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 이은화 작가 시 읽기 94] 시

이은화 작가 / 기사승인 : 2026-09-07 11: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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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행


먼 친척뻘 되는 아저씨가 묻는다.
네가 시 쓴다고 들었는디
시가 뭣이여?
딱히 한마디로 답하기 어려워
고민의 흔적 같은 것이라고 하자
아저씨는 신난 듯 말한다.
그럼 나도 시인이네.
날마다 머리가 깨지도록 아프니께.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땜시.
고민을 됫박 정도가 아니라
가마니째로 하지.
아버지 산소 들렀다가
아저씨에게 시인을 돌려주고
대신 쌀 한 가마니 얻어왔다.
찰진 고민들로 빼곡한.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 시 감상 ) “시가 뭣이여?”라는 물음은 시단 안에서도 늘 미완으로 남는 질문입니다. 망설이던 화자가 “고민의 흔적 같은 것”이라 답하는 순간 이 시는 누구나 겪는 생활의 무게로 옮겨가지요. “그럼 나도 시인이네”라는 말 앞에서 시인의 자격을 가르는 경계도 허물어집니다. 시인의 조건이 등단이나 시집이 아니라 고민의 총량에 있다면, 평생 밭일과 살림을 일궈온 이 아저씨야말로 시인에 가까운 사람이 아닐까요.

화자는 아저씨께 시를 돌려준 대신 쌀을 “가마니째로” 얻어옵니다. 시와 밥이 어느새 한 저울에 올라간 셈이지요. 삶과 시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 시는 웃음기 어린 대화 속에서 슬쩍 일러줍니다. 어쩌면 “시가 뭣이여?”라는 물음의 답은 아저씨가 살아온 날들 속에 이미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것을 시라고 부르지 않았을 뿐이지요.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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