성과는 임상과 허가를 통과해야 하며, 생산시설은 결국 시장의 수요와 매출로 검증돼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 변화는 분명해 보인다. 미래기술 경쟁은 연구실 안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연구에서 임상으로, 임상에서 제조로, 제조에서 시장으로 이동하는 각각의 시간을 줄이는 능력 자체가 새로운 산업 경쟁력이 되고 있다. 한국 역시 세계적인 바이오 생산능력과 병원, 대학, 연구인력 그리고 자본시장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도 단순히 ‘중국 바이오산업이 얼마나 성장했는가’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가진 연구와 병원, 제조와 자본은 얼마나 자주 만나 실제 제품과 산업으로 이어지고 있는가. 차세대 암 치료제가 광저우로 향한다는 소식에서 내가 읽은 것은 단순한 중국의 투자유치 실적이 아니다. 미래기술 경쟁의 승부처가 점차 ‘누가 먼저 기술을 발견했는가’에서 ‘누가 그 기술을 더 빠르게 임상과 제조, 자본과 시장으로 연결하는가’로 이동하고 있다는 변화다. 아스트라제네카의 선택은 그 변화가 어디에서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앞으로 광저우를 계속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일요주간 / 서정선 기자 jacobxu03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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